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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君 Blues...
이번 호는 '민주주의와 선거'를 주제로 한 특집호입니다. 기획의도에 맞추려면 총선 이전에 읽었어야겠지만 제 특유의 게으름 때문에 이제서야 읽었네요;; 흔히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들 합니다만 정말로 선거가 민주주의적 정치를 완벽히 구현하는 수단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민주주의가 문자 그대로 유권자[民]가 주인[主]이 되는 체제라면 유권자의 생각이 고르게 반영되어야 옳겠지만 선거는 그 많은 생각들을 단 몇 개의 선택가능항으로 좁혀버리기 때문이죠. 특히 이번 총선은 워낙에 강고한 구도 하에 치러지다보니 사실상 선택가능항이 두 개 밖에 없었던 것 아닌가 싶고, 정작 선거 과정에서 논했어야 할 정책이나 전망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찾기 어려웠죠. 물론 당면한 시대적 과제(정권심판...)와 양분화된 권력구조를..
식민지기 한국 등반의 역사를 다룬 이 책은 그 중에서도 산악인 김정태와 그의 기록을 주로 다룹니다. 등산을 잘 모르는 저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김정태는 한국 현대 등반의 역사에서 "태산준령"과도 같은 존재라고 하는군요. 한반도의 여러 이름난 봉우리를 초등初登하며 일본 산악인들과 경쟁했다고 전하죠. 하지만 이 책은 그러한 세간의 통설에 맞섭니다. 해방 이후에 김정태가 쓴 여러 기록을 분석하여, 식민지기 그의 활동에 대한 그의 모호한 서술에 오류와 왜곡이 많다고 지적합니다. 김정태는 본디 조선총독부에 충실히 부역했던 사람이지만 그러한 오류와 왜곡 덕분에 해방 이후에는 민족의 자존심을 세운 산악인으로 스스로를 분칠할 수 있었다는 거죠. 이렇게 정리하면 이 책이 왜곡되었던 기존의 서술을 꼼꼼한 사료 비판을 통..
제가 사랑해 마지않는, 고향 진주에 관한 책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제목에 쓰인 '헤테로토피아'라는 표현입니다. 지방의 작은 도시를 묘사하는데 이처럼 낯선 표현이라니요, 아니 뭘 또 이렇게까지... 싶은 마음도 듭니다. 저자 인터뷰를 찾아보니 저자는 헤테로토피아를 "현실에 존재하는 이상향의 '다른(heteros) 장소(topos)'라고 설명합니다. 설명을 들어도 알쏭달쏭하긴 마찬가지네요. ㅎㅎㅎ (이럴 줄 알았으면 철학 좀 공부해둘걸;;) 제가 이해한대로 좀 거칠게 정리하자면 '유토피아의 현실화된 버전' 정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고향'이라는 단어에 으레 (6시 내고향 같은 것을 떠올리며) '전통'이나 '토속' 등등의 의미를 이어붙였겠지요. 그러나 고향을 과거에만 연결시..
범상하게만 보았던 소주를 학술적으로 다룬 책입니다.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상의 소품이지만 그 범상한 쐬주 한 잔도 수천년의 역사가 누적되어 있으니 우리가 이 책을 통해 새로이 알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저는 그 중에서도 (물론 방송에서도 잠깐 말씀드렸습니다만) '燒酒'와 '燒酎'를 굳이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은 다시금 강조하고 싶습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두 단어는 흔히 증류식과 희석식의 차이로 설명됩니다. 희석식은 근대에 개발된 연속증류법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이것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燒酎'라는 표기도 우리의 언어생활에 들어온 것이죠. 그러니 '燒酒'와 '燒酎'의 구분에는, 지금 우리가 흔히 마시는 값싼 희석식 소주는 전통식으로 만들어진 증류식 소주와 다르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셈입니..
