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박정희 경제신화 해부 (박근호, 회화나무, 2017.) 본문
[경향신문] “한강의 기적 만든 건…미국의 ‘보이지 않는 손’”
1. 이 책의 '야마'를 '박정희 정권기 경제성장은 미국 덕분이었고 박정희 덕분이 아니었다.' 정도로 잡는다면, 이 책의 주장이 사실 아주 새롭지는 않다. 이런 정도의 주장은 80년대 이래로 박정희 정권기를 평가하던 논자들이 오랫동안 주고 받은 주장들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 주장들의 크기가 엄청나게 큰데다가 자료를 면밀하게 검토했거나 치밀한 논증 과정을을 거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 주장들의 근거를 마련하는 것만 해도 굉장한 작업이 될 수는 있다.) 나도 처음에 이 책 이야기를 듣고, 아 그냥 그런갑다 하고 약간 냉소적이었는데 오늘 오후를 꼬박 투자해서 책을 읽고나니 그렇게 쉽게 치부할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더라는 게 내 인상.
2. 1부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1960년대 전반까지 인도나 파키스탄 등 남아시아에 비해서 동아시아는 경제성장 정도는 물론이고 미국의 원조 정도도 더 낫지 않았다. 한국으로 한정해서 말하자면, 미국에게 한국은 실패의 본보기에 가까웠다. 내자 동원도 여의치 않았던 데다가 미국의 원조도 1957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국은 동아시아보다는 남아시아에 더 많은 원조를 보냈다. 그러던 것이 1965년을 기점으로 동아시아 국가의 뚜렷한 뚜렷한 성장세가 관찰된다. 저자가 꼽는 가장 큰 원인은 베트남 전쟁이다.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제출된 '동남아시아경제구상' 때문에 경제원조의 중심이 동아시아로 옮겨 갔고, 베트남전 특수의 수혜를 주로 동아시아 국가들이 받았고, 미국이 베트남전에 적극적이었던 남한을 자본주의의 '쇼윈도'로 만들기로 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특히 제조업을 중심으로 두드러졌다.
3. 2부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60년대 한국의 경제가 크게 성장한 것은 맞는데, 그것과 정부 주도의 경제정책 사이에는 뚜렷한 인과관계를 발견할 수 없다. 당시 박정희 정권이 애초에 육성하고자 했던 부문은 대부분 애초 계획에 크게 못 미치는 수출 실적을 기록했고, 오히려 그렇지 않았던 부문에서 수출 실적이 엄청나게 신장되었다. 무역상대국별로 보자면 미국의 공헌이 아주 크다. 여기에 또 미국과 베트남전이 연결되는데, 신발 제품과 의류 제품에서 가장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인 것이 정글화와 남성용 합성혼방 내복이었던 것은 베트남전으로 인한 수요 증가와 결부되어 있다. 그리고 전자 산업의 성장은 애초 한국 정부가 계획했던 것이 아니고, 미국의 바텔기념연구소의 지원에 따른 것이다.
4. 3부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1965년 이후 미국정부는 베트남전을 계기로 대외원조의 중심을 동아시아,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으로 옮겼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전자산업을 예로 들 수 있다. 한국 전자산업의 발달은 미국 바텔기념연구소의 지원에 따른 KIST의 설립과 연관되어 있다. 바텔기념연구소로 대변되는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고도의 기술과 자본이 필요하면서도 파급 효과가 큰 전자산업을 의도적으로 육성하는 정책이 수립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 정부가 애초에 의도했던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한국 정부의 전자산업 육성정책은 미국의 지원을 뒤따라 가는 것이었다.
5. 1부가 꽤 재미있었다. 1960년대 전반과 후반의 변화를 지적한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고,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제2차 계획의 변화 역시 그간 많은 논자들이 지적했지만, 그것은 구체적으로 베트남전과 연결시켰던 연구는 거의 못 본 것 같다. 물론 뭐, 내 공부가 짧아서 못 본 걸 수도 있지만...;;; 그런 점에서 저자가 자기의 박사학위논문을 고쳐서 1993년에 펴냈다는 『한국의 경제발전과 베트남전쟁』을 찾아서 읽어보고 싶다.
6.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끄덕끄덕 하면서 책장이 그냥 넘어가는 건 아니고...나는 아직 공부가 짧으니 반론이라고까지 할 수준은 못 되고,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있기는 있다.
7. 먼저 1부에서 질문. 1960년대 중반에 베트남전 파병을 고리로 해서 한국과 미국이 '밀월' 관계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그 이외의 논거, 그러니까 '동남아시아경제구상' 같은 미국의 정책 변화를 곧 한국에 대한 원조 증가로 보아도 괜찮은지 궁금하다. 저자의 전체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여기에서 두 가지를 더 논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미국이 왜 남아시아에서 원조를 감소시켰는가라는 것. 그간 성과도 꽤 쌓여있고, 성장세도 나쁘지 않았던 남아시아에서 원조를 줄이고 다시 제로베이스의 동아시아로 원조를 옮기는 것은 그간의 원조를 '손절매'하는 과정이다. 미국 정부가 그런 부담을 기꺼이 감수한 이유가 무엇인지 더 논증해야지 않을까. 둘째는 미국의 원조가 동아시아 전반으로 옮겨 온 것이라면, 이것이 왜 한국에서만 유독 성공했는가 하는 것. 이 질문에 답하다 보면 결국 문제는 미국의 원조정책 뿐 아니라 그 원조를 받는 한국의 정책이나 상황이 중요한 변수가 되는데, 이는 결국 저자의 전체 논지를 약화시키는 반증이 되지는 않을까.
