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서울리뷰오브북스 15호 (알렙, 2024.) 본문
서리북에 관해서는 늘 비슷한 상찬을 반복하게 됩니다. 저보다 훨씬 더 날카로운 통찰과 풍성한 지식으로 빚어낸 서평을 이만큼 밀도 높게 모아둔 지면이 어디에 또 있겠나 싶습니다. 이번 호라고 뭐 얼마나 다르겠습니까. 알아야 할 필요는 크지만 막상 각 잡고 제대로 공부할 자신은 없는 이야기들, 예컨대 이번 호의 유상운, 정우현, 김두얼의 글은 배움의 재미가 쏠쏠한 서평이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을 시간대별로 정리한 홍성욱의 서평은 답답함과 먹먹함, 그리고 딥빡침으로 저를 압도했습니다.
이런 글들을 읽는 내내, 서리북 정기구독을 신청한 저 자신에 대해 새삼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ㅋㅋㅋ
다만 이번 호는 특집에 관해 한 마디 보탤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각각의 글과 기획 자체에 대해서는 제가 특별히 아쉬운 소리를 보탤 일이 없습니다만, 글을 읽으면서 약간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지방과 지역 사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공유하지만 막상 각각의 글들이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종종 눈에 띄었기 때문입니다.
대자본(대기업)의 유치 문제가 그러합니다. 대자본의 유치 문제는 지역 활성화를 논할 때 항상 거론되는 것이기에 이번 호에서도 거의 모든 글이 (직간접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데, 이에 대한 입장에서 필진 간에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대기업이 지역을 구원할 거라는 생각이 "환상"에 불과하다고 꼬집는 글이 있는 한편,(81쪽) 곧이어 바로 다음 글에서는 대기업이 지방도시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주장이(99~100쪽.) 이어집니다. (명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다른 글들도 대자본의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의 입장이 암시됩니다.) 그런데 서로 다른 입장이 그저 병렬적으로 제시되기만 해서 그런가, 책을 읽는 저는 좀 당혹스러웠습니다.
물론 여러 필진의 생각이 같을리가 없고 특집의 논조가 반드시 일관되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상반된 의견 중에서 어느 쪽이 좀 더 설득력이 있는지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기도 하구요. 투고된 서평에 대해 편집진이 또다시 평을 붙이지 않는 것이 서리북의 평소 편집방향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이런 정도로 주장이 상반된다면 적어도 주요한 쟁점을 정리하는 정도의 서론 혹은 갈무리 정도는 있어야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계속 남습니다. (대부분의 잡지와 학술지에서 기획특집을 꾸릴 때 이런 글이 붙는 것이 상례이기도 하구요.)
저자가 처음으로 짚는 환상은 대기업이 지역을 구원하리라 믿는 것이다.(21쪽) 여전히 대기업 유치와 대규모 개발을 지역재생의 메시아로 보는 지역 정치가와 행정가들이 선거철마다 고개를 든다. 하지만 위기에 빠진 지방도시를 한 방에 구원하는 슈퍼맨 같은 영웅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기업 본사를 서울에 둔 상태에서 지방도시에 공장을 낸다 해도 법인세는 서울로 흘러가게 되며, 더 좋은 인센티브, 더 저렴한 인건비의 도시로 사업지 이전이 결정되면 지역은 걷잡을 수 없이 쇠퇴하기도 한다. (...) (윤주선, 「알고도 못 막는 환상 - 『마을 만들기 환상』」, 81쪽.)
