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역사비평 145 (역사비평사, 2023.) 본문

잡冊나부랭이

역사비평 145 (역사비평사, 2023.)

Dog君 2024. 8. 6. 21:41

 

  사실 '근대화'와 '반외세'라는 용어 속에는 단지 억압받던 현실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식민주의,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논리를 구조적으로 내장하고 있던 국가 간 세계 체제 안에서 더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욕망과 경쟁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러한 용어들은 의도 여부와 무관하게 내셔널리즘을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러한 역사 인식에는 식민주의나 제국주의를 근원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시야가 거의 닫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서구의 경험을 추종하는 서구중심적, 근대중심적 역사 인식과 서술에 대한 성찰과 극복이 요청된다.
  국민국가나 내셔널 히스토리에 대한 비판은 이미 꽤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왔다. 예컨대 1990년대 말부터 수용된 국민국가론과 포스트 담론 등은 일국사적 시각과 그에 입각하여 서술된 역사상이 내포한 억압성과 폭력성에 대해 비판해왔다. 이는 앞으로도 유념해야 할 태도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국민국가론은 기본적으로 일국 내부에서 작동하는 국민국가의 억압성, 특히 국가권력과 개인 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국가권력이 자행한 억압이나 폭력성을 고발하는 데 중심을 두어왔다. 또 근대 이후 모든 것이 국민국가로 회수되고 그것이 한층 강화되어간다는 논리는 국민국가가 가진 무소불위의 권력과 특권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한편, 국민국가의 억압과 폭력에 대항할 수있는 가능성들을 사실상 소거해버린다는 점에서 논리적 폐쇄성을 보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국가가 행위 주체인 '국가 간 체제'라는 국제질서의 현실 속에서 국민국가를 '악의 화신'으로 비판하는 데 머무르는 것은 국민국가의 성격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거나, 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극복의 계기까지 폐쇄해버린다는 점에서 체제에 사실상 투항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예컨대 국가가 해체되고 '국사'가 사라지면 개개인이 자율적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은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구성·운영 원리나 힘을 외면 내지 축소하는 반면, 개개인의 자율성을 규정하는 힘이 국가에게만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국가의 성격과 의미를 지나치게 부정적인 측면으로 악마화하는 반면, 자본의 문제, 국가-자본 관계, 개인-자본 관계에 대한 고민을 외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글로벌화한 자본이나 팬데믹 이후 더욱 시급해진 기후·환경 문제 등 현재 글로벌한 차원에서 제기되고 있고 글로벌한 연대와 협력을 요구하는 다양한 도전과 과제들에 대한 설득력 있는 대응 방안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국가 간 연대나 협력의 가능성이 애초에 봉쇄되기 때문이다. (배항섭, 「한국 근대사 이해의 글로벌한 전환과 식민주의 비판―기후변동과 역사 연구의 새로운 방향 모색」, 298~299쪽.)

 

  (...) 이 글에서 강조하고 있는 기후나 환경 문제, 그리고 갈등과 차이의 극복과 연대와 협력의 모색 등은 모두 글로벌 히스토리와매우 친화적 성격을 가진다. 예를 들면 글로벌 히스토리 연구자인 벤틀리(Jerry Bentley)는 글로벌 히스토리와 환경 문제의 관련성을 강조하였다. 또 글로벌 히스토리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주변 세계를 '큰 문맥이나 체계' 안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인류가 오랫동안 서로 간의 '차이'를 성공적으로 다루어왔고, 서로의 차이에 대해 익숙해지게 함으로써 차이로 인한 부질없는 갈등과 대립을 피할 수 있게 했음을 보여준다고 하였다. 이런 점에서 글로벌 히스토리의 문제의식은 기후변동과 환경 문제라는 과제에 대응하기 위한 글로벌한 연대와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하여 한국 근대사 연구에 '글로벌 히스토리'를 전면 수용하자는 것도,한국 근대의 사건이나 상황 등을 모두 글로벌한 맥락이나 기준에서만 이해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사건이나 상황에 따라 글로벌한 차원보다는 국가 혹은 더 좁은 지역사회의 내적인 맥락에서 접근할 때 훨씬 더 설득력 있는 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 경우가 더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리 벤틀리도 근대사에서 국민국가의 역할을 무시하는 주장이나, 모든 내셔널 히스토리(national histories)가 글로벌 히스토리 속에 용해된다는 주장, 혹은 글로벌 히스토리가 민족공동체들(national communities)에 대한 경험을 설명하고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 충분하다고 추정하는 것은 모두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하였다. 또 다른 글로벌 히스토리 연구자인 리차드 드래이튼(Richard Drayton)도 지적했듯이, 글로벌 역사가가 된다는 것은 종종 매우 특정한 장소, 기관, 인물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지 일반적이거나 일반화할 수있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글로벌 히스토리는 "타자를 우리(영어권)의 개념과 언어로 국제적 내러티브에 통합하기 위한 또 다른 영어권의 발명품이라고 단정하지 않기 어려우며", 오히려 유럽중심주의를 확대할 수 있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배항섭, 「한국 근대사 이해의 글로벌한 전환과 식민주의 비판―기후변동과 역사 연구의 새로운 방향 모색」, 309~310쪽.)

