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포스트모던 시대의 역사란 무엇인가 (김현식, 휴머니스트, 2006.) 본문

잡冊나부랭이

포스트모던 시대의 역사란 무엇인가 (김현식, 휴머니스트, 2006.)

Dog君 2025. 9. 29. 22:10

 

  역사학을 공부할 때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문제는 주관과 객관의 문제입니다. 제가 배운 '국사' 교과서 제일 첫머리에 나온 주제도 이거였습니다. 역사학이란 과거의 사실을 객관적으로(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역사학이란 과거의 사실에 대한 역사가의 주관적 해석의 산물인지, 하는 문제 말입니다.

 

  랑케로 대표되는 전자의 입장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역사상에 부합합니다. (근대적인 분과학문으로서의 역사학 지위를 확립한 것으로 알려진 랑케의 압도적 위상을 생각하면 그럴 법도 합니다.) 과거를 기록한 사료를 다 그러모으면 과거에 '실제로'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객관적으로' 즉, 누가 봐도 납득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실재'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죠. 설혹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사료가 불충분하기 때문이지 사료만 충분히 남아있다면 언젠가는 과거의 완전한 재구성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의 역량과 진보에 대한 무한한 자신감이 팽배하던 19세기의 지적 낙관주의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후자의 입장은 역사 서술이 역사가의 주관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합니다. 사료를 기록한 자나 그 사료를 해석하여 역사를 연구하는 자나 결국에는 인간인 이상 각자의 주관적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여기서 흔히 예시로 드는 것이 영화 《라쇼몽》입니다. 하나의 강도살인사건이지만 그에 대한 증언이 각자 갈리는 모습이 꼭 역사가의 주관적 해석들이 엇갈리는 것처럼 보이지요. 이는 20세기 전반기에 인간이 겪었던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인종주의적 대학살의 경험으로 그간의 지적 낙관주의에 대한 회의감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가장 널리 통용되는 답변은 카의 것입니다. 흔히 카는 후자의 입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역사란 무엇인가』의 1장만 읽으면 이런 오해를 하기 십상입니다.) 기실 카는 양자의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잡기 위해 애쓴 쪽에 가깝습니다. (후자의 입장은 콜링우드의 것이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카는 역사가의 작업이 "사실을 객관적으로 편찬하는 것이며 해석보다는 사실이 무조건 우월하다고 보는" 입장과 "해석과정을 통해서 역사의 사실들을 확정하고 지배하는 역사가의 정신의 주관적 산물이라는"(이상 E. H. 카 저, 김택현 역, 『역사란 무엇인가』, 까치글방, 1997, 49쪽.) 입장이 둘 다 타당치 못한 역사이론이며, 역사가란 그 양 절벽의 사이를 어렵사리 항해하는 것과 같다고 분명히 밝힙니다.

 

  전자(사실 숭배주의)에 대한 카의 비판은 주관으로부터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의 속성을 생각하면 쉬이 납득이 됩니다. 하지만 후자(해석 숭배주의)에 대한 카의 비판은, 주관성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이냐가 문제가 됩니다. 이에 대해 카는 담배를 사러 갔다가 차에 치어 죽은 로빈슨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삶에 유익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합니다. 음주운전자의 운전을 금지하거나 교통신호체계를 정비하는 등의 노력은 제2의 로빈슨을 막을 수 있지만 끽연을 금지하거나 길을 건너서 담배를 사러 가는 행위를 금하는 것은 올바른 인과관계와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거죠.

 

  여기까지가 주관과 객관 사이에서 카가 내놓은 나름의 해법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결론은 지금까지도 크게 다르지 않은 형태로 통용되고 있어서, 시중에 나온 개설서에서도 흔히 주관성을 인정하면서도 최대한 객관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정도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주관과 객관의 문제에 대해 지금의 역사학자들 역시 여전히 곤궁한 상태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적절한 선에서 양자 사이를 잘 헤쳐나가야 한다는 말은, 기실은 이도 저도 아닌 입장이라는 거죠. 어떤 분과학문의 방법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궁색한 답변인 것이 사실입니다.

