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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君 Blues...

이 책의 원제는 'Carbon Colonialism'입니다. 『탄소 민주주의』와 『탄소 기술관료주의』에 이은 '탄소 연독連讀'이네요. (그런데 '연독'이란 말이 있긴 하나...) 첫 두 책이 과거의 역사를 다룬 것에 반해 이 책은 현재의 탄소배출과 기후위기의 불평등 문제를 다룹니다. 그러다보니 이 책은 첫 두 책보다 훨씬 명징하게 자기 주장을 피력합니다. 기실 '기후위기'라는 소재는 이제 별달리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산업화시대에 생태주의는 꽤나 공격적인 사회운동의 일부로 이해되었고, 기후변화climate change 대신 기후위기climate crisis라고 말하는 것도 급진적으로 의제를 설정한다는 느낌을 풍겼지만, 지금은 그런 느낌이 별로 안 듭니다. 지극히 보수적인 윤석열 정권(잘 가라)조차도 기..

농담 반으로 말씀드리자면, 정병준 선생님은 책 길게 쓰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으시죠. ㅎㅎㅎ 분야가 현대사이다보니 시간적 범위도 불과 몇 년 정도에 불과한데 아니 그걸 이렇게까지 촘촘하게 써서 이렇게 어마어마한 분량을 만드시나 싶습니다. 최근에 내시는 책들은 그나마 '정상적인' 분량으로 나오나 싶었는데, 이 책이 당초 『김규식 평전』의 4부로 기획되었다는 언급 부분에서는 저도 순간 휘청-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ㅋㅋㅋ 하지만 이어 진담 반을 보태자면, 엄청난 분량은 정병준이라는 역사학자가 얼마나 성실한 사람인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비교적 일찍 미국(특히 미국국립기록관리청NARA) 소재 한국사 자료에 주목한 이래로 방대한 사료를 성실하고 꼼꼼하게 활용해 온 저자의 태도는 역사학자로서의 모범이라 하겠..

어느 자리에서 다른 분의 강의나 발표를 들을 때 탕수육은 종종 '다른 건 모르겠고, 저 사람이 저 주제를 참 좋아하긴 하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제 전공이 아닌지라 발표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발표자의 말투나 표정에서 그이의 열정과 애정이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그냥 직업으로서의 관성이나 의무감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온전한 애정과 즐거움이 뚝뚝 떨어지는 그런거요. 그런 느낌을 받으면 괜히 저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저걸 왜 좋아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냥 이유 없이 저도 막 힘이 나는 것 같고 즐겁고, 뭐 그렇습니다. 탕수육은 미술사에 대해서는 정말로 문외한입니다. 미술에 대해서도 정말 아는 것이 없다시피 하고 미적 감각도 거의 0에 수렴합니다. 그러니 제가 이 책에 ..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좋아서 이것을 직업으로 택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 직업(공부)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공부를 하며 앎을 키워간다는 것이 좀 고상하고 대단한 어떤 것(의 일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작해보니 전혀 그렇지가 않더군요. 남들 앞에서는 대단한 것 배웠다고 으스대며 세상의 가치를 논하는 사람들이, 남들 안 보이는데서는 "홍진에 썩은 명리" 탐하는 것은 똑같습디다. 그 격차에 힘들어한 끝에 결국에는 내가 이걸 애초에 왜 시작했더라 하는 자괴감까지 들었구요. 물론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은, 어딜 가든 사람 사는 세상은 결국 다 비슷하더라는 깨달음으로 귀결되었습니다만 ㅋ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읽고 쓰는 것과 제가 하는 것의 간극을 최대한..

종종 강의를 나갑니다. 대학뿐 아니라 고등학교나 기업체 등 불러주기만 하면 거의 거절하지 않고 다 갑니다. (심지어는 아침 라디오에서 고정 코너를 몇 달 정도 맡았던 적도 있죠. 8분 생방송 하려고 해도 안 뜬 새벽에 왕복 3시간 거리를 매주...) 이 때 청중은 역사에 대해 특별히 관심이 없거나 역사와는 무관한 삶을 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탕수육은 그런 청중 앞에 설 때마다 고민합니다. 역사를 몰라도 먹고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청중에게 두어 시간을 꽉꽉 채워서 갑오농민전쟁 주도세력의 사회경제적 지향이나 평안도 우물 갯수를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고민 말이죠. 간단한 사실관계는 손 안의 스마트폰으로 수월히 검색하게 된 것은 벌써 한참 전의 일이고, 이제는 DBPia에서 논문 내용도 ..

