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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畵나부랭이

그리고 싶은 것

Dog君 2013. 8. 23. 20:57



1. 또다시 8월이다. 우리에게 8월은 (5월만큼이나) 의미가 깊다. 지난 세기의 전반(前半) 내내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총칼의 힘이 일시에 거두어진 때가 8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8월을 맞는 우리의 마음이 아주 편하지는 않다. 그 '총칼의 힘'이 우리에게 남겨놓은 상처와 관성들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그 관성과 상처들 중 하나이다.


2. 영화에 대한 대단한 식견이 있는 것도 아닌 내가 뭐라뭐라 말할 입장은 못 되지만 약간의 개인적 친분을 무기 삼아 주제 넘은 평론을 좀 덧붙이자면, 감독 권효의 미덕은 큰 이야기를 크게 그리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첫 장편 '원 웨이 티켓'에서 감독은 감독 본인의 옛 친구들을 필름에 담았고, '잼 다큐 강정'에서는 강정 마을의 아이들과 함께 호흡했다. 거대한 정치적 구호를 내세우지 않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작은 일상들에 주목하는 화법으로 그가 획득한 것은 사람들의 생생한 숨결이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의 기본적인 속성이 연출되지 않은 장면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삶의 구체적인 에 천착하는 그의 방식은 존중 받아 마땅하다. 간혹 몇몇 영화들이 과도한 문제의식으로 인해 정작 사람 이야기는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곤 했던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3-1. 수십만에 달하는 여성들을 오직 성욕을 충족시키는 '도구'로만 사용한 '위안부'는 세상 누가 들어도 공감할만한 일이다. 흔히 그 공감에는 피해자들이 겪어야 했을 그 끔찍한 경험에 대한 연민과 짐승만도 못한 가해자들에 대한 분노가 섞이게 마련이다. 그리고 실제로 '위안부' 문제가 우리 사이에서 소비되는 방식도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3-2. 하지만 '그리고 싶은 것'과 작가 권윤덕은 그러한 분노를 거부한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우리가 진정으로 분노해야 하는 것은 일본이라는 국가 전체 혹은 일본인 병사 개개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권윤덕이 지적하는 것처럼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에는 항상 성폭력이 수반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안부 문제, 더 나아가 전쟁기의 폭력 문제는 우리 스스로도 언제든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베트남에서 그랬잖은가.) 그 점에 대한 성찰이 결여된다면, 우리는 언제든 제 2, 제 3의 위안부 문제를 맞닥뜨려야 할 것이다.



4. 위안부 문제의 1차 가해자는 일본 정부와 일본 제국주의와... 뭐 그런 것들이겠지만 그 문제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자세 역시 딱히 바람직했던 것 같지는 않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용감한 고백이 있기 전까지 '위안부'는 그저 쉬쉬하고 넘어가는 문제였지 결코 실존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의 침묵은 위안부 문제의 풍부한 배양토였다. 그 때문에 더더욱 성찰의 문제는 중요해진다.


5. 우여곡절 끝에 꽃할머니 그림책이 출판된 후 권윤덕이 남기는 사인의 내용이 인상적이다. "공감하는 사회를 꿈꾸며". 위안부 문제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분노'나 '증오'가 아니라 '공감'일 것이다. 끊임없이 '나'와 '적'을 가르고 '내가 아닌 것'(적)에 대해 끝없이 적개심을 키우는 방식으로 우리는 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지금도 한창 말 많은 '일베'에서 결핍된 것은 '잘못된 역사인식'이 아니라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 아닐까. 그런 점에서 나는 '그리고 싶은 것'이 그리고 싶은 것이 단지 위안부 문제만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6. 한국에서 과거사를 다루는 방식은 사법의 문법과 닮아있다. 누가 얼마나 잘못했는지를 (소위 '객관적으로') 따지고, 그 역사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방식 말이다. 하지만 사법과 역사는 분명 다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리고 싶은 것'이 진정으로 그리고 싶은 것은 (사법적) '처벌'이 아니라 (역사적) '성찰'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싶은 것'이 좀 더 다양하고 풍부한 맥락에서 해석되기를 바란다.


ps. 영화 말미에 아직 생존해 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수가 58명이라는 자막이 나온다. 하지만 얼마 전 또 한 분의 할머니가 돌아가셨기에 이제 그 숫자는 57로 수정되어야 한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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