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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君 Blues...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는 후배가 찾아오면 사학과 대학원생은 누구나 다 대학원 진학을 만류한다. 왜 그런지는 (매우 익숙한) 아래의 짤로 대신하고...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하는 이들이란 이미 대학원 진학을 마음 속으로 결정한 후에 마음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선배들에게 질문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그런 고민을 털어놨다는 것 자체가 이미 고민이 끝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말려도 올 놈은 오더라...'라는 것이 이 동네 격언이지.) 그래서 나는 그런 고민을 들으면, 그냥 대학원 가라고 한다. 내가 말린다고 안 올 놈이 아니니까. 대신 '앞으로 네가 공부를 그만둘 때까지, 네가 공부를 계속하게 만드는 힘보다는 너로 하여금 공부를 그만두게 만드는 힘이 훨씬 더 클거다. 미리 각오해라. 그걸 이겨내려면..

박사학위논문이 끝났다. 학교 도서관에는 진작 납본을 마쳤으니 아마 지금쯤이면 중앙도서관 같은 곳에도 갔을 거고, 주변 분들께 드릴 인쇄본까지 찾아왔다. 이제는 빼박이다. 활자화되어 내 이름 달린 논문이 이미 세상에 나와버린 것이다. 날짜 맞춰 졸업증만 받으면 서류상으로도 다 끝난다. 여기까지 온 느낌은, ‘잘 모르겠다’가 절반, ‘부끄럽다’가 나머지 절반인 것 같다. 뭐가 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고, 실감도 안 난다. 이걸 쓴 이후에도 나는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니까. 박사 타이틀 달았다고 해서 뭐가 대단히 달라지지도 아닐 것이다. 나는 여전히 서투르고, 확신 없는 놈이다. 논문 한 편으로 세상을 다 뒤집어버릴 거라는 근거없는 자신감도 진작에 없어진지 오래고. 무엇보다, 부끄럽다. 지도교수님과 심사위원..
어디 다른 곳에도 썼던 것을 그대로 옮겨온다. (어차피 이 블로그야 지극히 사적인 아카이브 정도 의미니까…) 그래서 말투가 좀 이상하긴 하다. 여기에 쓰지는 않았지만 발의에 참여한 12명의 면면도 살짝 실망스럽다. 대부분이 70년대 후반~80년대생으로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는데 그들이 힘을 모아 발의한 것이 이런 거라니… 그것도 그것대로 또 실망이다. ——— 민주당 김용민 의원 등 12명이 발의한 '역사왜곡방지법안'에 대한 제 생각을 좀 길게 써볼까 합니다. 이 법안에 대해 한국역사연구회 등 역사학 관련 단체 명의로 비판 성명이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성명문이 그다지 길지 않은 탓에 성명문의 바탕에 깔린 생각까지 사람들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좀 길게 부연설명을 해볼까 합니다...
이처럼 3·1운동 해석에서 '민주주의'의 강조는 2019년의 한국 사회가 무엇보다도 천착하고 있는 가치를 3·1운동을 자리매김하는 데 활용되었던 강조점으로 '민족'이나 '민중'이 있었고, 이는 당대의 연구자들을 포함한 당시의 사회가 강조했던 가치와 무관하지 않았다. 지금 3·1운동을 역사 속에 고정시키는 개념, 중심을 찾는 무게추는 '민주'인 것일까? (...) 3·1운동에서 민주적 가치를 강조하는 것은 오늘의 시민사회와 학술장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그런데 '민주주의'란 늘 현재진행형의 문제이며, 어떤 민주주의를 만들어 나갈 것인가는 지금 한국 사회가 치열하게 논쟁 중인 문제이기도 하다. (...) 이러한 '현재라는 시선'은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가? 다시금 1919년으로 돌아가보자. 정말로 3·1운..
"조선시대의 역사 속에서 특정한 사상, 특히 성리학을 조선시대 역사의 많은 현상을 일으킨 원인으로 파악하려는 시각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적절한 역사적 설명이라고 하기 어렵다. 첫째, 성리학은 그것이 조선왕조의 체제교학이었던 만큼 어떤 역사 현상과도 연결될 수 있는 공통 조건이다. 따라서 어떤 역사 현상이 성리학으로 인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공기에 산소가 포함되었기 때문에 화재가 발생하였다는 설명과 같이 사실상 쓸모없는 말이다. 둘째, 성리학은 그것이 조선시대의 모든 역사 현상과 연결될 수 있는 공통 조건이기 때문에, 시대와 지역과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 수많은 다른 요소들과 얽히면서 다양한 양상으로 복잡하게 인과의 연쇄적 고리를 형성했다. 따라서 각 상황마다 성리학이 차지하는 비중과 모습과 역할은..

