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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책방 (조경국, 펄북스, 201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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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책방 (조경국, 펄북스, 2018.)

Dog君 2018. 4. 9. 10:46


0. 어려서부터 서점에 대한 낭만 같은 것이 있었다. 책 읽고 밑줄 긋고 정리하는 것이 직업이 되어버린 지금도 여전히 서점에 가는 것은 즐겁다. 어느 도시건 여행을 가면, 맛집이니 문화재니 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안 가고, 대신 그 동네의 서점에는 가능한 가보려고 애쓴다. 언젠가 책(과 관련된) 가게를 내고 싶다는 꿈도 있다. (나처럼 게으른 놈에겐 어림도 없는 일이라는 거, 잘 알고 있다.)


1. 진주에 있는 소소책방은 그런 나의 오랜 짝사랑의 대상인데, 그 소소책방의 사장님이 새 책을 내셨다. 내가 읽은 것을 기준으로 하면 『필사의 기초』와 『오토바이로 일본 책방』에 이어 세번째다. 단편소설집이라고는 하지만 완전히 별개의 이야기들은 아니고, ‘아폴로책방’의 주인의 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바라본 몇 가지 에피소드들을 모은 것이라고 하면 얼추 정리가 될 것 같다. (책방 주인이 책방 주인을 주인공으로 삼아 쓴 소설이기 때문에 전체 이야기 중에서 분명히 어느 정도는 실제를 반영하고 있겠지만, 실제와 허구의 경계가 정확히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ㅎㅎㅎ) 굳이 비교하자면... 음... 심야식당의 책방 버전이라고나 할까.


  모모 선생은 비 오는 날에만 책방에 오는 특이한 손님이기도 했지만 책 고르는 눈썰미가 유독 날카로운 손님이기도 했다. 그가 오는 날, 그러니까 비 오는 날에는 습관처럼 책방 문을 닫을 무렵에 골목길 코너의 삼삼슈퍼에 가서 맥주 한 병을 사 가지고는 미리 간판 조명을 끄고 책상 위에 쌓인 책 가운데 아무거나 뽑아 들고 읽으며 시간을 때웠다. 장마 때는 항상 손님이 뜸했고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그가 책방에 오는 시간은 거의 일정했다. 매번 가게 문을 내리기 전 맥주 한 잔을 들이켜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그가 오면 나는 저절로 책상 서랍에서 종이컵을 꺼내 맥주를 따라서 그에게 건넸다. 맥주 거품이 가라앉을 때까지 잠시 기다리며 아주 느린 걸음으로 새로 들어온 책들이 꽂혀있는 서가를 살폈다. 모모 선생이 사 가는 책들은 주로 소설이었다. 책방이 문을 닫을 때까지 질기게 서가 한 자리 차지하고 있을 ‘불쌍한’ 소설들만 골라갔다. 출판사도 작가도 낯선 생경한 책들을 좋아했다. 처음에는 책보는 눈이 없는 사람이다 싶었다. 하지만 소설 이외의 책을 고를 땐 내놓기 아까운 책들만 골라냈다. 종이컵에 담긴 맥주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비우며 서가를 꼼꼼하게 훑었다. 들어온 책이 없어도 마찬가지였다. 모모 선생이 책을 고르는 동안에는 시간이 아주 느린 속도로 흘렀다. 나는 하염없이 그가 맥주잔을 비우기를 기다렸다. 그가 오는 날엔 집에 가는 시간이 한 시간쯤 늦어졌다. (「모모 선생의 비밀」, pp. 45~46.)


2. 여기에 소개된 많은 책 중에서 내 서가와 겹치는 것은 없다. (굳이 꼽자면 고향집에 있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있기는 하지만, 그게 어디 내가 고른 책인가.) 딱히 여행을 좋아하지도 않고, 소설을 널리 섭렵하지도 않으며, 사진에 대해 특별한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럴 법도 하다. 나는 여태 건조한 인문사회과학책에 온 정신을 쏟고 있고, 어쩌다 보니 그 언저리에서 밥벌이까지 하고 있다.


3-1. 내가 소소책방에 처음 간 것이 언제인지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떻게 알고 갔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블로그에 남긴 글을 보니 얼추 2014년 말 내지는 2015년 초 언제쯤인 것 같다.) 여느 헌책방처럼 책장들을 빼곡하게 들여놓지 않고 널찍하게 공간을 만들어 둔 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평화’방에서 봤던 것과 같은 종류의 책들이 많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 요즘은 보기 힘든 『학생운동논쟁사』니 헤겔과 마르크스와 역사와 철학이 어떠니저떠니 하는 것들이다. 그때가 마침 ‘평화’방이 없어진 직후라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쩌면 소소책방에 있던 책이 평화방에서 버린 바로 그 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책들이 일치했으니까.)


