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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君 Blues...
어느 유명한 소설가가 사회적으로는 시대의 스승처럼 대우받았지만 정작 가족에게는 걸핏하면 폭력을 휘둘렀다는 이야기라든지 또다른 유명 소설가는 제 손으로 밥상 차릴 줄도 몰라서 평생 아내의 가사노동에 의존하며 살았다는 이야기,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한국만 그렇지도 않은지 독립적이고 목가적인 삶을 찬미했던 미국의 어떤 작가도 실제로는 대부분의 가사노동을 어머니가 다 해줬다고 하지요. 이처럼 사회적으로 명성이 높은 인물이 알고 보니 실제 행동은 전혀 일치하지 않더라는 이야기는, 하도 많이 들어서 그런지 이제는 딱히 새삼스럽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무덤덤함을 가지고 봐도 조지 오웰과 그의 아내 아일린 오쇼네시의 이야기는 놀랍습니다. 그저 위선적이라고 이야기하고 넘어가기에는 조지 오웰의 행적이 너무나도 기..
'좋은 역사책 한 권만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는 편입니다. 대체로 역사책에 이제 조금씩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시는 분들이 이런 부탁을 하시죠. 그럴 때마다 저는 한결같이 '한 권만 읽을 생각은 하시지 말고, 여러 권 읽을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다'고 말씀드립니다. 역사라는 거대한 세계를 책 한 권으로 이해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책 한 권만 읽었을 때의 위험성도 적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최근 들어서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질문을 하시는 분이 그걸 몰라서 저한테 그렇게 묻지는 않으셨을 거잖습니까. 그러니까 아마도 그 질문은, '어떤 책으로 시작하는게 좋을까요'라는 의미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책은 다른 분야에 비해 진입장벽이 비교적 높기 때문에, 어떤 책으..
'격차'라는 직관적인 제목에서 이미 지구적 불평등을 정조준하겠다는 의도를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사실 지구적 불평등을 체감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질병과 기아에 시달리는 비서구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이들을 돕기 위한 기부를 호소하는 광고를 TV와 유튜브 등을 통해 쉽게 접하기 때문입니다. 즉각적인 비극 앞에서 발현되는 선의를 비하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것이 진짜 해법인지는 차분히 따져볼 문제입니다. 수십년동안 〈We are the world〉를 불렀지만 질병과 빈곤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으니까요. 이에 대해 『격차』는 서구 선진국이 비서구 후진국의 부와 자원을 수탈하는 구조가 엄존하는 한 불평등은 결코 해소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서구의 원조보다 훨씬 더 큰 액수가..
대학에서 강의를 합니다. (곧 개강 ㅠㅠ) 늘 첫 시간에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대학에서 하는 공부'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역사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분야가 다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2차 대전 시기 세계적으로 팽배했던 불가해한 광기는 여전히 탐구할 부분이 많습니다. 수많은 연구자들이 저 나름의 방식으로 이 시기를 설명하려고 애썼고, 저 역시도 틈날 때마다 이에 대해 말씀을 드렸지요. 얼핏 생각하면 일본이 전쟁의 광기에 휩싸이는 것은 결코 필연이 아니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근대화에 성공했고, 이에 따라 서양의 합리주의와 계몽주의적 세계관에도 가장 친연성이 강했습니다. 다이쇼 데모크라시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자각도 결코 늦지 않았구요. ..
역사학의 이야기들이 양극단으로 나뉜 정치적 구도로 빨려 들어가는 것에 대한 비판은 이제는 별달리 새롭지 않긴 합니다. (저만 해도 틈만 나면 했던 이야기...) 사회적으로는 민주주의의 원칙에 위배되기도 하지만 역사학이라는 학문의 관점에서 보면 학문적 성취를 퇴행시킨다는 점을 짚어야 합니다. 일전에 『진보를 위한 역사』를 이야기하면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역사학자들이 수십 년간 묵묵히 연구성과를 쌓아올리면 뭐하나요, 마이크 큰 사람들이 여전히 『해전사』와 『다현사』 붙들고 싸우고 있으면 다 말짱도루묵 아입니까. (물론 그럼에도 가장 분발해야 하는 것은 역사학자들이겠지요 ㅠㅠ) 다시 한번 강하게 말씀드립니다. 좋은 역사책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 사회의 일부에서는 여전히 2..
