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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 애쓰모글루·제임스 A. 로빈슨, 시공사, 201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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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 애쓰모글루·제임스 A. 로빈슨, 시공사, 2012.)

Dog君 2025. 7. 29. 13:38

 

  이 책이 가진 세계적인 명성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두 저자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책이기도 하구요. (물론 이 책이 유일한 원인은 아니겠습니다만.) 그러니 이 책의 장점에 대해서 굳이 말을 더 보탤 필요는 없겠지요. 대신 이 자리에서는 약간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제도institutions'를 핵심 변수로 해서 세계 문명의 흥망성쇠를 다 설명해내는 이 책은 분명 매력적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세계사를 단번에 꿰뚫는 어마어마한 무기를 하나 얻은 것만 같기도 합니다. 책을 읽다보면 '그래! 제도institutions만 있으면 세상만사를 다 설명할 수 있을거야!' 같은 확신이 절로 들지요. 이 책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책들은 대체로 다 이런 것 같습니다. 『총, 균, 쇠』나 『사피엔스』 같은 (『지리의 힘』도 들어가나요?) 책들은 이런 식으로 세계사를 거시적으로 꿰뚫는 데 주력하니까요.

 

  이렇게 거시적인 관점을 가진 책을 읽으면 저 역시도 많은 것을 얻습니다만, 또한 여러 차례 말씀드리는 것처럼 성긴 그물 사이로 술술 빠져나가는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이야기들' 때문에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 허무함이 밀려오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그래... 뭐 좋은 이야기인 거 알겠는데, 그래서 이게 내 현생이랑 무슨 관련이 있는데?' 싶거든요. 숲에서 나와야 비로소 숲이 보이는 것도 맞지만, 결국 우리는 숲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 아닙니까. 열매 따먹겠다고 나무에 매달려 버둥대다가, 또 나무그늘 아래서 잠시 쉬다가, 땅바닥에 엎드려 나물도 뜯어먹다가, 풀벌레도 잡다가, 뭐 그런 현생을 살아가는 우리 하나하나의 구체적인 삶은 숲 속을 떠나서 이뤄지지 않습니다. 숲을 보건 말건, 숲 속에서 펼쳐지는 우리의 가련한 인생은 그와 무관하게 life goes on 입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대체 왜 때문인지 도통 모르겠지만) 사회적으로 성공한 중년 남성들이 권하는 역사책이 대체로 다 이렇게 거대하고 거시적입니다. '내가 얻은 사회적 존중과 경제적 성취의 비결은 말이지, 이렇게 거시적이고 역사적인 안목을 가지는 것에 있단다, 이 꼬맹이들아'라는 환청이 어디선가 들리는 것만 같지 않습니까. 게다가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하나인) 유시민까지 『역사의 역사』에서 "역사의 역사에서 드러나는 뚜렷한 경향성 가운데 하나는역사 서술의 단위가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는 점이다"(『역사의 역사』, 283쪽.)라고 하는 바람에 마치 이런 경향이 최근 역사학의 주요한(or 거의 유일한) 경향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이런 상황이 영 마뜩찮습니다. 역사책이라고 하면 자꾸 방대하고 어렵고 거시적인 어떤 것만 상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역사책을 읽는 이유가 뭔가 대단한 지혜와 통찰을 얻어야만 하는 것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게끔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 역사책 읽기에 대한 진입장벽은 점점 더 높아지는 것 같구요.

 

  그래서 저는 역사책 읽기의 '즐거움'을 말하는 사람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읽을 때의 재미, 격렬한 논쟁(싸움)을 구경하는 흥분, 지금 우리와 비슷한 역사 속 이야기들을 만나는 반가움,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고 이에 답하는 뿌듯함, 남들과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 때 느껴지는 묘한 흐뭇함 같은 것들 말입니다.