 

  김현식의 『포스트모던 시대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이러한 궁색함을 예리하게 찌릅니다. 카가 말한 주관적 해석의 한계선인 유익함이라는 기준이란 전적으로 역사가의 관점에 입각하여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모든 역사서술은 역사가의 주관성에 거의 완전하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러니 카가 말한 저 유명한 문장,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끝임없는 대화"는 애초에 불가능한 명제입니다. 서로 동등해야 그걸 '대화'라고 할 수 있는 거니까요.

 

  논의를 더 진전시키기 위해 저자는 서양철학의 계보를 훑습니다. 이 책에서 독서 난이도가 갑자기 확 올라가는 2부를 통해 저자는 서양철학이 암묵적으로 전제했던 '객관'과 '주관'의 의미를 논합니다. 서양철학에서 (그리고 서양철학의 영향을 받은 근대 이후의 전세계에서) (객관성을 추구하는) 자연과학은 (주관성에 속박된) 인문학에 비해 우등한 것으로 간주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입니다. 참된 지식이란 객관성과 보편성, 합리성과 논리성, 일반성과 유용성, 확실성과 절대성을 모두 지닌 것이어야 하고, 그리고 객관과 주관은 언제나 이항대립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서양철학은 인간의 주관성을 방어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객관성을 어떻게 가닿을지를 고민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의 인식기반 위에 있었다는 것이죠.

 

  이 지점에서 저자는 '객관'과 '주관'의 문제를 되묻습니다. 자연과학에서 객관성은 동일한 체계와 매개를 통해 누구든 같은 과정을 거칠 수 있고 같은 결론을 도출하는 것을 통해 획득됩니다. 예컨대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수'라는 체계와 매개를 통해 모든 사람이 추론과 증명 과정을 동일하게 반복할 수 있습니다. 피타고라스 외에도 유클리드, 바스카라, 캄파, 페리갈, 가필드 등이 각자의 방식으로 피타고라스의 정리, 즉 직각삼각형의 빗변의 제곱은 나머지 두 변을 각각 제곱한 것의 합과 같다는 것을 각자의 방식으로 증명했습니다. 그러니 해석의 상이함과 다양함은 객관성과 보편성의 기준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역사학은 어떨까요. 역사학은 사료를 통해 질문하고 답하고 추론하면서 역사상을 구성합니다. 이러한 질문과 답변과 추론의 과정이 '언어'라는 매개를 통해 다른 이들(특히 동료 역사가들)의 재경험(이것은 흔히 피어 리뷰peer review의 형식을 가집니다.) 속에서 동일하게 반복될 수 있다면, 우리는 이것에 '객관성'을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점에서 역사적 지식은 "주관의 감옥에 수감된 단자(單子)"(148쪽)가 아니며, 이러한 과정이야말로 우리가 객관적 서술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앞서도 적었습니다만, 역사학 연구자라면 누구나 객관과 주관의 문제 앞에서 곤궁해지기 마련입니다만 (저도 마찬가집니다;;) 김현식의 이러한 해법은 적어도 지금까지 제가 아는 여러 답변 중에서는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글쎄요,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문득 궁금하네요.

 

