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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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事나부랭이

01. 굴국

Dog君 2016. 1. 26. 13:57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 하는 외식 한 번 한 적이 없었고



노래 부르는 너희들도 가난했었고








  아니 뭐 이런 노래 부르면서 굳이 신세한탄을 하고 싶은 건 아니고... 대충 공익군대 다녀오기 전까지 확실히 우리집은 가난했다. 우리집만 그랬겠나. 그 동네가 얼추 다 고만고만했다. 역 뒤편으로 철길을 끼고 있는 동네였고 그래서인지 땅값도 꽤 쌌던 모양이다. 그 동네에서 1년 반 정도 살았다. 그 동네에서 학교 가는 길은 참 아스트랄했던 것이 건널목 없는 철길을 건너서(;;;) 허접한 시장통을 지나서(;;;) 사창가(근처)를 경유하면(;;;) 학교가 나왔다. 그 이야기는 좀 천천히 하기로 하고.


  그 시장통이란데가 좀 웃겼다. 원래부터 시장이었던 것이 아니고 그냥 사람 다니는 길에 물건 파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서 시장처럼 된 것이었다. 거길 매일 두 번을 지나다닌 건데, 땟국물에 찌든 앞치마를 두른 할머니들이 연신 굴을 까고 있었다. 까고 난 굴껍질은 그냥 길바닥에 던져졌고 오가는 사람들이 그걸 밟아 깨면서 자연스럽게 도로가 포장됐다(;;;) 그러다가 세차게 바람이 불면 굴껍질조각들이 막 날아다니면서 때아닌 블리자드(;;;)


  마 암튼 갑자기 그때 생각도 나고, 겨울이기도 해서, 2016년 첫번째 요리도전은 굴로 끓인 국, 굴국 되겠다.






재료 (가격은 가까운 홈플러스 기준)


생굴(1봉 280g) : 4980원

 - 이 정도면 한 냄비 넉넉하게 끓인다. 동네 마트에는 120g 짜리로 팔더라.


두부(반모) : :2650원

 - 한 냄비에 반 모. 근데 왜케 비싸지;;; 동네 마트에는 한 모 1000원인데...


대파(3대) : 1240원

 - 한 냄비에 1대. 반값 떨이로 샀다. 실파, 쪽파 등으로 대체 가능.


홍고추(1봉) : 740원

 - 한 냄비에 2개. 풋고추도 상관없지만 홍고추가 더 예쁘다. 역시 반값 떨이.


새우젓(1통) : 6000원

 - 사다 놓으면 주구장창 쓴다. 이거이거 알고 보니 마법의 재료였다.


(다진)마늘, 참기름

 - 있으면 쓰고 없으면 말고 니 쪼대로.






만들기


1. 아무 냄비에 물을 미리 끓이자. 물론 물은 나중에 끓여도 되지만... 시간 절약하는 차원에서 물 끓는 동안 다른 재료 준비할 거다. 빨리 끓여서 밥 먹어야지. 응?




2. 썰 수 있는 재료는 다 썬다. 고추 썰고, 파 썰고, 두부 썰고, 새우젓은 안 썰고... 어슷하게 하든 모나게 하든 상관 없이 막 썰자. 어차피 나 혼자 먹을 거니까 모양이 뭐 중요하겠나.





3. 굴은 소금물로 씻는다. 손으로 빡빡 비비지 말고 그냥 손가락으로 살살살살 흔들어주면 된다. 손가락 사이로 굴의 촉감을 느끼면서... 씻은 굴은 그릇에 담아 두고.



 인터넷에는 소금물로 씻으라고 되어 있어서 나도 소금물로 씻으라고 쓰긴 쓰는데 생각해보니 굳이 소금물로 안 씻어도 될 것 같긴 하다. 바다로 가나 계곡으로 가나 피서는 다 마찬가지 아이겠능교.





4. 준비한 재료를 모두 다 넣고 끓인다. 넣는 순서? 그런 거 없다. 그냥 굴이 제일 마지막에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끓이자. (마늘과 참기름은 있으면 넣고 없으면 넣지 말고. 마늘은 다진 것이건 썬 것이건 상관 없다.)





5. 아차 하나 빼먹었네. 새우젓은 밥숟갈 기준으로 한 숟갈 반이 딱 스탠다드니까 자기 입맛에 맞게 간 조절하면 된다. (시행착오 끝에 나온 거니까 믿어도 된다.) 재료 중에서 딱히 국물 맛이 나올 것 같은 것이 없지만 오직 새우젓의 힘만으로도 국물 맛이 꽤 그럴 듯 하게 난다. 글타. 사실 위에 한참 썰어놓은 재료들은 사실 그냥 쩌리. 굴국의 핵심은 그냥 새우젓. 비빔밥에 고추장이 있고 매운탕에 라면스프가 있다면 맑은국에는 새우젓이 있다.




6. 흐물흐물했던 굴이 온탕에서 서로 쪼그라들다가 끝내 버티지 못하고 탱탱해지면 요리는 끝. 오예.







맛보기


1. 별달리 신경 쓸 것도 없이 의외로 빨리 만들어져서 정말 맛이 있을지 없을지 걱정을 많이 했다만은,



  딱히 넣은 것도 없는데... 새우젓만으로도 이런 맛이 나는구나... 역시 새우젓은 마법의 재료임에 틀림없다. (오늘의 가장 큰 교훈)




2. 이건 달리 말하면 '굴국'의 메인인 '굴'이 별로 안 중요하다는 뜻인데... 먹다보면 '그냥 감자국인데...?' 하는 순간이 있다.




3. 맛의 핵심이 새우젓이라면 비주얼의 핵심은 홍고추. 맛으로 치면 풋고추를 넣어도 상관 없지만 그래도 발그레한 게 더 예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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