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더 파이브 (핼리 루벤홀드, 북트리거, 2022.) 본문

'잭 더 리퍼' 사건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연쇄살인사건 아닐까 싶습니다. 1888년 8월부터 11월까지 무려 5명이 잔혹하게 살해되었지만 범인을 특정할만한 변변한 단서조차 찾지 못한 채 여지껏 미제사건으로 남아있으니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수많은 매체에서 수없이 많은 버전으로 다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변주들은 꽤 전형적이기도 합니다. 살인 자체의 잔혹성 내지는 미제사건의 미스테리함을 극대화하는 데만 치중하는 것이 대부분이거든요. 잔혹한 살인마에 대한 사회적 공분과 충분치 못했던 당시 경찰의 수사 역량에 대한 안타까움을 자아내면서 끝나는 것도 비슷하구요. 어디 이것만 그렇겠습니까. 연쇄살인이나 미제사건을 다루는 대부분이 대체로 다 이러합니다. 그러다보니 정작 사건의 피해자들에 대한 관심은 의외로 덜한 경우가 많습니다. 잭 더 리퍼 사건을 말할 때 '잭 더 리퍼'라는 이름만 운운할 뿐 그에게 희생된 이들의 이름은 별달리 알려지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핼리 루벤홀드의 『더 파이브』는 '잭 더 리퍼에게 희생된 다섯 여자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살인사건 자체보다는 희생된 여성들의 삶을 재구성하는데 주력합니다. 메리 앤 니콜스, 애니 채프먼, 엘리자베스 스트라이드, 캐서린 에도스, 메리 제인 켈리까지, 잭 더 리퍼에게 희생된 것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된' 다섯 명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며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상당한 수준으로 복원합니다.
놀라운 것은 그 과정에서 피살의 구체적인 상황은 전혀 묘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즉 살인사건을 재구성하거나 범인을 밝히는 것은 애초에 이 책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이러한 태도는 기존의 접근들이 잔혹한 살인과 억울한 죽음에 분노하는 듯 보이지만 정작 피해자들의 구체적인 삶과 존엄에 대해서는 별달리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더 파이브』가 다섯 명의 삶을 구체적으로 재구성한 결과는 꽤 흥미롭습니다. 세간에는 희생자들이 모두 '매춘부'라고 알려졌습니다만 이 책에 따르면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이들 대부분은 몇 가지 불운들이 겹치면서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급락했지만 결코 성매매를 생계수단으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성매매를 했다고 해서 이들이 겪은 피해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피해자들에 대한 '매춘부'라는 명명은 당시 여성들에게 이중적인 도덕적 잣대가 적용되었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혼외관계에 따른 가정불화 혹은 성병 전파의 책임은 여성에게 거의 일방적으로 전가되었는데, 이 때문에 피해자들에게도 손쉽게 '매춘'이나 '성적인 문란함'의 이미지가 덧씌워졌다는 것이죠. 저자는 그러한 명명을 넘어서서 피해자들 각자가 성실하게 자기 삶을 살아내려고 분투했던 보통의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비극적인 역사를 말할 때, 우리는 종종 그 비극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에만 열중하는 경우를 봅니다. 역사를 생생하게 드러내고 망각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 중요한 일이지요. 하지만 적나라하고 생생하게 드러내는 것에만 열중할 때 그것은 그저 선정적인 재연에만 머무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 비극의 대상 역시 주체성을 가진 존엄한 인격체라는 점은 쉬이 망각되구요. 국가에 의한 학살 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을 말할 때 자주 저지르는 실수입니다.
그래서 저는 『더 파이브』의 시선이 무척 성숙하고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역사를 살아갔던 이름 없던 그 많은 사람들 모두가 각자 존엄한 인격체였음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 말미에 첨부된 방대한 참고자료 목록은 저자가 이들의 삶을 추적하기 위해 여러 문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음을 보여줍니다. 낡아 부스러지기 직전인 문서들을 한장한장 뒤적이는 수고가, 저자에게는 차고 습한 뒷골목에서 신산한 삶을 이어가던 이들에게 요즘 살림살이 좀 어떠냐고, 밥은 잘 먹고 다니냐고 따뜻하게 말을 건네는 일이었을 겁니다.