  카는 이러한 사관을 단적으로 거부합니다. 그 토대인 사실(문서) 숭배주의가 '어리석은 오류'이기 때문입니다. 카에 따르면, 상식적인 역사관의 주창자들은 "사실은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가정하고, 그럼으로써 '역사란 논박될 수 없는 객관적인 사실을 최대한으로 편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모든 역사가들에게 똑같은, 말하자면 역사의 척추를 구성하는 어떤 기초적인 사실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헤이스팅스 전투가 1066년에 일어났다는 사실이 그 일례입니다. 그러나 카가 볼 때 이는 논리의 황당한 비약입니다. 단순한 사실의 확정, 예컨대 헤이스팅스 전투가 1065년이나 1067년이 아니라 1066년에 일어났음을 아는 것은 역사가의 작업을 위한 필요조건일 뿐 본질적인 기능이 아니고, 그럼으로써 '기본적인 사실은 대개 역사 그 자체의 범주가 아니라 역사가의 원료라는 범주'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기본적인 사실을 확정해야 할 필요성은 사실 자체의 어떤 성질에 따라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의 선험적 결정에 따라 좌우'됩니다. 이는 '어떤 사실에 발언권을 줄 것이며, 그 서열과 차례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역사가'이고, 사실의 선별 작업을 통해 과거에 대한 단순한 사실을 역사적 사실로 바꾸는 것도 역사가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카에 따르면, 사실은 결코 스스로 말하지 않습니다. (...) 따지고 보면 역사에서의 인식 주체와 인식 객체의 관계, 곧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관계를 논한 1장의 제목을 (흔히 번역되듯이) '역사가와 사실'이 아니라, (김택현 님이 제대로 번역했듯이) '역사가와 그의 사실'로 정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해석이라는 요소는 모든 역사적 사실에 개입'하며, 그럼으로써 역사가와 분리된 객관적인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카가 볼 때, "견고한 사실들을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축적하는 것이 역사의 기초라는 신념, 사실이란 스스로 말하며 아무리 많아도 지나치지 않다는 신념"은 근절되어 마땅한 것이었습니다. 그 지속력이 완고할 뿐만 아니라, 그 해악이 뿌리깊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이 같은 믿음은 '무미건조한 사실적 역사들을, 그리고 사실의 바다 속에 흔적도 없이 가라앉은 허섭쓰레기들에 관해서 더욱더 많이 알게 된 자칭 역사가들의 세세하게 전문화된 전공 논문들을 점점 더 엄청나게 양산'시켜 왔습니다.
  게다가 역사가를 단순한 호고가(好古家)나 병적인 수집가로 전락시키는데, '이 이단론에 굴종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 고약한 직업인 역사를 포기하고 우표 수집에 또는 무언가 다른 종류의 고물 수집에 착수하거나 아니면 정신병원에서 끝을 맺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카에 따르면, 사실 물신주의에 기초한 객관적 실증주의는 학문으로서 역사학의 위상을 굳히기는커녕 오히려 역사학을 붕괴시키는 것이었습니다. (24~26쪽.)

 

  (...) 카 자신에게 이러한 방향 전환이 사실 숭배주의로의 복귀를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역사학의 진로를 가로막는 두 개의 암초(사실 숭배주의와 해석 숭배주의) 사이로의 힘겨운 항해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방법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자신의 사실을 존중해야 한다는 역사가의 의무'를 일깨움으로써 '이론(異論)의 여지가 많은 사실의 과육(果肉)'과 '해석이라는 단단한 속알갱이'를 절묘하게 결합시키는 것으로서, 기브 앤드 테이크의 평등성을 부각시킨 역사 개념의 정립이 바로 그것입니다.
  (...)
  전설화된 명구(名句)의 탄생. 결국 카는 그 스스로가 현재의 역사가에, 그리고 그/그녀가 수행하는 능동적·주체적 역할에 무게중심을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들을 짓밟으면서 오만하게 해석을 내리는 사례들'을 제거하기 위해, 사실 숭배가 아니라 사실 존중에 기초한, 그리고 해석 숭배가 아니라 해석 존중에 기초한 상보(相補)의 평등관계를 역설했던 것입니다. (29~30쪽.)

 

