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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君 Blues...

서리북에 관해서는 늘 비슷한 상찬을 반복하게 됩니다. 저보다 훨씬 더 날카로운 통찰과 풍성한 지식으로 빚어낸 서평을 이만큼 밀도 높게 모아둔 지면이 어디에 또 있겠나 싶습니다. 이번 호라고 뭐 얼마나 다르겠습니까. 알아야 할 필요는 크지만 막상 각 잡고 제대로 공부할 자신은 없는 이야기들, 예컨대 이번 호의 유상운, 정우현, 김두얼의 글은 배움의 재미가 쏠쏠한 서평이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을 시간대별로 정리한 홍성욱의 서평은 답답함과 먹먹함, 그리고 딥빡침으로 저를 압도했습니다. 이런 글들을 읽는 내내, 서리북 정기구독을 신청한 저 자신에 대해 새삼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ㅋㅋㅋ 다만 이번 호는 특집에 관해 한 마디 보탤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각각의 글과 기획 자체에 대해서는 제가 특별히 아쉬운 ..

하와이 사진신부들은 그랬다. 언어도 체제도 낯선 사회에서 고된 노동과 차별을 견디며 살아남았다. 다음 세대 아이들을 낳아 먹이고 입히고 가르쳤다. 아무리 쪼개도 부족하기만 한 돈과 시간을 모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열과 성을 다했다. 그들은 결혼 시장에서 사진 한 장을 근거로 얼마간의 여비와 교환된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라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인생을 개척해 낸 선구자들이다. 작가 이금이는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사진신부'라는 단어 뒤에 숨겨져 있는 도전과 용기와 모험, 그리고 애국의 정신을 독자 앞에 망라한다. (...) (심채경, 「하와이에 산다면 이런 비쯤 아무렇지 않게 맞아야 한다 - 『알로하, 나의 엄마들』」, 203쪽.)

일본. 참... 애증의 이름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는 이웃입니다만 '이웃사촌'이라 할만한 관계는 또 아닌 것 같습니다. 가깝게는 식민지배의 역사가 있고, 좀 멀리 가면 임진왜란의 경험도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여몽 연합군이 일본을 침공했고, 조선 초에도 대마도 정벌이 있었습니다. 하나 같이 유쾌하지 않은 것들이잖습니까. 그런데 또 양국의 역사가 갈등과 충돌로만 점철된 것도 아닙니다. 고대 이래로 누천년간 축적된 한일 교류의 경험은 물론이고, 임진왜란 이후 수백년간 꾸준히 파견된 통신사(通信使)의 존재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한국과 일본은 갈등과 화합을 거듭하며 여태 이러고 있습니다. 그 때문인지 우리는 일본을 말할 때 마냥 객관적이고 엄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감정이 치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사피엔스를 '가장 잔혹한 종'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가짜 뉴스들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문제작이다. 그래서 독자는 뿌듯하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우리가 한편으로 얼마나 이기적이고 잔인한 존재인지를. 장애자들을 거세해서 자식을 낳지 못하게 한 것은 불과 100년 전의 선진 유럽이었다. 죄를 지으면 돌로 쳐 죽이고 사지를 찢었던 때가 불과 500년 전이다. 하지만 저자는 다른 동물들을 보라고 한다. 그들의 세계는 더 끔찍하다고. 그런 끔찍한 정글에서는 문명이 피어날 수 없다고. 우리가 지구상의 동물들 가운데 유일하게 문명을 이룩한 종이라는 사실은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경쟁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더 있었다는 뜻이다. 남을 누른 승리자가 모든 것을 차지했었더라면, 즉 타인이나 타 집..