좋은 역사책이란 대체로 다 그러한 것 같습니다. 지나간 과거의 대상은 물론이고 책을 읽고 있는 독자에게도 요즘 살림살이 좀 어떠냐고, 밥은 잘 먹고 다니냐고 따뜻하게 말을 걸어주는 것 같은 책들을 읽을 때 우리는 그에 공감하기도 하고 때로는 위로를 얻기도 합니다. 역사를 연구하고 역사책을 읽는 것의 의미가 무언지 쉬이 답하기 어려운 요즘 같은 시절에, 이 책이 그에 대한 답변 중 하나가 될 수 있겠습니다.
잭 더 리퍼의 공포 정국 동안 언론은 빈민가의 삶을 적나라하게 묘사함으로써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고, 그 과정에서 화이트채플의 여인숙들이 "사실상 매음굴"이며 극소수의 예외는 있지만 그곳에 사는 여성 대다수가 죄다 매춘부라고 단언하기를 일삼았다. 독자들은 연이어 발생한 끔찍한 살인 사건에 비추어 그 주장을 기꺼이 믿었다. 그렇게 해서 억측이 사실로 굳어졌지만, 사실은 경찰부터가 매우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잭 더 리퍼 사태가 정점으로 치닫던 시점에 런던경찰서장 찰스 워런은 그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편지에 섰다. 정확히 어떻게 계산했는지는 몰라도 그는 화이트채플에 있는 233개의 공동 여인숙에 약 1,200명의 매춘부가 산다고 추정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누가 매춘부이고 누가 매춘부가 아닌지 구별할 방법은 전혀 없다"고 단서를 달았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경찰마저도 누가 성매매 여성인지 판별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인정한 상황에서 언론이 그렇게 단언할 근거는 어디에서 없었다.
워런이 내놓은 수치는 또 다른 측면에서도 흥미롭다. 그의 말대로 화이트채플 여인숙 인구가 8,530명이고 그중 3분의 1인 2,844명이 여성이며 그중 1,200명을 성매매 여성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면, 나머지 1,644명이라는 과반수 여성은 그 어떤 종류의 성매매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화이트채플의 공동 여인숙에서 살아가던 여자들을 옭아맸던 추정과 소문과 억측의 그물망은, 잭 더 리퍼의 피해자와 그들의 삶도 똑같이 옭아매 왔다. 130여 년 전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이 가닥가닥의 그물망은 놀랍게도 거의 검토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폴리, 애니, 엘리자베스, 케이트, 메리 제인의 이야기에 달라붙어 그 형태를 결정해 온 것은 다름 아닌 빅토리아 사회의 사치관이다. 성별은 남성이고 성격은 권위적이며 계급은 중산층인 그 가치관 말이다. 그 시대 여성은 목소리를 내지 못했고 거의 모든 권리를 박탈당했다. 그 시대 빈민은 게으르고 타락한 사람으로 치부되었다. 그리고 여성이자 빈민인 사람은 최악의 교집합에 속했다. 지난 130여 년 동안 우리는 저 시대에 만들어진 먼지투성이 짐꾸러미를 꼭 껴안고만 있었다.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살펴보려 하지 않고, 피해자들이 어떤 사람이며 그들의 진짜 역사는 무엇인지 알 수 없도록 꽁꽁 싸맨 그 두꺼운 포장을 풀 생각도 없이. (31~33쪽.)
사람들은 폴리 나이의 여자가 남편이나 가족 없이 살아감으로써 야기하는 '혼돈'에서 단 하나의 결론을 끌어냈다. 이 사람은 결함이 있다고, 이 사람은 실패자라고, 또 여자의 인격을 문제 삼을 때 늘 하는 말처럼 이 사람은 성적으로 부도덕하다고 말이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설령 세탁부나 청소부로 일하며 혼자 살아갈 능력이 있더라도, 아니 어느 계급에 속하든 상관 없이, 여자가 아이를 낳아 길러야 할 나이에 독신으로 사는 것은 그야말로 이단 행위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남편 없는 여자를 조금도 신뢰하지 않았다. 그런 여자는 어떻나 보호책도 없이 다른 남자들의 책략이나 폭력에 노출되는 것이 당연했고, 그런 여자의 삶에 의미는 없었다. 한편 아내 없는 남자에겐 현실적 필요와 성적 요구를 채워 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폴리와 윌리엄 모두 하루빨리 새로운 상대를 찾으려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남편은 해도 되었던 일들이 아내에겐 불법이었다. (74~75쪽.)