  요컨대 카에 따르면 합리성은 개연성이며, 개연성은 곧 유용성입니다. 즉 교훈 제공의 유용한 원인만이 합리적이고 중요한 실제 원인입니다. 반면에 그 어떤 가르침도 제공하지 못하는 무용한 원인은 터무니없고 무시할 만한 우연적인 원인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유용성 여부의 판단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연구자의 연구 목적입니다. 목적에 얼마나 이바지하는가의 여부가, 연구자의 탐구 목적에 부합하는 교훈을 얼마나 제공하는가의 여부가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을 가름하는 궁극의 규준이기 때문입니다. (...)
  이처럼 역사의 해석에서 카에게 중요한 것은 목적과의 연계성이며, 교훈 제공의 여부입니다. 따지고 보면 그가 역사학과 자연과학의 유사성을 주장하는 가운데 역사가도 이란화해야 함을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카가 볼 때, '일반화의 진정한 핵심은 우리가 이를 통해 역사로부터 가르침을 얻고자 한다는 것, 즉 어떤 일련의 사건들에서 이끌어낸 교훈을 다른 일련의 사건들에 적용하고자 한다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일반화를 통해 역사가는 '미래의 행동에 대한 타당하고도 유용한 일반적인 지침'을 전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카가 '일반화를 거부하면서 역사는 오로지 특수한 것에만 관계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격렬히 비난한 이유가 여기서 비롯됩니다. 역사는 교훈을 주어야만 하며, 교훈은 또한 일반화를 통해서만 획득될 수 있다고 확신한 그가 볼 때 그들은 '역사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역사란 무엇일까요. 만약 연구자의 '의도된 목적이 역사에서의 인과관계를 다루는 열쇠'이고, 그 목적에의 기여 정도가 원인 선별의 기준이라면, 그리고 일반화를 통한 유용한 교훈의 추출과 전달이 역사 연구의 핵심이라면 역사란 대체 무엇일까요. 여전히 역사는 현재의 역사가와 과거의 사실 사이의 대화일까요. 그리고 그 대화는 기브 앤드 테이크의 공평한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유용성, 교훈은 연구 목적이 부각되는 시점에 이르러 카의 역사 개념은 급변합니다. 우선 미래가 중심축으로 등장하는 바, 역사의 정의는 '과거의 사건들과 서서히 등장하고 있는 미래의 목적들 사이의 대화'로 탈바꿈합니다. 게다가 역사가의 정의도 변화하는데, 이전의 역사가가 끊임없이 왜라고 질문하는 자였다면, 이제 참다운 역사가는 '왜라는 질문에 더하여 어디로라는 질문'도 끊임없이 제기하는 자로 진화합니다. (37~39쪽.)

 

  (...) 역사란 그러므로 카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현재와 과거 간의 상호작용이라기보다는 현재와 현재 사이의 상호작용입니다. 현재의 역사가가 탐구하는 것은 이미 소멸된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남아 있는 과거의 흔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역사가와 흔적 사이의 상호작용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요. 카가 주장했듯이 그것은 기브 앤드 테이크의 공평한 관계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역사적 지식의 획득 과정에서 인식 주체의 인식 객체의 관계는 평등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회색의 미라를 녹색의 삶으로 되살려내는 과정에서 현존하는 역사가와 현존하는 흔적 간의 관계는 결코 등가(等價)의 동등한 것일 수 없습니다. 흔적이란 실마리, 그것도 단편적이고 상징적이며 의심스런 실마리에 불과하며, 이를 일일이 짜맞추어 소멸된 과거의 형상을 구축해내는 것은 결국 역사가이기 때문입니다. (54~55쪽.)

 

