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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사의 재해석 (김두얼, 해남, 201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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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사의 재해석 (김두얼, 해남, 2017.)

Dog君 2018. 3. 7. 16:15


1-1. 한국사를 공부하면서, 한국사 연구에 일종의 강박관념 비슷한 것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발전'이나 '성장', '진보' 같은 것을 말할 때 특히 강하게 드러나는 것 같은데... 음... 1)고려왕조에서 조선왕조로 이행하는 과정을 단절적으로 이해하려는 태도라거나, 2)'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입장, 3)박정희 정권기 경제성장에 대한 입장 같은 걸 예로 들 수 있겠다.


1-2. 1), 2), 3) 각각 하나하나가 모두 세밀하게 따지고 들어가야 할 큰 주제들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까지 세부적으로 따지고 들어갈 깜냥은 안 되고... 다만 공부하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 이 복잡하고 세밀하게 따져봐야할 이야기들이 어째서 세상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우째그리 단순하게만 흘러가는가 싶어서 답답할 때가 왕왕 있다. 특히 근현대사의 영역에 속하는 2)와 3)의 경우에는 이게 곧바로 당시 시대에 대한 전반적인 (도덕적) 평가와 직결되어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예컨대 3)을 보자. 박정희 정권기에 있었던 한국경제의 양적 성장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뭐여, 너 지금 그래서 박정희가 잘 했다는 거냐?!"하는 이야기가 곧바로 튀어나오는 바람에, 뭐라 말을 덧붙이기가 영 난감할 때가 많잖냐. 그게, 연구자 개인의 정치적 지향과 완전히 별개로, 그 이야기 자체는 절대로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거든. (당장 나만 해도, 석사논문 쓴 다음에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그래서 박정희가 잘 했다는 거야, 못 했다는 거야?" 였다...)


1-3. 물론 그러한 이해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역사 이해와 현실의 권력관계가 단단하게 밀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불과 1년 반 전까지만 해도 박정희의 딸과 그 추종자들이 현실권력을 휘두르고 있었잖아. 그런 상황에서 박정희 정권기에 대한 역사 연구는 당연하게도, 박정희 정권에 대한 도덕적 평가와 무관하기 어렵고, 그러한 평가 내용은 곧 현실권력에 대한 자기입장과도 또 무관할 수 없지. 그래, 그거 나도 알겠다고, 이해한다고.


1-4. 내가 박근혜 탄핵을 반긴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나는 박근혜 탄핵이, 현실권력에서 유신의 잔재를 털어내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잔재와 잔당을 다 털어내고 그것들을 모두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로 밀어넣고 나면, 그러면 현실정치에 대한 강박도 좀 덜어질테고, 그 다음부터는 한국근현대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도 좀 더 여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2-1. 이 책이랑 직접 관련도 없는 이야기를 뭐 이렇게 길게 썼지...;;; 근데 이 관련 없는 이야기가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 속을 맴돌았다. 강박관념 없이 글을 쓰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식민지 시기란 모름지기 이러해야지'하는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객관적인 숫자와 통계만으로 논지를 전개한다면 이런 식으로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과거의 권력에 대한 평가에 그 시대에 대한 역사적 해석이 종속되는 듯 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강박관념 좀 털어버리고, 그야말로 '역사'로서 그 시대를 대하게 되면 이렇게 글을 쓸 수도 있겠다 싶어서.


2-2. 그래서 저자가 평소에 페이스북에 쓰는 글도 관심을 가지고 보는 편이다.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경청할 이야기도 꽤 많다고 생각한다.


3. 아, 그래서 결론은 재미있게 읽었다는 것이다. 몇몇 논문은 책으로 나오기 전에 이미 읽었고, 책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자 마자 냉큼 주문해서 읽었다. 몇 가지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서 '와, 이거 마 따봉!'이라고까지는 말 못하지만, 비슷한 주제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굉장한 자극이 된 것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동의하지 않는 부분은 동의하지 않는대로, 궁금한 것은 궁금한대로, 어서 공부해서 채워넣고 싶은 욕심이 일어나니까. 연구자 입장에서 그보다 더 재미있는 책이 또 있겠나.


4. 하나하나 다 다룰 깜냥이 없으므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에 대해서만 궁금한 것을 메모해 두기로 한다. 제1장 「최하층민을 통해 본 식민지기 생활 수준: 남성 행려사망자의 신장 분석」과 제4장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 경제 성장의 기원, 1953-1965: 전통설과 새로운 해석」이다. 


