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오션토피아 (고예나, 팔일오, 2025.) 본문

역사를 공부하는 것도 결국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일과 매한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역사 연구의 대상인 '과거'도 과거 어느 시점에는 '세상'(혹은 '사회')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대개의 경우 역사는 오늘의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방책이 되곤 합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꼭 역사학만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학 같은 학문은 물론이고 각종 예술 역시 각각의 방식으로 세상을 더 잘 설명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고예나의 소설 『오션토피아』 역시 그런 노력의 일환입니다. 이 소설은 지난 몇 년 간의 한국 사회와 정치를 바닷속 생물들의 이야기에 빗대어 들려줍니다.
『오션토피아』의 이야기는 장수거북과 폼폼크랩 등이 아쿠아리움을 탈출해 바다로 돌아가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바닷속 생물들은 인간이 바다에 흘린 태블릿 같은 물건들을 습득해 사용하기 시작하고, 그 결과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고 언론활동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의견 차이와 대립이 발생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편을 나누어 리더십 싸움을 벌이게 되죠.
여기까지만 들어도 『오션토피아』 속의 세상은 주어가 바다생물로 바뀌었을 뿐 인간사회와 별로 다르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정의와 상식을 내걸었으나 저 스스로는 전혀 그러하지 않은 정치 리더, 언론을 통한 여론통제, 권력의 개입에 의한 댓글조작 등도 최근 얼마간 한국 사회에서 익숙했던 일들을 직접 떠올리게끔 합니다. 각각의 생물들이 구체적으로 어느 실존인물을 겨냥한 것인지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구요. 이 소설의 은유metaphor가 현실에서 무엇을 가리키는지 하나씩 떠올리는 것이 저에게는 꽤 즐거웠습니다. 현란한 말솜씨에 생물들이 농락당하며 바다의 리더십이 엉뚱한 이에게 넘어가는 장면에서는 속이 터질 듯 답답하다가도, 능구렁이 같은(어? 이건 육상동물인데!) 개복치 의원에게서 어느 특정 정치인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쓴 웃음을 짓기도 하고, 관조적이었던 대왕문어가 깜짝 놀랄 정도로 너무 단호해지는 부분(더 설명하면 스포일러...)에서는 약간 통쾌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데 복잡한 현실은 복잡하게 설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역사학 연구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식의 은유와 풍자가 복잡한 현실을 너무 단순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은유와 풍자는 언제나 현실에 비해 단순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실제로 우리는 지난 1년 여 동안 세상이 생각만큼 간단치 않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너무 당연하고 명백해 보이는 것에 대해서조차 사람들의 판단은 모두 다르고, 그것을 현실에서 관철하는 것 역시 무척이나 복잡하고 섬세한 고려 없이는 불가능함을 너무 절절하게 깨달았습니다. 대왕오징어와 대왕문어처럼 간단하고 명확하게 선택지가 나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은유와 풍자를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면서도 그 은유와 풍자에만 갇히지 않으려는 의식적인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곰곰이 더 생각을 해보니 이 소설을 특정한 한 가지 방향으로만 해석하려는 이런 제 생각이야말로 편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까 앞에서 이 소설이 최근 얼마간의 한국 사회에 대한 은유라고 했지만 이 소설의 은유를 꼭 한쪽 방향으로만 읽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2026년 현재의 기준에서야 개복치와 대왕문어와 대왕오징어에서 어떤 특정인을 연상하게 되지만, 내년과 내후년과 또 한참 뒤에는 전혀 다른 인물이 연상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게 바로 은유와 풍자의 힘이겠지요. 그렇다면 이 책은 작금의 현실에 대한 따끔한 풍자인 동시에 앞으로의 우리에게 보내는 엄숙한 성찰의 메시지이기도 한 셈입니다.
『오션토피아』라는 거울을 들여다 볼 때 지금의 독자에게는 아마도 장수거북이나 폼폼크랩이 보이겠지요. 하지만 먼 훗날 언젠가 그 거울에 비친 우리 모습이 리본장어나 백합조개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혹여나 우리 얼굴에 리본장어의 모습이 나타나고는 있지 않은지 혹은 백합조개의 유혹이 우리도 모르게 뒤에서 다가오고 있지는 않은지 『오션토피아』라는 거울을 계속 잘 들여다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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