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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로 (최헌섭, 해딴에, 2017.)

Dog君 2017. 5. 21. 21:02


1. 석사 졸업 이후에 진로 등등의 문제 때문에 1년 정도 방황했다. 방황 끝에,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역사에 한 쪽 궁뎅이라도 걸쳐 있는 일이라면 뭐든 좋으니 만족하며 살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덕에 내 세부전공인 현대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공부도 하게 됐다. 그 중 하나가 조선시대의 도로교통에 관한 것인데, 한 몇 년동안 그 공부만 했으니 현대사 빼고는 가장 오래 공부했던 분야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런지 도로교통에 관한 글 같은게 나오면 괜히 손이 한 번 더 가고 눈길도 한 번 더 주고 그런다. 더욱이 그것이 내 고향을 지나는 길이라면, 그건 그냥 취향저격이다.


2. 이 책은 경남도민일보라는 지역신문에 연재되었던 여행기를 책으로 묶은 것이다. 대략 10~15년쯤 전에 한국의 옛길에 대한 여행기가 책으로 꽤 쏟아져 나온 적이 있는데(당시에 한창 트레킹이 붐이기도 했다), 크게 보면 이 책도 그 흐름 속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그것만 생각하면 유행이 10년 정도 지난 시점에 이 책이 출판된 것이 좀 뜬금없어 보이기도 한다. 이 ‘뜬금없음’은 책을 낸 출판사(와 이 글이 연재되었던 신문사)를 염두에 두면 해결된다. 그에 관한 것은 아래 링크한 신문기사를 보시면 된다. 지난 글에도 살짝 흘린 것처럼, 지역사가 민족사(National History)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내 입장에서는 이런 책, 나올 때마다 정말 황공무지로소이다.


[경남도민일보] ‘경남 콘텐츠 창작소’ 지역출판의 희망을 보다


3. 박제가는 ‘북학의’에서 수레의 규격을 통일하여 도로교통과 상업을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맞는 말이기는 한데… 북학의와 박제가는 교과서에서도 꽤 비중있게 다루는 내용이다보니, 이 말 때문에 조선의 도로교통이 필요 이상으로 폄훼당하는 측면이 있는 것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조선(을 포함한 전근대)시대에 강이나 바다를 이용한 수로교통이 육로교통보다 비중이 더 컸던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조선이 육로교통에 아예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조선은 경국대전에 도로를 등급별로 구분하여 각 등급별 규격을 통일하는 등 도로교통의 체계적인 관리에 꽤 많은 힘을 쏟았다. 조선이 전국방방곡곡 빠짐없이 지방관을 파견하고 강력한 관료제 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그 덕분이었다.


시대에 따른 변화를 반영하지 않았고 생략한 부분도 있지만, 간선을 기준으로 하면 대략 이 정도.


4. 조선시대의 도로는 크게 ‘간선幹線’과 ‘지선支線’으로 구분된다. 간선은 ‘줄기’에 해당하는 기본도로이고, ‘지선’은 ‘가지’에 해당하여 그보다는 중요도가 조금 떨어지는 도로를 의미한다. 간선을 기준으로 할 때 조선의 도로망은 크게 10개 정도로 정리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없던 도로가 새로 생겨나는 경우도 있고, 인문지리환경의 변화에 따라 간선과 지선의 구분이 바뀌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도로체계는 시기에 따라 변화가 있다.) 각 간선은 공식적으로 번호를 매겨서 관리했다. (중국으로 이어지는 한양-의주간 간선을 제1로로 하여 시계방향으로 번호를 매겼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로 그랬다는거고, 대개는 주로 도착지점을 기준으로 한 이름으로 불렸다. 그러니까 통영로는 한양에서 통영으로 이어지는 도로라고 보면 된다. 이 책은 한양에서 통영으로 가는 길은 2가지 루트 중 한양에서 새재를 넘어 경상북도를 거쳐 가는 ‘통영로’의 여정을 담고 있다. 한양에서 남태령을 넘어 전라도를 거쳐 가는 ‘통영별로’ 여정도 신문에 연재했으니, 그 부분도 곧 책으로 나오지 싶다.


5-1. 옛길을 걷는다는 것은 길을 중심으로 펼쳐진 역사를 공부하는 일이다. 길이란 본디 사람의 생활과 밀착된 공간이다. 이 공간에는 그 길에 얹혀서 살아갔던 수백수천년간의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이 자연스레 쌓이게 된다. 예컨대 길 주변에 흩어진 땅이름들에는 그 지역에 내려오는 설화나 주변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런가 길 주변의 역사에는 생동감이 넘친다. 예를 들어 용인시의 멱조현에 얽힌 이야기는 이런 식이다.


  예전에 가난하지만 홀아버지를 모시고 어린 아들을 키우며 단란하게 사는 부부가 있었다. (중략)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밤이 깊도록 시아버지의 귀가가 유난히 늦어지고 있었다. 기다리다 못한 며느리는 아이를 업은 채 시아버지를 찾아 내섰다가 그만 길을 잃고 헤매고 만다. 그렇게 얼마나 헤맸을까. 어디선가 사람의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며느리는 혹시 시아버지가 아닌가 하여 한달음에 달려갔더니, 과연 그곳에는 시아버지가 호랑이 앞에서 죽을 지경에 처해 있었다.

