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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 대한 열 가지 신화 (일란 파페, 틈새책방, 202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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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 대한 열 가지 신화 (일란 파페, 틈새책방, 2024.)

Dog君 2024. 8. 5. 19:27

 

  "이 경기는 아무 것도 아니에요. 팔레스타인에 있는 가족과 동포들에게 바칩니다. 그들이야말로 진짜 싸움을 하고 있어요. 인샬라. 그들에게 미소가 깃들길.(This fight is nothing. This is for my family, my people in Palestine. They're fighting the real fight. Inshallah, it puts a smile on their face.)" - 벨랄 무하마드(Belal Muhammad)가 UFC 첫 팔레스타인 챔피언이 되면서 한 인터뷰 中. 2024.7.28.

 

  한 때 '진보' 진영의 일각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노벨평화상을 줘야 한다는 말이 돈 적이 있습니다. 한반도에 무관심했던 오바마와 달리 트럼프는 김정은을 만난다 어쩐다 하면서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었던 때문입니다. 농반진반이었겠습니다만 사뭇 진지한 얼굴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 분도 더러 계셔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간 미국의 아랍 정책도 그러했거니와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긴장을 의도적으로 조장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정식 수도로 인정하고 미 대사관도 이전한다는 '예루살렘 선언'이 대표적입니다. 엄청난 반대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강행했고, 이에 항의하는 팔레스타인 시위대에 이스라엘은 수십여 명을 사망케 한 총격으로 응수했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죽어가는데 어찌 한반도에만 평화가 오겠습니까.

 

  일전에 올린 글에서 『DMZ의 역사』를 두고 아리아드네의 실과 같다고 했습니다. 미궁 라비린토스를 탈출하기 위해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 놓아온 아리아드네의 실이 필요했던 것처럼, 꼬여버린 한반도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서도 지금까지의 역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었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도 아리아드네의 실이 필요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스라엘에 대한 열 가지 신화』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꼭 책을 읽고 역사까지 공부해야 하나 싶기도 합니다. 언론 기사 정도만 읽어도 이스라엘이 얼마나 무도한지를 아는데는 별 문제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여기에 이 책의 미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폭력과 서구의 무관심(혹은 조장)에만 주목하다가 정작 팔레스타인인이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고 무엇을 생각하는지는 종종 간과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제법 긴 분량을 팔레스타인인의 경험과 역사를 설명하는데 할애하지요. 일란 파페는 팔레스타인 지역이 황폐한 공백지였다는 말을 공박하고 팔레스타인은 독자적인 역사와 정체성을 공유했던 역사적 공동체였다고 지적합니다. (팔레스타인이 본디 황폐한 땅이었다는 주장은 그 땅에서 새롭게 국가를 건설한 이스라엘에 대한 경탄으로도 이어집니다.) 이 주장을 받아들이면, 팔레스타인의 투쟁은 단순한 영토 분쟁이 아니라 스스로의 역사와 공동체를 수호하기 위한 반식민투쟁의 일환으로 이해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 팔레스타인의 저항은 인류의 보편적인 존엄을 위한 투쟁이 되기도 하지요. 이를 납득시켰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은 팔레스타인에 보내는 최선의 연대의 메시지일 겁니다.

 

  공교롭게도 에피소드가 업로드된 7월 31일,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을 공습했고 하마스의 지도자가 암살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중동의 전운은 점점 짙어만 가는데 무력감은 여전합니다. 책 읽는 것 말고 우리가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요.

 

  시온주의 도래 이전에 팔레스타인에서 민족주의가 부상한 과정에 대한 상세하고 포괄적인 연구는 무함마드 무슬리Muhammad Muslih와 라시드 할리디Rashid Khalidi 같은 팔레스타인 역사가들의 저서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의 연구는 1882년 이전에 팔레스타인 사회의 엘리트 계층과 일반 대중 모두가 민족 운동과 민족주의 정서 발전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음을 명확하게 보여 준다. 특히 할리디는 애국심, 지역 충성도, 아랍주의, 종교적 정서, 높은 수준의 교육과 문해력이 어떻게 새로운 민족주의의 주요 구성 요소가 됐는지를 보여준다. (...)
  할리디는 무엇보다도 시온주의가 1917년 영국으로부터 유대인의 고향을 약속받으면서 팔레스타인에 영향을 끼치기 이전에, 근대화나 오스만 제국의 붕괴, 탐욕스러운 유럽인들의 중동 영토에 대한 욕망이 팔레스타인 민족주의를 확고하게 굳히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보여 준다. 이 새로운 자기 정의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표현은 팔레스타인을 지리적이고도 문화적인 실체로, 나중에는 정치적인 실체로서 언급하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이라는 국가는 없었지만 팔레스타인의 문화적 위치는 매우 분명했다. 하나라는 소속감이 있었다. (...) 팔레스타인인들은 자기만의 방언을 사용했고, 자기만의 관습과 의식이 있었다. 그리고 세계 지도에는 '팔레스타인'이라는 나라에 거주한다고 표기했다.
  (...) 시온주의가 문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팔레스타인도 아마 레바논, 요르단, 시리아와 같은 길을 걸어 근대화와 성장의 과정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 (「01. 팔레스타인은 빈 땅이었다」, 48~50쪽.)

