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가난한 찰리의 연감 (찰리 멍거, 김영사, 2024.) 본문

찰리 멍거는 워렌 버핏과 함께 세계 최고의 투자자 중 하나로 자주 거론되는 인물입니다. 『가난한 찰리의 연감』은 그가 남긴 원고와 강연록을 모은 책입니다. 작년 말에 출간되었으니 그의 명성에 비하면 한국어판의 출간은 꽤 늦은 편입니다. 생전의 그는 영어와 중국어 이외의 번역본은 허락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 때문에 한국어 독자는 이제서야 이 책을 만나게 됐습니다.
주식이니 투자니 하는 건 거의 까막눈에 가까운 제가 이 책에 대해 감상을 늘어놓는 것이 적절한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 책의 내용을 한국에서의 주식 투자에 곧장 적용하기는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컨대 그는 대부분의 자산을 우량한 소수의 주식에 집중투자하라고 하는데요(233~234쪽), 이는 분산투자를 강조하는 일반적인 투자상식과 충돌하지요. '적당한 주식(기업)을 좋은(싼) 가격에 사는 것보다 좋은 주식을 적당한 가격에 사는 것'이 중요하다거나 장기투자를 강조하는 투자원칙 역시 해외시장과 오너 리스크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변동성이 심한 한국 주식시장의 특성을 감안할 때 얼마나 실용적인 원칙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그가 제시한 투자원칙은 그냥 '착하게 살자'는 정도의 의미인가 싶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의 투자방식은 이러한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투자기법 속에 들어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학, 역사학, 심리학 등의 성과를 폭넓게 아우르면서도 경영학과 경제학의 복잡한 데이터로 표현되는 그런 것들 말이죠. 그런 구체적이고 복잡한 방식은 저 같은 문외한은 감이 이해할 엄두도 못 내는 것들이겠구요.
하지만 그런 것들을 제외하고 난 나머지 통찰들에 대해서는 밑줄을 그어둘 부분이 종종 보입니다. 한 가지 학문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걸쳐 지식을 쌓고 호기심을 유지하라는 조언이나 ("망치를 가진 사람에게는 모든 문제가 못처럼 보인다") 과도한 자기확신과 극단적인 정치이데올로기를 멀리하라는 조언은 투자와 상관없이 귀담아둘만한 것들입니다.
물론 그것은 꼭 찰리 멍거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말들이긴 하지요. 이 책에 영감을 제공한 『가난한 리처드의 연감Poor Richard's Almanack』이 애초에 삶에 대한 영감이나 지혜를 담은 책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 책을 부자가 되기 위한 절세무공이 담긴 비급이 아니라 현명한 사람이 되기 위해 동네 할배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 모음집 정도로 받아들여도 별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 버크셔 해서웨이는 대개 복잡한 기술로 서핑을 하는 사람들에게 투자하지 않습니다. 결국 여러분도 눈치챘겠지만 우리는 괴팍하고 유별납니다. 워런과 저는 우리가 하이테크 분야에서 큰 우위를 지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프트웨어나 컴퓨터 칩 같은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기술적 발전의 성격을 이해하는 일에 있어서는 크게 불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개인적 자질 부족 때문에 그런 것들을 피하는 편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대단히 강력한 생각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역량의 범위가 잇습니다. 그 범위를 넓히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제가 음악가로 먹고살아야 한다면 어떨까요? 우리 사회에서 음악이 능력의 척도가 된다면 제가 속할 등급이 얼마나 낮을지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무엇을 잘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잘하는데 여러분은 못하는 게임을 하면 지기 마련입니다. 그건 거의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디서 우위를 점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역량 범위 안에서 플레이해야 합니다.
세계 최고의 테니스 선수가 되고 싶다면, 먼저 자기가 얼마나 잘하는지 시험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곧 가망이 없다는 걸 알게 되겠죠.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보다 잘하니까요. 하지만 베미지에서 최고의 배관업자가 되고 싶다면 여러분 중 3분의 2는 아마 가능할 겁니다. 물론 의지와 지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베미지에서 배관업을 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점차 알게 되고, 거기에 통달할 겁니다. 그건 충분히 노력하면 달성 가능한 목표입니다. 한 번도 체스 대회에서 우승하거나, 주요 테니스 토너먼트에서 센터 코트에 서지 못한 사람도 천천히 역량을 키우면 상당히 높은 삶의 고지까지 오를 수 있습니다. 자신이 타고난 것과 노력을 통해 서서히 개발한 것이 합쳐져서 그런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이처럼 어떤 우위는 획득할 수 있습니다. 삶이라는 게임에서 사람들 대부분은 어느 정도는, 베미지의 뛰어난 배관업자처럼 되려고 노력합니다. 체스 세계 대회에서 우승하도록 선택받은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여러분 중 일부는 인텔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새로운 하이테크 분야에서 서핑할 기회를 얻을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자기는 그런 일을 아주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멀찍이 거리를 두었다고 해서 여러분이 그걸 하는 게 비합리적인 것은 아닙니다. (108~109쪽.)
(...) 좀 더 중요한 문제는 복잡하게 뒤엉킨 무의식적 경향이 전문가들에게 흔히 끔찍한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그중 두 가지는 특히 문제를 일으키기 쉽습니다. 1)자신에게 유익한 것이 고객과 사회에도 유익하다는 결론으로 자연스럽게 이끄는 인센티브 유발 편향, 2)"망치를 가진 사람에게는 모든 문제가 못처럼 보인다."는 속담에서 그 명칭을 따온 '망치 든 사람' 경향입니다.
