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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5일의 근황 본문

잡事나부랭이

2011년 10월 5일의 근황

Dog君 2011. 10. 5. 10:04
1. 눈을 뜨니 6시 12분이다. 5시에 맞춰둔 알람을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어쨌거나 6시 12분이다. 얼추 6시 30분쯤에는 집에서 나가는 편이니 이쯤 되면 늦은 셈이다. 피곤함을 느낄 새도 없이 얼른 샤워하고 옷 입고 가방 메고 집을 나섰다. 아 오늘은 좀 피곤하다...고 느낀 것은 수원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였다.

2-1. 8시 30분 조금 넘어서 사무실에 앉아 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산 빵을 꾸역꾸역 입에 밀어넣었다. 편의점에서 파는 빵이니 카스테라는 뭘 넣은건지 한도 없이 달고 크림빵은 뭘로 만든건지 기름내만 난다. 먹고 나니 배가 슬슬 아파온다. 밀가루음식에 약한 것을 모르지 않음에도 그나마도 먹지 않으면 배고파서 오전을 견디기 어려우니 (내 몸에 한끼 굶는다는건 정말 고문이다) 중간에 화장실로 뛰쳐가는 한이 있어도 배는 채워둬야 한다.

2-2. 밀가루음식에 약한 것은 우리집 남자들의 공통적인 내력이다. 어릴적 기억에 따르면 아버지는 안주로 짬뽕을 드시면 꼭 집에 와서 그걸 다 토해내셨다. (애들 앞에서 말이지... 끙)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보기 흉한 오바이트는 안주가 꼭 짬뽕이어서라기보다는 마신 술의 양이 좀 더 큰 원인이었던거 같긴 하지만 위장에서 일어났을 소주와 짬뽕의 독특한 화학작용도 아주 원인이 아니라고는 못하지 싶기도 하다. 대학 2학년 때 정말 돈이 하나도 없어서 한 일주일 정도 계란, 파 이런거 하나 없이 정말 있는 그대로의 라면만으로 살았던 적이 있다. (그나마도 라면스프를 조금씩 아껴서 모아뒀다가, 마지막 한끼는 예전 어느 술자리에서 챙겨둔 라면사리 한봉지에 아껴서 1회분을 만든 라면스프로 먹었던거 같다. 아 ㅅㅂ 지금 생각하니 눈물나네 좀.) 그러고 온 몸에 두드러기 비슷한 것이 올라오는 통에 그마저도 못먹고 친구들이 밥을 사줬던 기억이 있다. 아마 그 때의 그 호소글이 동기 클럽에 있지 않을까 싶다.

3. 모임에서 간만에 글을 쓰고 발제를 했다. 세대론 관련된 것이었는데 암만 생각해도 "출구가 없어요"라는 식의 결론 밖에 쓸 수 없어서 많이 짜증이 났다. 사실 좀 더 짜증났던 것은 그 앞 뒤로 배치된 글들이 하나같이 바람과자먹고 구름똥싸는 신선들처럼 저기 멀리 위에서 도덕비평처럼 세상을 내려다보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나라에서도 꽤나 진보적인 생각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명망이 높지만 그만큼 전통이 깊은 계간지라서 그런지 글들도 꽤나 꼰대적이었다. 자꾸 원칙 좀 그만 갖다붙이고 밑에서 헐떡이는 애새끼들을 좀 보라고, 좀. 원칙은 도덕교과서에도 잔뜩 있으니까 똑같은 얘기 할거면 책을 아주 안 쓰는게 지구온난화에라도 좀 도움되지 않겠습니까.

4-1. 좀 웃기는건 그 발표를 하겠답시고 수원에서 강남 찍고 (원래는 사당을 찍어야 하나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강남을 찍고!) 신촌까지 꾸역꾸역 올라간다. 별 대단하지도 않은 짧은 에세이 수준의 글을 사람들 앞에서 읽어보겠다고 얼추 두시간이 넘게 걸리는 대장정을 무릅쓰고 연세대까지 갔다.

4-2. 중간에 강남에서 유부남J씨를 만날 가능성이 잠시 점쳐지기도 했으나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유부남J씨는 신촌행을 포기하였다. 유부남J씨는 맺고 끊는 것이 명확하고 입장표명에 주저함이 없으며 상당한 수준의 유머실력까지 갖춘 사람이다. 유부남이라거나 애가 하나 딸려있다거나 하는 사정과 전혀 무관하게 나보다 한 47배 정도는 더 쿨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이라고 본인은 강변하겠지만!) 유부남J씨의 태도가 그 순간 못내 부럽기도 하였다. 기실 그 발제는 내가 하고 싶다고 한 것도 아니었고 모임에서 으레 그래왔듯 이메일을 통해 발제 할당사실을 통보받은 것이었는데 이걸 왜 이리 열심히 하고 있는걸까 싶었던게지.

4-3. 마음이 통했는지 어땠는지 유부남J씨는 그런 나를 두고 "대훈씨는 집이 왕십리고 직장이 수원인 주제에 통3 발제까지 하는걸 보니 스스로 참 답답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라는 소회를 밝혔다

5-1. 자정을 좀 넘어 알콜기운 살짝 풍기며 전철을 타니 이번엔 유부녀L씨가 문자를 보내왔다. (내가 평소에 삼각김밥이라고 부르는) 자기의 스트라이다를 사지 않겠냐는 것. 남편 따라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유부녀L씨는 지금 자기 집의 살림을 하나씩 처분하는 중인데 오늘 품목은 스트라이다인 모양이다. 살짝 끌리기는 하였으나 일단은 하루만 시간을 더 달라고 답장을 보냈다. 통장 잔고도 걱정이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사실 다른 문제였다.

5-2. 좀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자전거를 못 탄다. 아주 못 타는 것은 아니고 그냥 앞으로만 나갈 뿐 자유자재로 방향을 돌리거나 아주 좁은 길을 용케 가거나 하지를 못한다. 운동신경이 심각할 정도로 부족한 탓도 있지만 자전거를 배울 적에 그냥 앞으로 나가는 수준까지만 배운 후로 자전거를 안 탄 것도 원인이다. 자전거 하나 장만할 좋은 기회인데 좀 망설여지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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