성매매는 샐리 같은 여성 부랑자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 아니었고, 주요한 생계 수단조차 아니었다. 또한 성매매로 살아가는 경우라도, 젊은 나이가 주는 성적 매력이 없는 중년 여성은 흔히 성교까지는 하지 않고 손으로 상대를 자극하거나 자기 몸을 만지게 하는 정도의 이른바 '약식 성매매'를 했다. 이 시대에 가난하고 집 없는 여성에 관해 떠들썩하게 경고했던 글 대부분은 성매매에 의지하는 젊은 여성에 초점을 맞추었지, 중년 나이가 주는 현실은 좀 다르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았다. 중년 여성 부랑자에게는 다른 선택지들이 있었다. 그들은 일을 해서 살았고, 일을 구할 수 없을 때는 구걸로 몇 푼 또는 차와 빵을 얻어 하루를 났으며, 심지어 걸인들끼리도 서로 적선했다. 사회지평가들은 "가장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자선을 자주 행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또한 "가장 기력 좋고 잘 버는 걸인"이 가장 무기력한 늙은 여성 부랑자들을 보살폈는데, 이는 "자기보다 못한 동료에게 베풀" 의무 때문이었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조지 심스에 따르면 "벌이가 불안정한 노동자계급 사이에서 성금과 모금, 자선이 가장 활발하게 행해"졌고 "길거리 행상이나 부두 일꾼이 생전 처음 보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 두 번 생각하지 않고 6펜스짜리 동전을 모자에 던져 넣"었다. 바로 이런 적선이 부랑자들의 생계 수단 중 하나였다. 눅누가가 "침대 값을 치를 4펜스도 없이" 여인숙을 찾아보고 "그의 고생이 진짜처럼 보이면 곧 모자가 돌아 다른 숙박인들이 그가 하룻밤 묵을 비용을 냈"다. 숙박인들은 음식도 나누어 먹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을 보면 '이거 드쇼, 친구' 하며 찻주전자를 건네어 찻잎을 한 번더 우려 마시게 해" 주었다. 모든 부랑자가 매일 운 좋게 침대 값과 찻값을 마련할 수는 없는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를 돕는 이 전통이 그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94~95쪽.)
19세기 기준에서는 애니가 '망가진 여자'이자 '타락한 여자'였지만 그는 매춘부는 아니었다. 폴리 니컬스가 살해당하기 약 1년 전인 1887년 7월 19일 런던경찰청장 찰스 워런은 다음과 같은 명령을 공포했다. "여성이 스스로를 상습 매춘부라고 칭하거나 해당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은 적이 없는 한, 경찰은 그 어떤 여성도 상습 매춘부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또한 경관은 "본인 생각으로는 완벽하게 확실하더라도" 그 사실을 입증할 증인과 증거가 없는 한 "그 어떤 특정 여성도 상습 매춘부로 단정해서는 안" 되었다. 폴리 니컬스의 경우에도, 애니 채프먼의 경우에도 그들이 성매매를 했다거나 스스로를 매춘부라고 칭했다고 말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잭 더 리퍼 피해자의 공상화된 이미지들에서는 애니가 가슴이 드러나는 웃옷을 입고 뺨을 붉게 화장한 채 가스등 아래에서 유혹적인 눈빛을 던지며 "길거리 호객"을 한 것으로 그려졌지만, 이는 거짓이다. 애니는 매음굴에 들어간 적도, 포주를 위해 일한 적도 없다. 성매매를 하다 체포당했다거나 최소한 경고라도 받았다는 증거 또한 전혀 없다. 경찰은 "인근의 펍을 돌며 ... 같은 부류의 여자들을 타문했으나" 애니가 그들의 일원이었음을 확인해 줄 증인을 단 한 사람도 찾아내지 못했다. 성매매로 살아가는 여자들은 대부분 누가 누구인지 잘 알려져 있었다. 이들이 서로 잘 알았음은 물론, 경찰과 이웃과 동네 펍 주인도 많은 매춘부를 알고 있었다. 성을 판매하는 일에 별다른 낙인을 찍지 않는 가난한 구역의 주민들은 자신의 친구나 가족, 지인이 실제로 매춘부인 경우에 그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기를 꺼리지도 않았다.