 

  이렇듯 겉보기에 종교적이고 신화적인 믿음이 실제 식민지화 프로그램과 강탈 계획으로 전환될 징조가 1820년대 초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 이미 나타났다. 팔레스타인을 점령하여 기독교 사회로 편입시키려는 전략적 계획에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귀환을 그 핵심에 두는 강력한 신학적, 제국주의적 운동이 등장한 것이다. 19세기에 이러한 정서는 영국에서 더욱 퍼졌고 제국의 공식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 (「02. 유대 민족에게는 땅이 없었다」, 55~56쪽.)

 

  (...) 시온주의는 독특한 것이 아니라 정착 식민주의 과정의 한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식민 프로젝트의 교묘한 책략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하지만, 이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해석하는 데에도 중요하다. 누군가가 팔레스타인이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었고, 땅 없는 이스라엘 민족을 기다리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스스로를 방어할 논거 자체를 빼앗기게 된다. 팔레스타인인이 자기 땅을 지키기 위해 하는 모든 노력은 정당한 소유자에 대한 근거 없는 폭력 행위가 되어 버린다. 따라서 시온주의를 식민주의로 논의하는 일과, 팔레스타인인을 식민지 원주민으로 논의하는 문제를 분리하기는 어렵다. 이 두 가지는 같은 해석으로 연결되어 있다. (「04. 시온주의는 식민주의가 아니다」, 114쪽.)

 

  민주주의를 판별하는 기준은 그 사회에 살고 있는 소수자를 얼마나 포용하는가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은 진정한 민주주의에 훨씬 못 미친다. 그 사례가 있다. 새로운 영토를 얻은 다음에 다수의 우월한 지위를 보장하는 여러 법안이 통과됐다. 시민권에 관한 법, 토지 소유권에 관한 법,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귀환법이 그것이다. 귀환법은 세계 어디에서 태어났더라도 모든 유대인에게 자동적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내용이다. 특히 이 법은 노골적으로 비민주적이다. 1948년 유엔 총회 결의안 194를 통해 국제적으로 인정된 팔레스타인인의 귀환권을 전면 거부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시민은 직계 가족이나 1948년에 추방된 이들과 함께할 수 없다.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권리를 부정하고, 동시에 그 땅과 관련이 없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 권리를 부여하는 일은 비민주적 관행의 전형이다.
  여기에 팔레스타인 민족의 권리를 더욱 부정하는 행위가 하나 더 추가됐다.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시민들이 군 복무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근거로 이들에 대한 거의 모든 차별을 정당화한다. 이스라엘의 정책 입안자들이 (...) 팔레스타인 시민들이 어차피 군에 입대하기를 원하지 않으리라 갖어했고, 이를 바탕으로 그들의 차별 정책을 정당화했다. 1954년 이스라엘 국방부가 징병 대상인 팔레스타인 시민들을 징집하기로 하자, 이 정책이 시험대에 올랐다. (...) 놀랍게도 징집 대상자들으느 모두 관계 기관으로 향했다. 당시 팔레스타인 공동체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정치 세력이었던 팔레스타인 공산당이 이들을 축복했다. (...)
  이 사건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팔레스타인 공동체가 군복무를 거부한다는 루머를 계속해서 퍼뜨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들을 핍박하는 이스라엘 군대에 실제로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 (「07.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유일한 민주 국가다」, 195~197쪽.)

