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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想나부랭이

노무현 단상

Dog君 2009. 5. 25. 13:20
1-1. 2002년이었다. 한창 열혈에 불타던 나는 그 해 하반기 내내 한가지 주제에 매달려 사람들(주로 선배들)과 입씨름을 벌였다. 그 주제의 제목은 '노무현을 찍어야 하는가 권영길을 찍어야 하는가'였다. 그 때 주로 나와 입씨름을 했던 선배는 노무현을 '지금 상황에서 이 정도라도 되는 사람'으로 간주했고 나는 노무현을 '기껏해야 아직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사람'으로 간주했다. 어차피 끝이 날 수 없는 토론이었기에 둘이 만난 날은 언제나 서로의 생각 차이만을 확인한 채 에라 모르겠다 소주나 진탕 마시고 끝나는 날이었다.

1-2. 잘 알다시피 노무현은 그 해 대선에서 승리했다.

2. 사실 그런 식의 토론은 이후에도 줄곧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 내용과 상관없이 토론당사자 모두 이제 적어도 한국사회가 극우반공이데올로기를 선택지에서 뺄 수 있게 되었다는, 모종의 안도감 같은 것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었다. 그 암묵적 전제가 (그 당시의 내 시선에서는 매우 미흡했지만) 적어도 한국사회가 최소한의 천박함에서는 벗어났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다.

3. 작년이었던가 올초였던가. 역사교과서 개정 문제가 불거졌다.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마저 무시되었다. 머리통만 바뀌었을 뿐인 정부부처들은 이전 정부와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강요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잡음도 없이 원활하게 작동했다. 수십년간 쌓아올려진 한국사의 연구성과들은 (보잘것 없는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친북이니 용공이니 하는 이름으로 단죄되었다. 문득 한국사회의 대립전선이 다시 20년 전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우리는 '민주 대 독재' 그리고 '평화 대 냉전'이라는 구시대적 양극단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4. 여러 신 중에서 가장 무서운 신은 역사의 여신 클리오라고 했던 것이 엥겔스였던가. 클리오의 수레바퀴는 역사로부터 뒤쳐진 존재들을 가차없이 깔아뭉개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나는 최근 몇 개월간 그 마차에 깔리고도 끈질기게 부활을 시도하는 좀비들을 목도하고 있다. 오래된 망령이라고 하기에는 그것들이 가진 권력과 힘이 아직 너무 강고하다.

5. 노무현에 대한 뇌물 스캔들과 죽음은 재임 기간의 공과와는 별개로, '어떤 특정한 가치'의 도덕적 몰락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도덕적 결함을 지닌 자들에게 버젓이 현실권력을 몰아준 이 사회의 가치수준을 볼 때 도덕적인 의미에서의 몰락이 결정적인 의미에서의 죽음과 연결되지는 않을 듯 하다. 그의 죽음이 '어떤 특정한 가치'의 사망선고가 될지 다시 일어나는 계기가 될지 지금으로서는 잘 모르겠다.

6. 영결식 당일을 기다려 볼 일이다. (그 날 지방갈 일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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