경찰은 화이트채플 살인 사건의 범인이 매춘부를 갈취하는 하이립 갱단 아니면 매춘부를 골라 살해하는 단독범(이 국면에서는 '가죽 앞치마'라는 별명으로 불린 존 파이저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다)이라는 가설을 고수했으므로, 피해자는 매춘부여야만 했다. H지구대는 경찰청장의 명령에 아랑곳하지 않고 애니의 서류 중 '직업' 항목에 '매춘부'라는 단어를 써 넣었다. 폴리 니컬스 사건 때와 똑같이 이번에도 경찰은 고정된 관점에서 수사를 시작했다. 애니 채프먼이 매춘부였다는 이 전제는 경찰 수사의 방향은 물론 사인 심문 현장의 태도와 질의 응답에 큰 영향을 미쳤다.
언론 또한 이 가설에 문제를 제기할 생각이 없었다. (...) (176~177쪽.)
구체적인 규제 방법은 나라마다 달랐으나 매독 전파의 책임이 성매매 여성에게 있다는 전제는 똑같았다. 입법자들의 논리는 매독을 옮기는 타락한 여성을 국가가 통제할 수 있다면 매독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남성 보균자는 규제 대상이 아니었다. 예테보리, 스톡홀름, 파리, 함부르크, 베를린 등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성매매 여성은 의무적으로 경찰에 이름과 주소를 등록하고 부인과 정기 검진을 통해 보균 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그러나 이 명부에 정확히 어떤 사람을 등록해야 하는가의 기준은 각 구역의 성매매 담당관이 임의적으로 결정했다. 성매매를 하지 않는 많은 여성이 "난잡한 삶"을 산다는 경찰의 판단으로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역사가 위본네 스반스트룀에 따르면 예테보리 경찰은 두 개의 명부를 사용했다. 하나에는 성매매 여성으로 잘 알려진 이들의 이름을 등록했다. 다른 하나에 성매매 여성으로 의심되는 여자를 등록했다. 그게 누구인가 하면 임신한 독신 여성, 남자와 단둘이 있거나 밤에 외출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 여성, 그리고 혼외 관계를 맺고 있는 여성이었다.
이웃과 경찰은 한동안 엘리자베스를 의심만 하다가 1865년 3월에 이르러 그가 '난잡한 삶'을 산다는 것을 확신했을 것이다. 엘리자베스가 임신 6개월 차가 되어 더는 옷으로 감출 수 없을 만큼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를 그렇게 만든 사람, 이런 상황에서 그를 보호해야 하는 사람은 그의 곁에 없었다. 그때 그가 어디에 있었는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를 어떤 방법으로 부양했는지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다. 아직 바람이 차갑고 날카로웠을 3월 말, 엘리자베스는 경찰의 명령으로 경찰 검진소에서 첫 정기 검진을 받았다.
이날 토르슬란다 출신 엘리자베스 구스타프스도터는 경찰의 공식 명부에 알멘 크빈나Allmän Kvinna, '공공의 여자', 즉 매춘부) 97번으로 등록되었다. (...)
그날 엘리자베스는 앞으로 일상에서 지켜야 할 규칙에 대해 설명을 들었을 것이다. (...) 이런 식의 훈계가 여자들에게 안겼을 치욕, 특히 성매매를 하지 않는데도 명부에 오른 여자, 무슨 공적인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 강간을 당했거나 연인과의 사적인 방종의 결과로 임신하게 된 여자가 느꼈을 굴욕감은 필시 말로 다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속칭 '수치부'로 불린 경찰 명부에 이름이 오른 그해 봄에도, 본인의 직업을 하인이라고 했지 매춘부라고 하지 않았다.