10년쯤 전의 일입니다. 어느 학술대회에서 권위 있는 독립운동사 연구자께서 '이제 조선망국사朝鮮亡國史를 쓸 때가 되었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광복이 되고 벌써 70년이 넘었으니, 이제는 망국의 역사를 차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여유와 거리감이 충분히 확보되었다는 취지였죠. 그 당시 저는 그게 말처럼 쉽겠는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조선이 어떻게 망했는지를 알아보자'에서 소박하게 시작했다가 '망할만하니까 망했다'를 거쳐 '이러니까 식민지가 되는게 마땅하다'로까지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플로우 때문이었죠. '뉴라이트' 사관이 거의 항상 식민지미화론으로 빠져드는 것이 바로 이런 플로우 덕분이고, 이는 또한 격렬한 이분법적 정치구도로 빨려들어가기 십상입니다. 이런 상황을 아는 제게 망국의 역사를 차분히 돌..
사실 흑해는 한국인에게 그다지 친숙한 지명은 아닙니다. 크림 전쟁이나 러시아 흑해 함대의 수병 반란 정도를 제외하면 역사 시간에 중요하게 배웠던 것 같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서로는 동유럽, 북으로는 우크라이나, 동으로는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각국, 남으로는 튀르키예와 면한 흑해는 서구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작지 않습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관문 역할을 하며 동서교역의 요충이었고, 특히 근대 이후로는 지정학적 중요성이 새삼 부각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때문인지 흑해는 상반된 두 세력(혹은 정체성)이 충돌하는 불연속적 접경의 이미지로 대표되곤 합니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접경이자 유럽과 아시아의 접경, 뭐 이런 식이죠. 흑해 일대의 수천 년 역사를 살핀 찰스 킹의 『흑해』는 이러한 관념에서 벗어..
이번 호에서는 같은 서평을 연달아 두 번 읽었습니다. 여지껏 없던 일입니다. 벌써 몇 년 전에 읽고 다시 열어보지도 않았던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에 대한 김선경의 서평이었습니다. 평소에 관심이 가는 주제도 아니고, 제가 잘 알아서 몇 마디 보태고 싶은 분야도 아닌 책의 서평을, 거듭해서 읽은 것은 아마 저의 개인적인 경험과 관련이 있을 겁니다. 개인적인 어려움 때문에 심리상담을 꽤 오래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가장 많이 이야기했던 주제는 제 마음 속의 '엄격한 규칙'이었습니다. 너무 엄격하고 도덕적인 원칙과 규범을 제 마음 속에 세운 다음 거기에 저 스스로와 타인을 강박적으로 꿰어 맞추느라 심리적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모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거였죠. 물론 오랜 상담 덕분에 지금은 그런 강..
기존의 많은 역사서에서 역사가들은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강조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진보적 지식인이 바라보는 표상으로서의 '민중'이 역사 서술의 중심에 등장할 뿐, 이에 반하는 민중의 역사성은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이 책도 예외는 아니다. 민중은 희생자이거나 저항자일 때만 호명되거나 주체화될 뿐이다. 이 문제는 역사가의 시선 문제일 수도 있지만, '민주주의'가 민중에 의해 전유되기보다는 지식인에 의해 전유되어 온 '민주주의'의 역사성과도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이 책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모두의 민주주의 시대' 혹은 '시민사회가 일군 민주주의'라는 최종 서사는, 저자의 의도와 다르게 민주주의의 경계짓기와 배제의 논리를 은폐시킬 위험을 내포한다. 민주주의가 역사적 으로 포함과 배제의 운동..
눈길이 가는대로 고개를 끄덕여가며 논문을 읽어가다가 아래 부분에서 잠깐 책장을 멈췄습니다. 미국의 주류담론에 대한 저항의 아이콘이었던 무하마드 알리 역시 말년에 이르러 결국에는 기성 체제에 포섭되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미국의 인종주의적 차별과 편견을 은폐하고 미국의 국민주의에 기여하게 되었다는 내용인데요, 이 부분이 제가 평소부터 갖고 있던 어떤 문제의식을 자극했기 때문입니다. 논문의 전체적인 논지에 적극 공감하면서도, 글쎄요, 결론에서 제시한 이런 식의 비판은 너무 근본주의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이 논문처럼 기성 체제와 무하마드 알리의 '화해'를 '기성 체제로의 포섭'으로 볼 수도 있지만 또한 기성 체제가 그 저항 담론이 기성 체제를 변화시켰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물이 펄펄 끓어넘치지 않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