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진주를 여행하다 2 - 강주연못 본문
1. 진주시내에서 221번이나 33번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면 사천시와 접하고 있는 강주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 내가 유년시절을 보내기도 했던 그 마을에는 인근에서도 잘 알려진 연못이 있는데 따로 이름은 없고 그냥 다들 '강주연못'이라고들 부른다.
2. 몇년전까지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관리하던 동네 산책로 정도로 유지되었는데 언젠가부터 관리가 소홀해지고 황소개구리까지 범람하면서 먹이사슬이 파괴되고 결국 물도 거의 말라버린 채로 방치되고 있던 것을 시에서 상당한 돈을 들여 대대적으로 재정비사업을 추진한 끝에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지로 거듭났다. 이번에 가보니 축제도 추진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좀 묘하긴 했다.
3. 유년시절의 추억이 여럿 얽혀있던 곳이라 내게 이 곳은 사적지나 관광지라는 느낌이 무척이나 약하다. 겨울밤이면 깡통에 담은 잿불로 쥐불놀이를 즐기기도 했고, 용돈없는 날엔 이 근처에서 빈병을 주워다가 아이스크림으로 바꿔먹었던 기억도 있으니까.
4. 주말이면 외지에서 몰려든 관광객으로 북적대지만 평일 오전처럼 한가한 시간에는 동네 촌로들이 산책을 즐기는 정도라서 혼자서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기에 이만한 곳도 드물다. 간혹 황소개구리 소리가 들려와 흠칫 놀랍기도 하지만... 연못 주위를 한바퀴 도는 것도 좋지만 이곳저곳에 편의시설도 꽤나 구비되어 있고 나 어릴 적에 큰 나무가지에 매달아 두었던 그네도 아직 여전해서 이런저런 재미가 쏠쏠한 곳이다.
5-1. 이곳의 연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설異說들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고려시대의 진영터라는 설이 중론으로 인정받는 분위기이다. 전근대가 전공은 아니라서 가타부타 말할 처지는 못되지만 근거들이 조금 부족하지 않나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5-2. 고려 말 배극렴이 강주장군으로 있으면서 왜구에 대비하기 위한 진영을 구축했다는 기록과 신라 말에 강주장군 유문이 견훤에게 항복했다는 기록, 그리고 진주 지역 인근에 남아있는 '강주'라는 지명이 이곳 밖에 없다는 점을 함께 미루어 볼 때 이 연못을 그 강주진영터로 비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5-3. 하지만 강주康州라는 지명은 고려 성종 이전까지 진주 지역 전체를 일컫는 지명이었기 때문에 이 지명을 근거로 이 곳을 진영터로 규정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는 주장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 내가 살았던 '강주'는 한자 표기가 '康州'가 아니라 '姜州'였는데 말야. 진주문화원에서 펴낸 '진주이야기 100선'에서는 좀 민망한 다른 설화도 소개하고 있지만 거기 10년 넘게 살았던 나도 처음 듣는 얘긴데;;;
5-4. 봄이 형 말마따나 전통이란건 언제나 만들어지는 거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 뭐. 어디 하루이틀인가.
[Dog君, 2009.]
[Dog君, 2009.]
2. 몇년전까지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관리하던 동네 산책로 정도로 유지되었는데 언젠가부터 관리가 소홀해지고 황소개구리까지 범람하면서 먹이사슬이 파괴되고 결국 물도 거의 말라버린 채로 방치되고 있던 것을 시에서 상당한 돈을 들여 대대적으로 재정비사업을 추진한 끝에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지로 거듭났다. 이번에 가보니 축제도 추진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좀 묘하긴 했다.
[Dog君, 2009.]
3. 유년시절의 추억이 여럿 얽혀있던 곳이라 내게 이 곳은 사적지나 관광지라는 느낌이 무척이나 약하다. 겨울밤이면 깡통에 담은 잿불로 쥐불놀이를 즐기기도 했고, 용돈없는 날엔 이 근처에서 빈병을 주워다가 아이스크림으로 바꿔먹었던 기억도 있으니까.
[Dog君, 2009.]
4. 주말이면 외지에서 몰려든 관광객으로 북적대지만 평일 오전처럼 한가한 시간에는 동네 촌로들이 산책을 즐기는 정도라서 혼자서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기에 이만한 곳도 드물다. 간혹 황소개구리 소리가 들려와 흠칫 놀랍기도 하지만... 연못 주위를 한바퀴 도는 것도 좋지만 이곳저곳에 편의시설도 꽤나 구비되어 있고 나 어릴 적에 큰 나무가지에 매달아 두었던 그네도 아직 여전해서 이런저런 재미가 쏠쏠한 곳이다.
[Dog君, 2009.]
5-1. 이곳의 연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설異說들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고려시대의 진영터라는 설이 중론으로 인정받는 분위기이다. 전근대가 전공은 아니라서 가타부타 말할 처지는 못되지만 근거들이 조금 부족하지 않나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5-2. 고려 말 배극렴이 강주장군으로 있으면서 왜구에 대비하기 위한 진영을 구축했다는 기록과 신라 말에 강주장군 유문이 견훤에게 항복했다는 기록, 그리고 진주 지역 인근에 남아있는 '강주'라는 지명이 이곳 밖에 없다는 점을 함께 미루어 볼 때 이 연못을 그 강주진영터로 비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5-3. 하지만 강주康州라는 지명은 고려 성종 이전까지 진주 지역 전체를 일컫는 지명이었기 때문에 이 지명을 근거로 이 곳을 진영터로 규정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는 주장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 내가 살았던 '강주'는 한자 표기가 '康州'가 아니라 '姜州'였는데 말야. 진주문화원에서 펴낸 '진주이야기 100선'에서는 좀 민망한 다른 설화도 소개하고 있지만 거기 10년 넘게 살았던 나도 처음 듣는 얘긴데;;;
5-4. 봄이 형 말마따나 전통이란건 언제나 만들어지는 거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 뭐. 어디 하루이틀인가.
[Dog君,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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