빅터 샤우의 『탄소 기술관료주의』와 티머시 미첼의 『탄소 민주주의』를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탄소에너지 이후를 상상하게 됐고, 그렇게 해서 또 자연스럽게 석탄산업은 어떤 식으로 퇴조하게 되었는가를 생각하면서 이 책을 골라들었습니다. 1960년대 일본의 석탄산업은 유례없는 사양의 길을 걸었습니다. 1960년도에 682개였던 탄광 수는 1973년도에는 57개, 같은 기간 탄광 기업은 205개에서 23개로, 석탄 생산량은 1961년 5,541만 톤에서 1973년도에는 2,093만 톤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이것 말고도 석탄산업에 관련된 거의 모든 수치들이 극적으로 감소했습니다. 탄광 중심으로 형성된 지역경제도 크게 위축돼서 이이즈카시(飯塚市)나 유바리시(夕張市)는 비슷한 기간동안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고 하지..

마르크스주의는 한 사회를 분석하기 위한 기본 틀거리로 생산양식modes of production에 주목했습니다. 생산수단의 소유 및 통제 여부를 중심으로 생산관계가 결정되고, 이에 따라 사회의 하부구조가 조직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러한 토대 위에서 문화 같은 상부구조도 결정되는 거구요. 그런데 티머시 미첼의 『탄소 민주주의』를 읽으면서, 어쩌면 탄소에너지를 사용하는 방식에게도 생산양식과 비슷한 지위를 부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근대의 전환점 중 하나가 탄소에너지의 사용(즉 산업혁명)이니까 말이죠. 티머시 미첼의 『탄소 민주주의』는 탄소에너지의 사용을 중심으로 서구의 근대사를 되짚습니다. 이에 따르면 근대의 서구에서 노동계급이 조직화되고 정치적 권리를 신장시킬 수 있었던 것은 석탄 ..

전작인 『종이동물원』을 너무 인상적으로 읽어서 이번 책도 주저없이 골라들었습니다. 『종이동물원』에 실린 단편소설들은 SF의 외양을 띄고 있지만 '역사'라는 양념을 절묘하게 잘 버무려서, 역사학을 공부하는 저도 너무 재미있게 읽었고 또 영감도 많이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그 때문에 어떤 순간에는 '역사'라는 양념의 맛이 너무 강하지 않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책에서는 양념 맛이 많이 줄어들었는데요, 사람 마음이란게 참 간사한 것이 이제는 또 그 양념 맛이 그립네요 ㅎㅎㅎ (그런데 의외로 「회색 토끼, 진홍 암말, 칠흑 표범」에 눈길이 갑니다. 아마 '민들레 왕조 연대기'의 일부를 떼어온 것 같은데 『삼국지』나 『은하영웅전설』, 『라마』 같은 소설을 좋아했던 20년쯤 전의 저였다면 틀림없..

민주화진영과 집권세력이 현실에서는 치열하게 대립했지만 인식론적으로는 동일한 기반을 공유하고 있다는 지적은, 사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아주 새로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포스트 어쩌고저쩌고 주의들이 이미 한참 전에 그런 주장을 주구장창 이야기했었다는 사실과, 그런 주장들이 압축적으로 결정화된 '대중독재(mass dictatorship)'의 문제의식에 가장 크게 공명했던 이 중 하나가 저자였던 것을 생각하면 말이죠. 더욱이 이 책은 저본인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이 나오고 꼬박 10년이 지나서 나왔기 때문에 어떤 독자는 책을 읽기도 전에 벌써 시큰둥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도 다 아는 얘긴데...) 그런데 막상 책을 읽어보면, 의외로 익숙한 이야기를 반복한다는 느낌이 별로 안 듭니다. 오히려 한두 걸음 정도는 ..

이 책의 소재인 푸순 탄광은 아시아 최대의 노천 탄광으로 알려진 거대 광산입니다. 2019년 폐광되기까지 푸순 탄광은 동아시아의 역사를 추동하는 계기 중 하나였습니다. 당장 1930년대에 일본 제국이 그토록 만주를 확보하고 싶어했던 이유 중 하나가, 푸순 탄광으로 대표되는 풍부한 지하자원이었다고 하죠. 그런데 그런 욕망이 일본 제국의 것일리는 없습니다. 탄소 에너지를 기반으로 쌓아올린 것이 곧 근대문명이기에 중국 국민당이건 중국 공산당이건, 막대한 양의 탄소 에너지가 제공할 물질적 풍요에 눈독을 들인 것은 매한가지였을 겁니다. 이들 국가는 더 많은 탄소 에너지를 추출하는 것에 국가적 역량을 동원했습니다. 석탄을 중심으로 한 기계화된 대량 추출(채광) 체계와 이를 통해 획득된 막대한 에너지를 이용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