성병 검진은 이 도시 '공공의 여자'의 보균 여부를 검사하는 절차인 동시에 그들을 벌주는 방법이었다. 경찰은 성매매 여성으로 확인되었거나 의심되는 모든 여성에게, 외스트라함가탄 거리를 지나는 점잖은 시민들의 기분을 해치지 않도록 길 뒤편의 눈에 띄지 않는 통로를 통해 경찰서에 들어오라고 지시했다. 안에 들어가서는 옷을 전부 벗고 줄을 서야 했다. 때로 대기 줄이 길어지면 건물 밖 안마당으로 나가 제복 차림 경관들이 내려다보는 가운데 추위에 떨며 서 있어야 했다.
신앙심 깊은 공동체에서 교리문답을 공무하며 성장한 젊은 여성에게 이 수모는 필시 큰 충격을 안겼을 것이다. 그러나 사생아를 임신했다는 사실 때문에 이 처벌을 정당한 것으로 내면화했을 것이다. 사회와 교회는 그가 부모와 공동체와 그 자신과 주님의 뜻을 어기고 죄를 지었다고 믿게 만들었다. 경찰에 이름을 등록할 때 엘리자베스가 본인의 정보를 자세히 밝히지 않은 것도 바로 수치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부모에 관한 질문에 그는 망설임 없이 야친 모두 사망했다고 대답했다. 모친이 1864년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것은 사실이나 부친은 멀쩡히 살아 있었다. 아마도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떳떳지 못한 처지 때문에 부친의 집에는 돌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해 5월에 결혼한 안나 크리스티나도 동생이 가족을 등졌다고 여기며 연을 완전히 끊었던 것으로 보인다.
(...)
3월 말 '수치부'에 이름을 올릴 때부터 성병 병원에서 퇴원할 때까지 엘리자베스가 겪은 일은 그에게 엄청난 트라우마를 남겼을 것이다. 매춘부라고 공개적으로 지목당했을 때, 모욕적인 검진 절차를 견뎌야 했을 때, 신체 변형을 일으킬 수 있고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는 질병에 걸렸음을 알게 되었을 때, 병원에 감금되어 고통스러운 시술을 받았을 때, 그 적대적인 환경에서 아이를 사산했을 때, 결국 몸을 의탁할 친척 한 명 없는 거리로 내보내졌을 때, 그때마다 엘리자베스의 마음에 깊은 상처가 생겼을 것이 틀림없다.
난잡한 삶을 산다고 의심받는 여성을 성매매 여성과 똑같이 취급하는 제도는 그럼으로써 그 둘을 똑같은 운명으로 몰아넣었다. 경찰 명부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품위 있는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었다.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생계 수단은 애초에 문제가 되었던 바로 그 직업 밖에 없었다. (...) (205~210쪽.)
사는 동안 엘리자베스는 여러 사람에게 다양한 의미로 존재했다. 그는 어둡기도 했고 밝기도 했다. 누군가에겐 골칫덩이였지만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었다. 그는 딸이었고 아내였고 자매였고 정부였고 청소부였고 커피하우스 주인이었고 하인이었고 외국인이었고 때때로 성판매자였다. 그러나 경찰과 언론의 눈에 그는 또 한 명의 피해자일 뿐이었다. 화이트채플 여인숙에 사는 '불우한' 여자, 술에 찌들고 타락하고 망가진 늙은 여자. 그들은 엘리자베스의 죽음을 안타까운 피해로 묘사했지만 대단한 상실로는 여기지 않았다. 지면에 활자화된 이 태도가 그대로 고정되어 오늘날까지 거의 고스란히 남았다. 이러한 초상에 반대하는 목소리, 더 온전한 그림을 그리려는 시도는 없었다. 그 누구도 스웨덴에 있는 엘리자베스의 가족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그 어떤 기자도 엘리자베스의 가족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그 어떤 기자도 엘리자베스의 인척을 찾아가지 않았고, 그의 과거를 제대로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하이드파크의 그 신사, 가워가의 본드 보인, 또는 포플러 커피하우스의 손님들을 취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이드를 정말로 알 수 있는 기회는 그렇게 살인자와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252~254쪽.)
