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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스 하이에크 (니컬러스 웝숏, 부키, 201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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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스 하이에크 (니컬러스 웝숏, 부키, 2014.)

Dog君 2018. 3. 11. 12:11


1-1. 경제사를 전공한다지만 경제학에 대한 지식이 너무 부족하다보니 자료를 보는 것도 힘들고 당시를 바라보는 내 시야도 너무 좁고 단순한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래서 박사학위논문을 위한 여러 준비 중 하나로 경제학 관련 책을 하나씩 찾아보고 정리하는 중이다. (이러다가 대학에서 배우는 경제학교재까지 찾아보는 상황이 올지도...) 아무래도 내 주제에 맞춰서 정부와 시장의 관계에 주로 포인트를 맞추고 있다.


1-2. 이 책을 고르게 된 것도 역시 정부와 시장의 관계에 대한 양측의 대립을 살펴 보고 싶어서였다. 1950~1970년대의 한국경제정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대의 세계경제정책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한국의 경제발전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왜 그러했는지도 설명할 수 있을테니까. 한국의 경제성장에서 정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대한 미국의 입장과 그에 대한 한국의 입장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 미국은 대체로 로스토우의 근대화론에 따른 단계적 성장전략에 입각해서 단계론적인 경제성장을 강조한 것처럼 보이는데, 한국은 한반도의 군사긴장 때문인지 정부가 좀 더 강력하게 시장에 개입해서 빠르게 성장을 이룩하고 중공업으로의 이행도 조기에 이루려고 한 듯 하다.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된 국영기업 정리 문제라거나 일관제철소 건설 과정에서 나타나는 한미간 의견 차이를 아마 그런 식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


1-3. 결론을 좀 앞당겨 이야기하자면, 내가 맥을 좀 잘못 짚었나 싶기도 하다. 케인스가 아니라, 로스토우를 더 많이 봐야 하나...;;;


2. 경제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에 가까운 내 입장에서는, 그간의 내 생각이 너무 단순했다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시장의 질서를 강조한 하이에크야 그렇다 치더라도, 케인스의 이론에 대해서는 좀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무척이나 단순하게도) 케인스가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강조했다는 정도로만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처럼 주요 생산인프라를 국가가 장악하고 자원과 자본의 배분도 국가가 관할하는 등의 기조까지 케인스주의의 연장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묘사하는 케인스는 생산인프라의 국유화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보다는 적극적인 공공투자를 통한 수요 창출에 일관되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3. 이렇게 정리하면, 케인스의 주장을 한국의 경제성장에서 정부가 수행했던 역할과 직접 연결시키기가 어렵다. 고속도로의 건설이나 주요 기간산업의 장악 같은 것에 정부가 적극적이었던 것은 맞지만, 그것은 유효 수요의 창출이라기보다는 경제성장을 위한 인프라 확충과 더 가깝지 유효 수요의 창출이라고 보기엔 좀 어렵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민간자본과 정부가 강하게 결탁했다는 사실도 빼먹으면 안 될 것이고.


4. 오히려 하이에크가 말한 ‘자발적 저축’과 ‘강제 저축’ 개념을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 국내의 자본을 동원하고자 했던 일련의 논의와 연결지어 이해하는게 어떨까...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지만, 뭐 그냥 해보는 소리고.


5. 일단 이런 정도만 메모해두기로 하고, 계속 더 독서하고 공부하면서 고칠 것은 고치고 보탤 것은 보태야겠다.


6. 일차적으로는 타겟 설정에 실패한 독서이긴 했지만, 나의 피상적인 이해를 조금이나마 교정했다는 것만으로도 분명한 성과를 남긴 독서이긴 하다. 근데, 경제학 이거, 막상 읽어보니 재미있네. 친구한테 거시경제학 교재 하나 추천해달라고 해야겠다고 다짐.


