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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기호, 문학동네, 2006.)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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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기호, 문학동네, 2006.)

Dog君 2018. 3. 18. 12:26


1. 나에게 이기호를 권해준 이는, 이기호의 책에는 나 같은 사람들이 나온다고 했다. (나 같은 놈이 나오는 책으로는, 대표적으로 『싱글맨』이 있다 ㅎㅎㅎ) 흙 퍼먹는 애 나온다고 ㅋㅋㅋ


  32) 저는 초등학교 육학년을 마지막으로 모든 학업을 가볍게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흙맛에 보다 집착하기 시작했죠. 저의 집 지하 벙커 흙뿐만 아니라, 보다 맛 좋은 흙, 보다 영양가 있는 흙을 찾아다니기 시작한 겁니다. 운동장 흙도 먹어보고, 놀이터 흙도 먹어보고, 사과 과수원 흙도 먹어보고, 미군 부대 근처 야산에 있는 흙도 먹어보았습니다(운동장 흙에선 지나치게 땀냄새가 많이 나고, 놀이터 흙은 자칫 잘못하다간 동전을 씹을 수도 있지요. 과수원 흙은 그라목손-농약입니다-때문에 자칫 자살 기도자로 응급실에 실려갈 수도 있고, 미군 부대 흙은 쇠 냄새와 기름 냄새가 너무 심해 그리 권하고 싶지 않은 흙입니다). 열다섯 살 무렵부터는 배낭 하나를 메고 전국을 끊임없이 떠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흙맛 기행이었던 거죠. 살아 진천 죽어 용인이라는, 진천과 용인을 비롯해, 인삼 산지인 금산 강화, 벼농사가 유명한 여주 이천, 천년 고도인 경주와 부여(아아, 천년 전 흙을 먹어보고 싶은 마음에 늦은 밤 왕릉을 파헤치느라 정말 고생이 많았죠. 관리인에게 걸려 도굴범으로 오인받은 걸 생각하면 지금도 늑골 부위가 서늘해집니다), 백두대간의 시작인 지리산까지, 가보지 않은 곳이 없고, 먹어보지 않은 흙이 없었습니다. 어느 지방 흙이 가장 맛있냐, 어느 고장 흙이 가장 믿고 먹을 수 있냐, 하고 묻는다면 저는 별로 할말이 없습니다. 그저 다 엇비슷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네요. 실제로 그렇거든요. 우리나라 흙맛은 거의 다 엇비슷합니다. 차이가 없다는 얘기죠. 조금 더 깊이(한 십 미터 정도만이라도) 파고 내려가면 확실히 각 지방마다의 차이를 느낄 수 있을 테지만(그러니까 우기에 물기가 스며드는 정도의 깊이까지 파야 합니다),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거든요. 모두 두 눈에 불을 켜고 자기 땅을 지키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니 저의 집 지하 벙커에 있는 흙만한 흙을 못 본 겁니다(운이 좋은 날엔 산을 반 정도 깎아낸 도로 건설 현장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흙맛은 최고이나, 조심할 게 너무 많았죠. 대못이나 철사 같은 것들 말입니다). 늘 아쉬움이 남았고, 늘 허기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저는 나름 만족하면서 살았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새로운 흙요리법을 갭라하면서 말이죠.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흙」, pp. 64~66.)


2. 흙 퍼먹는 사람이 나랑 비슷한지는 모르겠지만, 곡괭이로 하루 종일 땅 파는 사람이 나랑 비슷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분명한 목적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에는 그저 관성만 남은 것은 아닌가 하는 막연한 불안감,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고 났을 때의 응당 밀려오게 될 허무감은 또 어찌 해야 하나 하는 마음.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전체는 되는대로.’를 인생의 모토로 삼고는 있지만, 그래도 그 막연한 불안감은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다. 하긴... 그건 어느 정도라도 뭘 좀 쓰고 나서 하기에도 안 늦은 불안감이지...


  벽을 파기 시작한 지 열흘째 되는 날, 수영은 드디어 노벨상 수상자들의 복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열흘 후, 그는 그 복도의 삼분의 이 지점까지 파고 들어가는 데 성공하였다. 같은 속도라면 그는 앞으로 일 주일 이내에 나선형 복도 앞까지 도착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면 그 다음엔...... 그 다음엔......

(중략)

  서기가 돌아가고 난 뒤, 그는 다시 예전처럼 있는 힘을 다해 벽을 파기 시작했다. 불안감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는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실체를, 자신의 가정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저 벽 뒤에 자신의 소설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로선 계속 벽을 파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 제안을 수행한 자의 관성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미 회색 시멘트벽 그 자체가, 그의 존재였고, 그의 실체였는지도 몰랐다. 그는 그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이제 그 자신이 완벽한 연장이 되었다는 것을...... 연장은 미리 벽 뒤를 내다보지 않는다는 것을...... 연장은 연장일 뿐.

  그는 또다시 곡괭이와 한 몸이 되어, 온몸을 벽에 부딪치기 시작했다. (「수인(囚人)」 pp. 223~226.)


  용구는 내게 쇼핑백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 안에는 박경리 선생께 드릴 양주 한 병과 담배 한 보루가 들어 있었다.

  “야, 가급적 오늘 안에 해결하자. 새벽 두시까진 영업하니까 그때까지만 오면 돼. 그때 네 계산서하고...... 야, 친구끼리 꼭 이런 얘기까지 해야 되나? 아무튼 좀 도와줘라. 이 바닥에서 나 도와줄 사람이 친구밖에 더 있겠냐?”

  용구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등을 툭, 쳤다. 룸살롱 대문 앞까지 서희와 길상이를 데리고 나와 배웅을 해주기도 했다.

  “오빠, 이따 두시에 또 만나요. 파이팅!”

  서희는 그렇게 말하면서 한 손을 흔들었다. 엉겁결에 나도 서희를 보며 한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래요, 이따가 또 봐요......

  나는 용구가 건넨 흰 봉투와 쇼핑백을 들고 단계동 사거리까지 힘없이 걸어나왔다. 그리고 그곳 편의점 옆에 쪼그리고 앉아 지나가는 차들과 사람들의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퇴근 무렵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어딘가를 향해 바쁘게 걸아가고 있었다. 신호등에 걸린 버스 안 승객들은 무덤덤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중략)

  그렇게 삼십 분 정도 그곳에 앉아 있다가, 나는 다시 일어나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시내 우리집 방향이 아니었다. 박경리 선생의 집이 있는 단구동 방향이었다. 그곳까지는 버스로 사십 분 거리였다. 하지만 내겐 버스비가 없었다. 내게는 여전히 이백원이 전 재산이었다. 그러니 뭘. 또 걸어야지. 원주가 넓기를 하나......


  그래서 나는 ‘서원대로’라고 불리는, 단계동에서 단구동까지 이어진 산업도로를, 레미콘 트럭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전력질주 레이스를 펼치는 왕복 사차선 도로의 갓길을, 시적시적 걸어가기 시작했다. 산업도로엔, 당연하게도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플라타너스 나무들만이 일렬로, 정확히 열한 걸음 간격으로 서 있을 뿐이었다. 나는 걸어가면서 그 나무들에게 일일이 ‘하이파이브’를 해주었다. 왼쪽 손바닥은 금세 새까맣게 변해버렸다. (「원주통신」, pp. 122~124.)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이야기들을 책이 아닌, 할머니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할머니를 통해서 뱀이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죽은 사람들이 때론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글을 몰랐던 나는, 할머니를 통해서만 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할머니, 이젠 걱정 마세요」, p. 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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