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길, 저쪽 (정찬, 창비, 2015.) 본문
1. 정찬의 소설 속에서 폭력은 점점 구체적인 형태를 갖춰가고 있다. '길, 저쪽'에서의 폭력은 어느 특정한 시점의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훨씬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흔적을 남기기까지 한다.
2. 지난 번 '정결한 집'과는 달리 이제 그 흔적/기억/트라우마로부터의 탈출은 추상세계로의 도약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시도는 하지만 실패한다. 물리적이고 육화된 폭력에 대한 구원이 그렇게 쉽게 이뤄질리가 없잖은가.
3. 폭력은 물화되어 다가온다. 탈출도 불가능하다. '길, 저쪽'은 가닿을 수 없는 피안처럼 그저 영원히 '저쪽'일 뿐이다. 그 다음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은,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무엇일까.
제가 왜 한국을 떠났겠어요? 그녀의 생애를 잊어야 했으니까요. 그녀의 생애를 잊는다는 것은 그녀가 살았던 땅의 기억을 잊는 것이에요. 전 한국어조차 잊기를 원했어요. 한국어는 제 피부에 깊숙이 박힌 가시였어요. 저는 그들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요. 저를 강제 연행하고, 협박하고, 욕설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강간한 사람들의 얼굴 말이에요. 그들의 얼굴은 밋밋해요. 그 위로 어떤 얼굴이 들어앉더라도 의미가 없어요. 그들은 저에게 가장 구체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추상적인 존재였어요.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달랐어요. 그들의 목소리는 결코 잊히지 않았어요. 제 피부 속으로 가시처럼 파고들면서 순식간에 저를 어둡고 밀폐된 공간으로 데려갔어요.
피부는 외부세계의 위험으로부터 자아를 보호하는 일종의 방벽이에요.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 앞에서는 무력했어요. 그들의 목소리가 특별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에요.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말을 해요. 그들의 말이 일상에서 흔히 듣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공포를 느꼈어요. 한국어에 대한 공포였어요. (p. 178.)
돌이켜보면 당시 나는 세계와 분리된 상태에 있었다. 그전까지 '나'라는 존재는 '우리'라는 더 크고 견고한 존재의 일부였다. 더 크고 견고한 존재의 바탕은 역사였다. 우리는 역사의 발전을 믿었다. 비록 지금은 '길, 이쪽'에 있지만 언젠가는 '길, 저쪽'으로 갈 수 있다는 믿음.그런 믿음이 없었다면 희생의 대열 속에서 그토록 꿋꿋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내 의식 속에 '우리'가 사라지고 나만 덩그렇게 있었다. (pp. 193~194.)
권력의 야만성은 인간을 내려다보는 데서 싹트네. 인간이 내려다볼 수 있는 생명은 네 발로 걷는 짐승이네. 그런데 인간은 인간을 내려다봄으로써 인간을 짐승으로 격하시켰네. 이반 4세는 군주의 자리에서 신민을 내려다보았네. 군주의 시절이 끝나고 부르주아 사회가 형성되자 인간을 내려다보는 새로운 존재가 생겨났네. 자본이라는 괴물 말일세. 마르크스가 세계를 거꾸로 세우려는 꿈을 품은 것은 자본이라는 괴물의 욕망을 누구보다도 깊이 들여다보았기 때문일 걸세. (pp. 228~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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