(...) 케이트는 새벽에, 혹은 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나고 저녁에야 귀가하여 밥을 먹고 메리와 함께 쓰는 침대에 들었을 것이다. 방 한 칸을 둘로 나눈 커튼 저편에서는 사촌 존이나 숙부 부부가 코를 골며 자고 있었을 것이다. 도망쳐 온 곳이 어디든 똑같았다. 울버햄프턴에서든 버밍엄에서든, 권투 선수의 집에 살든 양철공의 집에 살든, 케이트의 일상은 그대로였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똑같은 일과를 반복할 것이었다. 결혼한 후에는 엄마로서 살아갈 터였다. 그 삶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출산과 고통, 육아의 피로, 걱정, 배고픔, 탈진, 그리고 최후에는 병과 죽음이었다. (290~291쪽.)
여자의 어깨를 내리누르는 이 무거운 짐들 맨 위에는 그 무엇보다 거추장스러운 짐이 아슬아슬하게 얹혀 있었다. 그것은 도덕적으로, 성적으로 결백할 의무였다. 여자는 가정생활의 중심축이기에 그의 인격은 완전무결해야만 했으며, 그렇지 않은 여자는 가족 전체를 타락시키는 원인이었다. 여자의 신중함과 자기희생이 자녀의 도덕성을 결정했다. 남편의 필요를 충족하는 여자의 헌신이 그를 죄로부터, 즉 펍이나 다른 여자들로부터 지켰다. 죄에도 이중잣대가 적용되었다. 남자가 여러 여자와 성적 관계를 맺는 것은 아주 적절하다곤 할 순 없어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평범한 일로 여겨졌다. 반면에 여자는 법적으로 결혼한 남자와만 섹스를 할 수 있었다. 이러한 높은 기준이 얼마나 널리 받아들여졌던지, 성적으로 관대한 편인 노동자계급 사회(많은 남녀가 혼외 관계를 맺거나 결혼하지 않았고 짝을 자주 바꾸었다)에서도 모든 도덕적 판단과 지탄을 여자가 감당해야 했고, 주류 중산층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빅토리아 시대 중산층의 까다롭고 편협한 기준에서 폴리와 애니는 남편과 헤어지고 다른 남자와 동맹을 맺은 그 순간부터 '타락한 여자'였다. 결혼하지 않고 두 명의 파트너를 만났던 케이트와 메리 제인도 방종한 여자들이었다. 엘리자베스도 두 번 타락했다. 첫 번째는 예테보리에서 경찰의 '수치부'에 이름을 올렸을 때이고, 두 번째는 결혼 생활에 실패한 뒤 다시 성매매를 시작했을 때이다. 이 이중잣대는 사람들의 삶을 흑백으로 갈랐다. 선교사들은 잘못된 길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동정을 베풀고 구원을 약속했지만, 여자들은 이미 오랫동안 수치와 비난에 시달린 뒤에야 그런 위안을 얻었다. 그러니 폴리가 코드리 부부의 안락한 집에서 도망친 것이나 애니가 자매들에게 자신의 주소를 결코 밝힐 수 없었던 것, 엘리자베스가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진짜 정체를 밝히지 않은 것, 케이트가 결국 아이들을 포기한 것, 메리 제인이 겨우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분노한 술꾼이 된 것이 어디 놀랄 일인가?
'잭 더 리퍼는 매춘부를 골라 죽인다'는 사람들의 믿음은 이러한 선악의 도덕률을 강화하는 데 일조했다. 그런데 1888년 당시에는 어떤 용도가 있었던 이 명제가 이제는 그 어떤 당면한 목적도 없는데도 거듭 단언되고 있다. 나아가 이 살인 사건들에 관하여 모든 사람이 묻고 따지지도 않고 동의하는 유일한 '사실'로 남아 있다. (394~395쪽.)
우리는 오직 이 사람들을 되살림으로써만 잭 더 리퍼와 그가 상징하는 것들을 침묵시킬 수 있다. 이들이 말하게 함으로써, 이들의 경험을 이해하고 이들의 인간성을 확인함으로써 우리는 마땅한 존중과 연민을 이들에게 돌려줄 수 있다. 잭 더 리퍼의 피해자들은 '그저 매춘부'가 아니었다. 그들은 딸이었고 아내였고 어머니였고 자매였고 연인이었다. 그들은 여자였다. 그들은 인간이었고, 이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403쪽.)
교정. 1판 1쇄
172쪽 밑에서4줄 : 새고 -> 세고
180쪽 밑에서2줄 : 조각를 -> 조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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