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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과 타자기 (김태호, 역사비평사, 202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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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과 타자기 (김태호, 역사비평사, 2023.)

Dog君 2024. 3. 10. 22:08

 

  문해력이 어쩌고저쩌고 말들이 많습니다만, 단군 이래로 요즘만큼 글을 많이 읽는 때도 없을 겁니다. 당장 우리의 일상이 SNS와 단단히 달라붙어 있고, 스마트폰으로든 컴퓨터 모니터로든 틈만 나면 뉴스 보고 커뮤니티 게시글도 보잖습니까.

 

  이런 일상이 가능해진 것은 다 한글이 '활자화'된 덕분입니다. 그런데 한글을 '활자화'한다는 것은 단지 글자를 먹(잉크)으로 종이에 쓰던 것을 활자로 바꾼다는 정도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낱글자를 줄줄이 이어놓기만 하면 되는 알파벳이 불과 스물몇개 하는 활자만 있으면 되는 것에 비해 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무한히 조합해야 하니 (경우의 수가 11,172라던가요...) 이게 말처럼 간단할리가 없습니다. 김태우의 '한글과 타자기'는 그 어려운 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한글을 활자화/기계화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아마도 한글을 기계화한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근대적으로 재편하는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당장 공병우만 해도 한글 기계화를 곧 한국 사회의 근대화라는 관점에서 받아들였죠. 한글 타자기가 널리 퍼질 수 있었던 것도 문서를 규격화하고 효율을 높이고자 했던 군대의 수요에 호응했기 때문이구요.

 

  '한글과 타자기'가 들려주는 한글 타자기의 역사에는 우여곡절이 많습니다. 한글 타자기를 만드는 것이 단지 서구의 알파벳 타자기에서 글쇠만 바꿔서 되는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한글 타자기를 만드는 일은 생각만큼 매끈하고 순탄한 과정이 아니었고, 그 결과물도 알파벳 타자기와는 또다른 어떤 것이었습니다. 한국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중국과 일본도 그 나름의 우여곡절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한글을 기계화하는 것이 곧 한국 사회의 근대화 과정의 일부였다고 한다면, 한글 기계화의 역사는 곧 한국 근대화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근대'란 서구의 '근대'를 단순히 일대일로 번역한 결과가 아니라 우리 나름의 맥락과 상상력에 따라 만들어진 '또다른 어떤 것'이겠지요. 그러니 우리가 '한글과 타자기'에서 확인한 것은 한글 타자의 역사 말고도 더 있는 셈입니다. 서구의 그것과는 또다른 근대의 한 조각 말입니다.

 

ps. 욕심 같아서는 '한글과 타자기'를 컴퓨터의 시대로까지 좀 더 끌고 내려오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글과 타자기'는 기계식 타자만을 다루지만 전자식 타자가 보편화된 1980년대 이후에는 또다른 맥락의 문제들이 제기되기 때문입니다. 컴퓨터로 한글을 구현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조합형과 완성형의 논쟁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것도 기다리다보면 누군가가 써주시겠죠? ㅎㅎㅎ

 

  (...) 기계식 타자기로 한자를 입력하는 최선의 방법은 역시 스기모토식 또는 그와 비슷하게 활판에서 글자를 하나하나 찾아 찍는 것일까? 설령 그렇다 해도, 활판에 수많은 활자를 어떻게 배열할 것인가? 수천 자의 한자를 규칙도 없이 늘어놓으면 원하는 글자를 찾아 찍기도 어렵지 않겠는가? 그 규칙이란 한자를 찾기 쉽게 도와주는 것이면서도, 동시에 어려서부터 한자를 익힌 중국 짓니인들이 쉽게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요컨대, 한자를 어떻게 분류하고 배열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근대사회의 기계문명과 수천 년간 축적된 한자 문화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와 깊이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중국의 지식인 중에는 전통적으로 한자를 분류하고 배열하던 방식을 근대적 기계에 어떻게든 이식할 수 있을 거라고 믿은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것은 한자를 "부수의 결합"으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
  부수라는 개념이 확립되고 나자 부수는 사람들이 한자를 읽고 쓰고 생각하는 기본 단위가 되었다. 획순을 비롯한 서법도 부수를 기본 단위 삼아 확립되었으며, 그에 따라 수많은 한자들을 분류하고 인식하는 기준도 부수가 되었다. 한자 사전, 즉 자전(한국에서 흔히 '옥편'이라고도 부른다)으로 한자를 찾는 과정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 한자는 소리글자가 아니므로 로마자나 한글처럼 소리의 순서로 분류할 수는 없지만, 부수와 획수라는 두 가지 열쇠를 활용하면 이렇게 글자를 분류하고 사전을 만들 수 있다. (51~53쪽.)

