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20150508-20150511 몽골여행 2 본문
세계에서 두 번째로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켰을 때 젊은 몽골 혁명가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사회주의는 낙관이 지배했던 19세기의 산물이었다. 이성의 힘으로 세상 모든 진리를 파악하고 무한히 발전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사회주의의 뿌리였다. 그러니 아마도 그들 역시 꿈에 부풀었을 것이다. 무한히 성장하면서도 그 결실은 모두에게 고르게 나눠지는 삶을 실현할 몽골이라는 땅.
하지만 세상은 젊은 혁명가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인민의 자발성과 노동계급의 진취성이란게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거라던가. 그 다음 이야기, 뻔하다. 인민들이 원하고 노동계급이 지향하는 바라는 것은 실상 당이 원하고 지향하는 것이었고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이에게는 가혹한 탄압과 숙청이 이어지더라는, 어디서 많이 들어봤던 흔한 이야기.
혁명이든 이데올로기든 그런 것이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이걸 필요로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기 전에 남 보기에 좋은 것 혹은 남이 좋다고 말하는 것을 가져다가 억지로 내 주머니에 꽂으면 늘 그렇다. 소련 붕괴 후 기다렸다는 듯이 몽골이 '민주화'의 길을 걸었던 것도 아마 그 때문이리라. 젊은 혁명가, 수흐바타르와 초이발산이 몽골이라는 세상을 바꿨다고 하지만, 글쎄 그들이 정말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사회주의의 이상이 무너진 빈 자리에는 다른 것들이 들어찼다. 울란바토르 중심에 있는 수흐바타르 광장은 징기스칸 광장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징기스칸의 거대한 좌상이 들어섰다. 징기스칸이 내려보는 시선이 가닿은 곳에 있는 수흐바타르의 기마상은 영락 없는 징기스칸의 부하 장수의 모습이다. 사회주의 모국의 영웅 레닌 동상은 진작에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는 민족시인 나차그도르지의 상이 자리잡았다.
몽골의 '사회주의화'가 그랬던 것처럼 몽골의 '민주화'를 주도한 것도 30대의 젊은 세대였다. 몽골 '민주화'의 상징과도 같은 조리그(Sanjaasürengiin Zorig)는 20대 후반에 정치를 시작해 10년이 채 되지 않아 암살당했으니 그가 남긴 족적이란 것도 대부분 30대의 그것인 셈이다. 그 혼자만이 아니라 그 즈음에 활약한 이들 거개가 그랬다.
'민주화'된다고 세상이 저절로 좋아질리 없다. 실업율은 높은데 국내 생산기반이 생길 여지는 좀체 보이지 않고 경제의 대외의존성도 여전히 높다. 몽골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낙관적 전망들이 많기는 하지만 그것이 현실화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어디 한두개랴. 좋은 정체(政體)를 택하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사회주의의 경험에서 보듯 좋은 뜻을 가진 정치가 곧 좋은 삶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바꾼다고 바꿨지만 늘 뭔가 구멍이 뚫리곤 하는 것이 철모르는 젊은이들이 왕성한 혈기로 밀어부친 탓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변화 자체가 없었을테지. '꼰대'가 바꾸는 세상이란 것도 애초에 없는 법이니까.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바꾸는 사람들을 뒤에서 받쳐주는 조용한 사람들과 무언가를 바꾼 다음에 하는 일들이 더 중요한 변수일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부쩍 많이) 해본다.
나도 젊다.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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