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1 (10)
Dog君 Blues...
저는 이 책이 이토록 가독성이 좋은 것이, 책의 내용 뿐만 아니라 구성에서 기인하는 바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흡사 드래곤볼 같은 구조라고나 할까요. 드래곤볼의 손오공이 피콜로, 프리저, 셀, 마인 부우의 순서로 점차 강해지는 적을 상대했던 것처럼, (이런 구성/장르를 '배틀'물이라고 한다지요) 이 책은 린나이우스가 분류학을 정립시킨 이후 '진화의 계통'을 들고 나온 진화론, 각 생물개체의 특성을 수량화한 수리분류학, DNA를 통해 진화의 계통과 생물의 분류를 추적하는 분자생물학, '진화상의 새로움'에 주목한 분기학 등, 차례로 강적을 만나는 과정처럼 보입니다. 그러고보니 그 결과도 드래곤볼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제 기억 속의 드래곤볼은 프리저(1단계)의 전투력이 53만 정도였고 이후에도 뭐 대충 그 언..
늘 가던 십자수가게에 남아있던 반제품을 전부 다 가져왔다. 감사하게도 꽤 많은 양을 모두 그냥 주셨고, (이제는 십자수 손님이 나밖에 없는 것 같다...) 연말연시에 걸쳐 하나씩 만드는 중.
저는 역사학 연구자가 늘상 의식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윤리'라고 생각합니다. 역사학의 본질이 과거에 있었던 일을 현재에 재현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 재현의 결과인 글이 세세만년 남는 것이라면, 연구자는 한순간도 윤리의 문제를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글을 쓴다는 것은 일종의 '권력'이기도 합니다.) 혹시라도 내 생각과 내 글이 누군가를 대상과 수단으로만 보고 있지는 않은지, 그 역시도 나와 똑같은 인격체이자 동료시민이라는 점을 망각하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할 위험은 없는지, 늘 긴장해야 합니다. 사회적 참사 생존자와 사회적 소수자를 오랫동안 연구하고 또 연대했던 보건학자 김승섭의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에는 그러한 긴장이 가득합니다. 누구보다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많고 ..
역사학은 과거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하지만 지나간 과거를 직접 들여다 볼 수는 없지요. 과거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과거가 남긴 흔적인 '사료史料'를 통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사료도 과거를 온전히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사료를 통해 과거를 살피는 것은 흡사, 안주접시에 담긴 북어포를 보며 명태 어군이 헤엄쳐 다니는 동해바다를 상상하는 일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역사학 연구자는 늘 사료에 목이 마르지요. (반대로 가장 기쁠 때는 사료 찾았을 때 ㅋㅋㅋ) 기본적으로는 문헌으로 남은 것이 가장 주된 사료가 되겠습니다만, 역사학 연구자는 비석에 새겨진 글귀나 구전된 이야기, 땅에 묻힌 유물과 유적 등 과거에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이라면 무엇이건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역사학 연구는 과거에 접근할 수 있는 더 많..
한 200년 쯤 뒤에 어떤 역사학자가 90년대 말 이후의 한국 사회를 연구하면서 "많은 대학생들이 노량진으로 갔다"라는 문장을 만났다고 가정해봅시다. 지금의 우리는 저 문장을 대번에 이해할 수 있습니다. IMF 이후 직업의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해지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다는 뜻이죠. 하지만 90년대 말 이후의 한국 사회를 모르는 사람이 저 문장을 읽으면 그 뜻을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상상도 못한 아주 엉뚱한 해석을 내놓을 수도 있습니다. ㅎㅎㅎ 역사를 연구한다는 것이 대체로 이러합니다. 단순히 사료史料를 읽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때가 많죠. 사료의 겉면만으로는 읽어낼 수 없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나 전제들을 알아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
1923년 9월 1일 낮, 대규모 지진이 일본 간토지방을 강타했습니다. 지진 자체도 문제였지만 지진이 하필이면 점심시간에 일어난 것도 비극이었습니다. 불을 피워 식사를 준비하던 중이라 지진이 화재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수없이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비극 앞에 흉흉해진 마음이, 서로 달래고 도우며 진정되기보다는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분노와 폭력으로 분출되었습니다. 일본으로 이주했던 조선인과 중국인을 비롯해 평소부터 일본 우익과 군부가 눈엣가시로 여겼던 사회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 등이 그 대상이었습니다. 그 결과 최소 수천 명이 살해당하는 최악의 학살이 자행되었습니다. 이게 우리가 아는 '간토대학살'입니다. 그런데 약간 의아한 것이 있습..
이 책의 성취는 무엇보다 한국현대사 연구에 '난민'이라는 화두를 던졌다는 점에 있습니다. '난민'은 본래 삶의 터전에서 유리(流離)된 존재인 동시에 정착이라는 명목으로 동원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국민국가의 안과 밖에 모두 걸친 존재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제목에 "경계"가 들어갔겠죠.) 그말인즉슨 '난민’ 개념이 한국현대사의 어떤 측면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무척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다만 이 개념은 김아람 선생님이 이제 막 화두로 던진 것이라 '난민' 개념의 정확한 의미와 범위는 후속 연구를 통해 더 다듬어져야겠지요.) 하지만 혹자에게 이 책은 딱히 새삼스럽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국가폭력을 폭로하거나 역사 속에서 소외되고 배제되었던 존재들을 발굴하는 연구가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