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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君 Blues...
달리기에 관한 책이라면 뭐든 사서 보는 저, 이번 책은 기업 소설입니다. 일본의 전통 버선인 다비를 만들던 회사가 새롭게 러닝슈즈 제작에 뛰어든다는 이야기죠. 아니, 버선을 만들던 회사가 어떻게 러닝슈즈를 만든단 말인가, 싶습니다만, 다비의 밑창에 생고무를 덧댄 '지카타비'는 지금도 노동현장에서 신발로 많이 활용되고, 별도의 러닝슈즈가 없던 시절에 일본의 마라토너들은 지카타비를 신고 달렸다고 합니다. (손기정 선수도 지카타비를 신고 뛰셨다고 하네요.) 책은 두툼하고 분량도 상당하지만 사실 내용이 아주 막 드라마틱하거나 예측불가하게 전개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약간 비열한 경쟁업체의 책략을 딛고 일어선다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이유로 경영난에 빠진다거나, 슬럼프에 빠졌던 후원선수가 극적으로 역전극에 성공한다..
'배운다educated'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지식을 많이 외우는 것일까요, 아니면 몰랐던 공식을 배우는 것일까요. 사실 우리 같은 범인凡人에게는 배움에 대한 진지하고 객관적인 접근... 뭐 그런게 애시당초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초중고 12년 내내 재미없는 것만 꾸역꾸역 배우다 지쳐 버렸거든요. 그러니 우리에게 배움이란 곧 트라우마... 이 책의 저자인 타라 웨스트오버의 이야기는 꽤 놀랍습니다. 세상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아버지 때문에 (정확히 말하자면, 저자는 조현병 때문일 거라고 의심합니다) 정규교육은커녕 출생신고조차 되어 있지 않았고, 큰 외상을 입어도 민간요법에나 의지했으며, 극단적인 종교생활을 벗어나지 못했던 저자의 어릴적 이야기는, 이게 불과 20여년 전의 일이 맞나 맞나 싶습니다. 그러..
역사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 인간이란 너무 작은 존재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도 별 대단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늘 분투합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자기 능력껏 해내려고 부단히 애쓰죠. 저는 인간의 위엄이란 바로 그것에서 비롯한다고 믿습니다. 학부 시절에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인생'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게 역사란 우리 개개인의 삶과 무관해 보이는, 어떤 거대하고 도도한 흐름이라고만 생각했거든요. 저는 이 소설과 영화를 통해서 비로소, 역사는 우리 각각의 이야기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제게 역사란 과거에 대한 막연한 낭만[好古主義]이 아니라 각각의 삶을 살아가는 각각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이..
중고등학교 역사 선생님들은 늘,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고 말씀하셨죠. (물론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우리의 공부방식은 전형적인 암기과목의 그것이 됩니다만은...) 사실 암기가 중요한게 아니라 맥락을 이해하고 통찰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뭐, 그런 이야기들 말입니다. 역사 선생님들만 그런가요, 저를 포함한 거개의 역사학 연구자들도 허구헌날 저 이야기만 합니다 ㅎㅎㅎ 그런데 역사를 공부해서 얻는 통찰이라는 것이 꼭 역사를 공부해야만 얻을 수 있는 통찰인가 하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세상 일이라는 것이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것, 복잡한 세상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 생각도 그만큼 섬세해져야 한다는 것, 뭐 그런 통찰은 역사 아닌 다른 학문에서도 비슷하게 이야기..
이 책은 크게 두 개의 질문으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첫 번째는 '왜 우리는 전두환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고도 33년동안 그를 제대로 단죄하지 못했는가'이고, 두 번째는 '전두환은 과연 어떤 인간인가' 하는 것이죠. 가만가만 따져보면 두 질문 모두 저의 평소 관점과 어긋납니다. 첫 번째부터 볼까요. 다른 모든 과거사 문제와 마찬가지로, 전두환에 대한 법적·제도적 단죄는 그저 최소한의 조건일 뿐 그것만으로 과거사에 대한 모든 고민과 논의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전두환을 단죄하는 것만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겠죠. 반대로 그가 죽는 바람에 그를 단죄하지 못했다고 너무 억울해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니 전두환에 대한 단죄 여부를 중심에 놓은 이 책의 첫 번째 질문은 좀 마뜩잖은 구석이 있죠. ..