  경기 순환의 바닥에서는 만성적인 수요 부족으로 인해 경제 활동이 둔화되고 따라서 불필요한 실업이 발생한다는 것이 케인스가 피력하는 논점이었다. 그는 충분한 수요를 발생시킬 사적 기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공공사업을 통해 자체적으로 수요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케인스는 이 점에 대해 이론적 근거는 마련하지 못한 상태였다.) 반면에, 미제스는 스웨덴 경제학자 크누트 빅셀이 정립한 이론을 확장해 경기 순환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봤다. 미제스는 개인의 저축과 자본재(상품 생산에 사용되는 기계류 등 설비) 투자 사이에는 자연적인 균형이 존재하는데,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하면 이 균형에 간섭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로 돈을 구하기 쉬워지면 진정한 저축 수준에서 지탱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자본재가 판매되고 그로 인해 불균형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태로 시간이 흐르면 중앙은행은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 중앙은행이 택할 수 있는 길 하나는 투자를 늘리기 위해 금리를 계속 인하하는 것이다. 그러면 경제 시스템에 돈이 너무 많이 흘러들어 가니 불어난 돈의 양에 비해 상품이 부족해지고 따라서 물가 상승이 촉발된다. 반대로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면 투자가 위축되다가 갑자기 중단되는 일이 생긴다. 그러면 중앙은행이 애초에 피하려고 했던 수준보다 더 심각한 경기 침체가 유발된다는 것이다. (pp. 92~93.)


  이런 식으로 케인스와 하이에크가 맞설 전선이 그려졌다. 케인스는 실업 문제를 비롯해 민생을 좀 더 순탄하게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정부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반면, 하이에크는 시장은 인위적으로 바꾸기 어려운 자연적인 힘에 따라 작동하며, 따라서 정부가 시장에 간섭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라고 봤다. 케인스는 자유시장을 고집하는 것은 다윈주의를 경제 활동에 적용하는 부적합한 태도라며 배격했다. 그리고 경제의 작동을 좀 더 잘 이해한다면 책임 있는 정부가 경기 순환의 바닥에서 생기는 최악의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거라고 주장했다. 하이에크가 최종적으로 도달한 결론은 경제가 정확히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기란 불가능하지는 않아도 매우 어렵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경제의 작동에 대한 경험적 지식을 가지고 경제 정책을 수립하려는 시도는 칼을 쓸 줄 안다고 사람 몸에 칼을 들이대는 이발사의 원시적 외과 수술처럼 이롭기보다 해로울 공산이 크다는 것이었다.

  케인스는 인간에게는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반면, 하이에크는 (다소 내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인간은 다른 모든 자연법칙과 마찬가지로 경제의 자연법칙에 따라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두 사람은 삶과 정부를 이해하는 서로 다른 시각을 대변하게 됐다. 케인스는 권력자들이 올바른 결정만 내린다면 삶이 지금처럼 힘겨울 필요는 없다고 보는 낙관적인 입장에 섰다. 하이에크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는 엄격한 한계가 있으며, 자연법칙을 바꾸려는 시도는 아무리 의도가 좋다고 해도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는 비관적인 입장에 섰다. (pp. 95~96.)


  케인스는 자기 생각이 하이에크와 어떤 대목에서 다른지 또박또박 언급했다. 즉 하이에크는 자발적 저축은 항상 투자로 실현(자동적으로 자본재 구매로 지출)된다고 전제했고, 이 전제에 따라 저축과 투자의 불일치는 ‘자연’ 금리에서 벗어난 부적절한 규모의 은행 신용 때문에 생길 수밖에 없다고 봤다는 것이다. 하지만 케인스는 저축과 투자는 실행의 주체도 유인도 다르기 때문에 은행의 행동과 상관없이 언제든 서로 어긋날 수 있으며, 저축과 투자를 일치시키는 자동적 메커니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일정한 조건을 전제로 시장 금리가 자연 금리와 항상 일치한다는 묵시적 가정을 바탕으로 분석하는 것이 하이에크의 관점이라면, 자신은 시장 금리가 자연 금리에서 이탈하는 상황을 분석하는 관점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하이에크와 자신은 분석 대상이 다르므로, 하이에크 이론과 자신의 이론은 “서 있는 땅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었다. (후략) (p. 194.)


