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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돌! 한국사 배틀 (김대한, 알키미스트, 202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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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돌! 한국사 배틀 (김대한, 알키미스트, 2025.)

Dog君 2025. 8. 26. 09:34

 

  싸움구경만큼 재미있는 것이 또 없습니다. 역사학도 비슷해서, 서로 상반되는 입장을 불러 앉혀서 논쟁을 붙이면 그냥 범범한 이야기도 괜히 더 재미있고 흥미진진해집니다. 역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그런 싸움들을 멋진 일러스트와 함께 구현한 책이 바로 『격돌! 한국사 배틀』입니다.

 

  논쟁(배틀)의 형식을 취했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기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논쟁의 구도에 맞춰서 재배치한다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중고등학교에서 (잘 하면 대학교에서도) 보조자료로 활용하기에 좋을 것 같습니다. 교과서에서 배운 건조한 사실들도 논리에 따라 재배치하면 생동감이 부여되니까요. 비유하자면, 교과서가 체육관에서 혼자 하는 단순반복 훈련이라면 논쟁은 링 위에서 벌이는 실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저는 이 책의 장점이 단지 형식에만 있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이 책은 '읽을수록 마음에 드는 책'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형식이 흥미롭네 하는 정도였지만 읽을수록 점점 더 좋아졌거든요.

 

  이 책은 논쟁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그 틀에 얽매이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논쟁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차이를 중심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는 어느 쪽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를 고르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되기 마련입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풍성한 이야기들이 납작해지기도 하구요.

 

  예컨대 식민주의 역사학을 이야기할 때는 쓰다 소키치나 이병도, '뉴라이트' 등이 한 쪽에 놓이는 것이 상례입니다. (학계의 논문도 대개 그렇죠;;) 이런 구도에서 식민주의 역사학을 둘러싼 논의는 양국의 내셔널리즘이 충돌하는 전쟁터가 되기 마련입니다.

 

  이 책은 그러한 구도에 얽매이지 않으려 여러모로 노력하는데, 전방후원분을 시작으로 식민주의 역사학을 다루는 3장은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시작하자마자 클리셰를 부숩니다. 기존의 논의에서 이병도 등을 두던 자리에, 이 책은 이노우에 히데오井上秀雄를 앉힙니다.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독자에게는 낯선) 이노우에 히데오는 임나일본부설을 부정한 일본의 역사학자라고 합니다. 이런 이가 논쟁의 한 기둥을 맡으면서 3장의 논의는 어느 쪽이 옳으냐가 아니라 고대사회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로 자연스럽게 나아갑니다. 고대의 동북아를 근대적인 민족사의 잣대로 억지스럽게 재단하기보다는 서로 교류하며 공존했던 공간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열리는 것이죠. 이러한 전개는 식민주의 역사학을 엄격히 비판하면서도 적대적 내셔널리즘의 고양으로 귀결되지 않겠다는 치열하고 섬세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입니다.

 

  이 책의 섬세함은 이뿐이 아닙니다. 우리가 교실에서 가르치고 배웠던 역사는 이름난 정치가와 장군을 영웅시하거나, 왕이나 귀족이 즐기던 으리으리한 문화유산의 가치를 말하거나, 약육강식의 국제/사회질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위에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간의 역사학 연구/교육은 국가주의와 영웅주의적 전제를 온전히 비판하거나 극복하지 못했고,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이를 적극적으로 설파하고 뒷받침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역사학계가 그간 세계관과 철학의 문제를 너무 등한시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사 최강의 국가'를 말하는 5장은 이러한 전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처럼 읽힙니다. 이 책은 국가적인 의미에서 '최강最强'이라는 표현을 영토나 군사력의 문제가 아닌 문화적 역량이나 사람들의 삶의 질까지 포괄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합니다. 강력한 군사력이나 광대한 영토 같은 것에 집착하는 '진보적' 역사학과 (누구 말하는지 아시죠..?) 유사역사학 등과 견주어 볼 때 어느 쪽이 더 성숙한 관점이고 다음 세대에게 더 많이 보여주어야 할 쪽인지는 굳이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앞에서 이 책이 역사 수업에서 좋은 보조자료가 될 거라고 말씀드렸는데, 그 말에는 이해하기 쉽게 쓰여졌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책 전반에 깔린 세계관까지 학습자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교강사가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국가주의적/영웅주의적 교훈 외에도 역사를 통해 익힐 수 있는 것들이 더 많다는 사실이, 역사 공부란 단지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많이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문제라는 사실이,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독자들에게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 역사는 왜 중요할까요? 과거 동양의 역사가들은 역사를 거울에 비교하곤 했습니다. 거울을 통해 자기 모습을 보듯이, 역사를 통해 지난 날을 돌아보며 겸손을 배우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교훈으로 삼자는 것이지요. 이 책에서 펼쳐진 뜨거운 대화들을 통해 부디 역사의 재미를 느끼셨기를, 또 역사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균형 있는 관점을 기르셨기를 바랍니다. 그럼, 여러분이 만들어갈 새로운 역사를 기대하겠습니다! (348~349쪽.)

 

교정. 초판 1쇄

110쪽 밑에서2줄 : 『만류원류고』 -> 『만주원류고』

116쪽 각주 : Greatest One All Time -> Greatest Of All Time

117쪽 1줄 : 깡패? -> 삭제 (문맥상 상대의 말을 되묻는 상황인데, 앞의 대사에서 "깡패"라는 언급은 등장하지 않는다.)

143쪽 각주 : 우물 정(丼)

222쪽 각주 : 우물 정(丼)

223쪽 1줄 : 우물 '정(井)' (143, 222, 223쪽 모두 '우물 정'이 맞지만, 가급적 통일하는 게 좋겠다.)

239쪽 밑에서1줄 : 남원군의 -> 남연군의

313쪽 밑에서2줄 : 교통국이야말로  내가 -> 교통국이야말로 내가 (띄어쓰기 2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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