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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동진, 예담, 201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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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동진, 예담, 2017.)

Dog君 2017. 9. 6. 21:25


0-1. 강박증 비슷한 것이 있다.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거나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정도는 아니고 그냥 혼자서 꺼림칙해 하는 정도지만, 뭐 암튼 있기는 있다. 책은 무조건 키 순서대로 정렬해야 한다거나, 필통의 연필은 반드시 뾰족하게 깎아둬야 한다는지 하는 것들. 숫자 강박도 (당연히) 있다. 꼭 어떤 숫자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유달리 신경쓰이는 숫자 혹은 별 이유 없이 호감가는 숫자들이 있다. 예컨대 12 같은 건 약수가 많아서 좋고(1, 2, 3, 4, 6, 12… 약수가 무려 6개다!), 17이나 22 같은 숫자는 별 이유 없이 밉상이고, 5의 배수는 거의 대부분 딱딱하고 각진 느낌이 든다. 런닝머신 위에서 37분 언제쯤에 내려오는 경우는 없고, 6.7km에서 멈추는 일도 거의 없다. (오늘 점심에는 정전 때문에 런닝머신이 22분 몇초에서 강제로 멈췄는데, 그거 오늘 내내 신경쓰인다.)


0-2. 어릴 때부터 갖고 있던 것이지만, 이런 느낌을 입 밖으로 말한 적은 없다. 내가 봐도 별난 감정이라서, 굳이 누구한테 이런걸 말해서 별스런 사람 취급을 받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냥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감정을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님을 한 5년 전에 알았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 여러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이었다.


0-3. 이상은 이동진에 대한 나의 애정고백.


1-1. 대학원에 진학한 이후로 독서가 평생의 업이 되었다. 코스웍 때는 하루종일 책 읽고 정리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코스웍을 마친 후에도 책과 논문을 계속 읽고 정리하면서 최신 연구동향을 따라가는 것이 일상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해야만 하는 일이어서 지루하고 힘들 때도 있지만, 보람이 더 크다. 뭐든 읽고 정리하고 나면, 그것을 읽고 정리하기 전에 비해서 아주 조금이라도 성장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 보람이 대학원 생활의 원동력이었다.


1-2. 독서는 평생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일과 비슷해서, 창작자가 만들어둔 한 권/편/장 짜리 세계 속으로 풍덩 빠져들어서 그 세계를 내 멋대로 유랑하고 다니는 것 같다. 설사 그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좀 재미없는 내용이라 해도, 그냥 글자 하나하나를 읽어가는 것 자체가 즐거울 때도 있다. 책 한 권을 다 읽은 다음엔 또 무슨 책을 읽을지 책장을 훑으며 고민하는 시간도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2. 소문난 독서광인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생각하는 독서 역시 나의 그것 비슷한 것 같다. (그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 이유가 또 하나 늘어난다 ㅋㅋㅋ) 그는 독서에 강박관념을 가지거나 특별한 목적을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오직 재미를 위해서 읽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중간부터 읽어도 되고, 읽다가 관둬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책을 읽고 문장을 음미하는 그 자체의 즐거움을 느끼라는 것.


3. 그런데 세상이 ‘독서’를 대하는 태도는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고, 도리어 어느 순간부터는 독서가 하나의 ‘스펙'이 된 느낌이다. 수백권씩 되는 책을 읽어치웠다는 아이 이야기가 본받을만한 이야기처럼 언론에 오르내리고, 공자가 어떻고 플라톤이 저떻고 하는 고전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오가며, 책을 읽어야 창의력이 생기고 취업에도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도 많다. 그래서 그런가, 꽤 비싼 참가비를 내야 하는 ‘고급 독서모임’도 인기리에 운영 중이라고 하는 걸 보면(물론 실제로는 ‘있어 보이려는' 애들이 연애하려고 모여드는 곳이라고 하더만…), 이쯤 되면 거의 강박 수준 아닌가 싶다. 안 그래도 길가다 발에 채이도록 강박관념이 널린 세상인데, 참내, 이제는 독서까지 강박이 되는 시대가 됐나.


4. “이동진 독서법”은, 제목과는 달리 독서하는 방법에 관한 내용이라기 보다는 독서를 대하는 태도에 가깝다. 의무가 아닌 재미로, 스펙이 아닌 취미로, 강박이 아닌 즐거움으로 독서를 대하라는 것.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닌 것처럼 툭툭 던지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독서마저 스펙이 되고 그래서 더 강박적으로 독서에 집착하는 세상에게 이런 이야기들은 좀 더 널리널리 권장되면 좋겠다. 이 말은 책 읽는 것을 평생의 업이자 취미로 삼은 나 스스로에게 주는 조언이기도 하다.