 

  (...) 한글 타자기의 개발은 단순히 하나의 기계를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로 글을 쓰는 문화' 전체를 새롭게 정립하는 큰 과업의 일부분이 되었다. 한글 타자기의 개발자들은 일본과 중국이 한자를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커다랗고 복잡한 색인형 활자 타자기로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다. 이에 비해 로마자 타자기와 똑같은 자판형 타자기로 한글을 찍는 데 성공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한글의 '우수성'을 입증하고 동아시아에서 한국 문화가 지닌 특수성을 보여주는 일이 될 터였다. 그리고 그런 타자기를 만들기 위해서 한자와의 결별은 필수적 전제 조건이었다. (60쪽.)

 

  미국 언더우드 사와 주문 제작 계약을 체결하고 미국 특허까지 출원하면서 공병우는 1950년 무렵 적극적으로 타자기 사업에 뛰어들었다. 국내 최대의 안과병원 일을 제쳐두고 타자기에 매달린 것은 단순한 여기(餘技)는 아니었다. 그의 일생을 통해 드러나듯 공병우는 매우 고집이 셌으며 자신의 선택을 확신하는 성향이 있었다. 광복 전후의 개인적 경험들을 통해 그는 서구식 효율과 속도의 가치를 높이 여기게 되었으며, 따라서 한글 전용과 한글 기계화가 한국 사회의 효율과 속도를 높이고 궁극적으로는 근대화하는 지름길이라고 믿게 된 듯하다. 일례로 타자기 생산을 협의하러 미국에 갔다가 1953년 돌아온 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이웃의 비웃음을 아랑곳 않고 "한복을 모조리 이웃이나 일가에게 나눠준 다음, 장독을 부숴 없애고 변소를 수세식으로 고쳐 안방 옆에다 당겨놓"은 뒤, "온돌방에 마루를 깔아 신발 신은 채 들락거리게 한" 것이었다. 한글 전용과 타자기 사용도 공병우에게는 같은 맥락에서 중요한 과업이었다. "제한된 능력 이상으로 인간이 일하기 위해서는 기계의 도움을 받아야" 하므로 타자기는 반드시 필요하고, 한복과 마찬가지로 허례허식에 불과한 한자도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자신의 발명이 한국을 바꾸리라 믿으면서, 공병우는 타자기 시제품을 들고 관공서를 찾아 다니며 판로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150~151쪽.)

 

  한글 타자기 시장이 여러 종류의 타자기가 경쟁하는 형태로 분화된 것은 (...) 타자수를 고용하는 각 집단이나 기관이 한글 타자기에 기대하는 바가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이는 곧 "타자기는 무엇을 하는 기계인가"라는 규범적 질문으로 연결된다. 공병우 타자기를 선호하는 집단은 타자기는 무엇보다도 빠른 속도로 글을 찍어주는 기계라고 인식했던 반면, 체재 타자기를 선호하는 집단은 타자기를 번듯하고 단정한 문서를 만들어 주는 기계라고 여겼다. 한참 시장이 팽창하면서 세벌식 타자기와 다섯벌식 타자기가 공존하면서 번영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는 이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시장이 성숙하고 본격적으로 표준화 논의가 진행된 1960년대 후반에는 각자 타자기의 본질에 대해 다른 관점을 견지했으므로 표준화 논쟁은 쉽게 해결될 수 없었다.
  한글 타자기의 개발은 현실적 수요에 부응할 뿐 아니라 "가장 과학적인 문자"라는 한글에 대한 자부심과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당위를 저버릴 수 없었기에 그만큼 더 여려운 과정이었다. 한글 타자기는 로마자 타자기와 달리 현존하는 글쓰기 방식을 그대로 기계에 옮기는 방식으로는 만들 수 없었다.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를 받아들여야 쓸 만한 한글 타자기를 만들 수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글 타자기의 개발이란 로마자 타자기의 활자를 한글 자모로 바꾸는 것보다 훨씬 크 과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글 기계화란 실상 한글의 쓰기 문화를 서구화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185~186쪽.)

