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아파트 공화국 (발레리 줄레조, 후마니타스, 2007.) 본문
1-1. 외국인(혹은 외부인)의 시선으로 한국사회를 바라본다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작업인 동시에 대단히 위험한 작업이기도 하다. 누구나 당연한 듯 인식했던 사실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참신함이 흥미로움을 더하는 요소라면, 한국사회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은 그 작업을 흔해빠진 '앗, 세상에 이런 일이'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위험성으로 작용한다.
1-2. 저자인 발레리 줄레조는 한국사회에서 아파트라는 거주형태가 가지는 인기와 보편성, 그리고 거기에 덧씌워진 권력의 욕망과 사람들의 오해들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선언적으로 '그거 착각이거든용'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그 대신 거주민들과의 심층 인터뷰와 아파트 정책의 역사를 탐구하는 것을 통해 의도한 결론을 향해 독자들을 인도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지무지하게 참신한 결론이 도출된 것은 아니다만은... ㅡㅡa)
1-3. 그렇기에 전반적으로 한국사회에 대한 곱지만은 않은 시선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독자로 하여금 자연스레 결론을 수긍할 수 있도록 만드는 한편 서구인의 '깔보는 시선'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한다. 아마도 그것이 인류학적 방법론이 가질 수 있는 장점 중 하나겠지.
2-1. 남한이 경험했던 폭발적인 수량적 경제성장에 있어서 아파트라는 거주형태는 정말로 '현대적'인 것이었을지 모른다. 저렴한 '통제' 비용과 집단거주의 효율성 등은 밀도 높은 경제성장에 있어서 필수요소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현대적'이라는 말은, 당대 권력의 요구에 부응하는 형태라는, '당시대적'이라는 말로 바꿔 생각해도 적절할 것.
2-2. 하지만 닭장과 같은 구조에 가난한 서민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으로 인식되었던 아파트가 불과 30년만에 한국인 전반의 욕망에 부응하는 거주형태가 된 것은 권력의 욕망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아파트에 덧씌워진 이미지는 한국인들의 복잡한 세계관과도 조응한다.
3-1. 아파트가 현대적인 것의 상징이라면 전근대적인 것의 상징은 역시 한옥이다. 쪼그려 앉아야 하는 아궁이의 불편함, 계속 신발을 갈아신어야 하는 동선구조 등은 주부들에게 있어서 가장 강한 아파트로의 유인동기로 작용한다. 그 외에도 여러 요소들이 아파트를 서구적이고 현대적인 것으로 인식하게끔 만든다.
3-2. 한국인에게는 당연하게 인식되는 이 사실이, 외국인의 눈으로 보면 좀 다른 모양이다. 신발을 신는 공간과 신지 않는 공간이 교차 배치된 아파트의 구성상 신발을 연신 갈아신어야 한다는 점은 여전할 뿐더러 온돌과 같은 바닥난방 구조도 서구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양식이다. 더욱이 흔히 베란다에 배치되곤 하는 장독들 역시 한옥과 아파트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실제로 서구에서는 이미 아파트는 실패한 거주형태이고 그 숫자 역시 소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에는 이미 존재하지도 않는 아파트가 한국에서는 서구 근대성과 진보의 상징으로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은 확실히 구미를 당기게 하는 사건임에 틀림없다.
3-3. 저자는 대충 이 정도에서 논의를 정리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논지를 좀 더 끌고 나가자면, 아파트라는 공간이 상징하는 혼종성hybridity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서구에서 수입된 '집단거주의 양식'과 '권력의 필요', 서구적인 것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 '한옥의 구조'가 혼종된 '한국의 아파트'야 말로 혼종성의 전형인 동시에 한국에서 아파트가 서구와 다른 결과를 산출한 원인이 아닐까. (아니 뭐... 그냥 해 본 소리. 요새 이 쪽으로 책을 읽었더니 뭘 봐도 다 이렇게 보이는구만. 쩝.)
4. 번역서의 문제 중 하나는 매끄럽지 않은 문장인데, 이 책은 전문번역가의 작품인만큼 번역투답지 않은 매끄러운 문장을 자랑한다. 다만 전문번역가의 번역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이 좀 딸린다는 점. 브루스 커밍스의 책 'Korea's place in the sun'을 '양지 속의 한국'으로 번역하는 센스란... 물론 이건 번역자의 탓은 절대 아니다. 한국사 전공자가 아니니 직역을 하는 것이 당연하지. 하지만 교열팀에서 국내 출판명은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였다고 괄호라도 달아줬어야 했다. 다른 데도 아니고 후마니타스에서 이게 뭐니 이게...