기타노 다케시가 "가족이란 아무도 보지 않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했다죠.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가족에게 품게 되는 애증의 감정을 이만큼 잘 표현한 말도 드문 것 같습니다. 양영희에게도 가족은 그런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특히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그러합니다. 북송(北送)사업으로 아들 셋을 북한에 보낸, 북한 전체주의 체제에 대한 노골적인 찬양을 거두지 못하는 조총련 중견 간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얼마나 컸을까요. 거의 타의에 가깝게 북한으로 가게 된 세 아들이 북한에서 겪어야 했던 신산한 삶과 사랑하는 오빠 셋을 떠나보낸 양영희의 슬픔까지 생각하면,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린 가족에게 닥친 비극이 얼마나 컸는지 저 같은 범인으로서는 좀체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역사 공부가 직업이고 그게 인생의 큰 즐거움 중 하나지만 정작 여행에서 문화재나 박물관을 찾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보다는 (자수(刺繡) 가게나) 서점을 훨씬 더 자주 찾습니다. 몇 년 전에 갔던 프랑스 파리는 제가 가본 도시 중 최악 중 하나였지만,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았던 (자수 가게 '사주(Sajou)'와)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만큼은 꽤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디 파리만 그렇겠습니까. 오래된 도시라면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처럼 이름난 서점 하나 쯤은 있기 마련이고, 『서점 여행자의 노트』는 그런 서점들에 대한 짤막한 책입니다. 이 책에 따르면, 지역을 대표하는 이름난 서점의 공통점은 독자와 방문객의 적극적인 참여입니다. 오래된 서점의 역사성이건 특정한 주제를 다루는 서..
역사 앞에서 우리는 모두 '남겨진 사람들'입니다. 과거는 흘러가고 없지만 현재에 남은 우리는 역사가 남긴 경험과 통찰을 가지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애써야 하기 때문이죠. 『김용균, 김용균들』은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 김용균이 2018년 12월 11일 새벽 컨베이어벨트에서 목숨을 잃은 이후를 살아가는 세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 새벽 김용균을 처음 발견한 동료 노동자 이인구, 금쪽 같은 새끼를 잃은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과 함께 노조활동을 했던 동료 노동자 이태성이 그 주인공입니다. 이 책은 김용균의 죽음이 끼친 영향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그 셋의 이야기를 인터뷰집의 형식으로 담아냈습니다. 사고 이후 날이 거듭되는 동안, 사람들을 만나고 아들의 ..
인공지능은 뭔가 새로운 것이 나올 때마다 화제가 됩니다. 오래 전 딥블루가 카스파로프를 이길 때도, 알파고가 초일류 바둑기사들을 죄다 압살해버릴 때도, 전세계가 난리였죠. 얼마 전에는 ChatGPT와 DeepL이 화제였구요. 인공지능이 매번 화제가 되는 것은 성장속도가 놀랍기 때문입니다. 번역만 해도 지금의 인공지능 번역은 꽤 딱딱한 학술서를 꽤 읽을만한 정도로 번역하는 수준까지 왔습니다. (번역의 미래는 과연...) 인공지능이 성장하는 속도는 제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빠릅니다.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가져다 줄지를 짐작하기는 어렵습니다. 인간의 능력이 한참 확장된 유토피아가 될지 인간이 모두 기계의 노예가 된 디스토피아가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동아시아에서 확인되는 반일(안티재팬) 정서를 들여다 볼 때는 불완전한 탈식민화를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작금의 반일정서는 식민지 체제의 유산이 완전히 와해되지 않은 상태에서 만들어진 것이고, 그 때문에 국가권력에 의해 조장되고 동원된 측면도 있다는 것이죠. 저자는 동아시아 각국의 문화콘텐츠를 통해 불완전하게 해체된 채로 미국에 의해 재편된 식민지 질서를 읽어냅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탈식민화'의 의미를 정확히 밝히지는 않은 탓에 책 전반적으로 이야기가 공허하거나 헛돈다는 느낌이 살짝 들기는 합니다. 하지만 저는 (예전에 『우리 안의 친일』에서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우리가 아직 식민지의 유산에서 온전하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저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