8. 다음 2부에서 질문. 저자가 들고 있는 정부의 계획은 1965년 자료이고, 실제 수출 실적은 60년대 후반의 것을 종합한 것이다. 이 비교가 성립하려면 1965년에 성립한 계획이 60년대 후반 동안 변하지 않았다고 전제해야 하는데, 과연 그런지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장하원이나 이상철은 박정희 정권의 경제정책은 일거에 수립되었다기 보다는 장시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수립되었고, 경제 각 부문에 대한 파악/장악 역시 산업별로 불균등하게 장기간에 걸쳐 이뤄졌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저자가 든 계획과 실적의 비교가 좀 어색한 것은 아닌가 궁금하다.
9. 그리고 2부에서 질문 하나 더. 저자는 정부의 정책이 유효하지 않았음을 수출 실적을 통해 증명한다. 당시의 성장방식을 수출주도형으로 볼 때, 꽤 설득력이 있는 방식이라고 본다. 하지만 반드시 수출 실적만으로 표현되지 않는 부문도 있는 것 같다. 예컨대 내가 봤던 철강 부문이 있다. 철강 부문은 정부가 오만 지원을 다 몰아주었고 그 성과도 상당했는데, 그 성과는 수출 실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철강 산업 특성상 국내 수요를 먼저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수출 실적만으로는 성패를 평가하기 어려운 산업 부문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겠다.
10-1. 다음은 3부에서 질문. 저자는 1부와 2부에서 줄곧 정부의 정책이 곧 경제 성장과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는데, 3부에서 등장하는 아래와 같은 서술은 앞서서 전개했던 저자의 주장과 배치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아래의 글만 읽으면, 전자산업처럼 고도의 기술력과 자본이 필요한 전자산업과 같은 분야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의도적인 정책이 매우 중요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상의 사실로부터 한국에서 KIST라는 연구기관은 단순히 연구개발에만 특화된 연구기관이 아니라 국가차원에서 과학적.기술적.경제적.정보적으로 유용한 '종합과학연구소'라는 위상을 가지고 설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중략)
이에 덧붙여 KIST가 기술정보분석과 산업경제분석을 융합한 조사연구를 통해 정부의 정책 싱크탱크 기능도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연구자의 조사연구능력을 향상시킴으로써 정부의 자문기관으로 기능했다는 점도 강조되어야 한다. 경제정책을 수립하고 실시할 때 한국정부의 의사결정과 판단을 뒷받침해주었던 계획안이나 방안 등은 KIST의 역량에 힘입은 바가 컸기 때문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그것은 정부에 KIST의 능력을 과시하는 역할도 했다. 중요한 사실은 KIST가 유능한 정책시스템으로서 기능했기 때문에 한국정부가 정책결정 과정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었고, 이를 배경으로 과감한 경제정책을 실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pp. 294~295.)
10-2. 이 질문을 좀 더 끌고 나오면, 이렇게 변형할 수도 있겠다. 과연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의 역할을 완전히 분리할 수 있는가. 한국 정부의 역할은 생각만큼 크지 않고, 오히려 한국 정부의 정책은 미국의 대한정책에 종속되어 움직이는 면이 더 크다...라는 문장이 성립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미국정부-바텔-KIST-한국정부' 식으로 밀착된 연결고리가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연결고리라면,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의 역할을 완전히 구분할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11. 마지막으로 전체적인 질문. 이 책이 나왔다는 소식에 대한 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또 다른 (뭐랄까...) '단일변수 환원론'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경제성장을 일단 '선(善)'으로 전제해 놓고, 그것이 과연 무엇 때문에 가능했는가 라는 식으로 질문을 단순하게 던지고만 있는 듯 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세간의 '야마'도 '박정희가 아니라 미국 덕분이다'라는 식으로 잡히는 것일테고 말이지. 이렇게 말하는 것이 단지 '세상은 말야, 네 생각보다 훨씬 더 졸라리 복잡하단다 엣헴-'하는 식으로 학자연하는 자세로부터 비롯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 '단일변수(미국) 환원론'이 성립하려면, 최소한 1960년 후반 내내 한국과 미국의 '밀월' 관계가 일관되게 유지되어야 한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그게 그렇지는 않거든. 당장 68년부터 한미 관계가 싸늘하게 식고, 박정희가 미국의 자장 안에서 뭔가 꿈틀거려보려는 몸짓이 관찰되는데, 그런 것들을 설명하기가 좀 어려워지지 않을까.
12-1. 좀 더 자료도 찾아보고 정리해야 할텐데, 책 읽고 나서 까먹기 전에 정리해야겠다 싶어서 일단 생각나는대로 주저리주저리 썼다.
12-2. 써놓고 보니 반론도 아니고 질문도 아닌 이상한 글이 됐네;;; 위에 써놓은 질문이야 저자께 직접 물어볼 수 있으면 제일 좋겠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사실 뭐... 저 질문들에 답해야 할 의무는 나 스스로에게 있다. 앞으로 계속, 졸라리 공부하면서 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갈 것을 다짐하면서, 메모 겸 서평은 여기서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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