 

  두벌식 기계화를 위해서는 풀어쓰기도 불사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 세벌식은 어떻게 보였을까? 공병우와 그의 지지자들은 세벌식 자판이야말로 모아쓰기를 가장 간결하게 기계적으로 구현할 뿐 아니라, 초성·중성·종성이라는 한글의 음운학적 구성 원리에 부합하므로 형이상학적으로도 흠 잡을 데 없는 자판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장차 전산화 시대로 넘어간다 해도 세벌식은 컴퓨터에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자판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두벌식을 지향하는 이들은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초성·중성·종성은 한국어의 음운학적 요소일 뿐, '한글'이라는 문자는 자음(닿소리)과 모음(홀소리)의 두 요소로 이루어진 기호 체계라는 것은 확고한 진리였다. 이들의 눈에는 자모 두벌식으로 기계화하는 것만이 '올바른' 해법이고, 세벌식도 네벌식이나 다섯벌식과 질적으로 차이가 없는 임시변통으로 보엿을 것이다. 공병우의 세벌식 타자기는 장단점이 각각 뚜렷했기에 지지자도 많았지만 비판자도 많았다. 들쭉날쭉한 글자꼴, 그에 따라 받침을 추가하거나 지워서 글자를 위변조할 가능성, 받침을 찍기 위한 공병우 타자기 특유의 부품인 쌍초점 가이드의 기계적 안정성, 한글 자모의 좌우 배치 등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문제점들이 지적되었다. 공병우는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응하여 크고 작은 개량을 거듭하여 신제품을 내놓았지만, 결국 세벌식 메커니즘은 버리지 않고 고수했다. 비판자들도 크고 작은 개량을 요구하면서도 결국 세벌식 메커니즘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234~235쪽.)

 

  (...) 요컨대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정부의 한글 기계화 정책의 무게중심은 명백하게 개인용 컴퓨터와 같은 전자기기로 이전되었고, 기계식 타자기는 구색을 맞추기 위해 개발한 정도였다고도 볼 수 있다. 전산화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고 순수한 기계식 한글기기는 어차피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라는 정부의 판단이 이와 같은 과감한 조처의 원동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새 표준 자판은 빠르게 1969년의 표준 자판을 대체했고 그 기억마저 지워나갔다. 개인용 컴퓨터가 예상보다 빨리 보급되면서, 1980년대에 태어나고 자란 새 세대들은 가정과 학교에서 두벌식 표준 자판이 달린 개인용 컴퓨터를 접하게 되었고, 다른 자판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생각할 기회 없이 자연스럽게 두벌식 자판을 받아들였다. 오늘날 두벌식 표준 자판을 쓰고 있는 이들 가운데 절대 다수는 표준으로 채택되지 못한 세벌식이나 다섯벌식 자판을 모르는 것은 물론, 14년 동안 표준이었던 네벌식 자판의 존재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265쪽.)

 

  다만 특이한 점은, 두벌식 한글 자판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공병우식 자판의 사용자가 오늘날에도 적으나마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공병우 자판이 비표준 자판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상징하는 명분에 있다. 한국인에게 한글이라는 것이 지닌 상징성을 감안하면, 한글의 기계화는 단순히 "효율적으로" 완수하면 되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올바르게" 해내야 하는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세벌식 자판 지지자들 가운데는 타자 동작의 속도나 효율성 때문에 세벌식을 택한 이들도 있지만, 초성·중성·종성에 한 벌씩 글쇠를 배당한 그 이론적 체계에 동의하거나, 또는 "독재정권의 부당한 개입으로 우수한 자판이 밀려난" 것에 대한 비판의식 때문에 세벌식을 택한 이들도 있다. 나아가 세벌식 타자기가 찍어내는 글자의 독특한 미감에 호응하는 이들이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다변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초창기에 실용성과 속도를 내세워 각광받았던 공병우식 자판이 오늘날에는 추상적인 명분이나 미적 판단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은 예기치 못했던 일이지만, 이 또한 1969년 시작된 한글 자판 표준화가 빚은 뜻밖의 결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267~268쪽.)

 

  공병우가 귀국한 후에는 젊은 타이포그래퍼들이 공병우와 직접 교류하며 함께 글꼴을 연구하고 영향을 주고받기도 했다. 홍익대학교를 졸업한 젊은 타이포그래퍼 한재준은 1988년 공병우와의 개인적인 만남을 계기로 타이포그래피 작업에 컴퓨터를 도입했고, 그 결과 1990년에는 공병우와 공동으로 탈네모틀 글자를 선보였다. 그 글꼴에는 공병우와 한재준의 성을 따서 '공한체'라는 이름이 붙었다. (289쪽.)

 

교정. 초판 1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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