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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낯섦 (오르한 파묵, 민음사, 201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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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낯섦 (오르한 파묵, 민음사, 2017.)

Dog君 2025. 5. 2. 08:13

 

  요즘 한창 보고 있는 '폭싹 속았수다'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여러 세대에 걸쳐 반복되면서도 조금씩 달라지는 사회적 관습과 경험, 그러면서도 끈끈하게 유지되는 세대 간의 애정과 유대, 그리고 이러한 관계들이 젠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또 그런 면에서는 얼마 전에 읽었던 『전쟁 같은 맛』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 메블루트는 내려서 트럭 뒤쪽으로 걸어갔다. 그가 뒷문을 닫을 때 번개가 치면서 하늘, 산, 바위, 나무, 사방이 먼 기억처럼 밝아졌다. 메블루트는 평생을 함께 보낼 아내의 얼굴을 처음으로 가까이 보았다.
  그는 평생 동안 그 순간을, 그 낯선 감정을 자주 떠올릴 것이었다. (22쪽.)

 

  (...) 중매 결혼에서 어려운 점은 여자가 전혀 알지 못하는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사랑해야 하는 것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사실 전혀 모르는 남자와 결혼하는 편이 더 쉬울 것 같다. 알면 알수록 남자들을 살아하기는 더욱더 힘들어지니까 말이다. (278쪽.)

 

  나는 메블루트에게 종교적 의미가 담긴 이름들이 쓰인 책을 주면서 말했다. "지난번에 모든 남자 이름을 훑어봤는데 결국 딸이 태어났어. 이번에 모든 여자 이름을 일일이 검토하면 혹시 아들이 태어날지도 몰라. 신의 뜻이 담긴 여자 이름이 있는지도 좀 봐!" 메블루트는 "신의 의미가 담긴 여자 이름은 있을 수 없어!"라고 했다. 그 책에 의하면 여자들은 예언자 무함마드 부인들의 이름을 사용하는 게 최선이었다. (...) (293쪽.)

 

  메블루트는 이십 년 동안 이스탄불에서 지냈다. 새로운 길, 철거, 건물, 거대한 광고판, 상점, 지하도, 육교 들의 등장과 함께 도시에서 그동안 알고 익숙해진 옛 얼굴들이 사라지는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도시에서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가 만들어진다는 느낌이 들어 기쁘기도 했다. 메블루트는 도시가 자기보다 먼저 만들어졌고, 자신이 외부로부터 들어왔다고 보지 않았다. 자신이 그 안에 사는 동안 이스탄불이 만들어졌으며, 미래에는 더 아름답고 깨끗하고 현대적인 장소가 될 거라고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메블루트는 자신이 시골에 있을 때, 혹은 아직 태어나기 전에 만들어진 반세기가 지난 엘리베이터, 라디에이터, 높은 천장이 있는 오래된 건물에 사는 사람들을 좋아했고, 그 사람들이 더 잘 대해 주었다는 것을 절대 잊지 않았다. 하지만 이스탄불의 오래된 건물에서도 자신이 여전히 도시의 이방인임을 상기했다. 오래된 아파트의 경비들이 고의는 아니라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무시하듯이 대했기 때문에 그 아파트들에서 무언가 잘못할까 봐 두려워했다. 한편 오래된 것들을 좋아했다. 변두리 마을에서 보자를 팔 때 발견한 묘지들의 분위기, 이끼 낀 사원 담벼락, 오래전에 말라 버린 부서진 우물 위에 새겨진 이해할 수 없는 오스만어 글씨들이 마음에 들었다. (358~359쪽.)

 

  "어차피 나는 페브지예 같은 딸은 둔 적 없어!" 하고 메블루트는 잘라 말했다. 하지만 이내 후회했다. 쉴레이만이 아직 가기도 전에 도망친 딸을 가진 아버지가 느끼는 속수무책의 감정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만약 딸을 용서하지 않고 사위를(운전사라고? 그런 사위가 생길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좋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딸이 결혼도 하기 전에 도망쳐서 남자와 살았다는 소문이 퍼질 테고 메블루트의 명예는 얼룩지고만다. 그렇다고 아름다운 딸을 납치해 간 무책임한 도둑놈을 즉시 용서하면 이번에는 모든 사람들이 메블루트가 이 일에 관여했거나 딸의 결혼을 허락하는 대신 그 대가로 꽤 많은 돈을 받았다고 생각할 터였다. 메블루트는 자기 아버지처럼 외롭고 성미 고약한 사람으로 살기 싫으면 한시라도 빨리 두 번째 방법을 택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548쪽.)

 

교정. 1판 2쇄

491쪽 12줄 : 학인했다 -> 확인했다

537쪽 9줄 : 보즈쿠르트와 투란과 또 싸움이 났다 -> 보즈쿠르트와 투란은 또 싸움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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