무엇에도 굴하지 않는 인간의 의지만큼 (그것이 아무리 작고 사소한 것이라 해도)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도 드물 겁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많은 것들이 그 숭고함과 아름다움 덕분이겠지요. 이 무시무시한 도구들을 대령하자마자, 두 남자는 나를 붙잡고 거칠게 옷을 벗겼다. 말했던 대로, 내 두 발은 바닥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 래드번은 나를 끌어당겨 벤치 위로 엎어지게 했고, 내 손목의 쇠고랑 위로 무거운 발을 얹고는, 손목 사이를 고통스럽게 바닥에 짓눌렀다. 버치가 노를 들고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벌거벗은 내 몸 위로 연거푸 타격이 이어졌다. 무자비하게 휘두르던 팔에 힘이 빠지자, 그는 매질을 멈추고 아직도 내가 자유인이라고 주장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고, 그러고 나면, 가능한 만큼 아까보다..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르스를 물리치고 미궁을 도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리아드네의 실 덕분이었습니다. 미궁 속으로 들어가면서 풀어둔 실타래를 다시 거꾸로 밟아나오면서 미궁을 탈출한 것이지요. 들어간 길을 그대로 복기할 수만 있다면, 제아무리 복잡한 미궁도 얼마든지 탈출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모니까의 『DMZ의 역사』는 말 그대로 비무장지대(DMZ, Demilitarized Zone)의 역사를 다룹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영국이 남북 양측의 완충지대를 설정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는 것으로 비무장지대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한국전쟁에서 영국은 일단 확전만은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영국의 입장에서는 전략적 가치가 낮은 한반도 때문에 굳이 전력을 소모할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오히려 영국의 이해관..
유명한 역사적 인물이 알고 보니 의외로 어두운 면을 갖고 있더라...는 이야기는 사실 흔합니다. 방송에서 말씀드렸던 『독재자 뉴턴』이나 『야나기 무네요시의 두 얼굴』 외에도 그런 책은 많죠. 요 근래에 읽었던 김승섭의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도 우리가 존중해 마지않는 헬렌 켈러가 우생학을 지지했노라고 지적합니다. 그런 책을 읽어온 독자라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진취적인 분류학자인 동시에 폭력적인 우생학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그다지 놀랍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마음 먹고 찾으면 이런 사례는 얼마든지 더 있을 겁니다. 그간 우리가 존중했던 역사적 인물 역시도 결국에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인간이기에 잘못된 생각을 가질 수 있고 인격적인 결점도 있을 수 있죠. 자신이 속했던 시공간으로부터 ..
문해력이 어쩌고저쩌고 말들이 많습니다만, 단군 이래로 요즘만큼 글을 많이 읽는 때도 없을 겁니다. 당장 우리의 일상이 SNS와 단단히 달라붙어 있고, 스마트폰으로든 컴퓨터 모니터로든 틈만 나면 뉴스 보고 커뮤니티 게시글도 보잖습니까. 이런 일상이 가능해진 것은 다 한글이 '활자화'된 덕분입니다. 그런데 한글을 '활자화'한다는 것은 단지 글자를 먹(잉크)으로 종이에 쓰던 것을 활자로 바꾼다는 정도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낱글자를 줄줄이 이어놓기만 하면 되는 알파벳이 불과 스물몇개 하는 활자만 있으면 되는 것에 비해 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무한히 조합해야 하니 (경우의 수가 11,172라던가요...) 이게 말처럼 간단할리가 없습니다. 김태우의 '한글과 타자기'는 그 어려운 일이 어떤 과정을..
연구자 열 중 아홉은 '역사의 쓸모'라는 제목에 위화감을 느낄 겁니다. '역사'와 '쓸모'를 연결시키는 것이 어색하기 때문입니다. '쓸모'라는 말은 '시장에서의 가치'라는 의미로 통용되기 마련인데, 역사학을 논할 때 시장가치라는 잣대는 썩 좋은 도구가 아닙니다. 역사학(을 비롯한 기초학문들)이 겪고 있는 작금의 위기가 학문에 대한 시장화 압력에서 시작된 측면도 있거든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역사'와 '쓸모'가 완전히 별개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쓸모도 없는 학문을 왜 공부하냐' 같은 질문에 대한 답도 마땅히 떠오르지 않구요.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고 또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바가 무엇인지 말하지 못하는 학문이라면, 그게 취미생활과 뭐가 다를까요. 대학원 다닐 적에 자조적으로 했던 '노동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