  역사가와 자료 사이의 관계를 '반대 심문'으로 재설정하는 것은 이러한 작업의 출발점입니다. 소위 사실과 대화하려는 역사가가 그런 것처럼, 자신의 자료를 반대 심문하는 역사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평범한 사실을 역사적 사실로 만드는 것은 역사가임을, 역사가가 말을 건네기 전까지 사실은 아무런 의미 없이 죽어 있는 것임을. 하지만 대화자는 다르게 반대 심문자는 알고 있습니다. 사료란 맹종해야 할 전거(典據)나 심지어 의존해야 할 증거도 아니며, 단지 파헤쳐야 할 단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반대 심문자는 자료를 심문하려고 합니다. 사료의 여백과 빈틈을 파고들어 사료가 말해주는 것은 물론 사료가 감추려는 것과 왜곡하려는 것, 나아가 드러내지 않는 것과 말해주지 않는 것까지도 알아내려고 노력합니다. 그리하여 이미 밝혀진 사실들만을 단조롭게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실들을 추론해냄으로써 지식의 영역을 넓혀나가고자 노력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반대 심문자는 고문자의 오류를 반복하지는 않습니다. 반대 심문자로서의 역사가는 무엇보다 '역사가 역사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소멸된 과거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라는 것이 현존하는 흔적에 의거하여 역사가들이 축조해낸 인공물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반대 심문자는 자신의 축조물을 영원불변의 진리로 착각하지 않습니다. 그/그녀는 오히려 자신의 건조물이 그때까지 발굴된 것들 가운데 자신이 해독할 수 있었던 자료들에 입각해 작성된 '중간 보고서'임을 자각하며, 이른바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이 새로운 자료의 발굴이나 해독 능력의 향상, 또는 다른 독법(讀法)의 유행 등에 따라 부침(浮沈)하는 변화체임을 절감합니다. 그리하여 심문 주체의 자리에 상주하는 것이 아니라, 탐문이 끝나면 이제 자신을 반대 심문의 객체로 세상에 내놓습니다. 인간의 지식을 주관적인 구성물로 간주하기에 탐문의 결과만을 정리·발표하기보다는 심문의 절차와 방법까지도 보여주고자 고심합니다. 심문 과정의 편협성과 폭력성 등에 대한 동료와 독자들의 엄격한 평가를 통해 자신이 수행한 반대 심문 과정의 정당성과 합리성이 검증되어야 함을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71~73쪽.)

 

  그렇다면 이러한 역설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왜 옹호자들도 반대자들처럼 인간학에 대한 열등감에 빠져 있던 것일까요. 이는 한마디로 그들 모두가 자연과학의 우월성에 기초한 지식관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던의 객관주의자나 상대주의자 모두는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확실한 진리라고 단정하고 있었습니다. 지식의 속성에 대해, 주관과 객관의 대립에 대해, 그리고 이 가운데 어느 것이 좋으며, 어느 것이 나쁜가에 대해. 그렇기에 한 점의 흔들림 없이 가정했습니다. 주관과 객관의 관계는 이항대립이라고. 주관과 객관은 반의어이기에 주관적인 것은 객관적인 것이 될 수 없으며, 객관적인 것 또한 주관적인 것이 될 수 없다고. 게다가 주관은 부정의 결점이며, 객관은 긍정의 장점이기에 지식은 객관적이어야 하며, 결코 주관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변명의 원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참된 지식은 결단코 객관성과 보편성, 합리성과 논리성, 일반성과 유용성, 확실성과 절대성을 지녀야 한다고 믿었기에 옹호자들은 방어와 수세(守勢)의 논리로 자신들의 입장을 정리했던 것입니다.