 

  (...) 지리적 위치나 자연환경에 따라 한 나라 또는 지역의 경제 성공 여부가 결정된다는 학자도 있지만, 누가 봐도 한국에 적용할 수 없는 이론이다. 한 민족의 문화, 사회 규범, 가치관, 노동 윤리 등이 경제적 성공 여부를 갈느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한국은 그런 이론을 반박할 확실한 증거가 된다.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같은 문화와 언어를 가진 오랜 단일민족의 역사를 자랑한다. 남북한의 운명을 가른 것은 1945년 두 사회가 수립된 경위가 달라서이지 문화 때문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독자가 유수 대학 경제학과에서 경제 발전에 관한 수업을 들었다면, 사실 남한이 잘살고 북한이 못사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고 배웠을 것이다. 남한 경제 전문가가 더 뛰어났거나 그냥 운이 좋았을 수도 있고, 북한은 정신 나간 사회주의자나 이데올로기 옹호자의 말에 속아 잘못된 정책을 채택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견해는 모조리 틀린 것이다. 한국인들의 평균적인 생각은 옳다. 한국인이라면 왜 북한은 못살고, 남한은 잘사는지 안다. 단지 온 세상에 자신들이 이해하는 바를 전달할 올바른 개념이 부족했을 뿐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바가 바로 그런 개념이다. (17쪽.)

 

  에스파냐가 미 대륙에 식민지를 개척하는 내내 비슷한 제도와 사회구조가 생겨났다. 약탈과 금은보화에 눈이 먼 식민지 개척 초기가 지나자 에스파냐는 원주민을 수탈하기 위한 제도를 거미줄처럼 뽑아냈다. 엔코미엔다, 미타, 레파르티미엔토, 트라진에 이르는 온갖 제도가 죄다 원주민의 삶을 연명 가능한 최저 생계 수준까지 끌어내리고 그 잉여분은 모조리 에스파냐가 수탈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의 땅을 몰수하고 강제노역을 시키면서도 최저임금만을 지급하며 높은 세금을 부과하고, 자발적으로 사지 않은 물품에 대해서도 고가의 가격을 매기는 방법으로 수탈을 자행한 것이다. 이런 제도 덕분에 에스파냐 왕실은 엄청난 부를 축적했고 정복자들과 그 후손들 역시 부를 누릴 수 있었지만, 이 때문에 남아메리카는 세상에서 가장 불평등하고 경제적 잠재력을 송두리째 빼앗긴 대륙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42~43쪽.)

 

  멕시코보다 미국의 은행업이 경제 번영을 촉진하기에 대단히 유리했던 이유는 은행을 소유한 이들의 동기가 달랐기 때문이 아니다. 멕시코 은행업의 독점적 성향에서 강조되는 이윤 동기profit motive는 미국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제도가 근본적으로 달랐기 때문에 미국의 이윤 동기는 적용 방식도 달랐다. 은행가가 직면하는 경제제도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미국의 은행가는 경쟁이 훨씬 치열한 환경에서 사업을 해야 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은행가를 규제하는 규율을 마련한 정치인 역시 사뭇 다른 인센티브에 직면해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인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치제도 또한 달랐다는 뜻이다.
  실제로 미국 헌법이 시행된 직후인 18세기 후반에는 멕시코와 별반 다른없는 은행체제가 슬슬 시동을 걸었다. 정치인들은 국가가 독점하는 은행체제를 시도했다. 측근 및 후원자에게 독점권을 부여하고 그 대가로 독점에서 얻는 이윤을 나누어 갖길 바란 것이다. 곧 미국 은행들도 멕시코와 맟나가지로 자신들을 규제하는 정치인들에게 대출을 몰아주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런 상황이 오래가지 못했다. 독점적인 은행을 만들려고 시도하는 정치인이라도 멕시코와 달리 선출직이어서 재선에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독점적인 은행을 만들어 자신이 대출을 받는다면 정치인에게는 이보다 수지맞는 장사가 없었다. 그러고도 무사하다면 말이다. 하지만 시민에게는 대단히 불리한 일일 수밖에 없다. 멕시코와 달리 미국에서는 시민이 정치인을 견제하고, 자신의 직위를 남용해 축재하거나 측근에게 독점권을 챙겨주는 이들을 제거해버릴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독점적 은행체제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특히 멕시코와 비교해 미국에서는 정치적 권리가 워낙 광범위하게 분배되어 있어 누구나 동등하게 금융 서비스 및 대출을 활용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았다. 이에 따라 아이디어를 내거나 발명품을 만들어낸 사람은 누구든 그 혜택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65~66쪽.)