 

  (...) 저자는 단지 권력의 작동만을 부각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정착촌, 자활촌에 작동하는 '사회적 경계'를 복합적인 차원에서 물으면서, 내부난민들이 단지 국가 정책의 피해자가 아니라,국가 정책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활용하기도 했던 행위자였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내부난민들의 크고 작은 저항들이 이 책 곳곳에 기입되어 있다. 개척단원의 합동결혼에 대한 반발로 도망가는 여성들, 서산 개척단 사업장에서 일으켰던 스트라이크 이후 사업장의 통제 구조가 무너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도망갔던 경험 등이 이에 해당한다. 저자는 "정부가 법과 제도로 정착을 규정했지만, 난민은 그것을 활용하거나 위반하면서 대응"했으며, "난민을 향한 정책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과정과 그 결과를 보면, 난민은 적극적인 주체였다"고 평가한다(33쪽).
  (...)
  이처럼 저자는 내부난민들의 행위자성을 찾아내고 있지만, 내부난민의 행위자성이 단지 긍정적으로만 작동했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천차만별한 위치성을 지닌 존재들이 정착촌 혹은 자활촌에 모여 직조해냈던 '사회적 경계'는, 내부난민들과 지역주민 사이에, 또한 내부난민들 속에 또 다른 위계를 만들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가 정착촌과 자활촌 등의 정착사업장을 "마을, 지역, 국가의 경계가 만들어지는 곳이자 경계의 지속과 변용, 극복이 진행되는 곳"으로 파악하고, "경계의 형성과 변화가 난민이 사업장, 지역, 국가에 정착하는 과정이기도 했다"고 분석하는 지점은 날카롭다. 또한 그 사회적 경계는 일반적인 예상과 어긋난 형태로 작동하기도 한다.
  (...)
  국책으로 실시된 내부난민의 정착 과정이, 곧 국가의 경계와 공동체 내부의 경계가 재형성되는 과정이었음을 선명히 보여주는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동시에 내부난민들은 단지 국책에 의한 수동적 피해자에 머물지 않았고, 자신들의 소유권 등을 주장하며 정부 정책을 역이용하는 행위자성을 보인다는 점을 포착한다. 이처럼 내부난민들의 자발적 힘을 긍정하고 드러내려는 저자의 의도에는 십분 공감한다. 그렇지만, 결론에서 난민의 행위자성을 국가에 동등하게 대항하고 대응할 수 있는 힘인 것처럼 제시하는 부분은 좀 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난민은 정부의 정책을 활용하면서 농지를 조성했고, 현실의 조건과 미래 전망에 따라 정착과 이주를 선택했다. 난민이 정착사업에 참여하고 농촌에 정착하거나 재이주하는 과정은 1950~60년대 국가를 재건하고 다층의 경계 속에서 국민이 형성되는 역동적인 변화였다"(409쪽)고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이미 충분히 보여주고 있듯이, 내부난민들이 정착과 이주를 반복하는 과정은 국가와의 압도적인 힘의 차이 속에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이 과정은 국민의 형성 과정인 동시에, 언제든 국가는 국민을 난민화할 수 있다는 '불/완전한 국민의 조건'을 드러내주는 게 아닐까. (신지영, 「'내부난민(IDPs)'의 확장과 '외부난민(refugee)'의 가시화: 미래의 갯벌을 기다리며 - 『난민, 경계의 삶』」, 433~435쪽.)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