  모던은 정녕 위대했습니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참된 지식을 습득·축적하고 이를 통해 인간 삶의 진보를 이룩한다는 거대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 모던이기 대문입니다. 이를 위해 모던의 건설자들은 고대 그리스 이래 서양을 지탱해온(그러나 중세를 거치며 신비화된) 하나의 신념을 절대의 전제로 부각시킵니다. 표면적인 것, 일시적인 것, 변화하는 것 뒤에는 지속적인 것, 영원한 것, 불변의 것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모던이 만들어낸 '인간성(Human Nature)'이라는 용어야말로 이러한 신념의 단적인 증거로서, 이 말 뒤에는 인간의 본성은 늘 동일하게 유지되며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가정이 깔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식이란 무엇일까요. 두말 할 나위 없이 그것은 불변의 이데아, 영원의 실체, 항구적인 법칙에 관한 것이어야 했고, 이는 오직 '명석·판명한 개념들(clear and distinct ideas)', 즉 이성의 끝없는 시험에도 그 진실성이 부정되지 않는 개념들로 구성되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던적 사고들테어 지식의 이상적인 모델로 자연과학이 부각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연과학이야말로 자연계의 일반 법칙에 댛나 객관적이고도 보편적인 지식을 획득하며, 이를 통해 광포한 자연을 유순하게 길들여 인간의 의지에 복종케 해줄 것이라고 간주되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이성의 힘에 대한 확신, 인간 존엄성의 주된 특질로서의 이성 부각, 실체의 실재에 대한 확고한 신념, 자연에 대한 통제력 증진으로서의 진보 개념, 인과율의 가치에 대한 확신, 그리고 진실성·일반성·유효성으로 축약되는 지식관 등이야말로 모더니즘의 명확한 표식인 것입니다. (...)
  그런데 문제는 이 같은 사고방식에 깔려 있는 과장된 이분법입니다. 실체와 표상, 계몽과 야만, 진실과 거짓, 지식과 견해, 객관과 주관, 보편과 개체, 일반성과 특수성, 유용성과 무용성 등의 엄격한 대립과 대조야말로 모던적 사고틀을 지탱해주는 절대 전제였고, 전자가 질서의 아름다운 코스모스의 상징물이라면, 후자는 무질서의 추한 카오스의 징표였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 근본적인 시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던 서양의 거의 모든 사상가들이 상대주의를 위험한 사조로 간주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보편적인 준거틀을 찾고자 노력함은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서양사의 흐름에서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가 긍정의 결과를 낳았음을 물론 부정될 수 없습니다. 지식혁명, 과학혁명, 산업혁명, 시민혁명으로 상징되는 서양의 근현대는 이성과 진보의 신대륙을 향한 과감한 항해의 산물이었고, 이의 근저에는 타파해야 할 어둠의 제국과 건설해야 할 빛의 공화국 간의 선명한 대조가 깔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진보의 과정은 곧 무자비한 억압의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인간을 인간이 되게 하자"는 모던의 기획에 좀 더 숭고해질수록 선과 악의 대비는 더욱 극명해져 급기야 '계몽된 자'는 강제할 수 있는 권력의 우월한 주체로 자리잡은 반면에, '계몽되어야 할 자'는 복종해야 할 열등한 객체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성의 신화로의 추락이 시작된 것인데, 무엇보다 '합리적이고, 도덕적이며, 성숙되고, 정상적'인 유럽인과 '비합리적이고 열등하며(타락되었고), 유치하고, 이상'한 동양인으로 인류를 양분하고, 그럼으로써 전자에 의한 후자의 지배와 조종을 정당화하려는 오리엔탈리즘이야말로 이의 좋은 실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모던 서양의 끝은 환멸의 디스토피아였던 바 제국주의와 전체주의, 그리고 양차대전이야말로 통제와 통합, 감시와 처벌의 메커니즘으로 상징되는 탐욕스런 이성의 필연적인 귀결이었던 것입니다. (137~140쪽.)

