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카카듀 (박서련, 안온북스, 2024.) 본문

'카카듀'는 1927년 이경손이 만든 커피점입니다. (오랜 시간 조선인이 세운 최초의 커피전문점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그보다 앞서 이성용이 세운 백림관(伯林館)의 존재가 최근에 확인되었습니다.) 카카듀는 몇 달만에 문을 닫았지만 그 풍경은 조선일보 1940년 2월 14일자에 안석영이 쓴 '은막천일야화 : 다방 "카카듀"에 나타난 "하와이"의 아가씨 "미쓰 현"'에 상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박서련의 『카카듀』는 여기에 등장하는 '미쓰 현'이 현앨리스라는 상상력 위에 쓰여진 책입니다. 안석영의 글에 묘사된 '미쓰 현'과 실제의 현앨리스는 상당 부분 일치하고 동일인물일 가능성도 매우 높기는 합니다. 실제로 두 사람을 동일인물이라고 확언하는 사람도 꽤 여럿입니다. 하지만 1928년을 전후한 현앨리스의 행적은 아직 정확히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두 사람이 동일인이라고 확언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이 책은 소설이니 이런 정도의 상상력이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한국 커피의 역사에 관한 연구가 이런 정도의 상상력을 자아낼 정도까지 진척되었다니 일단 그것만으로도 저는 만족스럽습니다.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이 함락되었다. 대혁명 초기 성난 민중의 의지에 의하여. 무너진 감옥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화약과 범죄자들이 아니라 자유와 평등이었다. (...)
(...) 거리에 흐르는 혁명의 뜨거운 피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영업 중인 주점이 1789년 파리 그곳에 있었다. 매일 저녁 악당들이 모여드는 기묘한 주점. 실은 이 주점의 주인이 과거 극장을 차렸다가 망한 전력이 있는데, 예전에 극단에 속했던 배우들을 모아 범죄자 연기를 하도록 주문한 것이었다.
주점 주인과 배우들은 매일 저녁의 범죄자 연기를 '공연'이라 불렀고, 이 공연은 뜻밖에도 상당한 인기가 있었다. 배우들은 그날그날 내키는 대로 방화광이 되거나 색한이 되거나 좀도둑이 되거나 살인마가 되었다. (...)
이렇게 되어서는 처음 온 손님은 이들 중 누가 진실로 선량한 손님이고 누가 파렴치한 불한당인지 구별할 수 없을 것이다. (...)
이 주점의 이름은 초록 앵무새Der grüne Kakadu, 또한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아르투어 슈니츨러가 쓴 동명의 단막 희곡 줄거리였다. (95~99쪽.)
말마따나 끽다점 창업이 좋은 아이디어라는 감상이 없잖아 있었다. 문화생활을 즐기는 경성 시민들, 일단 나부터가 끽다 문화에 관심이 크지만, 우선 값이 비싸 제대로 맛보기가 힘들었다. 남대문역 역사에 부설된 식당부와 끽다부가 있다고는 하나 한 끼 식대가 호텔 투숙비에 맞먹어 조선 사람 형편에는 맞지 않았다. 역 바깥이라고 끽다점이 전연 없는 것도 아니고 이쪽은 남대문역 시설들보다 저렴하기는 하지만, 하릴없이 일본인이 하는 끽다점에 들어갔다가는 외국인 손님들의 눈총을 받는 일이 흔했고 하다못해 종업원들로부터도 비웃음을 살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조선 사람이 하는 끽다점에 가야 되겠는데, 그런 곳은 저 소광교 부근의 백림관뿐. 조선의 대중에게 끽다 문화를 전파하기에는 턱없이 적은 수의 점포만이 운영되고 있었다.
창업의 관점에서는 경쟁자가 거의 없는 시장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공급의 경쟁자가 적은 만큼 수요자도 충분할는지? 신문이나 잡지마다 경성 바닥의 끽다 문화 취재가 이어지는 것을 보면 고무적이지만, 겨우 물 끓여 팔면서 5전, 10전씩을 내놓으라는 가게가 과연 조선 사람 입맛에 맞을는지? 끽다점 겸업을 하는 요리점들의 경우 외국어로는 끽다점이라 광고하면서, 한글로는 요리점이라 광고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물을 돈 주고 사먹기는 아까워도 요리를 돈 주고 사 먹는 것은 아쉽지 않은 조선인들의 심리를 꿰뚫어 본 전략이 아닌가. (125~126쪽.)
혹자는 나와 앨리스의 카카듀가 조선 최초의 서구식 끽다점이라고 평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기억의 오류 또는 조사 범위의 부족에서 나온 편향된 결론이다. 당시 경성에는 일인이 차린 킷사텐喫茶店이 따로 있고 조선인이 차린 끽다점(똑같이 喫茶店)이 또 따로 있었다, 예를 들어 이성용 씨의 백림관 같은. 카카듀는 북촌 일대에 처음 들어선 서구식 끽다점이랄 수는 있어도 조선 최초나 경성 최초의 카페는 결코 아니었다. (...) (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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