'망치 든 사람' 경향을 바로잡는 한 가지 부분적인 해법은 명백합니다. 복수의 학문에 걸쳐 방대한 기술을 보유한 사람은 자연히 복수의 도구를 가지며, 따라서 '망치 든 사람' 경향이 미치는 인지적 악영향이 적을 것입니다. 나아가서 다학문적 소양을 충분히 쌓으면 심리학을 통해 평생 두 경향을 나쁜 영향과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흡수할 것입니다. 이 싸움은 자신의 내면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집니다. 그러면 세속적인 지혜로 가는 길에서 건설적으로 진전할 수 있습니다.
A가 협소한 전문적 학설이고, B가 다른 학문들에서 나온 광대하고 매우 유용한 개념이라고 합시다. 그러면 A와 B를 같이 습득한 교수는 분명히 A만 습득한 부실한 교수보다 대체로 더 뛰어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을 수 있을까요? 따라서 B를 더 많이 습득하지 않는 것과 관련해 유일하게 합리적인 핑계는, A와 다른 삶의 시급한 필요에 비춰볼 때 B를 습득하는 것이 실용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이 핑계가 적어도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대개 타당하지 않은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증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10쪽.)
(...) 드물게 생기는 학계의 빈자리를 채울 때 좌파든 우파든 지나치게 강하고 열성적인 정치 이데올로기를 가진 교수는 대체로 피해야 합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고의 다학문성은 그런 열성적인 사람들이 상실한 객관성을 요구합니다. 또한 이데올로기의 굴레에 갇혀서는 어렵기 그지없는 종합을 해낼 수 없습니다. 우리 시대에 일부 하버드 로스쿨 교수들은 그러한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어리석음이 나타난 사례를 지적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예일 로스쿨이 거기에 해당했는데, 당시 많은 하버드 사람들은 예일 로스쿨이 특정한 정치 이데올로기를 지배적 요소로 도입해 법률 교육을 개선하려 든다고 여겼습니다. (218~219쪽.)
저는 현명한 사람에게는 대규모 분산화가 필수라는 정통적인 관점에 상당히 회의적입니다. 지수화indexation는 주식 투자를 위한 논리적 방식이 아닙니다. 제 생각에 정통적인 관점은 큰 허점이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거의 모든 재산을 단 세 개의 우량한 국내 기업에 장기투자한 사람이나 기관은 확실히 부유해집니다. 다른 대다수 투자자가 조금 더 낫거나 더 나쁜 실적을 내고 있는지 왜 항상 신경 써야 합니까? 특히 버크셔처럼 낮은 비용, 장기적 효과를 강조하는 관점, 가장 선호하는 종목에 대한 집중 투자로 우월한 장기 실적을 합리적으로 기대하는 관점을 믿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아예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일부 경우에는 가족이나 재단이 90퍼센트의 자산을 한 주식에 집중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가족이 이 경로를 대체로 따르기를 바랍니다. 또한 로버트 우드러프의 재단들은 이 방식이 지나친 분산 투자보다 현명하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그들은 약 90퍼센트의 자산을 설립자의 코카콜라 주식에 계속 묶어두었습니다. 미국의 모든 재단이 설립자의 주식 지분을 절대 팔지 않았다면 어떤 실적을 올렸을까요? 계산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군요. 제 생각에는 아주 많은 재단의 자산이 지금쯤 훨씬 늘어났을 겁니다. (233~234쪽.)
우리 주위엔 과도하게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그들은 대개 자신을 과대평가합니다. 자신의 운전 실력이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90퍼센트의 스웨덴 운전자들처럼 말이죠. 이런 과대평가는 중요한 '소유물'에도 적용됩니다. 사람들은 대개 배우자를 과대평가합니다. 자녀 역시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좀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과도한 자기 존중은 대개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강하게 선호하게 만듭니다. (...)
극단적인 파벌 집단은 현대적 삶에서 최악의 결과를 낳습니다. 그들은 과도한 자기 존중 경향에 지배되어 자신들과 비슷한 사람을 새로운 구성원으로 선택합니다. 그래서 명문대 영문학과가 지적으로 정체되거나 증권사 영업부가 상습적으로 부정을 저지른다면 이러한 문제는 갈수록 악화할 뿐 아니라 상황을 개선하려는 변화에 심하게 저항하는 자연스러운 경향을 지니게 됩니다. 대도시 교원 노조도 부패한 경찰관이나 교도관 또는 정치 집단 그리고 불의와 어리석음에 사로잡힌 다른 수많은 집단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들은 문제 교사를 쫓아내지 못하게 함으로써 우리 아이들에게 해를 끼칩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쓸모 있는 구성원은 자신의 영향권에서 쓰레기를 발견했을 때, 기꺼이 청소하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형태의 과도한 자기 존중은 자연히 많은 오류를 초래합니다.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요? (384~385쪽.)
'잡冊나부랭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 (김정인, 책과함께, 2015.) (0) | 2025.06.02 |
|---|---|
| 타나토노트 (베르나르 베르베르, 열린책들, 2000.) (0) | 2025.06.02 |
| 30년의 위기 (차태서,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24.) (0) | 2025.05.23 |
| 내 마음의 낯섦 (오르한 파묵, 민음사, 2017.) (0) | 2025.05.02 |
| 단 한 사람의 한국 현대사 (이동해, 푸른역사, 2024.) (0) | 2025.05.0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