여름 휴가철에는 역시 이런 추리&스릴러가 제격이네요. 소년탐정 김전일이 생각나기도 하구요. (이럴 땐 아가사 크리스티가 떠올라야 좀 더 고상해 보일텐데 ㅋㅋ;;) 살인이 발생했다. 누군가 그의 목을 졸라서 살해했다. 그 누구도 인생을 살면서 감히 경험할 것이라 상상치 못할 대사건이 틀림없다. 하지만 지금 우리를 위협하는 건 살인이 아니다. 우리는 살인보다 훨씬 큰 위기에 봉착했다. 오히려 그가 살해당한 것을, 꽉 막힌 상황을 돌파할 계기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산속에 묻힌 이 화물선 같은 지하 건축물에서 탈출하려면 아홉 명 중 누군가 한 명을 희생시켜야 하니까. 우리는 희생양을 선택해야 한다. 아니면 모두 죽는다. 어떻게 선택할까? 아홉 명 중 죽어도 되는 사람은, 죽어야 ..

빌 게이츠는 자신의 블로그인 게이츠 노트(http://www.gatesnote.com/)를 통해 종종 책을 추천하곤 합니다. 대중적 영향력도 그렇지만 골라주는 책도 대체로 다 재미있는 편이어서 저도 종종 들여다봅니다. 여기서 추천된 책은 거의 예외 없이 국내에도 곧장 번역되어 나오는데요, 『본 인 블랙니스』는 2023년에 휴가 추천 도서로 선정된 책입니다. 인터넷 서점의 책 소개는 유럽 근대의 형성에서 아프리카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고 이른바 '대항해시대'를 추동한 힘도 아시아와 아메리카보다는 아프리카에서부터 찾는 것이 더 옳다...는 정도로 책 내용을 정리합니다. 실제로 이 책은 그간 우리가 잘 몰랐던 아프리카의 역사적 역할에 대해 풍성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예컨대 카이로를 방문한 말리 제국 황제의..

20년쯤 전에 일본에서 대히트한 '귀무자'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일본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게임의 빌런은 오다 노부나가인데요, 그냥 빌런도 아니고 무려 악마(;;;)로 나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물론 어디까지나 게임이니까 상상력에 제한이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만, 아니 그래도 일본인들이 그렇게 애정한다는 오다 노부나가를 끝판왕 악마로 만들어도 괜찮나 싶습니다. (한국에서 그랬다간...) 실존인물인 오다 노부나가를 악마로 만들고 이를 게임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아마도 역사를 그냥 있는 그대로의 이야깃거리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특별히 영웅시한다거나 특별히 악마화하는 그런 마음 없이 말이죠. 소현세자 서사는 '인질 소현세자'의 모습을 첨단의 서양 문..

(...) 이기을은 「전기 3사의 통합과 경영합리화」에서 통합만으로 조선전업주식회사와 경성전기주식회사, 남선전기주식회사의 부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그는 오히려 중요한 것은 재무구조를 정상화하고 사기업 원칙에 입각한 경영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설비의 가동률이 낮고 전력 손실이 지나치게 많으며 노동생산성이 낮아서 발생하는 수지결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해법을 제시했다. 이익관리 제도의 채용을 통해 재무관리를 철저히 하고 최고경영자의 지도 이념과 관리 능력을 확립하며, 종업원의 기능 숙달을 통한 노사 협조가 전제되어야 한다. 또한 노사정이 일치단결해서 철저한 경영 합리화를 하고, 서비스 개선에 힘써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각주: 이기을, 1961.10..

'서울의 봄'이라는 역사적 용어를 사용했음에도 영화는 모든 시선을 군 내부의 권력투쟁으로 가둔다. 이 과정에서 엄혹한 유신 시절에조차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재야 운동권 세력과 운동권 학생들,그리고 추상적이나마 민주화될 한국 사회를 꿈꾸며 기대감에 부풀었던 시민들의 모습은 재현되지 않는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영화 〈서울의 봄〉에는 '진짜' 서울의 봄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진짜 문제는 이러한 영화 속 서사로 인해 '서울의 봄'이라는 역사 용어가 실패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읽힐 가능성마저 있다는 점이다. 영화 속 이태신의 패배는 역사적으로 민주화된 한국을 꿈꿨던 시민사회의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 '참군인' 이태신과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유신의 잔당들은 신군부의 권력욕에 무너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