 

  지리적 위치 가설은 역사적으로도 번영의 기원을 설명하기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대체로 주장하는 논거 자체가 잘못되었거니와 이 장 도입부에서 지적한 형세 역시 설명하지 못한다. 아메리카 대륙 내에서 관찰되는 소득 격차나 유럽과 서아시아 간에 장기적으로 극명하게 드러나는 차이 등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패턴을 불변의 지리적 위치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아메리카 대륙 내의 불평등 패턴이 지리적 요인으로 초래되었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1492년 이전만 해도 멕시코 중심부의 계곡, 중앙 아메리카, 안데스산맥의 문명이 북아메리카나 아르헨티나 및 칠레 등의 나라보다 월등히 탁월한 기술과 생활수준을 자랑했다. 지리적 위치는 변함이 없지만, 유럽의 식민통치자들이 강요한 제도가 '운명의 반전'을 야기한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지리적 위치로는 서아시아의 빈곤 역시 설명하기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신석기혁명을 주도한 것이 바로 서아시아였고 처음으로 도시가 발달한 것도 오늘날 이라크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최초로 철을 주조한 것은 튀르키예였으며, 중세시대까지도 서아시아는 기술 발달이 활발했다. (...) 서아시아가 가난에 시달리는 것 역시 지리적 위치 때문이 아니다. 오늘날 서아시아가 가난을 면치 못하는 것은 세력을 확장하며 이 지역을 통합한 오스만제국의 제도적 유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리적 요인은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는 차이는 고사하고 일본이나 중국 등 오랜 세월 성장이 정체되어 있던 여러 나라가 갑작스레 고속 성장 과정을 거치는 이유도 설명하지 못한다. 따라서 더 설득력 있는 다른 이론이 필요하다. (94~95쪽.)

 

  문화적 요인 가설이 세계 불평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문화와 관련이 있는 사회 규범이 중요하고 바꾸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이 책이 세계 불평등을 설명하는 근거인 제도적 차이를 그런대로 입증해주기 때문에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체로 아니라고 해야 옳다. 종교, 국민 윤리,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의 가치관 등 흔히 강조되는 문화적 측면이 오늘날 우리가 왜 여기까지 왔으며 세계 불평등이 사라지지 않고 끈질기게 남아 있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서로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고 얼마나 협력할 수 있는지 등 다른 문화적 측면도 중요하긴 하지만 이는 대부분 제도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지 독립적인 원인이라 할 수 없다. (95~96쪽.)

 

  한국과 미국은 더 많은 일반 대중이 경제활동에 참여해 자신의 재능과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며 개개인이 원하는 바를 선택할 수 있는 포용적 경제제도inclusive economic institutions를 시행하고 있다. 경제제도가 포용적이라는 것은 사유재산이 확고히 보장되고, 법체제가 공평무사하게 시행되며, 누구나 교환 및 계약이 가능한 공평한 경쟁 환경을 보장하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뜻이다. 포용적 경제제도는 또한 새로운 기업의 참여를 허용하고 개인에게 직업 선택의 자유를 보장한다.
  미국과 라틴아메리카는 물론 남북한 간의 이런 극명한 대조를 통해 일반적인 원리 하나를 도출해낼 수 있다. 포용적인 경제제도가 도입되면 경제활동이 왕성해지고 생산성이 높아지며 경제적 번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은 사유재산권 보장이다. 사유재산권을 가진 자만이 기꺼이 투자하고 생산성을 높이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생산하는 족족 도둑맞거나 몰수당하거나 세금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을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업가는 투자와 혁신을 도모할 인센티브는커녕 일하고자 하는 인센티브조차 가지지 못할 것이다. 당연히 사유재산권은 사회 대다수 구성원에게 공평무사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118~119쪽.)