  하이에크는 경기 순환을 설명하는 케인스의 이론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케인스의 이론에 따르면 호황(혹은 경기 확장)의 본질은 시장에 공금되는 상품의 비용에 비해 소비자 수요가 과다한 것이고, 따라서 호황은 수요가 공급을 계속 앞지를 때만 지속된다. 반대로 수요가 증가 추세를 멈추거나 초과 이윤의 탄력을 받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으면 호황은 중단된다. 즉 이 지점에 이르면 소비재 가격은 다시 비용 수준으로 떨어지고 호황이 멈춘다. 물론 호황이 멈췄다고 꼭 불황이나 경기 침체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에서는 대개 물가가 떨어지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호황을 진행시키는 과정이 반대로 뒤집어진다.” 하이에크는 이런 식으로 설명하는 이론이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중략)

  이어서 하이에크는 『가격과 생산』에서 설명한 내용을 다시 제기하며 케인스의 처방은 일시적 효과에 머물 뿐이라고 주장했다. “투자를 늘리는 것이 투자라는 바로 그 목적을 위해 소비 수준을 줄이는 자발적 결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그러한 투자 증가가 영구적으로 지속될 이유는 없다. 케인스가 제시한 대로 소비재 수요를 증가시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인가? 소비재 수요가 늘면 투자가 지속되는 데 필요한 자본재 생산을 방해하게 된다. 따라서 은행 시스템이 저렴한 투자 수단을 더 이상 제공하지 않게 되는 순간 곧바로 투자 증가는 멈춘다.” 하이에크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앞에서 논의한 내용에 비춰 볼 때 1929년 주식 시장 붕괴 직후에 채택한 저금리, 신용 완화 정책이 왜 아무런 효력도 발휘하지 못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pp. 214~216.)


  하이에크는 『가격과 생산』에서 저축 총액과 조응하지 않는 금리로 은행 대출금이 풀려 나가면 그 돈이 지속 불가능한 생산 활동에 투자된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다. 새로 대출되는 돈이 더 공급되지 않는 순간, 공장 소유주들은 고객을 찾지 못해 일부 생산 라인이 갑자기 중단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달리 말해, 돈을 빌리는 가격(즉 금리)이 정상적인 수준에서 벗어나면, 일정한 구조로 짜여 있는 일련의 생산 단계가 망가지게 되고, 이 망가진 생산 단계들이 회복되는 것은 일정 기간 위기를 지나 경제가 새 균형에 도달할 때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이에크는 신용을 공급하는 이상적인 대출 금리(즉 생산 과정의 각 단계를 낭비 없이 유지해 주고 소비자들에게 적절한 가격으로 상품을 공급하게 되는 금리)가 존재한다고 봤다. 그 이상적 금리가 ‘자연 금리’로, 화폐의 ‘중립적’ 역할을 효과적으로 유지해 주는 수준의 금리다. 화폐가 중립성을 유지하게 되는 이유는 화폐가 생산 시스템의 ‘자연스러운’ 작동을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중략)

  하이에크의 핵심 논지는 자본 축적이 ‘자발적 저축’과 ‘강제 저축’의 두 가지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소비자의 자발적 저축이 이뤄져 그 돈이 투자로 이어지면 경제는 아무런 문제 없이 균형에 도달한다. 즉 소비의 자발적 감소와 아울러 우회적 생산 단계가 확장된다. 반면, 이러한 자발적 저축 없이 단지 은행의 신용 확대로 투자가 이뤄지면 물가가 오르는 탓에 소비자들이 억지로 소비를 줄이는 강제 저축이 발생한다. 물론 물가가 오르는 동안 투자가 진행되고 우회적 생산 단계가 확장된다. 하지만 은행의 추가적 신용 공급이 중단되면, 물가 상승이 멈추고 그동안 억지로 소비를 줄였던 소비자들은 소비를 본래 상태로 늘리게 된다. 이 소비 증가(정확하게는, 소비재 수요 비율의 상승)로 말미암아 자본재 수요가 줄어든다.(정확하게는, 자본재 수요 비율의 하락) 자본재 구매가 줄어드니 신용이 확대되는 동안 늘어난 자본재 생산이 유지될 수 없다. 따라서 자본이 폐기되는, 즉 확장된 우회적 생산 단계가 축소되는 경제 위기가 발생한다. 이처럼 하이에크는 생산자들이 저축액(자발적 저축)보다 많은 신용을 당겨쓰면 물가가 오르고 경제 붕괴가 뒤따른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pp. 221~223.)


