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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君 Blues...
대통령 선거가 끝나니까 페북에 '좌좀', '수꼴' 같은 단어 쓰면서 그간 페북에서 선거 이야기, 정치 이야기 했던 것들 비판하고, 어쨌거나 이제 대통령은 뽑힌 거니까 그녀가 대통령직 잘 할 수 있도록 믿어보자... 그런 얘기가 많더라. 맞는 말 같지만 난 그런 말이 정말 위험하다고 생각해. 훈계하는 듯한 말투와 원색적인 단어를 쓰니까 참 쿨해보이기는 하지만 그거야말로 허튼 소리야. 이쪽도 틀렸고 저쪽도 틀렸다는 식의 양비론, 이제 선거는 끝났으니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서 결과에 승복하고 잠자코 있으라는 이야기들... 웃기지 마. 그렇게 무심코 받아들이는 무관심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이야. 개혁적인 정치가는 무관심 때문에 좌절하고, 사악한 정치가는 무관심 덕분에 독재를 행하지. 선거는 비슷비슷한 두 ..
역대급 성군(聖君)이라는 세종이나 정조가 2012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다면 어땠을까. 세종은 무려 6명의 여인이 연루된 섹스스캔들을 일으켜(자식은 18남 4녀!) 빌 클린턴을 능가하는 여성편력을 과시하며 당장에 탄핵 당했을 것이다. 정조는 자기 아버지의 무덤을 명당자리로 옮겨야겠다며 멀쩡한 도시 하나를 없애버리는, 완전 미친 대통령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세종과 정조가 성군인 것은 15세기와 18세기 조선이라는 특정한 시기와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죽은 지 벌써 30년도 넘게 지난 박정희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대선의 주요 이슈가 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박정희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어떠하든 간에 그것은 1960년대와 70년대의 가치이지 2012년 대한민국의 리더십을 평가하..
난 말야... 고민 같은건 스무살 즈음에나 하는 건줄 알았어. 사실 그 때는 무슨 고민이 그렇게 많았나 모르겠어. 왜 그런거 있잖아. '대학에 와보니 인간관계가 고등학교 때랑 다르네요', '그 여자애/남자애를 좋아하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같은 거 말야. 지금 생각하면 좀 유치하고 웃기긴 하지만, 그 때는 그 나름대로 되게 진지했던 그런거. 그래서 그 때는 어서 빨리 그런 고민 같은거 안 할 수 있는 당당함이나 뚜렷한 주관 같은게 생기길 원했던 거 같아. 그냥 막연하게 말야. 선배들은 그런 걸로 고민 안 하는 것처럼 보였거든. 그런데 나이를 조금 더 먹고 대학교 고학년이 되어도 그걸 그대로 비슷하게 하고 있길래 좀 놀랐어. 물론 고민의 내용이야 변했지만... 여전히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안 변했..
배치arrangement: 우리가 '아 오늘은 좀 덥네'라고 느낀다면 아마도 대부분은 오늘의 기온에서 그 원인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는 실제 우리의 인식은 '더위->기온'의 순서였음에도 불구하고 '기온->더위'라는 식으로 인과를 설정한다. 물론 이는 우리의 (경험적으로 누적된) 자연과학적 지식에 의해 타당한 인과관계로 확인되었기에 '진리'로 인식된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타당한 진리 혹은 인과관계라고 인식하고 각각의 요소들을 인위적으로 배열하는 것을 '배치'라고 정리할 수 있겠지. 중층결정overdetermination: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기온'이 반드시 '더위'의 원인은 아닐 수 있다. 내가 지금 느끼는 더위는 밀폐된 방 안에 에어컨을 시원찮게 틀었다거나, 방금 열라 뜨거운 곰탕을 완샷!했다거나,..
맹자 양혜왕 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則無恒産, 因無恒心.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도 없다. 맹자 같이 대단한 사람도 결국 먹고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함을 이야기했다.그렇지, 그거 중요한 문제지. 그래서인지 여기저기서 인용도 많이 되는 구절이다.그런데 그 바로 앞에 이런 구절이 있다. 無恒産而有恒心者, 惟士爲能.항산(恒産)이 없어도 항심(恒心)을 가지는 것, 오직 선비만이 그러할 수 있다. (페이스북, 2011년 11월 24일)
역사학도/역사학자는 왜 대중이 공감하고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쓰지 못/안 하냐는 타박을 듣곤 한다. 몇 사람 읽지도 않을 어려운 글이나 써제끼고 있으니까 사람들에게 외면 받는 거 아니냐고. 현학적인 문장과 난해한 개념으로 꽉 찬 글이나 쓰면서 학자연하고나 있으니까 상아탑에 고립되는 건 당연하다고. 이게 동전의 앞면이라면, 같은 동전의 뒷면에는 유사역사학(이덕일...)의 해악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글들이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긍정할만하지 않냐는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이덕일 류의 역사글이 왜 나쁜지는 알겠지만, 그래도 그 덕에 더 많은 사람들이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니 결과적으로는 파이가 커져서 좋은 거 아니냐고. 그런데, 쉽고 편한 게, 반드시 가장 좋은 것은 아닙니다. 머리 아프..