 

  (...) 북한에서는 사유재산을 찾아볼 수 없다. 식민지 시설 라틴아메리카에 존재했던 사유재산권은 에스파냐인을 위한 것이었고 원주민의 재산은 늘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두 사회 모두 사회 구성원 대다수를 차지하던 민중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경제적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집단으로 강압에 억눌린 삶을 살아야 했다. 두 사회 모두 번영을 견인할 핵심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정부의 힘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북한에서 정부가 마련한 교육체제는 오로지 선전요응로 수립된 터라 긱능르 막는 데는 속수무책이었다. 식민통치하의 라틴아메리카 정부 역시 원주민을 쥐어짜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두 사회 모두 공정한 경쟁의 장이나 공평무사한 법체제와는 거리가 멀었다. 북한에서 법체제란 집권 공산당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라틴아메리카에서도 민중을 차별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포용적 경제제도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속성을 가진 그런 제도를 우리는 착취적 경제제도extractive economic institutions라고 부른다. 착취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말 그대로 한 계층의 소득과 부를 찾취해 다른 계층의 배를 불리기 위해 고안된 제도이기 때문이다. (120~121쪽.)

 

  2장에서 논의했던 재레드 다이아몬드처럼 기존의 지리적 요인을 강조하는 이들은 운 좋게 재배와 가축화가 수월한 동식물이 많았기 때문에 신석기혁명이 가능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농경과 목축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이내 정착생활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구석기시대 사회가 정착생화로가 농경을 시작하면서 정치적 계급질서, 종교는 물론 한층 더 복잡한 제도를 발달시켰다는 게 이들 이론의 골자다.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론이지만 나투프문화 유적에서 발견된 증거를 살펴보면 본말이 전도된 설명이다. 농경으로 이행하기 이전에 이미 제도적 변화가 생겨났고, 정착생활로 옮아간 것도 이 때문일 가능성이 크며(정착생활은 제도적 변화에 박차를 가했다), 더불어 뒤이은 신석기혁명의 원인이었을 것이다. 가장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된 비옥한 초승달지대 산지에서 출토된 증거는 물론 아메리카 대륙,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동아시아에 고루 퍼져 있는 증거를 통해서도 가늠해졸 수 있는 패턴이다.
  농경사회로 이행하면서 농업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고 인구가 엄청나게 늘어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가령 예리코와 아부 후레이라 등의 유적지에서는 농경사회 이전보다 훨씬 거대한 농경 위주 취락이 발견된다. 보통 농경사회로 이행하면서 취락은 두 배에서 여섯 배까지 커졌다. 이와 함께 그간 많은 이들이 주장한 대로 농경사회 이행이 다양한 결과를 낳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직업의 전문성이 심화되고 기술이 급격히 진보한 데 이어 한층 복잡하지만, 한층 평등하지 못한 정치제도의 발달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특정 지역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동식물이 풍부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해당 사회가 정착생활에 이어 농경사회로 이행하는 기반이 되는 제도적, 사회적, 정치적 혁신을 경험한 결과였다. (209~210쪽.)

 