한편 저자는 "1년 동안 늘어난 반도체 고용 인원은 고작 650명"(224~225쪽)이라 말하며, 대기업이 수조 원을 투자하더라도 늘어나는 일자리는 매우 제한적이라고 역설한다. 그러나 2024년 기준 삼성전자에 재직 중인 직원은 12.4만 명이고, 300인 이상 대기업 취업자는 전년 대비 8.9만 명이 늘어난 308.7만 명이다. 여기에 협력업체에 재직 중인 직원들까지 고려하면 투자 규모와 일자리 수는 무관하지 않다. 투자를 한다는 말은 그만큼 재료, 노무, 기계 장비에 돈을 쏟는다는 말이다. 노무는 비단 대기업이나 협력 업체 직원뿐만 아니라, 안전 관리나 품질 관리 보조, 신호수 등 다양한 단기 일자리를 포함한다. 최근 대규모 사업장에서 이들이 받는 급여를 생각해 보면, 이들의 구매력 역시 무시하기 힘들다. 단기간 소득을 창출하는 능력은 되려 대기업 정규직보다 더 높은 이들도 상당수다. 거기에 투자가 이루어지면 간접적으로 발생하는 일자리도 다양해진다. 고용 유발 계수가 높은 음식점 및 숙박 서비스, 건설업 등 파생 산업을 생각하면 지역내총생산 증가에 기여할 수밖에 없다.
현재 이와 같은 현상으로 인해 실제로 발전하고 있는 도시가 화성시, 평택시, 청주시와 같은 지방도시들이다. (...) 이 도시들은 광역시가 아님에도 인구가 늘아나며 재정도 매우 튼튼해지고 있는데, 이들이 이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 LG화학, 삼성SDI와 같은 각종 대기업 사업장, 그리고 지역 내 관련 중견, 중소기업들이 활발히 사업을 확장해 나갔기 때문이다. (양동신, 「더 매력적인 지방도시들을 찾아서 - 『지방도시 살생부』」, 99~100쪽.)
(...) 성심당 덕분에 대전은 더 핫한 장소가 되는 것일까? '노잼도시'라고 놀리며 대전을 밈(meme)화 하고, "거봐, 성심당 말거는 없잖아"라고 말할 때, 기차를 타고 대전에 와서 성심당에 들렀다 돌아갈 때, 대전은 노잼도시로 브랜딩하는 데에 성공하는 것일까? 『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를 쓴 사회학자 주혜진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무엇 하나만으로 대표되는 도시의 정체성은 납작하기 때문이다. 대전이라는 도시의 역사와 지리적·문화적 특성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감정을 만들어 내고, 더 많은 호기심과 소통 욕구를 불러일으켜 친밀한 관계를 맺게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 대전의 관광지 혹은 관광·문화 콘텐츠가 대전이라는 핵심어와 맺는 관계를 살펴보면,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관계망을 형성한다기보다는 대전과 성심당, 대전과 수목원처럼 단편적인 일대일 관계에 그치는 양상을 보였따. 사람들은 대전에 와서 여러 장소를 둘러보며 다양하고 복합적인 경험을 하지 않는다. 그곳의 특성을 살펴보고 분위기를 느끼고 내면의 감정을 끌어올리지 않는다. 단편적으로 한두 곳만 '찍고', 그곳에서 SNS에 올릴 사진을 '찍고' 떠난다. 그렇게 함으로써 노잼도시 대전 방문이라는 밈을 실천하면 대전 방문의 목적이 달성된다.
저자는 이런 단편적인 방문 경험이 오히려 대전과의 거리감을 키울 뿐이라고 지적한다. 성심당을 향해 돌진하는 사람들은 대전의 구석구석을 탐험하지 않고, 오래된 도시가 품고 있는 역사를 탐색하지도 않는다. 새로운 장소에서 자신만의 재미를 찾거나 다르게 보이는 공간의 사연을 묻지 않는다. 그래서 대전은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다. 공간이 지닌 기억과 감정, 그 속의 물질과 사람들의 특성, 그 모두를 복합적으로 느끼는 총체적인 경험을 장소성('sense of place' 또는 'placeness')이라 할 때,(52쪽) 성심당과 코레일이 약간의 돈을 버는 동안 대전은 장소성을 잃었다. (심채경, 「당신의 블로그를 파헤쳐 납작한 대전을 만나다 - 『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 16~18쪽.)
