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두개의 문 본문

잡畵나부랭이

두개의 문

Dog君 2012. 7. 1. 12:55


0. 2009년 벽두에 용산 재개발 사업과 관련한 농성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5명의 농성자와 1명의 경찰특공대가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비현실적인 이주보상비에 이주 불가 입장을 고수한 일부 주민들은 한 건물 위에 망루를 짓고 농성을 개시했다. 불과 25시간만에 경찰특공대가 투입되었다. 이 과정에서 망루에 화재가 발생했고 농성 중이던 농성자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사망했다.


1-1. '두개의 문'이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는 방식은 역사학자의 그것을 닮아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인터뷰와 (경찰 채증 영상을 포함한) 현장 영상, 재판 과정에서의 경찰 측 진술 등을 종합하여 당시의 상황에 관한 최대한 많은 사실의 조각들을 늘어놓는다.


1-2. 이 과정에서 나레이션은 전혀 삽입되지 않고 자막 역시 일시와 장소를 표시하는 자막 정도로 최소화되었다. 물론 '사실의 조각'들을 어떤 순서로 늘어놓는가를 통해서도 만드는 이의 관점이 반영된다는 점은 인정해야겠지만 어쨌거나 최대한 건조하게 사실들을 늘어놓으려 애쓴 제작진의 의도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2-1. 철거민들의 망루 농성이 공공의 안전을 위협했기 때문에 (對테러 작전을 주목적으로 하는) 경찰특공대가 투입되어야 했다는, 아니 적어도 어떤 식으로든 공권력을 동원해 그들을 진압해야 했다는 주장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망루의 농성자들이 가만 내버려둬도 주변 길가에 화염병과 돌을 집어던져서 주변 교통을 마비시키고 무고한 시민들에게 위해를 가했음이 입증되어야 한다. 그들이 망루를 짓고 농성을 시작했을 때 공권력이 취했어야 하는 행동은 그들을 힘으로 몰아붙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어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2-2. 잘 알다시피 경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협상테이블은 마련되지 않았고 진압을 위한 최소한의 정보(망루 내부의 구조나 위험물질 존재 여부 등)는 커녕 충분한 시간과 장비도 확보되지 않은 채 진압작전이 수행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경찰(과 권력) 상층부는 무리하게 일선 지휘관들과 경찰들을 몰아세웠다. 공권력의 최말단에 있었던 경찰특공대원들은 최소한의 작전 수칙도 지켜지지 않은 채 사지로 떠밀린 셈이다.


3-1. 혹자는 영화가 지나치게 사법 프레임에 갇힌 느낌이라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는데 영화가 전반부에 엄청나게 많은 양의 정보를 반복적으로 쏟아붓는 것도 아마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 때문에 영화가 관객에게 과하게 친절한 것은 아닌가 싶은 느낌도 없지 않다. 그리고 사법 프레임으로 사건을 바라보게 될 경우 우리가 다시 (허울 좋은) '법질서'의 틀에 갇힐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두개의 문'이 취한 이러한 전략에 대해 걱정이 되기도 한다.


3-2. 그러나 또 한편으로 영화를 건조한 사법 프레임으로 짜맞춘 것에 마냥 비판적인 입장을 취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오히려 연출자들의 의도가 아닌가 싶다.


3-3. 애초 '법치(法治)'라는 것이 '인치(人治)'와 대비되어 무제한적 권력에 맞서기 위한 제도적 수단으로 강구된 것임을 염두에 둔다면 '두개의 문'의 연출자들이 법이라는 제도를 통해 현재 대한민국의 원시적 권력에 맞서고자 한 것이라는 추측도 성립가능하다. 현 권력에 대한 즉자적 분노를 넘어 그들과 어떻게 맞서고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를 고민한 결과는 최대한 많은 '사실의 조각'들을 통해 냉정하게 '진실'을 다시 짜맞추는 것이었을 것이다.


4. (한번 더) '두개의 문'이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는 방식은 역사학자의 그것을 닮아있다. 그간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의 조각'들을 끄집어내려 애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학자의 작업이란 건조하게 '사실의 조각'들을 늘어놓는데서 끝나지 않는다. 여기서 더 나아가 조각들을 배치하고 짜맞춰서 '진실'을 구성해내는 것이 역사학자의 역할일테다. 그리고 그 조각들과 역사학자가 서로 대면하는 그 순간이 아마 E. H. 카가 "과거와 현재의 부단한 대화"라고 말한 과정의 시작일 것이다. 이 영화로 '사실의 조각'들이 주어졌다. (그리고 아마 더 많은 조각들이 필요할 것이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여기서 더 나아가는 것이다.


ps. 며칠 전까지 9점 이상의 높은 평점을 기록하던 '두개의 문'의 네이버 영화 평점은 불과 이틀 사이 수백개의 1점 평가를 받으며 현재는 4점대로 떨어졌다. 숫자로 따지면 그 평가 숫자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고 그들 아이디 중 대부분이 '두개의 문'에 대한 평가가 첫 평가라고 한다. 아, 진짜 후지다 후져.

'잡畵나부랭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난 그녀와 키스했다 (Toute premiere fois)  (0) 2015.08.18
그리고 싶은 것  (0) 2013.08.23
적과의 동침  (0) 2011.04.28
덱스터 (Dexter) Season 4  (0) 2010.07.24
배틀스타 갤럭티카 (Battlestar Galactica)  (0) 2010.07.23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