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잡想나부랭이 (78)
Dog君 Blues...
누가 봐도 (심지어 내가 봐도) 고민하거나 상처받을만한 일이 아니고, 머리 속에 떠오르는 별의별 극단적인 생각들도 모두 말 안 되는 것들이며, 시간이 지나면 (길어도 오늘 밤만 넘기면) 자연스레 해결될 일이라는 것을, 그간의 숱한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만은, 내 인생 전체를 부정당한 것 같은 패배감과 좌절감은 횟수가 거듭되어도 여전히 견뎌내기가 어렵다. 잘 포개고 접어서 가슴 속 어디에 억지로 꾹꾹 눌러담는다. 마른 침을 꿀꺽꿀꺽 삼켜서 식도 아래로 눌러내린다. 이 힘든 것을 몇 번이나 더 삼켜 눌러야 할지.
『역사문제연구』 30호(2013년 하반기)에 실렸다. 남들처럼 학술논문 한 편 제대로 싣지 못하고, 짤막한 에세이 정도로 처음 이름을 올렸다. 아, 이건 사실 열라 쪽팔려야 맞는 거다. 일베를 운운하면서 거개의 이야기들이 진영논리로만 빠져드는 것 같아 보였고, 그건 좀 아니다 싶어서 이리저리 글을 좀 써봤다. 사실 지난 여름에 쓴 글인데, 지금 시점에서 보면 좀 거시기한 부분도 없지는 않다만은... 에 뭐 몰라. -------------------------------------------------- 일베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하여 1. 일베를 만난 우리의 자세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만큼이나 빠르게 성장한 인터넷 커뮤니티도 없을 것이다. 2011년 1월 500여 명 정도에 불과했던 일베..
석사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고나서 세상 산다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았다. 남의 돈 먹는 일이라는게 그냥저냥 해서 되는 게 아니라, 머리 빠지고 똥구멍 찢어질 정도로 스트레스 받아줘야 그나마 먹고 살만한 돈이 나오는 것이라는 걸, 나는 석사를 마치고서야 알았다. 이러한 사실은 두 가지 점에서 놀랍다. 앞으로의 내 인생이 계속 이런 식일 거라는 점과,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사는 거였구나 하는 점. 그 때부턴가, 길 가는 사람 하나하나가 그냥 예사롭게 보이지가 않는다. 유모차 끌고 가는 저 아줌마도, 백화점 앞에 쪼그려 앉아 잠시 담배 피는 젊은이도, 아마 다들 그만한 무게를 짊어지고 살고 있겠지. 집에 계신 부모님은 그 엄청난 무게를 짊어지고 여기까지 버텨오셨겠지. 그래서..
1. 석사 끝나고 나서 (박사과정까지 포함해서) 몇 해 동안 내 취향에는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논문 심사를 마치는 날 첫 애플 제품(아이폰4)을 샀고, 그 즈음에 핸드드립커피를 맛 보았으며, 작년부터는 영화와의 접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2. 아이폰은 뭐 그냥 그렇다 치고... 달달한 믹스 커피나 먹을 줄 알았던 내가 커피의 신맛을 발견한 것은 신대륙 발견!...까지는 아니지만 할튼 좀 놀라운 발견 중 하나였다. 남들에 비해 탁월하게 둔한 미각의 소유자라서 그런지 이런 식의 맛 발견은 늘 놀랍다. (사진의 날짜를 확인해보니 그 날은 2010년 11월 23일이었다.) 3-1. 영화에 별 관심이 없는 내가 친구의 조언 한 마디에 어떤 영화평론가의 팬을 자처하게 된 것도 확실히 의외였다. 좀 더 정확히는 ..