  (...) 착취적 제도하에서 달성한 성장은 포용적 제도하에서 창출된 성장과는 성격이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착취적 제도하의 성장은 지속 불가능하다는사실이다. 그 성격상 착취적 제도는 창조적 파괴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기술적 진보 역시 기껏해야 제한적인 수준에 그친다. 따라서 착취적 제도를 통한 성장은 단명하고 만다. 소련의 경험은 이런 한계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구소련은 서방의 일부 진보한 기술을 급속도로 따라잡고 대단히 비효율적이었던 농업 부문에서 공업으로 자원을 재분배하면서 고속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내 농업에서 공업에 이르기까지 전 부문에서 인센티브가 미흡했기 때문에 기술적 발전을 자극할 수는 없었다. 자원을 쏟아붓는 데다 서방과 경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므로 혁신에 강력한 보상이 뒤따랐던 일부 영역에서만 그런 발전이 엿보였다. 아무리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해도 소련의 성장은 비교적 단명할 운명이었고 이미 1970년대 들어 김이 빠지기 시작했다.
  착취적 제도하의 성장이 극심한 제한을 받는 것은 창조적 파괴와 혁신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마야 도시국가의 역사는 착취적 제도의 태생적인 논리에서 비롯되는 한층 더 불길하고, 안타깝게도 한층 보편적으로 귀결되는 운명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제도를 통해 엘리트층은 상당한 이득을 취할 수 있으므로 다른 이들이 현재 엘리트의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반기를 들 강력한 인센티브가 생기기 마련이다. 따라서 내부 분쟁과 불안정은 착취적 제도에 반드시 수반되는 태생적 특징이며, 비효율성을 심화시킬 뿐 아니라 중앙집권화된 정치권력을 와해시키기 일쑤이며, 심하면 법과 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려 사회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기도 한다. 고전기를 거치는 동안 비교적 성공을 거두었던 마야 도시국가도 종국에는 이런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220~221쪽.)

 

  잉글랜드 경제의 모든 면에서 산업혁명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운송, 제철, 증기동력 등의 분야에서 대대적인 개선이 이루어졌지만 가장 중요한 혁신 분야는 직물 생산의 기계화 및 직물 완성품을 대량 생산할 공장의 발달이었다. 이런 역동적인 과정이 진행될 수 있었던 것도 명예혁명에서 비롯된 제도적 변화 덕분이었다. 1640년 국내 독점이 철폐되고 세제가 달라졌으며 금융의 문이 활짝 열린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한층 더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사유재산권을 기반으로 혁신가와 기업인에게 유리하도록 경제제도가 근본적으로 재편되었다는 의미였다. (287~288쪽.)

 

  (...) 잉글랜드는 왜 다원주의적 정치제도를 발전시키고 착취적 제도에서 멀어진 것일까? 앞서 살펴보았듯이 명예혁명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변화는 여러 가지 서로 연관된 과정의 결과물이었다. 그 중심에는 절대왕정과 이를 반대하는 세력의 정치 갈등이 있었다. 이 갈등이 절대왕정의 반대 세력에 유리하게 해소되면서 잉글랜드에서 새롭게 더 강력한 절대왕정을 수립하려던 시도가 수포로 돌아갔을 뿐 아니라 사회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보려던 세력의 힘을 키워주었다. 절대왕정을 반대하던 세력은 단순히 또 다른 형태의 절대주의 정권을 세우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장미전쟁에서 랭커스터 가문이 요크 가문을 격퇴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과정이었다. 명예혁명은 헌정 질서와 다원주의에 기반을 둔 새로운 정권의 탄생을 의미했다. (302~303쪽.)

 

  (...) 이 모든 일이 벌어진다 해서 진정한 다원주의 정권이 반드시 들어서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런 정권의 태동은 부분적으로 역사의 우발적 경로를 따른 결과였다 할 수 있다. 스튜어트왕조에 맞서 싸운 잉글랜드내전에서도 연합세력이 승리했지만 올리버 크롬웰의 독재로 이어진 바 있다. 연합세력의 힘이 강하다 해서 반드시 절대왕권을 물리칠 수 있다는 뜻도 아니다. 제임스 2세는 오렌지 공 윌리엄을 물리쳤을 수도 있다. 다른 정치적 갈등의 결과나 마찬가지로 주요 제도적 변화가 걷는 길 역시 역사의 우발성에 좌우되기 마련이다. 제도적 부동 과정으로 절대왕정에 반대하는 광범위한 연합세력이 만들어지고 대서양 무역 기회라는 결정적 분기점으로 스튜어트왕조가 불리한 입장에 처했었다 하더라도 역사의 우발성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잉글랜드의 사례에서 다원주의 및 포용적 제도가 태동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역사적 우발성과 광범위한 연합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307쪽.)