3-2. 그 이후에도 진주에 갈 일이 있으면 빼놓지 않고 소소책방에 간다. 사장님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경우는 세 번에 한 번 정도나 될까, 나머지 두 번은 다른 사람이 자리를 지키고 있거나 아니면 아무도 없거나 그마저도 아니면 아예 문까지 닫혀 있거나 하는 식이다. (전에는 아무도 없는 책방에 혼자 들어가서, 혼자 책을 고르고, 문자로 연락을 드리고, 온라인으로 송금하고, 그렇게 해서 책을 사서 나온 적도 있다 ㅎㅎㅎ) 소소책방 같은 헌책방이 보통의 서점과 다른 것은, 내가 보고 싶은 책을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책 중에서 골라야 한다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서점이란 게 원래 이런 거 아닌가!) 내가 사고 싶은 책을 주문하는 큰 서점과 달리, 헌책방에서 어떤 책을 사서 나오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 들어가서 책장을 훑다가 재미있어 보이거나 혹은 예전에 읽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다가 잊어버렸거나 하는 책을 골라온다. 그래서 헌책방에 갈 때는 최대한 몸과 마음을 여유롭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서가에서 의외의 책을 만났을 때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


  그녀를 다시 만난 건 추석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증발해버린 듯 조용한 골목길의 헌책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건 무료하지만 편안했다. 명절이라도 내가 가야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 라디오에선 어느 길이 막히니 돌아가라는 리포터의 안내가 간간이 흘러나왔다. 그것 말고는 평일보다 더 평화로웠다. 눅눅한 녹차 티백을 꺼내 머그컵에 넣고 잠시 눈을 감고 있을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그녀였다.


  “오늘도 주무시네. 오늘 영업하는 거 맞아요?”


  고개를 끄덕이는 거로 대답을 대신했다. 친척들을 피해 책방에 왔다고 했다. 그녀와 나는 같은 아파트단지에 살고 있었다. 지난번에 어딘지 낯이 익다는 느낌을 받은 건 그것 때문이었다. 내가 아파트에 버려지는 책을 모아 가는 것도, 헌책방을 하는 것도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와 내 어머니가 서로 아는 사이였다는 사실도 처음 들었다. 내가 마시려던 찻잔을 그녀에게 건넸다. 조금의 어색함도 없이 그녀는 책상 앞 의자에 앉았다. (「투모로우」, pp. 27~28.)


4. 책방을 스쳐지나간 여러 사람들에 대한 기억들을 한 조각씩 모아서 쓴 것만 같은 책이다. 그래서 그런가, 이 책의 제목은 ‘책방’이지만 정작 책방에 대한 묘사는 거의 없다. 대신 서가에서 서성이던 사람과, 그 사람이 앉았던 자리와, 그 사람이 반쯤 꺼내놓은 책과, 또다른 어떤 사람이 팔려고 내놓은 책에 묻은 흔적들과, 그들에 대한 저자의 (묘한) 안타까움 같은 것들이 가지런히 담겨 있다.


  우연이었다. 책방과 정반대, 도시의 서쪽 끝에 있는 중학교 도서관에서 폐기한다는 책이 있어 가지러 갔다 소연을 다시 만났다. 소연은 아이들 틈에서 나무주걱으로 떡볶이를 휘젓고 있었다. 얼마나 급했는지 교실 실내화를 신은 채 간식을 먹으러 나온 아이들 틈에서 나도 허기를 채우기 위해 함께 서 있었다. 어묵을 입안 가득 넣고 우물거리며 컵을 찾느라 두리번거릴 때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소연이었다. 사진 속 젊음은 사라지고 삶에 지쳐 까칠했다. 처음 책방에 왔던 소연의 얼굴은 사라지고 삶에 지쳐 까칠했다. 처음 책방에 왔던 소연의 얼굴은 전혀 기억할 수 없었다. 내 머릿속엔 ‘스물여섯 카니아쿠마리의 뜨거운 봄’을 맞이한 소연만 있었다. (「카니아쿠마리」, p. 100.)


5. 그래서 자연스럽게, 책을 읽으면서, 기억들이 한 조각씩 툭툭 주머니에서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소소책방을 떠올릴 때면 자동으로 함께 떠오르는 평화방에 대한 생각들이 함께 떠올랐다. 진작에 끝난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남긴 어떤 흔적 같았던 평화방이 그랬던 것처럼, 손 안의 스마트폰에 온 세상이 다 들어있고 인공지능이 소설까지 쓴다는 이 시대에 책과 독서의 가치를 부여잡은 책방이라는 건 약간 낡아 보이는 느낌마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꾸역꾸역 책방을 지키고 그 책방에서 이야기를 쌓아가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정확히 그게 뭔지는 알 길 없지만 저자가 책에 가지런히 담아 보여주는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얼추 감이 오는 것 같기도 하다.