TNA, ADM 116/6404. 문서를 뒤적이다보면 뜬금없이 사진 같은 것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아무 단서도 없이 그냥 사진 한 장만 툭-하고. 이 두 장의 사진은 육하원칙을 전혀 만족시키지 못한다. 찍은 날짜도 장소도 없이 'Korean E.N.S.A.(한국인 위문단)'라는 짤막한 설명이 전부다. 함께 첨부된 다른 자료를 통해 한국전쟁 당시 서해안에서 배치되었던 영국 해군 소속 어느 함상이라는 것 정도만을 추측할 수 있다. 이국의 병사들이 둘러싼 가운데서 노래를 부르는 저 사람, 그리고 우스꽝스런 분장을 하고 춤을 추는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내 나라를 도와주러 멀리서 온 병사들의 사기 진작에 이바지한다는 사명감에 여기까지 온 걸까, 혹은 이국의 남성들의 던지는 묘한 눈길에 부끄러움..

언제더라, 무한도전에서 역사를 소재로 한 방송을 내보낸 적이 있다. (내가 무한도전을 끊은 것이 아마 그때였을기야...) 무한도전이 원체 유명한 예능이었던 덕에 거기에 나왔던 설민석, 최태성 등도 덩달아 유명세를 탔다. 안그래도 자기 분야에서는 톱이었지만 무한도전 출연으로 기름을 끼얹은마냥 지명도가 올라갔던 걸로 기억한다. 그 기세로 설민석은 2014년에 『무도 한국사 특강』이라는 책을 냈고 어마어마하게 팔렸다. 읽어본 사람들 말로는 내용도 썩 나쁘지 않다고 한다. 서사를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니 전달력이 좋고, 그러면서 여러 이론異論들도 비교적 충실히 소개한 편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은 2017년 11월에 개정판을 낸다. (지금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2019년 개정판이 뜨는데, 실제 개정판은 2017년..
https://youtu.be/d-wSu8FQG0c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복원'의 뜻은 '원래대로 회복함'이다. 그러니 '위안부' 영상을 컬러로 복원한다는 이 기사의 표현은 일단 틀렸다. 이 영상은 본래 흑백이었으니까. (물론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 내가 NARA 자료를 전부 다 본 것도 아니고...) 단어 선택이 쬐까 거시기한 것도 있지만 진짜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걸 한 이유다. 이 기사에서 말하고 있는 영상을 몇 달 전에 보고 뭔가 좀 어색하다는 생각을 했다. ‘위안부’를 담은 영상기록이라는 점에서 너무너무 소중한 사료이긴 했지만 영상에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병사가 주저앉은 여성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는 듯한 모습이나 여성의 팔을 굳이 일부러 들어올..

진주의 근현대사를 말할 때, 강달영은 다소 덜 조명받는 듯한 느낌이 있다. 아직도 보수색이 강한 지역 분위기상 대놓고 좌파인 그를 부각하기가 어려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강달영은 식민지기 진주에서 전개된 사회운동이 얼마나 다양한 가능성을 품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는 점에서 좀 더 고평가될 여지가 있지 않나 싶다. 식민지기 진주의 젊은 지식인들이 운동의 전면에 조직적으로 등장하게 된 계기는 3.1운동이었다. 강달영과 함께 진주의 만세운동을 조직했던 강상호, 김재화 등은 이후 형평운동의 주도세력으로 거의 고스란히 이어진다. 이후 형평운동은 '급진파'와 '온건파'로 나뉘었고, 합법의 틀 안에서 머무르고자 했던 강상호 등과 달리 강달영은 '대놓고 좌파'의 길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 다음은 우리가 ..
중국 당나라의 작가 심기제沈旣濟가 지은 『침중기枕中記』에 나오는 이야기다. 여옹呂翁이라는 도사가 한단邯鄲의 한 주막에서 노생盧生이라는 젊은이를 만났다고 한다. 여행길에서는 누구나 마음(과 입)이 열리는 법이라서 그런가, 처음 만난 사이에 나이 차이도 꽤 났지만 노생과 여옹은 곧바로 속내를 털어놓으며 이야기를 나눴던 모양이다. (모르긴 몰라도 여옹의 옹翁과 노생의 생生이 반드시 이름은 아닐 것이다.) 노생은 야심만만한 젊은이였지만 타고난 가난 때문에 좀처럼 출세의 기회를 잡지 못했던 사람이었나보다. 천하가 난세였으면 또 모를까, 『침중기枕中記』가 쓰여진 당나라 중기처럼 평화로운 시대에 그런 기회가 흔할리가 없지. 그렇게 신세한탄을 한참이나 늘어놓았다고 한다. 한참 수다를 떨고, 대충 화젯거리가 떨어질 때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