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동아시아 경제 발전 메모 본문
강진아, 중국의 부상과 세계사의 재조명 - 캘리포니아 학파에서 글로벌 헤게모니論까지, 역사와 경계 80, 2011. 에서 발췌.
일찍이 1930년대에 이러한 시각에서 산업혁명이 발생한 원인으로 석탄과 철과 같은 자원을 지적한 학자는 존 네프(John Nef)였다. 네프는 16세기 후기와 17세기 초기 석탄은 이미 곡물, 양모와 함께 영국의 3대 주요 생산품이었으며, 17세기 후기와 18세기 전기가 되면 철 생산량은 영국의 제2위의 산업으로 떠올랐다고 강조했다. (중략) 즉 공업혁명 이전에 이미 영국은 철과 석탄이라는 면에서 특수한 혜택을 입고 있었다는 것이다. (pp. 154~155.)
이백중은 마르크스의 확대재생산 과정을 사회생산에서 생산재료의 생산(중공업)과 생활재료의 생산(경공업) 양자의 비중이 역전되는 과정으로 해석하고, 바로 영국 산업혁명이 이러한 전환을 경험했다고 보았다. 전통적으로 학계는 영국 산업혁명에서 기계 면방직업의 발전만을 주목했었지만, 이백중은 산업혁명에 더욱 큰 작용을 한 것이 중공업의 맹렬한 발전이며 그 내용은 바로 "석탄과 철의 혁명[媒鐵革命]"이라고 주장하였다. (p. 157.)
그러나 프랑크나 아리기에게 영감을 제공한 포머란츠는 오히려 이러한 중국 혹은 동아시아에 대한 친환경적 대안론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그는 스기하라와 마찬가지로 19세기 이후의 동아시아 경제발전이 서로 다른 부존 자원 조건에서 서유럽의 기술을 이식하기 위해, 자원절약적이며 노동집약적인 독자적인 공업화전략을 선택한 결과였다는데 동의한다. 즉 전후의 "동아시아의 기적"은 이 동아시아형과 서양형의 융합, 즉 스기하라 식으로 말하자면 잡종적(hybrid) 경로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최근 중국의 서부대개발을 사례로 들면서, 중국의 내륙부에 대한 발전전략은 오히려 본래의 동아시아형으로부터는 일탈이며, 생태환경 파괴적인 발전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p. 177.) (ケネス·ポメランツ, 杉原薰·西村雄志 譯, 比較經濟史の再檢討一東アシア形發展經路の槪念的, 歷史的, 政策的含意, 社會經濟史學 68-6, 2003, pp. 24~26.)
그런데 근대 공업에 대한 비판과 농업의 재평가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이 미래를 위해 아시아에게 거는 기대와 내용은 차이가 있다. 포머란츠는 스기하라와 마찬가지로 자원낭비적인 근대 자본주의 경제가 낳은 생태파괴를 비판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미래의 대안으로 아시아를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스기하라는 노동집약적 전통을 계승한 아시아의 잡종적 공업화가 유럽식 자원소모적 공업화보다 자본주의 시장에서도 더욱 효율적이고 우세에 설 수 있었으며 그것이 일본과 동아시아의 경제적 부상의 근원이라고 본다는 면에서, 자본주의를 배제하지 않는다. 한편 아리기는 중국의 향진공업이나 소유제 자체에도 제한을 두는 공산당 주도형 산업화에 관심을 두면서 아시아적 전통,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잡종형이 유럽식 공업화보다 우월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아리기는 시장경제를 부정하지 않지만 자본주의의 초극 가능성도 부정하지는 않으며, 미래생산방식의 대안인 동시에 자본주의 초극의 대안으로 아시아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할 수 있다. (pp. 178~179.)
캘리포니아 학파에서 글로벌 헤게모니論까지 중국의 부상과 세계사의 재조명 과정을 회고해보자면 새로운 세계사 연구는 현실에 깊이 영향 받으며 제기되어 또 다시 현실을 직접적으로 해석하는 인접 사회과학에 자양분을 주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사회과학의 새로운 현상 해석은 일반인들이 오늘날과 근미래의 세계를 전망하는데 영향을 주고 있다. 물론 새로운 세계사가 유교자본주의처럼 20세기 동아시아 및 중국 부상에 대한 사후적 해설일 수도 있다. 또 하마시타 다케시(濱下武志)는 캘리포니아 학파의 신 세계사가 유럽 중심의 세계사를 비판하지만 미국학계가 아시아를 재평가하는 방으로 아메리카를 세계사의 중심에 놓으려는 시도일 수 있다고 의혹의 시선을 던진다. 한국학계에서는 스기하라 가오루와 같은 일본 내의 동아시아론이 다분히 일본 중심적이라고 의심한다. 아울러 캘리포니아 학파의 작업이 인도, 일본, 중국을 또 다른 중심으로 만들 수 있다거나, 프랑크와 아리기의 사례처럼 중국 중심주의로 흐를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도 존재한다. 또한 계몽주의 시대에 유럽 지식인들 사이에 벌어진 중국과 아시아를 보는 상반된 시각의 논쟁이 유럽 내부의 정치사회 개혁에 대한 시각차를 비추는 거울이었던 것처럼, 오늘날 서구학계의 중국과 동아시아론 역시 서구 내부의 위기와 대안에 대한 논쟁에서 동원된 측면이 있다. 필자 역시 이러한 평가에 동의하지만, 여하튼 통섭의 시대에 새로운 세계사 해석은 역사학의 전문 연구 틀 안에만 머물지 않고 인접학문으로 현실로 뛰쳐나가고 있다. 역사는 역사학의 경계를 뛰어넘고 있는 것이다. (pp. 180~181.)
'잡想나부랭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버지 (2) | 2013.06.20 |
---|---|
잣인감 (0) | 2013.04.29 |
대선 끝난 후 단상 (0) | 2012.12.21 |
'학살, 그 이후' 이후 (0) | 2012.12.03 |
대선 단상 (0) | 2012.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