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미우라 시온, 청미래, 2022.) 본문

잡冊나부랭이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미우라 시온, 청미래, 2022.)

Dog君 2023. 4. 27. 06:33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서 '뭐라도 운동 하나는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의무감 비슷한 것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운동신경이 거의 없다시피 한 사람인지라 어떤 운동이 저에게 맞고 제가 즐겁게 할 수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가장 적은 시간과 비용, 의지가 필요해 보이는 운동으로 선택한 것이 달리기였습니다. 일부러 돈을 들여 전용 신발을 사고 어플로 달리기를 기록하며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한지 벌써 한참이 됐습니다. (물론 중간에 1.5년 정도 쉬었습니다;;)

 

  그러다가 애초의 취미였던 독서와 달리기가 조금씩 달라붙기 시작했고, 이제는 달리기에 관한 책이 눈에 띄면 어지간하면 사고 마는 지경이 됐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나 가쿠타 미쓰요의 『어느새 운동할 나이가 되었네요』, 레이첼 스와비와 키드 폭스의 『마라톤 소녀, 마이티 모』, 김상민의 『아무튼, 달리기』 같은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런 사전정보가 없었음에도 망설임 없이 이 책을 고른 것도 오직 달리기 때문입니다. ^^ (일단 표지가 너무 예쁘지 않습니까?!)

 

  하지만 책의 첫 몇 페이지에서 저의 몰입감은 바로 깨졌습니다. 소설의 주인공들이 감정이입이 전혀 안 될 정도로 하나 같이 역대급 재능충이거든요. 아무리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라지만 달리기를 처음 하는 사람들이 첫 달리기에서 5km를 25분 내외의 기록으로 완주한다니요, 이건 정말 해도 너무합니다. 누구는 몇 달 몇 년을 훈련해도 될까 말까한 수준인데 말이죠. (100m를 30초에 달리는 속도로 25분(5km)을 꾸준히 달렸다는 뜻;;) 그리고 불과 몇 달 뒤에는 전문 육상선수 뺨치는 실력을 갖추게 되고... 저 같은 아재 러너로서는 도저히 감정을 이입할 수가 없습니다! (감정이입 잘 되기로는 가쿠타 미쓰요가 최고입니다 ㅋㅋ)

 

  그럼에도 제가 이 책을 끝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것은, 달릴 때의 고독감과 기쁨만큼은 그들과 제가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속도가 빠르건 느리건, 거리가 길건 짧건, 중요한 것은 내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좌우의 팔과 다리를 연신 앞뒤로 내던지는 무한한 단순반복에 열중한다는 점만큼은 그들이나 나나 매한가지입니다. 그러고보면 제가 좋아하는 것들은 대체로 단순함과 반복을 미덕으로 삼는 것들이군요 ㅎㅎㅎ 달리기와 독서 (그 외에 제 지인들만 아는 또 그렇고 그런 취미들 ㅎㅎㅎ) 같은 것들 말이죠.

 

  밸런스가 좋군. 흥분을 필사적으로 누르면서 기요세는 남자의 뛰는 모습을 관찰했다. 등줄기를 따라 곧은 중심축이 있는 것처럼 균형 잡힌 움직임이었다. 무릎 아래를 시원하게 잘 뻗으면서 달렸다. 쓸데없는 힘이라고는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어깨, 그리고 땅을 박차는 충격을 잘 받아내는 유연한 발목. 가볍고 탄력이 있으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자세이다. (10~11쪽.)

 

  가케루는 조깅 코스를 몇 군데로 정했다. 대개는 차가 많이 다니지 않고 잡목 숲이나 논밭이 남아 있는 좁은 길이다. 대회에서는 경치를 즐기면서 뛰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평소에 조깅을 하거나 연습할 때는 가끔 멍하니 주변을 볼 때도 있다.
  집 앞에 놓인 세발자전거나 밭 한쪽 구석에 쌓여 있는 비료 포대. 그런 것들을 관찰하는 것이 좋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세발자전거는 처마 안쪽에 놓여 있었다. 비료 포대 안에 들어 있던 내용물이 점점 줄어가다가 이윽고 새로운 포대로 바뀌어 있곤 했다. (30~31쪽.)

 

  기분이 좋다. 귓가를 지나는 바람도, 밟고 지나는 땅도 이 순간만큼은 온전히 내 것이다. 이렇게 달리고 있는 한 나 혼자만이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세계다. (259쪽.)

 

  토츠카 중계지점에서 조타에게 이 어깨띠를 넘겨줄 수만 있으면 그 다음에는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해도 상관없다. 구간 기록에는 한참 못미치는 기록이지만 그래도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달리기를 남은 수백 미터에서 발휘하지 않으면 언제 또 하란 말인가. (365쪽.)

 

  이건 승부가 아니다. 하나코의 마음은 하나코의 것이다. 조지의 마음은 조지의 것이다. 가케루의 마음이 가케루만의 것이라는 점과 똑같다. 아무도 빼앗거나 구부러뜨리지 못하는 것. 모든 척도에서 자유로운 영역이다. (442쪽.)

 

  그래, 이 외로움이 장거리 달리기이다. 니코짱은 생각했다. 별도 없는 밤하늘 아래를 떠도는 나그네의 고독과 자유. 한계까지 치솟은 심박수를, 식을 새 없이 후끈후끈 열이 올라 쏟아지는 땀에 젖은 피부를, 피가 돌고 거기에 따라 움직이는 근육의 불끈거림을 니코짱 당사자 말고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정해진 코스를 달려 정해진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누구도 손대지 못하고 간섭하지도 못하는 곳에서 남들은 도저히 알 수 없는 싸움을 니코짱 홀로 계속해야 한다. (471~472쪽.)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게,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절묘한 거리를 두고 사람 사귀는 방법을 도무지 터득할 수가 없었다. 어디에 있건, 누구와 함께 있건 항상 자기 혼자만 붕 뜬 느낌이 들었다. 분위기 망치지 않게 적당히 친한 척하면서도 아무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다. 약점을 보이지 않고 허세를 부렸다. 그런 킹의 마음을 애써 열고 들어오려는 사람도 물론 없었다. 외로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굴욕적이었기 때문에 가면만 자꾸 두꺼워졌다.
  (...)
  달리고 있을 때만큼은 명랑한 척하면서 남에게 맞춰줄 필요가 없다. 자기 자리를 만드는 데 급급해서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걱정하는 대신 그저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만 집중하면 된다. (481~482쪽.)

 

교정. 초판 3쇄
109쪽 9줄 : 한웅큼 -> 한움큼
365쪽 11줄 : 쮜어잔 -> 쥐어짠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