 

  절대주의가 착취적 정치제도의 유일한 형태도 아니고, 산업화를 방해한 유일한 요인도 아니다. 포용적 정치·경제 재도가 마련되려면 일정 수준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져 정부가 법과 질서를 강제하고, 사유재산권을 보장하며, 필요할 때 공공 부문 투자를 감행해 경제활동을 장려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심지어 오늘날도 아프가니스탄, 아이티, 네팔, 소말리아 등 수많은 나라에 가장 기본적인 질서 유지도 불가능한 정부가 들어서 있으며 경제적 인센티브는 씨가 말라버린지 오래다.
  소말리아의 사례만 보아도 왜 이런 나라들이 산업화 과정을 건너뛰게 되었는지 잘 알 수 있다. 절대주의 정권이 변화를 거부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중앙집권화를 거붛나 나라들이다. 변화를 허용하면 정치권력이 현재의 지배층에서 새로운 인물이나 집단에 이양될 것이라는 뿌리 깊은 공포가 작용한 것이다. 따라서 절대주의가 다원주의 및 경제 변화를 향한 행보를 가로막듯이 중앙집권정부가 없는 나라에서는 권력을 쥐고 있는 전통적인 엘리트층과 씨족이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다. 18세기와 19세기에 중앙집권화를 경험하지 못한 나라들이 산업화 시대에 가장 큰 불이익을 당한 이유다. (350~351쪽.)

 

  그럼 왜 휘그파와 의원들은 그런 제약을 순순히 따랐던 것일까? 그들은 왜 의회와 정부에 대한 자신들의 통제력을 이용해 블랙법을 강행하고, 원하는 판결이 나오지 않으며 법관을 갈아 치우지 않았을까? 그 해답은 명예혁명의 본질에 있다. 명예혁명은 왜 낡은 절대주의 체제를 새로운 절대주의 체제로 바꾸는 데 그치지 않았을까? 다원주의와 법치주의 간에 분명한 연결 고리가 있고 선순환이 되풀이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7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명예혁명은 한 엘리트 집단이 다른 엘리트 집단을 전복시킨 것이 아니라 젠트리와 상인, 수공업자는 물론 휘그파와 토리당 파벌까지 가세한 광범위한 연합세력이 절대왕정에 반기를 들고 일으킨 혁명이었다. 이 혁명의 결과로 태동한 것이 바로 다원주의 정치제도였다.
  법치주의 역시 이 과정의 부산물로 등장했다. 여럿이 권력을 분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과 견제를 모두에게 적용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어느 일방이 과도한 권력을 거머쥐기 시작하고 이내 다원주의의 토대마저 뒤흔드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통치자에게도 한계와 제약이 따른다는 것이 법치주의의 근간이 되는 개념이다. 스튜어트 절대왕정에 반기를 들었던 광범위한 연합세력이 도출해낸 다원주의 논리에서도 이 개념은 빼놓을 수 없다.
  (...)
  일단 뿌리를 내리자 법치주의 개념은 절대주의를 억제하는 것은 물론 일종의 선순환을 만들어냈다. 법이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된다면 어떤 개인이나 단체, 심지어 캐도건이나 월폴마저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으며, 사유재산을 침범했다는 혐의로 고발당한 평민도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지닌다는 것이다. (439~441쪽.)

 

