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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리뷰오브북스 18호 (알렙, 2025.) 본문

잡曲나부랭이

서울리뷰오브북스 18호 (알렙, 2025.)

Dog君 2025. 9. 8. 08:15

 

  읽는 재미만을 기준으로 할 때 '서평'을 수위에 올리기는 어렵습니다. 서평의 대상이 되는 텍스트의 내용을 대충이라도 알아야 서평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서평집을 낸 저희가 누구보다 더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ㅠㅠ) 그래서 제 독서리스트에서 서평은 거의 언제나 후순위로 밀리곤 하는데, 서리북 19호의 발간이 임박한 얼마 전에서야 18호를 훑어보게 된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저의 게으름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번 서리북도 그냥 보아 넘길 수 없는 서평이 여럿 눈에 띕니다. 특히 김용구의 회고록에 대한 옥창준의 서평과 『이븐 바투타 여행기』에 대한 최소영의 서평은, 형식으로야 서평이지만 실제로는 위대한 선학에게 보내는 헌사獻辭라고 해야 마땅할 것 같습니다. 두 글 모두 후학의 경외심이 페이지 전체에 진하게 묻어납니다. 그 중에서도 정수일이 옥중에서 『이븐 바투타 여행기』를 집필할 때의 일은 그 자체로 경이로운 이야기라 혼자만 읽고 넘어가기 아깝네요.

 

  오늘날 이른바 '심리적 G8' 국가인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국은 '오지'라 감각되기 쉽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한국이 경제적·문화적으로 성장하여 중심과 가까워지면서, 반주변이나 주변과의 공감대는 철저히 망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주변에 머물렀을 때는 '문견'의 어두움을 탄식하기라도 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우쭐거림 속에 오히려 주변을 더 섬세하게 바라보지 못한다. 말 그대로 주변의 상실이다.
  지금은 미국, 유럽, 러시아, 이슬람권, 인도, 중국 등 세계 주요 국가와 권역이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하는 대격변의 시기이다. 오랫동안 보편적 세계를 구축한 것으로 여겨져 한국의 모델이 되었던 선진 사회들도 그 안에 억눌려 있던 다양한 '가정'(假晶, Pseudomorphosis - 광물학에서 가져온 말로, 외래 문화가 겉으로는 전파되는 듯 보이지만, 실제 내부에서는 이에 저항하는 문화가 축적되는 현상을 지칭) 현상이 분출하고 있다. 어쩌면 김용구가 석사 논문에서 말한 "원자 시대의 인지와 석기시대의 정념"이라는 인간의 모순이 바로 이러한 세계사를 만들어 낸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시대에 오히려 더 필요한 것은 현실 외교를 바라보는 피상적 관찰이 아니라, 그 심층에 존재하는 문명 차원의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했던 노학자의 깊은 고민 아닐까. 김용구가 두텁게 쌓아 올린 60년간의 성찰은 비단 좁은 의미의 외교가 아니라, 세계 속의 한국이 무엇인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많은 이들에게도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옥창준, 「오지의 지질학자가 남긴 연구 기록 - 『김용구 연구 회고록』」, 69~70쪽.)

 

  모든 책이 그러하지만 특히 자서전은 마치 병 속에 담겨 망망대해를 떠도는 편지와 비슷하다. 누군가가 이 메시지를 발견해서 해독해 줄지 모르는 상태로 편지는 망망대해를 떠돈다. 한반도라는 오지를 치밀하게 연구했던 지질학자의 연구 기록이 『회고록』에 담겨 있다. 이 편지를 발견하여 그 내용을 이어받을 지적 상속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이 편지가 미래의 누군가에게 닿을 때 비로소 이는 한 개인의 오지 체험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좁은 문견을 넘어설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옥창준, 「오지의 지질학자가 남긴 연구 기록 - 『김용구 연구 회고록』」, 70쪽.)

 