(전략) 스라파는 ‘강제 저축’은 하이에크의 얘기처럼 재앙으로 귀착되기는커녕 평온한 결말로 이어진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새로 추가된 생산 과정들로부터 상품이 생산돼 소비자들에게 공급되기 시작”하면 물가 상승률이 점차 낮아지다가 결국 멈출 것이다. 물가 상승이 멈춘 뒤에도 “기업들은 당기 생산의 가동과 늘어난 자본의 유지에 필요한 지출을 매출에서 나오는 돈으로 모두 충당할 수 있게 된다. 물가 상승을 유발하는 통화량이 더 공급되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스라파는 늘어난 자본의 파괴를 도출하는 하이에크의 핵심적 논리 고리를 다시 짚었다. 우선, 하이에크의 논리 구조에서 통화량의 추가 공급이 중단되고 물가 상승이 멈춘 뒤에도 기업이 늘어난 자본 규모를 유지하면서 생산을 가동할 수 있으려면, “임금(즉 소득)이 새로 투자된 통화량 증가 비율만큼 오르지 않아야만 한다.”는 하이에크의 답변 내용에 동의했다. 하지만 스라파는 바로 이어서 “하이에크의 생각대로 통화량 증가 비율만큼 임금이 오르는 사태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리고 아이에크 자신이 각주에 언급한 내용이 바로 그 절 지적했다. 하이에크는 앞서 스라파를 반박하는 답변에서 “임금 소득은 종국적으로 통화량 증가 비율만큼 오를 수밖에 없다. 투자 목적의 자본재 구매에 들어간 돈이 결국 이 자본재를 생산하는 생산 요소들에 지불되기 때문이다.”라고 언급한 대목에 각주를 넣고 이런 단서를 달았다. “단, 새로 추가되는 생산 단계들의 운전 자금cash holdings으로 흡수되는 통화량은 예외다.” 스라파는 하이에크의 이 각주를 그대로 인용한 뒤, “바로 이것이다!”라고 탄성을 지르며 다음과 같이 저적했다. “(중략) 첫째, 하이에크가 설정한 가정에 따라 그러한 운전 자금에는 예외적인 일부 금액만 들어가는 게 아니라 물가 상승 기간에 새로 창출된 통화량의 전부가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둘째, 임금 소득은 전혀 상승할 수 없으며, 따라서 자본이 다시 줄어들 일은 생기지 않는다.” (pp. 226~227.)


(전략) 『화폐론』의 여러 부분에서 “산출량의 변화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상당히 많은 내용을 거론”했는데 “산출량 불변을 가정했던 것은 예비적인 이론적 논증의 특정한 지점에 국한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어쨌든 이 두 가지 오류에 대해 서커스 구성원들이 제시한 반대 의견은 케인스가 『일반 이론』의 핵심 논점을 발견하는 계기가 됐다. 즉 총산출량은 고정돼 있지 않으며, 경제 내 모든 사람이 고용되는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투자 증가를 통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케인스가 하이에크 같은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주장, 즉 경제는 경제 자체의 도구에 맡겨두면 장기적으로 필히 완전 고용이 이뤄지는 균형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는 주장에 본격적으로 반대하게 된 첫 실타래가 바로 이 가냘픈 생각의 끈이었다. 『일반 이론』에 이르러 케인스는 단기와 중기의 시간에서는 실업이 상당히 많이 존재하고 있어도 경제가 균형 상태에 있을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미래에 실현될 거라고 말하는 완전 고용 균형은 실현되지 않을 때가 너무 많다고 주장하게 된다. (pp. 241~242.)


  케인스가 생각을 전개하는 데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 새로운 착상을 딱 하나 고르라면 아마도 승수 개념일 것이다. (중략)

  즉 정부 투자로 실업자가 새로 고용되면 그들의 소득이 지출되니 그 수요를 보고 기업이 투자할 것이고, 따라서 정부가 실업자를 고용하는 것 자체가 기업 신뢰감을 높여 준다는 것이다. 나아가 정부 투자로 직접 창출될 일자리에 더해 새로 고용될 그 사람들에게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는 민간 부문의 새 일자리가 보태질 것이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런 추가적 효과까지 고려하면 신규 고용을 창출하기 위한 투자 비용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후략) (pp. 243~244.)