  급진적 변화가 모조리 실패할 운명인 것은 아니다. 명예혁명도 급진적 변화였지만 지난 2,000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혁명이라 할 만한 결과물로 이어진 바 있다. 프랑스혁명은 지독한 혼란과 과도한 폭력,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등장 등 한층 더 급진적이었지만 그렇다고 앙시앵레짐을 재건하지는 않았다.
  명예혁명과 프랑스혁명 이후 한결 포용적인 정치제도가 태동했는데, 세 가지 요인이 크게 이바지했다. 첫째, 신흥 상인 및 사업가 계층은 자신들에게도 이로운 창조적 파괴의 효과가 파급되길 바랐다. 이들은 혁명 연합의 주요 일원이었고 자신들에게 해가 될 게 뻔한 또 다른 착취적 제도의 발달을 바라지 않았다.
  둘째, 명예혁명과 프랑스혁명 모두 광범위한 연합이 손을 잡았다. 가령 명예혁명은 소수 집단이나 편협한 특정 이해관계에 따른 쿠데타가 아니라, 상인, 산업가, 젠트리 계층 및 다양한 정치 세력이 지지한 운동이었다. 대체로 프랑스혁명 역시 마찬가지였다.
  셋째 요인은 잉글랜드 및 프랑스의 정치제도 역사와 맞물려 있다. 새롭고 한층 포용적인 정권이 발달할 수 있는 밑바탕을 만든 것이다. 양국 모두 의화와 권력 분점의 전통이 있었다. 잉글랜드는 마그나카르타, 프랑스는 명사회의 형태로 권력을 분점했다. 더욱이 명예혁명과 프랑스혁명은 절대주의 정권, 도는 그런 체제를 바라는 정권의 힘이 이미 쇠락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명예혁명이든 프랑스혁명이든 이런 정치제도 덕분에 새로운 지배층 또는 소수 집단이 정부를 장악하고 기존 경제 기반을 무너뜨려 지속 가능한 무소불위의 정치권력을 수립하기 어려웠다. (...) 오랜 세월 착취적 정치·경제 제도가 뿌리내려 지배자의 권력에 아무런 제약이 가해지지 않았던 사회의 상황과는 극적인 대조를 보일 수밖에 없다. 이런 사회에서는 포용적인 경제제도를 확보할 목적으로 기존 정권에 대항하는 반대 세력을 지지하고 자금을 대줄 강력한 신흥 상인이나 사업가가 등장할 수 없다. 서로의 권력을 견제하는 광범위한 연합세력도 나타날 수 없다. 새로운 지배자가 권력을 찬탈하거나 남용하는 것을 막으려는 정치제도 또한 마련될 수 없다. (513~515쪽.)

 

  포용적 제도를 향한 거대한 행보가 시작된 명예혁명이나 메이지유신에서 발견되는 핵심적인 요인은 절대주의 체제에 맞서 싸우고 절대주의적 제도를 포용적이고 다원적인 제도로 갈아치우겠다는 각오를 한 광범위한 연합이 힘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광범위한 연합이 혁명을 일으키면 그만큼 다원주의적인 정치제도가 태동할 가능성도 커지게 된다. 시에라리온과 에티오피아에서 과두제의 철칙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았던 이유는 기존의 제도가 극도로 착취적이었을 뿐 아니라, 시에라리온의 독립운동이나 에티오피아의 더그 쿠데타가 그런 광범위한 연합의 혁명이 아니라 착취의 고삐를 자신들이 쥐고자 안달했던 개인 및 집단의 권력 찬탈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519쪽.)

 

  오늘날 국가가 실패하는 원인은 착취적 경제제도가 국민이 저축이나 투자, 혁신을 하겠다는 인센티브를 마련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착취적 정치제도는 착취로 득을 보는 세력의 권력을 강화해주는 식으로 이런 경제제도를 뒷받침해준다. 착취적 정치·경제 제도는 그 구체적인 내용은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를지 몰라도 국가가 실패하는 근본 원인일 수밖에 없다. (...) (528쪽.)

 