1-2. 저자인 발레리 줄레조는 한국사회에서 아파트라는 거주형태가 가지는 인기와 보편성, 그리고 거기에 덧씌워진 권력의 욕망과 사람들의 오해들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선언적으로 '그거 착각이거든용'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그 대신 거주민들과의 심층 인터뷰와 아파트 정책의 역사를 탐구하는 것을 통해 의도한 결론을 향해 독자들을 인도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지무지하게 참신한 결론이 도출된 것은 아니다만은... ㅡㅡa)
1-3. 그렇기에 전반적으로 한국사회에 대한 곱지만은 않은 시선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독자로 하여금 자연스레 결론을 수긍할 수 있도록 만드는 한편 서구인의 '깔보는 시선'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한다. 아마도 그것이 인류학적 방법론이 가질 수 있는 장점 중 하나겠지.
2-1. 남한이 경험했던 폭발적인 수량적 경제성장에 있어서 아파트라는 거주형태는 정말로 '현대적'인 것이었을지 모른다. 저렴한 '통제' 비용과 집단거주의 효율성 등은 밀도 높은 경제성장에 있어서 필수요소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현대적'이라는 말은, 당대 권력의 요구에 부응하는 형태라는, '당시대적'이라는 말로 바꿔 생각해도 적절할 것.
2-2. 하지만 닭장과 같은 구조에 가난한 서민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으로 인식되었던 아파트가 불과 30년만에 한국인 전반의 욕망에 부응하는 거주형태가 된 것은 권력의 욕망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아파트에 덧씌워진 이미지는 한국인들의 복잡한 세계관과도 조응한다.
3-1. 아파트가 현대적인 것의 상징이라면 전근대적인 것의 상징은 역시 한옥이다. 쪼그려 앉아야 하는 아궁이의 불편함, 계속 신발을 갈아신어야 하는 동선구조 등은 주부들에게 있어서 가장 강한 아파트로의 유인동기로 작용한다. 그 외에도 여러 요소들이 아파트를 서구적이고 현대적인 것으로 인식하게끔 만든다.
3-2. 한국인에게는 당연하게 인식되는 이 사실이, 외국인의 눈으로 보면 좀 다른 모양이다. 신발을 신는 공간과 신지 않는 공간이 교차 배치된 아파트의 구성상 신발을 연신 갈아신어야 한다는 점은 여전할 뿐더러 온돌과 같은 바닥난방 구조도 서구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양식이다. 더욱이 흔히 베란다에 배치되곤 하는 장독들 역시 한옥과 아파트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실제로 서구에서는 이미 아파트는 실패한 거주형태이고 그 숫자 역시 소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에는 이미 존재하지도 않는 아파트가 한국에서는 서구 근대성과 진보의 상징으로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은 확실히 구미를 당기게 하는 사건임에 틀림없다.
3-3. 저자는 대충 이 정도에서 논의를 정리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논지를 좀 더 끌고 나가자면, 아파트라는 공간이 상징하는 혼종성hybridity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서구에서 수입된 '집단거주의 양식'과 '권력의 필요', 서구적인 것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 '한옥의 구조'가 혼종된 '한국의 아파트'야 말로 혼종성의 전형인 동시에 한국에서 아파트가 서구와 다른 결과를 산출한 원인이 아닐까. (아니 뭐... 그냥 해 본 소리. 요새 이 쪽으로 책을 읽었더니 뭘 봐도 다 이렇게 보이는구만. 쩝.)
4. 번역서의 문제 중 하나는 매끄럽지 않은 문장인데, 이 책은 전문번역가의 작품인만큼 번역투답지 않은 매끄러운 문장을 자랑한다. 다만 전문번역가의 번역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이 좀 딸린다는 점. 브루스 커밍스의 책 'Korea's place in the sun'을 '양지 속의 한국'으로 번역하는 센스란... 물론 이건 번역자의 탓은 절대 아니다. 한국사 전공자가 아니니 직역을 하는 것이 당연하지. 하지만 교열팀에서 국내 출판명은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였다고 괄호라도 달아줬어야 했다. 다른 데도 아니고 후마니타스에서 이게 뭐니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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