[링크] 근로정신대 할머니, 14년만 日 미쓰비시에 승소 지난 신일본제철 판결에서도 그랬는데, 개인청구권을 인정하는 판결이 속속 나오고 있다는 점은 참 고무적인 현상이라 하겠다. 과연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대신하여 행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도 그렇고, 청구권 협상 과정에서 당장의 자본 도입 때문에 애써 생까고 넘어갔던 문제들이 다시 논의의 장으로 나오는 것도 그렇다. 비록 한국법원에서의 판결에 그치고 있어서 쬐까 아쉽기는 하다만은, 박근혜 정권 치하에서 이런 판결이 나온다는 점만으로도 이거 꽤 의미심장한 일이다. 사실 그보다 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정신대와 위안부와 강제징용으로 흘린 피와 땀의 댓가를 누리는 것이 단지 일본 기업만은 아니라는 사실. 예를 들어... 나는 "소리 없이 세상을 ..
오늘 중요한 행사 하나를 마쳤다. 앞으로 1개월 반 정도 보고서를 쓰고 나면 이 프로젝트도 끝이다. 처음에 잠시 돈 벌어볼까 해서 시작한 일인데 벌써 2년을 넘게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꽤 넉넉하게 살 수 있었으니 2년 정도 꽤 재미있게 산 셈이다.(심지어는 방송도 탔다!) 앞으로도 (2017년까지!) 일들이 더 남아있긴 하지만 올해 보고서를 쓰는 것으로 이 일에는 손을 뗄 생각이다. 나는 내 직업이 '공부'라고 생각한다. 공부하는 것이 좋아서 대학원에 갔고, 사람들에게도 "대학원생은 공부하는게 일이죠"하고 말한다. 물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돈 없이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내 정체성은 공부에서 찾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공부의 장점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자기가 성..
"지금 한국 사회에 나타난 극우적 성향에 대한 시민사회의 대응도 이런 성찰적 태도가 필요하다. 일베를 '극우', '네오 나치' 등으로 명명하고, 정치적으로 논박하는 것은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자멸할 만큼 충분히 외설적인 언행에 정색하고 대응하는 것은 오히려 애초에 없던 정치적 지위를 부여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지금 시점에서 일베는 우려할 만한 극우 정치세력이 아니다. 그들은 현재의 정치 체제가 껴안지 못하는 대중의 응축된 불만의 징후일 뿐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들의 주장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일베에 해야 할 것은 정치적 논박이 아니라 질문이다. 일베는 대중 속에 광범위하게 극우적 정서가 확산되고 있는 징후로 볼 수 있는가? 일베를 탄생시킨 사회적 조건 혹은 정치..
기타를 배운다는 것은 정말이지 귀찮고 어렵고 힘들고 지루하고 짜증나는 일이다. 솔직히 말해서 하루에도 몇번씩 기타를 내던지고 싶은 정도다. 1-2-3-4, 1-2-3-4... 기타 제일 처음 치는 날부터 시작하는 크로매틱은 그 얼마나 단조롭고 심심한 연습인가. 게다가 힘들기로 치면 제일 힘들다. 단순한 패턴이지만 굉장한 악력의 소유자가 아니고서는 크로매틱 한번 하고 나면 손바닥 근육의 통증에, 당분간 인상 안 쓰고는 못 배긴다. 도-레-미-파-솔-라-시-도... 간단한 C major 스케일이지만 먼 훗날의 애드립을 위해 이것 역시 어느 정도 숙달시켜놓지 않으면 곤란해진다. 물론 복잡한 스케일까지 알아둘 필요는 없지만, C major 스케일은 스케일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는 해놔야 ..
1. 아버지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휘파람을 불며 골목 끝을 돌아오는 퇴근길 모습이다. 아버지에게 내가 뛰어 갔는지, 그런 나를 아버지가 나를 안아주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고, 그냥 휘파람을 불며 골목 끝을 돌아오던 그 모습, 그 짧은 장면만 기억 난다. 2-1. 중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딱히 사춘기도 아니었고, 특별히 잘 하는 것도 없으며, 지금 와서 암만 생각해봐도 재미있는 추억 하나 없는 중학교 생활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니 어쩐 일로 아버지가 집 소파에 앉아 전화를 받고 계셨다. 전화통을 붙들고 하는 말이라고는 그저 "예... 예..." 뿐이었다. 어머니는 말 없이 굳은 얼굴로 옆에 앉아 계셨다. 2-2.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방에 들어갔다. 아마도 컴퓨터를 켜고 게임을 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