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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143호 (역사비평사, 2023.) 본문

잡冊나부랭이

역사비평 143호 (역사비평사, 2023.)

Dog君 2024. 8. 6. 21:38

 

  계승범은 인조반정이 충보다 효를 강조하는 소위 '효치국가'가 성립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강조하고, 이를 조선의 유교정치에서 나타난 일종의 특수성으로 해석하면서, 이 특수성으로 인해 근대 국민국가 형성이 저해되었다고 보았다. 오수창은 기본적으로 조선시대 유교적 전통에 입각한 사대부 세력의 정치로부터 서구적 근대성이 전해지기 전부터 싹트고 있던 한국의 '고유'한 근대성의 맹아를 찾을 수 있다고 보는 입장에서, 인조반정을 당시 조선의 정치질서와 가치기준에서는 비상한 상황에 대한 조선 국가체제의 정상적 작동으로 보았다. 양자가 이러한 주장들을 내세워 팽팽하게 맞서고 있기 때문에, 이 두 주장은 일견 인조반정이라는 중대한 국면을 전후한 조선왕조의 정치를 얼마나 근대지향적인 정치로 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상반된 평가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역사학자가 서로 팽팽하게 맞서면서 상반된 것으로 내세워온 이 두 주장에는, 함께 공유하는 중요한 지점―양자가 간과해온―이 있다. 첫째로, 두 주장 모두가 근대 국민국가의 역사학 연구가 소위 '서구적 근대성'이라는 것을 본질화할 때 사용해왔던 정치적 근대화의 척도들―능력주의에 기반한 관료제사회의 성립, 공론장과 공론정치의 성립, 시민층의 성장, 정당의 성립, 민주주의의 발전, 내셔널리즘과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 등등―을 공유하면서, 유교적 전통에 입각한 정치와 '서구적 근대성' 사이의 거리를 가늠해왔다는 점이다. 이는 상반되어 보이는 양자의 주장 안에서 공히, 지금까지 통용되어온 '민주주의'라는 근대성의 정의를 기준으로 서구중심주의와 이를 전유한 자국중심주의가 함께 작동하는 인식론적 위계질서를 만들어낸다. 이런 관점은 지금까지 이해해왔던 민주주의의 의미만을 앞으로도 여전히 추구해야 할 '보편적' 근대성으로 본질화하고, 여러 사회들의 역사에서 이를 얼마나 잘 실현했는가에 따라 그 사회들의 문명화·근대화된 정도를 서열화하는 역사인식론을 본질화한다.
  둘째로, 그렇기 때문에 이 상반되어 보이는 두 주장은 공히 서구 근대 국민국가의 역사학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역사학 방법론이라고 강조해온 '실증주의'를 가장 근대적이고 '보편적'인 역사학방법론으로 본질화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 두 역사학자들의 연구에서 '실증주의'는 모토처럼 강조된다. 오수창과 계승범 모두, 서로 자신의 논지를 "실증"된 역사적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누누이 강조하며 실체화하기 위해 경합했다는 점은, 굳이 인용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역사비평』에 게재된 두 논문들에서 현저하게 드러난다. 이렇게 되면 결국 역사학 연구의 결과물을 역사적 "사실"의 차원으로만 본질화시켜 이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요컨대 상반되어 보이는 두 역사학자의 주장 속에서 공유되고 있는 이 두 문제점들이 함께 작동해, 두 학자 모두가 속해 있는 근대 역사학의 역사주의가 조선의 역사와 그 유교적 전통에 대해 오히려 매우 본질화되고 초역사적인 결론을 도출하게 되는 문제점을 초래해왔던 것이다. 한쪽은 조선시대의 오래된 유교적 전통에 입각한 사대부 세력의 정치에서 서구적 근대성이 전해지기 전부터 싹트고 있던 한국의 "고유"한 근대성의 맹아를 찾을 수 있으며, 그 고유한 정치적 근대성의 맹아가 결국 서구적 근대성의 수준으로까지 발전한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본질화한다. 다른 한쪽은 조선 후기 인조반정을 통해 드러난 유교정치의 성격을 한국의 유교적 전통으로 특수화시키고, 그 고유한 유교적 정치의 전통이 오히려 서구적 근대성의 달성을 저해했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본질화한다.
  이렇게 되면 양쪽 주장 모두가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에 역사학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특정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중시된 특정한 역사관에 입각해 제기된 학설이라는 점은 은폐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분과학문 자체가 양쪽의 입장만을 "실증"을 통해 증명된 역사적 "사실"로 실체화하는 이항대립적 역사인식론의 구도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 결국 후속세대 학자들이 자신들이 공부하는 분과학문의 학술지형 자체가 어떻게 형성되어온 것인가를 비판적으로 살피면서 상대화시키기 어렵게 되었고, 양쪽 주장으로 대표되는 기존 연구성과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다양하고 성찰적인 연구들이 제시되기가 매우 어려웠던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되면 양쪽 주장 모두 더욱 자기완결성을 확신하며 본질화되는 것 역시 피할 수 없다. '서구적 근대성' 이전에 조선의 유교적 전통이라는 고유한 토양 속에 '한국적 근대성'의 맹아가 이미 싹텄음을 강조했던 쪽에서는, 1945년 이후 한국에서의 한국사 연구가 일본 식민주의 역사학의 영향에서 벗어나겠다고 천명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고유한 근대성의 맹아를 가늠해내기 위해 사용한 근대성의 척도 자체가 이전 여러 식민주의가 내세웠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고, 그로 인해 '근대성' 자체에 대한 성찰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다른 한편에서 한국의 유교적 전통의 특수성 때문에 서구적 근대성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강조해온 쪽에서는, 자신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관점이 결국 1945년 이후 미국 동아시아학과 그 안에서의 한국학 연구에 크게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1945년 이후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패권이 강화되는 가운데 미국 동아시아학과 한국학 연구가 자신이 위치한 한국 내의 한국사 연구와 연동되는 역사적 맥락과 그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성찰하지 못한다. 그러니 결국 조선의 유교적 전통에 대한 자신의 그러한 평가가 이전 일본 식민주의 역사학이 조선의 유교적 전통에 대해 내렸던 평가와 어떻게 다른 것인지를 묻는 비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오수창과 계승범의 논쟁 자체가 바로 이러한 문제점들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두 역사학자의 논쟁 속에는 자신의 주장을 "실증"된 역사적 "사실"로 더욱 본질화하려는 경쟁은 있지만, 자신이 추구해왔던 한국사 연구를 변화하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성찰적으로 돌아보고, 이를 바탕으로 이제 앞으로는 해당 주제에 대한 논쟁을 어떤 관점에서 새롭게 시도해야 할 것인지를 전망하려는 시도는 찾기 어렵다. (정다함, 「『모후의 반역』에 대한 오수창 교수와 계승범 교수의 논쟁을 바라보며」, 309~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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