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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 세계와 겨룬 영혼의 승부사 (브루스 토마스, 김영사, 200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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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 세계와 겨룬 영혼의 승부사 (브루스 토마스, 김영사, 2008.)

Dog君 2018. 1. 26. 20:06


1. 순전히 내 의지만으로 골라든 책이지만, 사실 이소룡에 대해서 특별히 더 많은 호감을 갖고 있다거나 이소룡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엄지로 코 때리면서 ‘아비요~’하는 정도는 누구나 다 하는 거고...) 다만 책이란 건 사두기만 하면 언젠가는 볼 일이 있을 거라는, 말도 안 되는 독서원칙 때문에 헌책방에서 골라들어 책꽂이에 꽂아두었던 것을 단지 무술년이 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읽었을 뿐.


혹시 이해 못 하는 분 계실까봐...


2. 예전에 읽었던 월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에서도 그랬는데, 뭔가 대단한 족적을 남긴 사람은 하나 같이 괴팍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월터 아이작슨이 그리는 스티브 잡스가 독단적이고 절차에는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처럼, 브루스 토마스가 그리는 이소룡 역시 어렸을 때부터 천방지축에 욱하는 성질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이런, 스티브 잡스나 이소룡 같은 사람을 상당히 싫어한다.


3. 하지만 또 하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우리는 이런 식으로 안하무인격으로 여기저기 들이받는 사람들이 성취한 것들에 상당 부분 기대며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나처럼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사람들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거든.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과 뭔가 함께 일을 하는 것은 가급적 피하려 하면서도, 내가 그런 사람들의 성취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않으려고 애쓴다. 내가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사는 것이 실은 내가 착하고 사람 좋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받는 손가락질을 감내할 용기가 없기 때문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소룡이 <맹룡과강Way of the Dragon>이라는 제목의 영화 각본을 직접 쓰고 감독을 맡아 촬영에 들어갈 준비를 하자 홍콩 영화 산업 전반에 일대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이소룡이 각본과 감독을 맡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홍콩 배우들은 주는 대로 출연료를 받고 시키는 대로 연기를 해야 했다. 영화가 아무리 흥행을 해도 이익을 보는 건 제작자들뿐이었다. 그렇다고 출연료가 높은 것도 아니었다. 이소룡이 포문을 열자 다른 인기 배우들도 더 높은 출연료와 그에 맞는 대우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은 영화 기술자들과 촬영 기사들에게까지 퍼져나갔다. 이소룡은 영화의 주요 배역들이 이윤 배당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오히려 참여 작품에 대한 열정과 관심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영화의 질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보았다. 이소룡의 영화가 세계인의 관심을 끌고, 덩달아 홍콩 영화가 국제적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이미 식상하고 타성에 젖어 있던 영화 제작 방식에 그가 많은 부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기 때문이었다. 홍콩의 한 신문은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이소룡은 제작 편수만 많았지 그 외에 다른 것은 전혀 내세울 것이 없었던 홍콩 영화 산업의 분명한 보배이자 자랑거리다.” (pp. 291~292.)


  이소룡은 <용쟁호투>에서 자신이 연기할 ‘리’에 대해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그는 서양에서 중국의 무술 영웅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그리고 중국인들이 자신의 이런 새로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많은 고민을 했다. 그가 앞서 출연한 영화들이 마약, 매춘, 금품 갈취를 일삼는 폭력배들과 맞서 싸우는 무술 영웅을 다룬 내용이기는 했지만, 거의 모든 ‘중국’ 영화들이 영세한 공장이나 식당에서 벌어지는 범죄들을 소재로 다루고 있었다. 사실 이런 영화의 소재는 초과 노동과 저임금 노동이 넘쳐나는 홍콩의 낙후된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는 아무리 영화 속 장면이라고 해도 이런 낙후된 모습을 서양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더 이상 같은 동포들을 위해 순진한 촌놈을 연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제 그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 속의 당당한 한 인간으로 우뚝 서고 싶었고, 또 그런 역을 연기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소룡은 동포를 희생시켜가며 마치 자신이 서구적인 것을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기를 원치 않았다. 또한 도옾들에게 어수룩한 바보처럼 보이는 것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이 두 가지 딜레마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pp. 359~361.)


