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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리하는 법 (조경국, 유유, 2018.)

Dog君 2018. 7. 9. 22:56


1. 예전에 서울에서 살 때는 책을 얼마 이상 살 수 없었다. 기껏해야 원룸이니 책을 보관할 공간이 마땅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책을 줄여야 했다. 주로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로 줬던 것 같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 서울을 나오면서 집도 많이 넓어졌고, 직장에도 책을 보관할 공간이 꽤 넓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최근 1~2년 동안은 정말 공간 걱정 하나도 안 하고 마음껏 책 샀다. (그런데 최근에 또 공간이 좀 부족해지기 시작...;;;)


  책 정리법의 핵심은 어쩌면 ‘책 욕심을 버리는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책을 사들이는 일이 애서가에겐 억누를 수 없는 본능과 같습니다. 이들에게 책 욕심을 버리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겠죠. 책에 대한 욕망을 버릴 수 없다면 내가 가진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서 더 많은 책과 더불어 사는 수밖에요. (pp. 9~10.)


2. 장서가를 넘어서 급기야 책방까지 차릴 정도인 저자답게 단지 장서가로서의 느낌만 정리한 것이 아니라 제목에 걸맞게 정말로 책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에 대한 실용적인 내용이 꽤 많이 들어있다. 벽돌로 만든 서가를 만드는 법까지는 나도 알고 있었는데 ‘이케아 빌리’는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되었다. 기억해 두면 나중에 요긴하게 쓸 일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도서관이나 대형 서점이 다나이드의 아주 거대한 밑 빠진 독이라면 동네 책방이나 서재는 작은 항아리쯤 될까요. 하지만 항아리라 해도 밑이 빠진 건 똑같아서 끊임없이 정리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없습니다. 처음 헌책방을 시작했을 땐 꽤 의욕을 가지고 책을 분류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분류’가 아니라 ‘노력’에 방점을 찍고 싶군요. 하지만 이런 노력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인해전술로 밀려오는 적에 맞서 홀로 고지를 지키는 병사의 심정과 비슷했습니다. 절제를 잃는 순간 순식간에 균형이 깨지고 빈 공간이 사라졌습니다. 어떻게든 여백을 두고 쾌적한 공간을 만들려는 노력은 밀려드는 책들 때문에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pp. 98~99.)


3. 책의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 하는 내용도 눈여겨봐둘 가치가 있다. 나 역시도 내 나름의 간단한 분류법을 갖고 있는데 나와 비슷한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어서 비교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4.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내가 얼마나 독서를 즐기는가 그리고 책 자체를 아끼는가 하는 문제인 것 같다. 부디 책 읽는 즐거움을 최대한 길게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전략) 상자 세 개에 든 책 몇 권, 음악을 즐길 악기, 경치 대신 감상할 그림과 추위를 피할 고사리 줄기 외엔 아무것도 없는 초막이라도 만족하는 마음은 책만 읽어선 얻을 수 없는 듯합니다. 따져 보면 아무리 책을 좋아하고 속독한다 해도 평생 얼마나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을까요. 중년 이후의 독서는 훗날 명창정궤, 소박한 독서가로 살기 위해 남겨 둘 책을 고르는 작업이라는 생각을 한 적 있습니다. 조금씩 책 욕심을 버리는 중이지만 아직까진 읽고 싶고 아끼고 싶은 책이 많으니 문제군요. 장서가의 서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탓이겠죠. (p. 34.)


(전략) 제가 꿈꾸는 이상적인 서재에 대한 기준은 분명합니다. 제가 읽고 싶은 책을 모두 둘 수 있고 고요하며 창밖으로 깊은 숲이 보이는 서재입니다. 현재로선 저의 작은 서재도 더할 나위 없습니다. 방해받지 않고 책을 두고 읽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다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요. 그리고 ‘읽지 않은 책’이 제 작은 서재에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합니다. 읽지 않은 책이 많을수록 서재가 가진 생명력은 강하리라 생각합니다. (후략) (p. 41.)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 머리말에는 중세 독일의 수도자 토마스 아 켐피스의 유명한 격언이 나옵니다.


  내가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작은 서재에 있을 때 제대로 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곳에선 이런 편안함을 느끼기가 힘들죠. 제가 아끼는 책이 있는 서재를 항상 내 인생의 베이스캠프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이 글을 끝까지 읽은 여러분 생각도 마찬가지겠지요. 고맙습니다. (p.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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