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십자수 본문
1. 즐겨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DJ는 친구의 입을 빌려 느림의 미학을 이야기했다. 그는 불과 백여년전의 조상들에 비해 두배가 훨씬 넘는 삶의 시간을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보다 몇배는 더 바쁘고 조급하게 살아가는 작금의 세태를 이야기했다. 가벼운듯 하면서도 무게중심을 잃지 않는 그 '노회한' DJ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였기에 그 설득력은 상당했다.
2-1. 십자수의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투자한 시간은 곧 '노력'이라는 단어로 번역될 수 있으며, 그 노력은 완성자에게는 보람으로, 선물받는 사람에게는 감동으로 형질전환된다.
2-2. 물론 그 점은 십자수의 가장 큰 단점이기도 하다. 대체 언제 완성될지도 모르는 도안과 바탕천을 붙들고 한땀한땀 실을 놓아가는 짓거리, 어지간한 정신상태 아니고서는 감당하기 힘들다. 나도 그거 인정한다.
3. 나처럼 먹고 싶은거 다 먹고 자고 싶은거 다 자고 학교 다닐거 다 다니면서 녀석은 기껏해야 1년에 2, 3개 정도나 만드는 정도. (전에 만들었던 달마도는 1년 꼬박 걸렸다.) 십자수는 투자한 시간에 비해 그 화려함이 가장 적은 축에 끼는 취미생활이다.
4. 좀 변태처럼 말하자면, 하얀 바탕천에 색색의 실을 심어놓을 때 나는 그 사각거리는 소리와 촉감을 좋아한다. 혹자는 찌질하다고 말하고 혹자는 덩치에 안 어울린다고 말하지만 세상과 부대끼는게 너무 짜증나고 피곤할 때 라디오나 음악을 들으면서 십자수하면 기분이 (아아아아주 약간) 풀린다.
(2008.1.3. 에 쓴 것을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