4. 무술가로서의 이소룡이 주연을 맡은 영화는 불과 다섯 편이다. 그나마도 ‘사망유희’는 그가 죽은 다음, 생전에 찍어둔 짧은 촬영분들을 엉성하게 얽어서 만든 괴작에 가까우므로 그걸 빼면 꼭 네 편이다. (괴작 ‘사망유희’애 대해서는 아래 링크를 참고하시고...) 단 네 편의 영화로 불멸의 위치에 이른 것을 보면 그가 찍은 영화가 그렇게 대단한가 싶기도 하지만, 설마 몇 편의 영화와 짤방을 남긴 정도만으로 이만한 전설이 만들어졌을 것 같지는 않다.


사망유희 - 이소룡 최후의 유작이 된 괴작


  이소룡은 엽문 사부에게 배운 무술에 대한 전통적 접근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수하는 데 상당히 느리다는 사실을 알고 잇었다. 그래서 그는 엽문 사부의 여러 가르침 가운데 다음과 같은 단순한 격언만을 받아들였다. “오직 효과가 있는 것만을 사용하고, 네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만 받아들여라.” (후략) (p. 101.)


  처음부터 이소룡은 무술 수련은 가장 간결하고 가장 효과적인 동작들을 사용하는 실전, 즉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대결 상황에 바로 접목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소룡은 지르기와 차기의 강도를 높일 수 있는 갖아 좋은 방법은 그것을 계속 연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실전을 위한 가장 좋은 훈련은 직접 싸워보거나 적어도 그와 가장 비슷한 조건에서 보호대를 차고 스파링을 하며 수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것에 어떤 복잡한 논리는 필요하지 않았으며, 특별한 규칙도 없었다.

  이소룡이 다른 많은 중국 전통 무술 단체들로부터 진정한 무술가가 아니라 순전히 싸움꾼에 불과하다고 무시당했을 때, 그는 자신이 특정 무술 양식이나 방식을 따르지 않는 것은 기술이 부족하거나 ‘형식이 없어서’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 말은 그가 수련한 무술에 어떤 제약이나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항상 새로운 기술이나 방법을 고안하고, 그것을 실전 대결에 적용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p. 202.)


  이소룡은 절권도에 도가에서 말하는 도道 자체의 본성을 투영할 작정이었다. 따라서 절권도는 말할 수는 있지만 말로는 그 뜻한 바를 온전히 전할 수 없는 것으로, 머리만으로는 모두 이해할 수 없거나 특정 체계로 고정되거나 하지 않는 하나의 수단인 것이다.

  이소룡은 배를 이용해 강을 건넌 다음 배에 불을 놓는 선승 이야기를 자주 했다. 그러나 이소룡을 따르는 사람들은 배를 보존할 생각을 한다. 한편, 그것을 타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기를 바라거나 거기에다 모터를 달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에서 배라는 것은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무술에 비유하면, 배는 하나의 형식인 것이다. 이소룡의 선승 이야기에 담겨 있는 본질은 목적에 도달하면 그 목적에 도달하는 데 이용한 수단, 즉 형식을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목적을 세우고, 그에 필요한 새로운 수단이나 형식을 취하라는 의미였다. 절권도란 바로 그런 수단 또는 형식이다. (pp. 583~584.)


5. 이 책에 따르면 이소룡은 배우이기 이전에,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한 사람의 무도가였다. 그는 무武의 본래 목적이 무엇인지를 물었고, 그 목적을 제외한 다른 것들은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목적’이라는 것은 단지 적을 쓰러뜨리는 것에 가깝기는 하지만 그 목적에 이르는 과정은 사실 간단치 않다. 이소룡은 그것을 더 강한 힘이나 더 빠른 스피드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구인이 쓴 것이라 그런지 이 책에서는 좀 애매모호하게 설명되어 있지만 그것은 아마도 동양에서 말하는 기氣 내지는 음양陰陽의 흐름과 연관되어 있는 것 같다. 여기까지 오면, 동양 전통의 무도가들이 무술을 통해 도착하고 싶었던 경지와 이소룡이 말했던 것은 기실 크게 다르지 않아진다.


6. 목적과 수단의 관계는, 학문의 세계에서도 비슷하다. 학문의 애시당초 목적은 무엇일까. 그리고 내가 처음, 공부를 업으로 삼기로 마음먹었을 때의 마음은 무엇이었던가. 까먹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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