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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회의 471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18.9.5.)

Dog君 2018. 9. 8. 18:50


  페이스북에서 열심히 눈팅 중인 한기호 선생의 담벼락에서 보고 냉큼 구입. 정기간행물은 사보지 않는데, 기획이 지금 나에게 너무 필요한 것이라 앞뒤 안 보고 바로 주문한 것을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 싶어서 심지어 전자책으로 미리 보고 실물은 따로 주문... 찢어지는 가난뱅이 주제에 이 무슨 돈지랄인가) 조금 전에 받았다.


  ‘예능인문학은 인문학이 아니다’라는 기획 그대로의 내용을 한참 고민 중이기도 하고, 평소부터 흠모하던 한기호, 강양구, 김겨울 같은 분들의 글이기도 하니 더 관심이 가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제목은 기획회의 471호라고 했지만, 사실 내가 관심있는 부분은 기획 파트 정도네... ㅡㅡ;;)


  전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도 대체로 공감한다. 코딱지만큼이라도 주워들은 바가 있어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말을 보탤만한 글은 강양구의 「유시민이 예능에 몰두해야 하는 이유」와 김겨울의 「채사장의 얕고 넓은 인문학」 정도일텐데, 특별히 이의를 제기할만한 거리는 없다. 요컨대 유시민과 채사장이 쉽고 단순한 설명이라는 미명 아래 사학사와 철학사를 ‘두부자르기’하고 있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텐데, 당장 쉽다는 이유로 인간의 그간 차곡차곡 쌓아온 앎의 깊이를 이렇게나 얕게 만들어서야 쓰겠나. 앎이라는 것이 이토록 얕고 단순한 것이었다면, 피똥 싸면서 공부하는 애들은 어디 뭐 대가리에 총 맞아서 그러고 있겠냐고. (『역사의 역사』에 관한 내 생각은 다른 글에 정리해두었다.)


  물론 몇 가지 작은 부분에서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도 하고, 좀 과하다 싶은 글도 있다. 황교익에 관한 글 같은 건, 글쎄 이게 전체 기획에 완전히 부합하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황교익과 유시민·채사장은 약간 결이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뭐 암튼 그걸 여기서 세세하게 따질 생각은 없고.


  이 기획이 중요한 것은, 이 기획 다음을 모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의 역사』에 관한 내 생각을 정리하면서 나는, 예능인문학을 논할 때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비판’이 아니라 ‘다음에 대한 모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이 기획의 서문에 해당하는 「인문의 임무를 생각하다」에서 “대중이 인문화되어야 합니다”라는 문장이 약간 눈에 걸렸다. 여기서 말하는 “인문화”가 무엇인지 아직 모호하기 때문이다.


  “인문화”가 무엇인지 답해야 할 의무는 인문학에게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인문학이 당장 이에 대한 대답을 못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당장 역사학만 해도 ‘학진체제’와 세부화·심화된 연구환경에서 자신의 성과를 사회화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인문학은 각각의 시민들이 자기 주변상황을 설명하고 자기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데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 불량식품 욕하는 거야 쉽다. 그런데 불량식품을 정말로 퇴치하고 싶으면, 당장 주머니에 있는 오백원짜리 동전으로 사먹을 수 있는 다른 것을 내놔야지, 그 앞에서 갑자기 산삼 얘기를 꺼내면 안 될 것 같다. 나는 설민석과 최진기가 인기 있는 이유가, 그냥 말 잘하고 농담 잘하기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매우 당연하게도, 『기획회의』가 이 물음에 대답해야 할 의무는 없다.


  대답해야 할 의무는 연구자, 그러니까 나 자신에게 있다. 김경집이 「SPA 상품으로의 인문학에서 벗어날 때」에서 지적한 것처럼, 그리고 톰 니콜스가 『전문가와 강적들』에서 지적한 것처럼, 그것이 민주주의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연구자에게 부여된 사회적 책무이다. 고나리질도 정말정말 중요하고 꼭 필요하니까 그건 지금까지 해 온 것대로 계속 하고, 그와 별개로 엉덩이 들고 일어나서 뭐라도 하나 하는 거, 그것도 무척 중요한 것 아니겠나. 사람 없는 산속에서 수십 년씩 무공 수련해서 한 방에 무림을 평정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 우리 다 잘 알고 있잖은가. 뭐라도 하면서 부딪히고 깨지면서 경험 데이터를 쌓는 것, 그게 필요한 거 아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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