 

  (...) 고대인이든 중세인이든, 동양인이든 서양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어린이든 어른이든(우리나라에서는 중학교 3학년 과정에서 배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증명방법을 한번 배우기만 하면, 누구나 그 원리를 입증할 수 있습니다. 피타고라스의 추론 과정을 말 그대로 똑같이 반복하여, 똑같은 결론에 수십 번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객관성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누가 어디서 언제 반복해도 동일한 결론을 동일한 과정을 통해 이끌어낼 수 있는 것, 바로 이것이 보편적이고 객관적이며 일반적인 사실입니다. 자연과학은 이러한 사실로 가득 차 있는데, 자연과학이 지식의 이상적인 모델로 간주됨은 이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대여, 인간학은 어떠할까요. 이 같은 객관성을 예컨대 역사학은 보장받지 못하는 걸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한 역사가의 주관적인 해석도 이러한 객관성과 보편성을 보장받는데, 이는 그/그녀의 '사고 실험' 역시 동일하게 반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카의 사관에 대한 저의 해석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예컨대)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카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공평한 관계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말뿐이었으며, 실제로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불공평한 관계를 설파했다" 등등 말입니다. 물론 누군가는 다양한 근거를 제시하며 저의 이 주관적인(이는 당연히 제 자신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해석에 반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자가 있다거나 저와는 다른 견해가 존재한다고 해서 제 해석이 객관적이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의 사실이나 사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 객관성의 판별 근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다시 돌아가봅시다. 이를 입증한 사람은 피타고라스 혼자만이 아니며, 이를 증명한 방법도 하나만이 아닙니다. 유클리드(Euclid)는 물론 바스카라(Bhāskara), 캄파(Campa), 페리갈(H. Perigal), 가필드(J. A. Garfield, 미국 20대 대통령입니다!) 등등이 각자의 독특한 방법으로 이를 증명했습니다. 실제로 그 방법은 100개가 훨씬 넘기에 피타고라스 정리의 다양한 증명법을 적어오라는 것이 방학 숙제로 부과될 정도입니다. 요컨대 해석의 상이성과 다양성은 결코 객관성과 보편성의 기준이 아닌 것입니다.
  그대는 여기서 반문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피타고라스 정리의 경우, 비록 증명방법은 달라도 결론은 같은 것 아니었냐고. 하지만 제 경우, 반대자의 존재는 곧 상이한 결론을 의미하는 것 아니냐고. 그대의 질문은 물론 옳습니다. 누군가가 카에 대한 저의 해석에 반대한다면, 이는 그/그녀가 카에 대해 저와는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누군가가 저와는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고 해서 그/그녀가 저의 추론 과정과 결론을 동일하게 반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의 증명을 위해 다시 잠깐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떠올려봅시다. 유클리드나 페리갈 등은 피타고라스와는 다른 방법을 사용하여, "직각삼각형의 빗변의 제곱은 다른 두 변의 제곱의 합과 같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어째서일까요. 그들이 피타고라스의 논증법을 동일하게 반복하지 못해서 그랬을까요. 아니지요. 그들은 오히려 피타고라스의 증명법을 완전히 파악했고, 바로 그렇기에 그와는 다른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역사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누군가가 저의 주장을 반박하고 저와는 다른 견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저의 사고를 동일하게 재사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카의 대화 개념에 대한 제 생각과 그 근거, 카가 대화를 강조한 이유에 대한 제 견해와 그 근거, 카의 실제적인 역사관은 통제와 지배라는 저의 주장과 그 근거 등을 그/그녀 스스로 자신의 정신 속에서 반복하여 재사고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야 제 추론 과정의 타당성 여부나 근거의 정당성 여부를 문제 삼아 저와는 다른 결론(또는 저의 견해를 보다 명료화한 결론)에 도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142~144쪽.)

 

  역사가의 작업은 결코 직관적이지 않습니다. 역사가는 설명 불가능한 직관에 의해 자료의 여백을 메워가기는커녕 이런 방식의 질문과 대답을 통해 '사실'을 논리적으로 추론해냅니다. 그리고 자신이 경험한 질문과 대답의 과정을 명료하게 서술함으로써 그/그녀가 주관적으로 구성한 과거 상(像)의 타당성을 객관적으로 제시합니다. 동료 역사가들의 비평, 곧 역사적 지식의 사실성과 진실성에 대한 검토 작업이 시작되는 것은 바로 이 시점에서입니다. 그들은 그/그녀가 경험한 질문과 대답의 연쇄 과정을 그들 스스로 재경험해봄으로써 문제시되는 진술의 진위성 여부를 날카롭게 검토합니다. 다시 말해 역사가들은 이 질문의 의미는 무엇인가, 어째서 저자는 이 같은 질문을 던지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무엇인가, 저자가 떠올린 대답은 이 질문에 대한 옳은 답변일까, 이 대답의 정당성은 증거에 의해 구체적으로 뒷받침되는가 등의 질문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대답을 얻어냄으로써 동료 역사가가 구성한 이야기의 진실성을 판별해내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결단코 역사적 지식은 주관의 감옥에 수감된 단자(單子)가 아닙니다. 역사가의 사고실험은 동일하게 반복될 수 있는데, 역사가는 언어와 같은 매개물을 통해 자신의 정신 속에서 주관적으로 이루어진 질문과 대답의 과정을 객관적으로 서술할 수 있으며, 동료 역사가는 이를 자신의 정신 속에서 재현해봄으로써 그/그녀가 도달한 결론에 똑같이 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47~148쪽.)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