  그는 고개를 숙이곤 긴 한숨을 쉬며 손에 쥐고 있던 렌치를 놓았다. 내가 고개를 돌렸을 때 그의 시선은 부품의 녹이 슨 이음새에 가 있었다. 그의 마음을 이해했다. 내가 만난, 수집벽과 호고벽(好古癖)을 가진 이들 대부분은 가난했고 마음만 부자였다. 그런 벽(癖)을 가진 이 중에 간혹 돈 많은 치들을 보기도 했지만 그들의 수집품들은 대부분 재테크나 과시를 위한 수단이었다. 얼마에 샀고 얼마에 되팔 수 있다는 사실만 끊임없이 되풀이 말했다. 나도 끊임없이 책을 사들이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최소한의 생활비만 빼고 책방을 다니며 책을 골랐다. 철없던 시절엔 잡식이었고 아폴로책방을 떠맡기 전엔 까다로운 벽이 몸에 박혔다는 걸 깨달았다. 그 고질은 아폴로책방을 지키면서부터 사라졌다. 집에 쌓아둔 아끼던 책들을 조금씩 책방으로 가져와 팔 때도 아무렇지 않은 걸 보면 분명 치유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잠시 잠복하고 있는 걸 수도. 그날 그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으나 나의 기억에 남은 건 버리지 못한 강박이 만든 공간뿐이었다. 그날 이후 한참 동안 그를 보지 못했다. 오토바이에 관한 책도 더는 들어오지 않았다. (「CB하우스」, pp. 152~153.)


여기부터는 책과 아무 상관 없는 평화방 기억.


6-1. 평화방은 인문대 5층 복도 끝 오른쪽에 있었다. '평화'는 줄여서 부르는 이름이었고 원래는 ‘차별없는 세상 편견없는 생각 그래서 너무나 아름다운 평화’라는, 매우 길면서도 고색창연한 풀네임을 가진 사회과학동아리였다. 90년대 초중반까지는 인문대 각 과에서 똘똘하다 싶은 애들을 골라서 무슨무슨 주의니 이즘이니 하는 것들을 공부하고 또 학생운동의 핵심적인 논리틀을 제공하기도 하는 ‘브레인 집단’ 같은 곳이었다고 한다. 90년대 후반 즈음에는 이도저도 아닌, 학생운동의 ‘아싸’들이 모여 그람시니 뒤르켕이니 하는 것들을 읽으며 자기 나름의 탈출구를 모색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6-2. 하지만 내가 대학에 갔던 2001년 즈음에는 그냥 버려진 방이었다. 책임지고 관리하는 사람도 없었고, 문을 잠그는 사람도 없었다. 갈라진 벽틈으로 바람이 숭숭 들어왔고, 책장은 책무게로 내려앉았으며, 누렇게 뜬 사회과학책들에서는 눅눅한 냄새가 났다. 술 마신 다음날 마땅히 쉴 곳이 없었던 복학생이나 넉살 좋은 신입생들이 그 방에서 잠깐잠깐 낮잠을 자는, 그런 황폐한 곳이었다. 진작에 끝난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남긴 퀴퀴한 유산 같은 곳이었다.


7-1. 세상에 대한 신념도, 이데올로기에 대한 확신도, 무엇 하나 남기지 못했던 대학 3학년 말 즈음에 이 방으로 흘러들어갔다. 갓 복학생이었던 97학번 선배와 함께 며칠에 걸쳐 방을 정리했다. 책은 절반 넘게 버렸고, 8090 선배들이 했던 ‘휴전선 이남에서는 불가능했던 공부’(아, 이렇게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네...)의 흔적들은 전부 불살랐다. 그래도 여전히 방은 퀴퀴했다. 다시 들춰볼 일 없는 사회과학책과 민중가요 테이프, 폐기 직전의 고물 컴퓨터, 낡은 커피포트, 삐걱거리는 철제 책상 따위의 것들이 남아 있었다. 『아웃사이더』 같은 계간지와 『서준식 옥중서한』 같은 책을 읽었던 것 같다.


7-2. 그 방에서 보냈던 시간은 우울의 바닥을 기던 때와 겹친다. (어떠한 유리한 조건이 붙더라도 20대로는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유가 그 때문이다.) 변변한 냉난방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여름에는 더위와 모기에 고생이었고, 겨울에는 쉴 새 없이 끓는 커피포트에 나는 조그마한 김과 사람 체온이 훈기의 전부였다. 그 퀴퀴함에 몸을 푹 담그고 20대의 한때를 보냈다. 군대 가기 전에는 주로 선배(특히 98학번 L)와 시간을 보냈고, 복학 이후에는(군대 간 동안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환경이 꽤 나아지긴 했다) 03학번 친구들과 주로 시간을 보냈다.


8. 자연스럽게 평화방은 복학생들이 시시껄렁한 한담이나 나누는 방이 되었다. 진작에 끝난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취급받는 꼭 그 모양새처럼, 평화방은 불안한 20대들이 모이는 ‘후일담’ 같은 곳이었다. 그런 곳이 오래 버틸리 없다. 한때는 치열했던 왕년의 '투사'들이 각자의 둥지로 돌아가면서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부스러진 것처럼, 꼭 그런 모양으로 몇 년 후 평화방은 사라졌다.


그리고 또 내용 추가. (2018년 4월 15일)



으하하. 어제 사인 받았다. 나도 이 정도면 성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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