5-1. 1장에 대해서 먼저 궁금한 것은 표본의 크기가 과연 적절한가 하는 것. 여기서는 25~30세의 남성행려병자를 표본으로 선택했다. 25~30세의 남성행려병자는 식민지시기 내내 일정하게 매년 200명 정도가 발생하는데, 이게 과연 식민지시기 전체인구의 신장 변화 혹은 경제상황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정도로 충분한 크기인지 잘 모르겠다. (틀렸다는 게 아니라 잘 모르겠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내가 정리하는 건 반론이 아니라 질문이다, 질문.) 또 다른 면에서, 가난에 의한 행려병자의 숫자가 일정했다는 것이 이미 식민지시기 경제 수준이 특별히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5-2. 두 번째는 계층이 과연 적절한가 하는 것. 저소득층은 경제 상황 변동에 가장 민감하기 때문에 행려병자의 신장 변화를 통해 경제 상황 변동을 설명할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6쪽),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행려병자는 경제 상황 변동과 상관없이 최저수준의 생활을 영위하던 계층이기 때문이다. 당장 상식적으로만 생각해도, 불황기나 호황기나 노숙자는 결국 다 같은 노숙자 아닌감? 식민지시기에 뭐 딱히 대단한 사회구호체계가 있었던 것도 아닐테고 말이지. (물론 '저소득층이 경제 상황 변동에 가장 민감하다'라는 명제와 '저소득층=행려병자'라는 명제가 이미 경제학에서 충분히 입증된 것이라면, 이 질문은 애초부터 성립할 수 없다.)


5-3. 세 번째는 여기서 든 신장의 변화 폭이 과연 유의미한 정도인가 하는 것. 이 글에 따르면, 1880년대 출생자들 평균 신장은 158.4cm이고 1910년대 출생자들 평균 신장은 160.2cm이다. 식민지시기에 성장한 이들이 약 1.8cm 정도 더 크다는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성장폭이 작다는 느낌이 든다. 비교할만한 자료가 없나 하고 국가통계포털을 찾아봤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하는 국민체력실태조사라는 게 있는데, 여기서 25~29세 남성의 신장 변화를 정리해보니 이렇다. 1989년 169.1cm, 1992년 171cm, 1995년 172.5cm, 1998년 171.8cm, 2001년 173cm, 2004년 172.7cm, 2007년 175.1cm, 2009년 173.8cm, 2011년 174.3cm, 2013년 175.8cm, 2015년 175.3cm. 언제나 상승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26년동안 6.1cm가 컸다. 그러니까 이 수치를 생각하면, 1.8cm의 신장 변화가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더욱이 이걸 경제 상황 변동과 연결지어서까지 말하려면 좀 더 큰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는 거지.


내가 찾아본 국가통계포털 자료는 여기에 링크

(들어간 다음에 '시점' 탭에서 2009년 이전을 체크해줘야 됨)


6-1. 4장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한다. 기본적으로는 나도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하니까 ㅋㅋㅋ. 이해의 편의를 위해서 그런건지는 모르겠는데, 그간의 역사서술에서 50년대와 60년대와 70년대를 뚝뚝 끊어서 보는 듯한 경향이 꽤 있었다. 그것 역시도 나름의 근거는 탄탄하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연속성이 좀 더 강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있다. 아직은 추상적인 수준에서 머무르는 아이디어라서 뭐라뭐라 쓰기엔 좀 거시기하지만... 아니 뭐, 사람 인생도 그렇지 않나, 다 구강기고 항문기고 사춘기고 거치면서 그게 다 쌓이고 쌓여서 지금의 내가 되는 거지, 뭐 대단한 이벤트 때문에 인생이 순간적으로 팍 바뀌고 그런 일 잘 없잖아...


6-2. 그렇게 우리 다 같이 하하하 웃고 넘어갑시다 하고 끝나면 좋겠지만, 그러고나서도 여전히 찝찝함이 가시질 않는다. 그러면 1960년대의 분명한 변화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러니까 익히 연구된 바와 같은, 1960년대 군부세력의 등장과, 그리고 또 그들이 채택했던 수출주도형(혹자는 '외자의존형'이라고도 하더라) 성장전략의 등장이 갖는 의미는, 그렇다면 어떻게 정리/설명할 것인가 하는 과제가 여전히 남는다.


7. 학술서를 읽을 때마다 드는 다른 질문들과 마찬가지로, 이상의 질문들은 (반론이 아니라) 저자에게 던지는 질문인 동시에 내가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나처럼 게으른 연구자에게 저자 직접질문의 기회 따위 주어질리 만무하다. 그러니까 이 내용, 잘 메모해뒀다가 하나하나 차근차근 공부해하기로 다짐 또 다짐.


8. 점심 먹고 자리에 앉으니 너무 폭풍 같이 졸려서, 책에 해 둔 메모 봐가면서 그리고 떠오르는 생각까지 좀 더 보태서 주절주절 써부럿다. 아, 이제 잠 좀 깼으니 다시 일하러 가볼까.


ps. 숫자나 통계로 담아낼 수 없는 삶의 질 같은 추상적인 가치는 이 책에서 다루지 않는다. 머리말에서부터 "물질적"인 것을 다룰 것이라고 선언했으니까. 그러니까 왜케 양적인 측면만 다뤘냐! 라는 비판은, 음... 좀... 너무 근본적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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