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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동양학의 구조 (스테판 다나카, 문학과 지성사, 200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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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동양학의 구조 (스테판 다나카, 문학과 지성사, 2004.)

Dog君 2008. 8. 14.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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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래 제목은 'Japan's Orient'. 눈치가 빠르고 역사 쪽에서 나름 깜냥이 있는 사람이라면 원래 제목만 보고도 대충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건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원래 제목이 좀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는 점도.

2-1. 19세기 중엽(혹은 말엽), 서구의 근대성modernity와 조우한 동아시아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했던 것 중 하나는 스스로를 근대로 포장시키는 것이었다. 앙드레 슈미드의 '제국 그 사이의 한국'이 조선의 신문에서 그러한 노력을 더듬어 본 것이라면 스테판 다나카의 '일본 동양학의 구조'는 일본의 역사학에서 그러한 노력을 찾아본 것이라고 하겠다.

2-2. 좀 더 정확하게는, 앙드레 슈미드의 글이 민족건설nation-building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스테판 다나카의 글은 역사담론 속에서 일본이라는 국가의 위치를 재정립되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할 수 있다.

3. 어차피 근대가 민족(혹은 국민)nation과 국가state를 구성해가는 시기였다는 사실은 역사학에서라면 서당개도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에 그런 진부한 소리를 읊는 것은 전공자로서의 위상을 서당개의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일이라 하겠다. 따라서 그런 얘기는 일단 패스.

4-1. 다만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동아시아에서의 근대담론의 형성이 서구라는 타자를 염두에 두고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즉, 근대 담론의 목표가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타자'까지 포함한다는 뜻인데 이런 점에서 동아시아 근대담론의 지향orient은 반드시 복층적으로 분석될 필요가 있다. (물론 내가 여기서 복층적으로 분석하겠다는 뜻은 아니고...)

4-2. 따라서 일본의 근대담론도 서구라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먼저 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일본의 동양학 연구-인용자 주)을 통해 아시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일본인의 아시아사 연구는 일본에 대한 유럽인들의 오해를 바로잡아줄 것이다. 그는 말한다. "나는 일본인들에게 긴급한 문제는 저들 (서양) 국가에 일본을 알리고 일본의 진보를 분명히 하는데 (어떻게) 역사 연구를 이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역사적 사실과 이러한 진보의 수준을 이용하게 될 때, 그들의 경멸에 찬 표현은 분명 사라질 것이다." (pp. 90~91.)

5. 일본 근대 동양사학의 첫 목표는 당연히 '지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일본의 역사에서 가장 큰 역사적 결정력을 누려온 아시아 국가가 다름아닌 중국이었기 때문이다. 동양사학의 목표는 '지나'와 일본이 지니고 있는 아시아적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뒤떨어진 중국을 진보적인 일본과 분리할 것인가로 설정되었다. 그리고 일련의 노력들을 통해 지나와 일본이 공유하고 있는 문화적 틀, 즉 유교를 중국과 분리하는데 성공하는 것으로 동양사학의 1차적 목표는 달성되었다. 지나가 가지고 있던 동아시아 사회의 주도권을 일본으로 옮겨올 수 있는 이론적 장애물이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6.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당대의 동아시아 지식인들을 매료시킨 하나의 이론틀이 완성된다. 이는 일본을 맹주로 하여 동아시아를 하나의 틀로 묶으려는 시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과 일본을 분리하려는 시도가 아시아라는 권역을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이는 근대 아시아사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예를 들어 '동양평화론'이라든지...) 물론 이러한 틀이 제국주의적 속살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한 이집트주의의 헤게모니는 레나토 로살도Renato Rosaldo가 제국주의적 향수라고 부른 것에 의해 가려진다. 제국주의자는 종종 이해와 도움을 주기 위하여 식민지에 간다. 많은 경우, 과거-그의 근대적 세계가 상실한 것-에 대한 향수는 식민지 사회를 돕고자 하는 목적과 공존한다. 그러한 향수는 관찰자에게 대상을 동정하도록 유도한다. 그와 함께, 대개는 그 사회에서 그가 동경하는 바로 그 부분들을 변화시키는 데도 일익을 담당한다. '동양'에는 지나간 이상형에 대한 존경과 현재의 장소에 대한 우월성의 확신이 공존하였다. (p. 288.)
  그러한 내러티브의 결과는 분명하다. 토대인 역사철학이 수립된 이상, 객관적 연구는 현재의 상황들을 공인하는데 사용하고 조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인은 이제 그들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역사적 지식을 조작했으며, 푸코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그들 자신의 '이집트주의'를 강요할 수 있었다. (p. 309.)
  정치적, 지역적 연합은 중국에게 좀 더 큰 발언권을 부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일본의 체제 안에서의 발언권이었을 뿐 자립적인 것이 아니었다. 나이토처럼 스스로를 중국의 벗으로 간주한 사람들,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한 마르크스주의자들조차 이러한 구조에 포함되었다. (중략) 그들의 자신들의 범주 밖에 있는 중국인들의 목소리를 보거나 듣지 않았으며, '지나'가 그 올바른 행로에서 이탈하는 것을 허락하려고 하지 않았다. (p. 371.)

7. 사실 여기까지만 쓰고 말았으면 (요즘 범람하고 있는, 그래서 무지무지하게 흔해 빠진) 근대성 비판서와 아무런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이렇게 길게 글을 쓸 욕구를 전혀 느끼지 못했을 것이고.)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근대담론 속에 녹아있는 다양한 합의와 타협의 흔적들을 예리하게 포착해 냄으로써 (무려 10여년 전에 쓰여진 책임에도 불구하고!) 근대성에 대한 다층적인 고찰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물론 이 이상 이야기를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성 이상의 의의를 찾기는 힘들 듯.)

  그러나 이 역사가 독재적인 것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소규모의 정치가나 학자들에 의해 대중에게 강요된 것이 아니었다. 데이비드 로웬탈이 지적한 것처럼, 반드시 자발적이거나 의식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라 해도 역사는 합의에 따른 것이다. 그것은 일상생활에서 직업적인 역사가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준에서 생긴다.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담론적이다. 칼 벡커Karl Becker의 '누구나 자기 자신의 역사가Everyman His Own Historian'를 사용하며... (p. 375.)

  '누구나 자기 자신의 역사가Everyman His Own Historian'라는 개념, (어딘지 모르게 해석은 까리하지만) 이후에 여기저기서 써먹을 일이 많을 듯 하다.



ps: 글을 쓰면서 끼워넣기가 좀 거시기했던 부분이 또 하나 있는데, 다른 맥락에서라도 써먹을 일이 좀 있을 것 같아 메모를 겸해서 인용해둔다. '주술적 정부'라는 개념이 눈길을 끈다.

  다시 말해 일본인의 정신은 정부의 지도자인 천황에 대한 이와 같은 숭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역사는 국민국가에 유용한 통일성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일본인의 정신과 본질처럼 내재적인 것으로 바꾼 '창조의 이야기'였다. 시라토리는 이러한 정부를 마쓰리고토(政; 주술적 정부)라고 불렀다. (pp. 25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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