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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인간의 모험 (이종서, 웨일북, 201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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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인간의 모험 (이종서, 웨일북, 2018.)

Dog君 2018. 9. 26. 14:50


1. '~의 역사' 류의, 딱딱하고 건조하지 않은 문장으로 우리 주변의 일상이 가지고 있는 시간축을 꿰뚫어 보게 해주는 책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결코 애초부터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일련의 역사적 과정을 거친 후에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에 있다고 믿는 나로서는 이런 책은 늘 환영이다. 그것은, 작게는 내가 일상적으로 누리는 사소한 것들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일이고, 크게는 내 삶에도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책 한 권으로 내 삶이 그만큼 더 많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그런 점에서, 기본적으로는 괜찮은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2-1. 이 책에서 말하는 사무인간, 혹은 사무직 노동이란 대체로 1평짜리 칸막이 안에서 어깨와 허리 통증에 시달리고 실적 압박과 사람 사이의 스트레스에 찌들곤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노동이 지금 당장 당신만 겪는 일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수없이 많은 이들이 시달려 온 것이었음을 알게 되면, 무엇보다 일단 '위안'이 된다.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싶어서.


2-2. 그리고 하나 더. 지리한 일상의 역사를 파헤치면,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도 함께 찾을 수 있다. 지금 당신이 살아내는 그 일상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에까지 이르렀는지 알게 되면, 내가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내 일상을 변화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전망을 찾을 수 있으니까.


3. 쓰고 보니 너무 진지 빨고 있는 것 같다. 뭐 됐고, 그냥 이 책은 재미있다. 잘 읽힌다. 그걸로 끝.


4-1. ...일리가 없지. 사실 아쉬운 점도 많은 책이다. 기획은 정말 좋다고 생각하는데, 편집이 너무 자잘한 것이 흠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가독성을 고려해서 그런 거겠지만, 너무 잘게 나뉜 장절 때문에 내용이 약간 빈약한 느낌이 있다. 좀 더 풍성하게 예시를 들었으면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다. 책 전반적으로 구체적인 수치나 시기, 사건, 인물을 거명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은 듯한 느낌이 많이 든다. 성큼성큼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지만, 이런 글은 조금만 날카롭게 따지고 들어가면 의외로 쉽게 무너질 수가 있다.


4-2. 이 책의 기획의도가 사무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상에 담긴 역사적인 의미를 돌아보게 하려는 것에 있었다면, 2장 '먹고살기 위한 모험' 같은 것은 과감하게 줄이는 것도 나았을 것이다. 수천 년간의 서양사에서 2018년 현재의 사무직 노동을 연결시키기는 조금 어려우니까. 반대로 3장과 4장은 좀 더 내용을 풍성하게 했다면, 길가는 사무직 노동자들이 너도나도 공감의 따봉을 남발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5. 뭐, 말은 이렇게 하지만, 이 책 이런 모습을 갖추게 된 것도 나름의 '역사'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 번 읽고 넘어가는 나같은 게으른 독자보다 더 절실하고 치열하게 기획하고 조사하고 집필한 책일테니까. 이런 좋은 기획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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