  이를 본 며느리는 호랑이에게 “네가 정말 배가 고파서 그런다면 내 등에 업힌 아이라도 줄 테니 우리 시아버님은 상하게 하지 말라”고 애원했다. 그러고는 아이를 호랑이 앞에 내려놓자, 호랑이는 아이를 물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겨우 정신을 차린 시아버지는 손자를 잃은 슬픔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나는 늙었으니 죽어도 한이 없는데, 어째서 어린아이를 죽게 했느냐?”고 나무랐다. 그랬더니 며느리는, “아이는 다시 낳을 수 있지만 부모는 어찌 다시 모실 수 있겠습니까?” 하며 시아버지가 마음 상하지 않도록 달랬다고 한다. 그 뒤로 사람들이 며느리가 아이를 업고 헤맨 산을 부아산이라 하고, 그 아래의 고개는 할아버지를 찾던 고개라 하여 멱조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p. 263.)


5-2. 봉우리 모양이 사람이 아이를 업은 형상이어서 '부아산負兒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 '동국여지지'의 기록이나 ‘메주고개’ 같은 지명을 생각하면 문자 그대로 신뢰하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호환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두려움이나 효를 강조한 유교의 영향, 높은 유아사망률 등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니까 몇백년 전 그 동네를 살았던 사람들은 땅이름을 통해 자신들의 팍팍한 생활을 하소연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6-1. 옛길을 걷는다는 것은 길의 본질을 묻는 일이기도 하다. 2017년 현재 우리를 둘러싼 길은 어떤 모습인가. 왕복 몇 차로로, 아스팔트로, 수십 억 돈을 들여 길부터 먼저 만든 다음에야 비로소 그 위로 차와 사람이 다닐 수 있다. 길은 더 이상 사람의 것이 아니라 자본의 것이다. 그러다보니 길에 대한 작금의 관점은 오직 효율에만 맞춰져 있다. 차로 가면 몇 시간이면 주파할 수 있는 길을 몇 년에 걸쳐 제 발로 일일이 꾹꾹 밟아다진 저자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비효율적이다.


  (전략) 이 마을에서 다리품을 쉴 겸 마을 들머리의 가게에서 깡통 맥주로 목을 축이고 있는데, 마침 이곳에 나와 계신 할머니들이 뭐 하는 사람이냐 물으신다. 통영에서 서울까지 걸어서 가는 중이라 했더니 차를 타면 쉽게 가는데 왜 그런 고생이냐고 타박이시다. 그래서 차비가 없어 걸어간다고 농을 쳤더니 맥주 마실 돈으로 차 타고 가라고 나무라신다. 아무래도 어르신들 눈에는 우리가 하는 일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나 보다. (pp. 87~88.)


6-2.  하지만 본디 길의 주인은 사람이다. 길이란 사람이 걸은 흔적이 모이고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람이 있은 다음에야 비로소 길이 있다. 자본의 필요가 사람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필요가 모이고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이 곧 길이다. 무모하고 비효율적이기까지 한 저자의 여행이 단지 어느 호고주의(好古主義)자의 별난 취미라고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저자의 다음 작업, ‘통영별로’도 기대된다.


덧1. 여기서 하나 궁금한 것. 저자는 ‘통영로’가 10대 간선도로 중 하나라고 했는데, 내가 공부한 바에 따르면 ‘통영로’는 10대 간선로로 분류된 적이 없다. 간선로를 10개로 정리한 것은 19세기 중반 ‘대동지지’의 단계에 이르러서인데, 이 때 10대 간선로로 분류된 것은 ‘통영별로’였다. '통영로'를 간선으로 분류한 것은 '여지도서'와 '증보문헌비고'인데, '증보문헌비고'는 전국의 9개의 대로로 분류하고 있다. 그 외에 ‘도로고’나 ‘임원경제지’, ‘산리고’ 등 조선시대의 도로망을 언급하고 있는 기록에는 '통영로'를 간선으로 분류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물론 프로필로 알 수 있는 저자의 내공으로 볼 때... 내가 틀렸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 부분은 체크해놨다가 나중에 찾아봐야겠다. 까먹지 말자는 의미에서 메모삼아 기록.


덧2. 본문의 몇몇 부분은 연재와 출판의 차이를 감안해서 내용을 조금 다듬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예컨대 날씨에 대한 언급 같은 것은 신문 연재 당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겠지만, 이걸 책으로 묶어서 한 덩어리의 글로 만들고 나면 독자 입장에서는 좀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날씨에 대한 언급을 다른 적당한 표현으로 대체하거나, 답사 일자 혹은 연재 일자를 함께 밝혀줬다면 글의 현장감이 더 살아나지 않았을까 싶다.


덧3. 이야기 나온 김에 말을 또 보태자면… (자꾸 쓰니까 태클 거는 거 같아서 미안하다만은... ㅡㅡ;;) 몇몇 삽도는 좀 다듬을 필요가 있다. 통영로의 정확한 노선에 대한 거의 첫 책이기 때문에, 정확한 삽도가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다. 눈에 띄는 것만 대략 정리하자면, 답사로 표시가 이상한 경우(17, 87, 128), 지도 간의 답사로가 어긋나게 이어진 경우(34-38, 74-81), 삽도 간에 같은 지명을 다르게/틀리게 표기한 경우(62-74, 276-279), 삽도가 생략된 경우(87-96, 101-124, 225, 259-276) 등이 있다.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혹시라도 출판사 관계자분께서 이 글을 보시면 다음 판 내실 때 검토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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