ps. 3부에 있는 500권 리스트는 일부러 보지 않았다. 저자에 대한 내 애정의 강도를 생각해 볼 때, 3부를 봤다간 내 독서생활이 흔들릴 것 같아서 ㅠㅠ 이건 나중에 천천히 살펴보기로 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안다고 말하려면 그것의 범주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 그 맥락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다른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알아야 그것을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범주와 맥락 그리고 차이를 알아야 비로소 그것을 안다고 할 수 있는데, 한 가지만 아는 사람이라면 다른 것과 비교를 할 수 없으니까 불가능하겠죠. 삶에는 수많은 가치가 있고 그것들 하나하나가 다 소중합니다. 하지만 단 하나만의 가치, 단 하나만의 잣대를 가진 사람은 굉장히 위험한 사람이지 않을까요. 편중된 독서라면 그 양이나 시간과 별개로 문제 있다는 거죠. (p. 26.)


  세상에는 살면서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과 읽어봤자 시간낭비만 되는 책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그저 내가 읽었더라니 좋았던 책이 있고, 내가 읽어보았지만 좋지 않았던 책이 있으며, 내가 아직 펼쳐 들지 않은 책이 있을 뿐입니다. 세상은 넓고 내 손을 기다리는 좋은 책은 많습니다. (pp. 38~39.)


  우리의 생각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언어로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철학에서도 그렇고 뇌생리학에서도 그렇게 설명합니다. 책을 읽은 후 우리는 그냥 뭉뚱그려진 감정과 생각의 덩어리를 갖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을 글이나 말의 형태로 옮기지 않는 한 생각은 제대로 위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또 표현하기 위해서라도 말하고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p. 49.)


  ‘책 속에 길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길을 찾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생각이 약간 다릅니다. 독서의 어떤 부분은 길을 잃기 위함도 있는 것 아닐까요. 우리는 일반적으로 살아가고 성장하면서 정해진 길이 있다고 믿습니다. 초등학교를 마치면 중학교에 가야 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다가 조금만 벗어나서 다른 길로 가게 되면 너무나 두려워집니다. 하지만 정해진 길로 가는 사람들이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니지요. 정해진 길로 가는 사람들도 불안해합니다. 그런데 독서는 길을 잃는 경험도 만들어줍니다. 진정한 독서는 정해진 길 밖으로 나가게도 만들고 그래서 길 위에만 있으면 안 보이는 것들도 보게 해줍니다. 길을 일부러 헤매게도 만듭니다. 우리가 살면서 크게 흔들리면 위험하잖아요.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흔들리는 건, 상대적으로 덜 위험할 겁니다. 그리고 길 잃는 것의 해방감이나 쾌락, 또는 생각지도 못한 이득도 얻을 수 있습니다. (pp. 80~81.)


  경험해보면, 목적 독서는 지쳐요. 왜냐하면 책을 읽는 행위 자체에서는 쾌락을 못 느끼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 얻어지는 부산물, 결과를 겨냥하고 책을 읽게 되면 독서를 ‘견디게’ 되거든요. 힘든데, 다 읽고 나면 ‘한 권 읽었다’에 그치는 거죠. 책이라는 것은 우회로일 수도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자꾸 얘기하는 건데 우리가 책을 읽으면서 하는 이야기들이 있잖아요. 책을 읽으면 지식이 늘고, 화술도 늘고, 글도 잘 쓸 수 있고……. 저는 이 모든 게 부산물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책을 읽다 보면 그 안에 주제도 있고 세상을 보는 시각이라는 것도 있고 정보라는 것도 있는 거거든요. 굳이 이야기하면 우리에게 질문을 주는 책들이 더 좋은 책들이죠. 그렇지만 뒤집어 얘기하면 제대로 질문하기 위해 책을 읽는 것도 아니에요. 책이 거기 있기 때문에 읽는 거예요. 재미있어서 읽는데, 읽다 보면 그런 것들이 튀어나오는 거죠. (후략) (pp. 91~92.)


(전략) 제가 직업적인 서평가는 아니지만 ‘이동진의 빨간책방’이라는 팟캐스트를 5년째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이 팟캐스트에서 특정 책을 집중적으로 비판한 적은 거의 없어요. 그러면 제가 무슨 직업윤리나 용기가 부족해서인가, 그건 아니에요. 책은 2015년 한해에 4만 몇천종이 나왔어요. 1년에 4만 종에서 5만 종의 책이 나온단 말이에요. 그러면 그중 읽을 만한 책이 아무리 적어도 1천 종은 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40권 중 한 권은 읽을 만한 책 아니겠어요? 그런데 제가 그 1천 권을 다 읽을 능력이 없어요. 그런 상황에서 어떤 책을 다루느냐 자체가 그 사람의 선택이에요. 어떤 책은 이번 주 베스트셀러 1위라도 다룰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걸 안 다루고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 “강남의 탄생”이란 책을 다루겠다는 것 자체가 서평가로서 굉장히 중요한 선택이라는 거죠. (후략) (p.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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