  세의 법칙을 부정한 것은 『일반 이론』이 펼치는 새로운 생각의 핵심 요소였다. 저축이 어째서 자동적으로 투자로 전환되지 않는지 설명하는 케인스의 ‘유동성 선호liquiity preference’ 개념도 세의 법칙의 부정에서 비롯됐다. 케인스는 금리를 결정하는 요인을 설명하는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방식이 부적절하다고 결론지었다. 케인스 자신도 한때 고전파와 같은 견해를 따랐음에도 고전파의 금리 이론을 “터무니없는 이론”으로 평가했다.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저축과 투자의 관계가 금리를 결정한다고 봤다. 즉 사람들이 저축을 너무 많이 하면 금리가 떨어지고 금리가 떨어지면 투자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기업 투자를 고무하게 되며, 반대로 사람들이 저축을 너무 적게 하면 금리가 높아져 더 많은 사람이 저축하도록 유인한다는 것이다.

  케인스는 저축하는 사람들의 동기를 살펴본 뒤 고전파와 아주 다른 결론에 도달했다. 저축하는 사람들은 돈을 은행에 넣어 두거나 주식이나 증권에 투자하는 대신, 저축할 돈을 ‘유동적’ 형태(즉 현금)로 보유하는 것은 선호할 때가 꽤 많다고 케인스는 보았다. 현금을 보유하고 있으면 다른 금융 자산에 돈이 묶여 있을 때보다 급변하는 상황에 유리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동성 선호 개념은 저축과 투자의 관계를 이해하는 전통적 시각을 뒤집어 놨다. 저축하는 이들이 현금을 손에 쥐고 기다리면 더 좋은 거래로 득을 볼 거라고 생각할 경우 현금이나 보석, 금으로 저축을 보유할 것이기(따라서 그 재산이 쉽게 투자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함축하는 바를 케인스는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바로, 유동성 선호 때문에 금리가 필요 이상으로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저축하는 이들로 하여금 현금을 포기하도록 유인하려면 은행이 프리미엄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출보다 저축이 이롭다는 것이 고전파 경제학을 떠받치는 ‘상식적’ 관념이었는데, 케인스는 유동성 선호로 말미암아 이 관념이 무력화된다고 본 것이다. 케인스는 “개별적인 저축 행위가 개별적인 소비 행위와 똑같이 유효 수요에 이롭다는 생각이 세상에 퍼져 있지만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관념”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오류야말로 사람들에게 틀렸다고 설득하기가 가장 어렵다. 이는 부를 소유하는 사람은 자본 자산 그 자체를 소유하기를 원할 거라고 보는 데서 비롯되는 오류다. 그러나 부를 소유하는 자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자본 자산 그 자체가 아니라 거기서 나오는 미래 수익이다.

  케인스가 『일반 이론』에서 새로 도입한 개념들이 더 있다. 승수도 그 중 하나다. 사람들이 돈을 쓰면 그 돈이 돌고 돌면서 연쇄적인 지출을 유발하기 때문에 지출되는 돈 1파운드는 1파운드보다 훨씬 큰 (유효 수요의) 가치를 발휘한다는 것이 승수의 개념이다. 케인스는 정부가 돈을 빌려 추진하는 공공사업이 낭비성이고 무책임하며 자원만 축낼 뿐이라고 여기는 경제학 문외한들을 설득하고자 했다. (후략) (pp. 276~277.)


(전략) 하이에크는 두 가지 중요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 두 가지 결론은 “경제학과 지식” 강연(1936년 11월 10일 런던경제클럽 회장에 취임하면서 행한 강연-옮겨쓴이)에서는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하이에크의 사상을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하는 길을 열게 된다. 우선, 하나의 결론은 임의의 시장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판단하는 공동의 지식은 가격을 통해 나타나며, 정부와 같은 시장 외부의 힘이 가격의 결정에 간섭하는 것은 달리는 자동차의 속도를 속도계의 바늘로 바로잡아 규제하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결론은 단 한 사람이 경제를 구성하는 모든 개읜의 생각과 욕망, 희망을 알 수는 없으며, (하이에크의 표현처럼) “전지(全知)한 독재자”라도 그러한 능력은 없다는 것이다. (중략)

