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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君 Blues...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났습니다. 분단이 시작되었던 바로 그 장소에서, 분단을 끝낼 방법을 논하는 두 정상의 모습은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의미가 깊었습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전쟁을 하니 마니 하는 소리가 오갔던 것을 생각하면, 더 그렇습니다. 저 역시 한창 업무시간 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한쪽 귀로 정상회담 중계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처럼 통일이나 민족 같은 가치에 대해서 시큰둥한 녀석에게도 남북의 정상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그렇게나 벅찬 것이었습니다. ...만 개인적인 감상을 끄적이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므로 개인적인 감회는 여기서 각설하고. 남북정상회담만큼이나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은, 남북정상회담의 무대였던 판문점이..
잉여력 터지는 역사학도의, 정말 쓸데없는 팩트체크 시간. 자, 이제 더는 미룰 수 없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의 출처로 신채호가 지목된 것은 대체 언제란 말입니까. 사실 답은 간단합니다. 날짜는 물론이고 시간까지 찍을 수 있습니다. 1편 제일 처음에 걸어둔 스크린샷이 정답입니다. 2013년 5월 11일 무한도전이죠. (아래는 5월 18일 방영분.) 적어도 제가 찾은 자료 중에서는, 이 방송 이전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와 신채호를 연결지은 글은 없습니다. (어떤 개인블로그에서 딱 하나 발견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대중적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무한도전을 지목해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겁니다. 그리고 만약 무한도전이 신채호를 지목한 근거가 이 블로그 글이라면, 무한도전은..
지난 2015년 1월 31일, 독일의 제6대 대통령을 지낸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Richard von Weizsäcker)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대통령 재임시에 적극적으로 과거사 반성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그 때문에 바이츠제커는 독일의 역사인식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특히 1985년 2차대전 종전 40주년 기념 연설에서 그의 그러한 역사인식이 잘 드러났다고 알려져 있죠. 제가 찾은 것 중에서 그의 연설내용을 담은 국내의 기록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아래와 같습니다. 우리는 새삼 독일패전 40주년이 되던 날, 서독의 바이츠제커 대통령이 남겼던 웅변을 잊어버릴 수 없다. 그는 “과거에 눈을 감는 것은 현재에 대해서도 맹목이 되는 것이다. 비인간성을 기억에서 ..
지난 편에서 저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문장이 신채호의 창작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전히 하나의 의문이 남아있다고 덧붙였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문장의 창작자로 신채호가 지목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지난 편에 따르면 신채호는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도 없는데 말이죠.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문장이 그간 한국의 언론과 저술에서 어떤 식으로 쓰여 왔는지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포털에서 뉴스를 검색해보시면 알겠지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문장의 용례는 굉장히 많고, 또한 굉장히 오래 전부터 찾을 수 있습니다. 출처를 신채호로 명시하지 않았을 뿐이죠. (이 문장의 출처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아마 역사를 소재로한 격언 중에서는 가장 널리 알려진 것 아닐까 싶습니다. 문장은 짧지만 ‘역사’와 ‘미래’가 대비되고 있고 메시지도 선명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문장, 정말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역사학의 존재이유를 묻는 이에게 이보다 더 좋은 답변이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이 문장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이 문장은 단재 신채호가 남긴 것으로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선 말부터 식민지기에 이르기까지 비타협적이고 견실한 운동가의 일생을 보낸데다가 역사학자로서도 상당한 저술을 남겼다는 점을 생각하면, 신채호가 저런 말을 남겼다고 해도 별로 이상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인터넷이고 방송이고 할 것 없이 이 문장의 창작자가 신채호라는 명제가 거의 정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