 

  1980년대 후반 하마스가 등장했을 때, 가자 지구에서 주요 경쟁자는 파타 운동Fatah movement이었다. 파타는 PLO를 창설하고, 주요 조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오슬로 협정 협상과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설립―그래서 PLO 의장이 자치 정부의 수반이자 파타 대표다―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지지를 일부 잃었다. 파타는 좌익 성향이 강한 세속적 민족 운동으로, 1950년대와 1960년대 제3세계 해방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았다. 파타는 모두를 위한 민주적이고 세속적인 국가를 팔레스타인에 세우는 데 여전히 전념하고 있다. 하지만 파타는 1970년대부터 전략적으로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해 왔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모든 점령지에서 완전히 철수하도록 하고, 10년의 휴전 기간을 거친 다음에서야 비로소 미래에 대한 어떠한 해결책이라도 논의할 용의가 있다. (「09. 가자 신화」, 236~237쪽.)

 

   하마스가 권력을 잡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부터 가자 지구에서 복무하며 점령 지역의 종교 문제를 담당했던 애브너 코헨Avner Cohen은 2009년 〈월 스트리트 저널〉에서 이렇게 말했다. "매우 유감스럽지만,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작품이다." 코헨은 셰이크 야신Sheikh Yassin이 1979년에 설립한 자선 단체 알무자마 알이슬라미야al-Mujama al-Islamiya(이슬람 센터Islamic Society)가 강력한 정치 운동이 되고, 1987년 하마스가 출범하게 되는 과정에 이스라엘이 어떻게 도움을 줬는지 설명한다. 하반신 마비에 시각 장애가 있었던 이슬람 성직자 셰이크 야신은 하마스를 창설했으며, 2004년 암살될 때까지 하마스의 정신적 지도자였다. 원래 이스라엘이 야신에게 도움을 제안하며 접근해 확장을 허가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스라엘인들은 이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 야신이 자선 활동과 교육 활동을 통해 가자 지구 안팎에서 세속적인 파타를 견제하는 힘이 돼 주길 바랐다. 1970년대 후반에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미국과 영국도 세속적인 국가 운동을 (지금은 없어서 아쉬워하지만) 서방 최대의 적으로 간주했다.
  (...)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 사이에서 하마스가 인기 있었던 이유가 오슬로 협정의 성공이나 실패 때문만은 아니다. 이스라엘 점령하에서 살아가는 일상적 괴로움을 해결할 방법을 세속적 현대성을 통해 찾지 못했기 때문에 하마스가 (점령지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많은 이슬람교도의 마음을 사로잡게 됐다. 아랍 세계의 다른 정치적 이슬람 단체와 마찬가지로, 세속 운동이 고용, 복지, 경제적 안정성을 제공하는 데 실패하자 많은 사람들이 다시 종교로 돌아갔다. 종교는 위안을 줄 뿐만 아니라 자선과 연대의 네트워크도 제공했다. 전 세계적으로 그러하듯이 중동 전체에서도 현대화 및 세속화로 일부 소수는 혜택을 누렸지만, 나머지 많은 사람들은 불행하고 가난하며 비통했다. 종교는 만병통치약 같았고, 심지어 정치적 선택지로 보일 때도 있었다. (「09. 가자 신화」, 243~245쪽.)

 

  (...) 이제 이스라엘이 서안 식민지화를 완료하고 가자 지구를 계속 봉쇄하는 짓을 아무도 막지 못할 듯하다. 이는 국제 사회의 승인을 받아야만 이뤄질 수 있는 일이지만, 이스라엘에는 그런 승인이 없어도 이를 기꺼이 계속하려는 정치인들이 충분히 많다. 어느 쪽이든 이스라엘은 서안 절반을 합병하고, 나머지 절반과 가자 지구를 격리 구역으로 만들며, 자국 내 팔레스타인인 시민들에게 일종의 인종 격리 체제를 도입하는 등 자신들이 생각하는 "해법"을 실현하기 위해 잔혹한 무력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두 국가 해법'에 대한 논의는 무의미하고, 시대에 뒤처져 쓸모가 없어진다. (「10. '두 국가 해법'이 유일한 길이다」, 292~293쪽.)

 

교정. 1판 1쇄

56쪽 밑에서7줄 : 존 애덤스Johm Adams -> 존 애덤스John Adams

110쪽 4줄 : 로얄 필 위원회Royal Peel Coommisision -> 로얄 필 위원회Royal Peel Commission

234쪽 밑에서3줄 : 아파르트헤이드 -> 아파르트헤이트

292쪽 각주 : 안정보장이사회 -> 안전보장이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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