  보츠와나는 어떻게 구시대의 틀을 깨고 나올 수 있었을까? 독립 이후 신속히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를 발전시킨 덕분이었다. (...) 물론 더 어려운 질문은 보츠와나가 어떻게 안정적인 민주주의와 다원주의적 제도를 확립하고 포용적 경제제도를 선택했는가일 것이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와중에 말이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식민 지배 말기에 마련된 결정적 분기점이 보츠와나의 기존 제도와 어떤 상호작용을 했는지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시에라리온과 짐바브웨 등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는 독립이라는 기회를 놓쳐버렸고 식민 지배 당시 존재하던 착취적 제도가 다시 자리를 잡았다. 보츠와나에서는 독립 초기 단계가 사뭇 다르게 전개되었는데, 대체로 츠와나의 역사적 제도가 마련해준 배경 덕분이었다. 이 과정에서 보츠와나는 명예혁명에 견줄 수 있을 만큼 여러모로 잉글랜드와 유사한 면을 보여주었다. 튜더왕조하에서 잉글랜드는 급속도로 중앙집권화를 이룩했고, 최소한 군주에 제동을 걸고 어느 정도 다원주의를 확보하려는 열망이 깃든 마그나카르타와 의회의 전통을 뿌리내렸다.
  보츠와나 역시 그런대로 중앙집권화를 이루었고 식민 지배를 넘어서까지 비교적 다원주의적인 부족제도를 보전했다. 엄격하게 집행되는 사유재산권을 선호하는 대서양 무역상, 산업가, 상업적 성향의 젠트리로 구성된 광범위한 신흥 연합세력이 잉글랜드에 있었다면, 보츠와나에는 확고한 절차적 권리를 선호하는 츠와나 추장과 경제의 핵심 자산인 가축을 소유한 엘리트층으로 구성된 연합세력이 있었다. 츠와나 부족은 토지는 공동으로 소유했지만 가축은 사유재산이었고, 엘리트층 역시 엄격한 사유재산권 집행을 선호했다.
  그렇다고 역사의 우발적 선택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의회 지도자와 새 군주가 명예혁명을 권력 찬탈의 수단으로 사용하려 했다면 잉글랜드의 역사는 사뭇 다르게 전개되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운 좋게도 독립 이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의 수많은 지도자와 달리 선거제도를 뒤흔달기보다 선거를 통해 권력 경함을 벌이도록 한 세레체 카마나 퀘트 마시르 등 탁월한 지도자가 없었다면 보츠와나의 역사 역시 매우 다른 양상으로 펼쳐졌을 것이다. (578~580쪽.)

 

  당이 경제제도를 틀어쥐고 있기 때문에 창조적 파괴의 범위가 극도로 제한되며 정치제도에서 급진적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이런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소련에서 그러했듯이 착취적 정치제도하에서 중국의 성장 경험은 지금까지 다른 지역에 비해 그만큼 뒤덜어져 있었기 때문에 한결 수월했던 것이다. 중국의 1인당 소득은 미국과 서유럽에 비해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물론 중국의 성장이 소련의 사례보다 한층 다각적인 것은 사실이다. 중국은 방위산업이나 중공업에 의존하지 않으며 중국 기업인의 창의성 또한 대단하다. 그렇다고 해도 차취적 제도가 포용적 제도에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한 중국의 성장은 언젠가 김이 빠질 수밖에 없다. 정치제도가 착취적 성향을 버리지 못하는 이상, 다른 모든 유사한 사례에서 증명되었듯이 성장은 태생적 한계를 지니기 때문이다. (621쪽.)

 

  우리는 이런 사례를 통해 중요한 몇 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중국에서처럼 권위주의적이고 착취적인 정치제도하의 성장은 당분간 계속된다 해도 포용적 경제제도와 창조적 파괴로 지탱되는 지속적 성장으로 연결되지 못할 것이다.
  둘째, 근대화이론이 주장하는 바와 대조적으로 권위주의적 성장이 민주주의 또는 포용적 정치제대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현재 일정 수준의 성장을 경험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 등 여러 권위주의 정권은 정치제도를 포용적인 방향으로 손질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전에 이미 성장이 한계에 부닥칠 가능성이 높다. 엘리트층 사이에서 그런 변화에 대한 욕구가 커지거나 강한 반대 세력의 부상으로 어절 수 없이 변화를 선택하는 시기가 온다 해도 이미 성장이 멈춘 지 오래일 가능성이 높다.
  셋째, 권위주의적 성장은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따라서 정치·경제적 엘리트층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이 모형을 선택하는 나라가 많을지도 모르지만 국제사회가 권위주의적 성장을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를 위한 모형으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 (627~628쪽.)

 

교정. 초판 24쇄

209쪽 8줄 : 재 레드 -> 재레드

438쪽 밑에서4줄 : 앨리트층의 -> 엘리트층의

485쪽 밑에서6줄 : 채에 -> 체에

565쪽 8줄 : 사에라리온과 -> 시에라리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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