고등학교에 들어가니, 반 배정이 좀 특이했다. 행정상으로는 국민학교나 중학교 때처럼 그냥그냥 배정을 했는데, 정작 수업을 할 때는 성적순으로 반을 나눴다. 그래서 등교는 '수업반'으로 했다가, 수업 마치고 야자시간에는 '행정반'으로 이동하고 그랬다. 전부 11개 반이었는데 수업반은 11반, 행정반은 1반이어서 수업 끝날 때마다 복도 끝에서 끝으로 책가방에 실내화가방에 바리바리 싸들고 가느라 보부상 차림을 해서 매일 같이 진땀을 뺐다. 11반 담임 선생님은 28살의 초임 지구과학 선생님이었는데 (지금 나보다 젊다;;;) 열정과 체력이 넘쳐서 그랬는지 수업도 활기가 넘쳤고, 유머도 잘 쳐서 인기가 높았다. 때리기도 엄청 잘 때렸는데, 딱히 감정적으로 때린다는 느낌도 없었거니와 인기도 좋아서, 아이들도 모두 ..
5개월 정도 과천과 수원을 아침저녁으로 오간 결과 찾아낸 가장 효율적인 내 출근 시간표는 이렇다. 7시 20~25분에 집에서 나와서, 10분 정도 걸어서 7시 35분에 7002번 버스 탑승. (35분마다 오는 버스라서 놓치면 좆됨큰일남.) 8시 15~20분 경에 하차. 다시 15~20분 정도 걸어서 일터 도착. 이 중에서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시간이 버스에서 내려서 걸어가는 15분 남짓 되는 시간이다. 일터 도착 직전이라서 이 때 정신 셋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하루의 컨디션이 좌우되는 것 같다. 원체 중요한 시간이다보니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나오는 음악조차 상당히 중요해서, 이장혁의 '아우슈비츠 오케스트라'라든지 새드 레전드의 '슬픈 곡성이 들리는 밤' 같은 노래가 나오면 빨리 다음 곡으로 넘..
페이스북에 처음 가입하자마자, 혹시 이 분 모르시냐고 친구 추천을 막 하기 시작했다. 개인정보 입력한 것도 없는데 어떻게 내 친구와 동료와 교수님(;;;)이 뜨는지 엄청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알고보니 메일 연락처에 접근했다더구만. 사용자 허가도 없이 말야.)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뭐 어쨌건 그런 확장성, 개방성 등등을 기반으로 해서 페이스북은 지구상에서 제일 잘 나가는 웹사이트 중 하나가 됐다. 그 잘나가는 페이스북도 1등을 못 하는 나라가 간혹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MS워드 대신 한글 쓰는 것처럼, 러시아에서는 브이콘탁테(Vkontakte, 줄여서 VK라고 더 많이 부른단다)라는 게 1등이란다. 한 때 이찬진이나 안철수가 젊은이들의 아이콘이 되었던 것처럼, 이 사이트에도 그런 신화가 ..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꽤 어려운 일이다. 뭐 그냥 읽기만 하는 일이라면 별로 안 어렵겠지만, '독서'라는 말의 의미를 어떤 책의 시종始終을 일관하는 하나의 고갱이를 끄집어내는 동시에 그 곁가지까지 완전히 장악하고 그걸 다시 자기의 세계관으로 녹여내는 과정을 전부 지칭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한다면, 그건 꽤 어려운 일이다. 특히 전문분야를 다룬 책이면 더 그렇다. 어떤 사람이 '독서근육'이라는 말을 썼던 것처럼, 여기에는 재능이 개입할 여지가 적다. 살다보면 (또래에 비해) 독서를 참 잘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물론 타고난 재능의 영향이 완전 0은 아니겠지만서도, 그런 사람을 보면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책도 열심히 읽고 생각도 많이 하고 메모도 많이 끄적이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