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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繡나부랭이

십자수 단상 3

Dog君 2021. 5. 22. 23:40

 

  윤오영의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은 얼핏 성질 급한 아재와 마음 느긋한 늙은 장인(匠人)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 서사룰 완결짓는 것은 저자의 부인이다.

 

  "집에 와서 방망이를 내놨더니 아내는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배가 너무 부르면 옷감을 다듬다가 치기를 잘 하고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배가 너무 안 부르면 다듬잇살이 펴지지 않고 손에 헤먹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저자의 부인이 그러한 것처럼, 눈으로 봐서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그걸 직접 손으로 만지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직접 무엇인가를 해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그 어떤 차이와 느낌이라는게 있다.

 

  나에게도 그런 것이 있는데, 바로 십자수 실을 감을 때 쓰는 실패(보빈).

 

  실끝을 거는 홈의 간격이라거나 실이 감길 때의 느낌이라거나 머 암튼 말로 설명하기 힘든, 십자수 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그 어떤 감각이 있다. 내가 특히 그 감각에 민감한 편인데, 그러다보니 그 기준을 충족하는 실패만 계속 찾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실패라는 게 기껏해야 몇십원 밖에 안 하는 물건이라 따로 메이커가 있을리도 없고 따로 어떤 규격으로 주문할 수도 없다는 거다. 노인에게 사과하기 위해 전의 그 자리로 갔지만 다시는 그 노인을 찾을 수 없었을 때의 윤오영과 같은 상황이랄까. 십자수 가게에 가서 실패를 한참이나 들여다보면서 "이건 제가 찾는게 아니네요"라는 식으로 까탈스럽게 구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기껏해야 개당 2~30원 밖에 안 하는 실패를 두고 무슨 인간문화재처럼 굴고 자빠져 있어서야...

 

  그래서 내 마음에 쏙 드는 실패를 찾는 건 순전히 운에 달린 일이 되곤 하고, 그걸 찾는 일은 언제나 반지원정대를 방불케 하는 여정이 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가까운 거리의 십자수가게를 몇 군데 찾아보고 온라인 쇼핑몰까지 돌아다녔지만 원하는 실패는 찾지 못했다. 눈으로만 봐서는 알 수 없고 직접 사서 손으로 만져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보니 내 책상에는 마음에 안 드는 실패들만 잔뜩 쌓여갔다. 내가 그렇게 실패를 거듭하는 것과 함께 책상 위에 실패도 거듭 쌓여갔다. 그리고 그런 실패가 400개 정도 쌓인 후에야 나는 비로소 체념을 하고 말았다. 20원짜리 실패를 사겠다고 20,000원씩 쓰는 건 가성비가 너무 떨어지는 일이니까.

 

  그렇게 실패를 찾는 내 여정은 결국 실패했고, 예전에 출입하던 수원의 가게에서 산 실패에 적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쩐지 마감도 마음에 안들고 손맛도 예전같지 않지만 머 우짜겠노. 시기를 한참이나 지난 철지난 유행을 붙들고 사는 내가 문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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