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역사비평 135호 (역사비평사, 2021.) 본문

잡冊나부랭이

역사비평 135호 (역사비평사, 2021.)

Dog君 2024. 7. 30. 21:07

 

  야심차게 준비하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성공적 수행은 가장 큰 과제였다. 특히 3조 2천억 환이라는 막대한 소요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그중에서도 전체 비중은 27.8%이지만 제2차 산업 부문에서만 43.4%를 차지하는 외자를 어떻게 도입할 수 있을지는 1961년 말까지도 막막한 상태였다. 쿠데타 발발 이전까지, 미국의 DLF 공공차관 8건의 허가 외에 한국이 외국으로부터 직접 돈을 빌려온 전례는 전혀 없었던 터였다. "현 상태에서 외자가 도입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 "군사정부의 성패는 외자가 계획한 대로 도입되느냐에 달려 있다"는 발언이 최고회의 내에서 나오고 있었다.
  이에 더하여 외자도입을 타진하던 군사정부가 마주한 국제질서는 냉전 체제 경쟁의 본격화 속에 차관 거래에서의 민간기업 우선 방침을 요구했다. 일례로 1961년 9월 기대를 갖고 접촉한 서독 민간상사대표단은 차관 교섭은 어디까지나 자유기업 원칙하에 민간회사에 의하여 진행하며 정부는 보호하는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는 점을 전했다. 미국 역시 "가능한 한 많은 것들을 민간영역"으로 할 것을 압박했다.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는 "외자도입에 있어 실수요자 간의 교섭은 민간교섭"이라는 전제를 인정해야 했다.
  이 틈을 파고든 것이 '부정축재자'로 납작 엎드려 있는 듯 보였던 일군의 대자본가들이었다. 물론 이들이 군사정부의 명령에 감히 불응한다거나 함부로 대적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군사정부의 경제 운용이 난관에 봉착했음을 포착한 '경협' 회원들은 정부 명령의 수위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조절하려는 물밑 작업을 전개했다. 이에 관한 대략의 전모는 '경협' 회장 이병철을 필두로 한 '경협' 지도부가 1961년 10월 초 주한미대사 버거(Samuel D. Berger)에게 밝힌 바 있는 군사정부와 전개했던 그간의 협상 내용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정은, 「군사정부, 부정축재 대자본가들을 만나다」, 51~52쪽.)

 

  국내에는 이 용어(악의 평범성―옮겨적은이)가 '악의 평범성'이라고 번역되어 지식사회에 정착되었다.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한길사, 2006. 그런데 아렌트가 말한 'banality'는 '평범성'과는 좀 거리가 있다. 세기적인 아이히만 재판을 참관한 아렌트가 피고에게서 발견한 악덕은 그가 평균적인수준에서 사고했다는 점이 아니라 형장에서조차 진부한 말들을 나열할 정도로 철저히 외면적인 가치에 종속되었다는 데 있었다. 즉, 그는 독자적으로 사고하지 못하고 늘 자신보다 강하거나 우월한 권위에 의탁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히만의 악행은 극도로 천박한 것이었다. 아이히만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순간은 그릇된 명령을 따를 때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이행하지 못하는 순간이었다. 이 못난 사내는 모든 심각한 사안을 늘 편리하게 정다오하하며 세태에 영합하면서 살아갔다는 점에서 흉악하다기보다는 속물적이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괴물'이 아니라 '광대'에 가까웠다고 말한다(112쪽). (전진성, 「과거청산에 대한 이론적 탐구―이해와 치유의 (불)가능성을 중심으로」, 356쪽.)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