이 책의 이야기는 밀양에서 일어난 탈송전탑 운동과 탈핵 운동에 대한 것이다. 이야기는 '도시로 가는 전기'에서부터 시작한다. 밀양에 들어선 거대한 송전탑들의 출발점은 동해안의 신고리 원전단지였다. 거기에서 출발한 76만 5천 볼트 송전선은 밀양 북쪽의 산골 마을들을 지나서 경남 창녕에 있는 북경남 변전소로 연결될 예정이었다. 애초부터 송전탑은 밀양 주민들이 쓰는 전기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원전의 전기를 도시로 보내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위해 시골 주민들에게 희생을 감수하라는 얘기였다.
그래서 밀양의 이야기는 밀양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농촌이나 어촌의 시골 마을들을 도시 중심의 개발과 산업화 정책의 뒷면에서 오래도록 수탈의 장소가 되어 왔다."(47쪽) 그래서 전국 곳곳이 밀양인 상황이다.
도시로 전기를 보내기 위한 발전소와 송전선이 농촌·어촌·산촌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도 농촌·어촌·산촌으로 밀려들고 있다. 발전원은 바뀌어도, 도시와 공장으로 전기를 보내기 위해 시골 사람들은 희생을 감수하라는 것은 똑같다. (...) (하승수, 「곳곳이 밀양,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이유는? - 『전기, 밀양-서울』」, 54~55쪽.)
밀양 할매들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난개발과 환경 오염 시설에 반대하며 싸우는 농촌 주민들은 '이 땅과 물과 공기가 모두의 것이고, 현세대가 잠시 빌려 쓰는 것'임을 안다. 힘 있는 자들과 자본은 '보상금 더 받으려고 그런다'고 반대 주민들을 매도하지만, 그런 말은 스스로의 바닥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돈 안 받고 떳떳하게 살마답게 사는 게 낫다'는 사람도 있음을 모르는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의 천박함을 드러낼 뿐이다.
그러나 전국 곳곳에 있는 밀양 할매들은 어렵고 외롭다. 동해안의 신울진 원전 단지에서 출발하는 50만 볼트 초고압 송전선 때문에 강원도와 경북 일대에서도 밀양 같은 상황들이 발생하고 있다. 한전은 주민들을 분열시키고 갈등을 조장하는 매뉴얼을 들고 이 지역을 휘젓고 있다. (...)
단지 송전선 사업만 있는 것도 아니다. 농촌 지역 곳곳이 난개발과 환경 오염 시설들로 고통받고 있다. 그리고 그에 저항하는 주민들이 있다. 시골 주민들은 대한민국에서 소수자 중의 소수자다. 지역에 제대로 된 언론도 없고, 시민·환경 단체도 없는 곳들이 수두룩하다. 도시에 있는 언론과 시민·환경 단체도 농촌 주민들의 투쟁에 대해서는 관심이 부족하다. 이런 와중에 업체 편에 선 일부 지방자치단체장과 공무원들, 이윤만 바라보고 마을 공동체를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넣는 업체들이 곳곳을 '밀양'으로 만들고 있다. (하승수, 「곳곳이 밀양,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이유는? - 『전기, 밀양-서울』」, 61쪽.)
유네스코는 이미 1950년에 "모든 인간이 동일한 종에 속하며 인종은 생물학적 실재가 아니라 신화"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는 인류학자들의 관념적 선언에 그치지 않고, 사회학자와 유전학자를 포함한 수많은 분야의 학자들이 방대한 연구를 일별해 발표한 성명이다. 최근 점점 중요해지는 정밀의학적 필요에 따라 환자 맞춤형 의료를 적절히 시행하기 위해서라도 받아들여야 할 개념은 개인의 '유전학적' 차이와 그에 따른 '의학적' 차이이지, 인종적 구분이 아니다.
피부색같이 잘 알려진 형질뿐 아니라 여러 신체 치수, 젖당의 소화 능력, 고지대에서 호흡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특정 질병에 대한 취약성에서도 집단 간에 상당한 유전적 차이가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집단의 차이가 본질적으로 인종에 대한 오래된 고정관념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정우현, 「인간은 유전자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 『유전자 지배 사회』」, 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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