  하이에크는 ‘지식의 분업division of knowledge’이란 새 개념을 제시했다. 분업division of labor은 산업이 발전하면서 개인이 완제품 하나를 통째로 만드는 게 아니라 완제품을 구성하는 각 개별 작업에 특화하는 현상을 지칭하는데, 이러한 경제 개념 못징낳게 지식의 분업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경제를 구성하는 수많은 개인은 무수히 많은 경제적 의사 결정을 내리며 그 각각의 결정의 중요성을 이해하거나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각 개인의 의사가 쉬지 않고 오르내리는 가격으로 드러난다는 점을 하이에크는 주장했다. 어떤 물건의 가격은 적어도 두 사람의 합의로 형성되는 것이다. 가격이란 본질적으로 사람들의 의사가 어우러져 결정되는 것인 만큼 사람들과 똑같이 유기적이다. 따라서 가격을 통제하거나 가격 결정에 간섭하려는 행동은 궁극적으로 쓸데없는 시도다. 왜냐하면 임의의 가격이 정해지는 근거나 이유 자체를 인간의 행동이 항상 우회하고 혁신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의도적으로든 비의도적으로든 정부의 행동이 유발하는 물가 상승은 경제를 통제하는 사람들이 그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사람들의 뜻을 무시하는 것이고 따라서 시민의 의지를 부정하는 것이다. 하이에크의 논점은 이러한 방향을 취하게 된다. (pp. 330~331.)


  경제를 국가가 관리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그 자체로 케인스주의적인 개념인데, 이 문제가 케인스적 사고와 하이에크적 사고를 절충하는 ‘탈 케인스주의적post-Keynesian’인 국면에서 거론되는 시기가 오래 이어졌다. 나라 경제를 관리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경제 성장을 극대화하고 물가 상승을 억제하려면 케인스와 프리드먼을 배합해야 한다는 합의가 폭넓게 형성됐다. 그럼에도 오래전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논쟁 구도에 따라 대체적으로 갈라지던 학계 경제학자들 사이의 간극은 1970년대 이래 여전히 컸다. 한편에는 ‘민물 경제학자들’이 있었다. 이 학자들이 자리 잡은 대학들이 북미 오대호 인근에 모여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다른 한편에는 미 동부 대서양 연안 대학 출신이거나 그곳에 자리 잡은 ‘짠물 경제학자들’이 있었다. 민물 경제학자들은 하이에크처럼 물가 상승이 나라에 가장 해로운 문제라고 생각했다. 짠물 경제학자들은 케인스처럼 실업이 더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민물 경제학자들은 경제를 신경 기능을 갖추고 반응하는 유기체로 이해해야 하며, 경제라는 유기체를 움직이는 것은 시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합리적 결정이라고 봤다. 각 개인은 자신이 생각하는 미래의 모습을 토대로 합리적 결정을 내린다고 간주한 것이다. 그들은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을 만드는 것은 정부가 할 일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정부의 지출과 과세는 경제의 자연적 질서를 왜곡한다고 봤다. 또 경제 성장을 고무하려고 정부가 돈을 쓰면 그로 인해 물가가 올라갈 수 있고 재정 적자가 불어 세율이 올라갈 수도 있는데, 기업들이 이를 우려하게 되면 신규 투자를 자제할 것이라고 봤다. 그리고 세계화가 심화하고 정보 통신이 발달함에 따라 시장의 효율성이 높아져 모든 사람이 득을 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기 후퇴(혹은 불황)는 시장경제의 일상적인 측면으로서 참고 견뎌야 할 대상이지 교정할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그들은 ‘공급 측면’의 해결책을 우선시했다. 즉 산업 규제와 세금을 비롯한 정부의 간섭을 제거함으로써 기업이 더 값싸게 상품을 공급하도록 고무하고, 저렴해진 상품이 수요를 진작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짠물 경제학자들은 경제를 경제 고유의 장치에만 맡겨 두면 모든 사람이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경기 후퇴(혹은 불황)를 경제가 건강하지 못한 증상이나 예상 밖의 충격에 따른 결과라고 보았고, 경기 순환의 지점에 급증하는 실업을 해결하고자 했다. 또 시장은 변화에 반응하는 데 느리며, 특히 시장을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노동조합이 더디게 반응한다고 봤다. 나아가 경쟁도 완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공급 측면의 개혁을 도입하자는 논리는 인정했지만, 상품 구매가 좀 더 원활해지도록 경제 시스템에 돈을 더 주입하는 데 초점을 두는 ‘수요 견인’형 해결책들을 더 중시했다. (pp. 476~478.)


오탈자 및 교정.

220쪽 19줄 : 스파라 -> 스라파

511쪽 8줄 : 하이에크는 자살을 뜻하는 듯하다 -> 어색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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