  방대한 여행기를 다 읽고 나면 마지막 페이지에 다소 기이한 지도가 하나 등장한다. 이븐 바투타가 이동한 루트를 마르코 폴로의 여정과 합하여 그린 지도다. 그런데 경계를 나타내는 선들이 어딘가 이상하고 제목과 지명들이 모두 손 글씨로 쓰여 있다. 이 지도에 대해 정수일은 "독자들이여, 이 책에 첨부된 '이븐 바투타 여행로 전도'와 마르코 폴로와 이븐 바투타 여행로 전도를 무심히 대하지 마시라."(2권, 427쪽)고 요청한다. 이 지도의 원본은 그가 감옥에서 역주 작업을 하면서 쓰레기통에 있던 종잇조각들을 밥풀로 이어 붙여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이상한 지도와 그에 대한 설명을 마주한 독자들은 엄청난 역주 작업이 옥중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정수일은 1934년 만주국 시기의 길림성에서 태어났고 베이징 대학 동방학부를 거쳐 중국 최초 국비 유학생으로 카이로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 이후 외교관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1963년 중국 측에 요청해 북한으로 귀화했다. 평양에서 아랍어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그는 1974년 대남 사업에 차출되어 긴 훈련을 거쳐 무함마드 깐수라는 이름의 레바논 국적자로 1984년 한국에 들어왔고 단국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하여 학위를 취득했다. 1994년 사학과 조교수로 임명되어 동서 교류사 강의와 집필 활동을 활발히 하던 중 199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검거되었고, 사형이 구형되었으나 재판에서 12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그는 감옥에서도 손에서 펜을 놓지 않았다. 그는 "이순을 한참 넘긴 나이에 세상과 동떨어진 수감 생활을 장기간 해야 하는 극한 처지에 놓였지만 세월을 허망하게 소일할 수 없었다. 일각을 천금으로 여기고 몇 갑절 분발해야 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고, 내가 치러야 할 응분의 몫이었다."고 했다. 그는 아내에게 책과 논문을 구해 줄 것을 계속 청했고 도서 반입 수에 제한이 있는 것을 아쉬워했다. 감방에는 책상이 없으니 화장실 양동이를 뒤집어 놓고 그 위에 종이를 올려놓고 쓰거나 두꺼운 책을 임시로 쌓아 올려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책상 대신으로 쓰면서 각종 통증에 시달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느 날 한 독지가가 작은 좌식 책상을 지원해 보내왔고, 그에게 이날은 영어 생활 중 가장 반가운 날이었다고 한다. 그는 교수 지위와 박사학위가 모두 박탈된 '고정간첩'의 몸으로 감옥에 무릎 꿇고 앉아 인물 1,483명, 지명 961곳이 등장하는 이 방대한 환대의 기록을 번역했다. 그의 말대로 감옥은 가히 "격폐된 학문의 산실"이라고 할 만하며 이는 역사적으로도 그러했고 현대에도 일어나는 일이나, 한편 스스로 인정한 대로 사실 감옥은 "이승의 지옥"이니 그 고통은 본인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일이다. 그는 약 5년 복역 후 감형을 받아 2000년 광복절 특사로 출소했으며, 『이븐 바투타 여행기』는 이듬해 창작과비평사에서 두 권으로 출간되어 세상에 나왔다.
  그가 2022년 출간한 『시대인, 소명에 따르다』라는 제목의 회고록은 학자로서의 소회보다 남북통일을 향한 그의 정치적 의지로 가득하다. 정수일의 학술적 성과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남파된 후에도 학문에 매진하느라 이른바 간첩으로서는 한 일이 별로 없다고 말하는데, 정작 본인은 애초에 조국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중국에서 북한으로 귀화했으며 남한에 파견된 후 본인에게 주어진 조국통일 임무를 열심히 수행했고 성과도 있었노라고 강하게 주장한 것은 아이러니하다. 본인에게는 한국 역사를 밝히는 것이 조국에 대한 소명을 다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정수일은 공부만 했다'는 타인의 주장과 '나는 조국을 위해 소명을 다했다'는 본인의 주장이 상충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특히 그는 신라 이래 한반도의 국가들이 실크로드 한쪽 끝에서 아랍 등 먼 나라들과 일찍부터 교역하며 국제 무대에서 활약한 것을 밝히고자 애썼고 이것이 조국에 대한 그의 소명 의식과 밀접하게 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동서 교류사, 특히 아랍어와 이슬람에 대한 지식에서 독보적인 학자였고, 전 세계적으로 엄두를 내지 못한 방대한 여행기를 "이승의 지옥"에 갇힌 몸으로 번역해 냈지만 그 자신은 회고록에서 자신이 평생 불급(不及)함, 즉 모자람을 걱정하며 초조히 살아왔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 '불급함'을 내일의 여명을 잉태한 낙조에 고이 묻고 미련 없이 훨훨 떠나련다."라는 문장으로 회고록을 끝냈으며 회고록을 낸 지 3년 만에 생을 마감했다.
  그가 훨훨 날아, 불급함 걱정 없이, 더 따뜻한 환대를 받는 곳에 이르렀기를 바란다. (최소영, 「감옥에서 온, 환대의 기록 - 『이븐 바투타 여행기』, 125~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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